008. 박순애 질식사건 (2)2021.12.08.
“박강준, 자신은 있어?” 김성호 이사는 강준이 믿을 만한 구석이라도 있는 게 아닌지 궁금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파는 거지요.” 강준은 짧게 대답하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은정 씨! 갑시다! 외근하러요.” “네? 갑자기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요?” “현장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현장이요……?” “그래 아까 문 닫혔었다면서요? 그럼 아무도 못 만났을 거 아닙니까?” 최은정은 현장이라는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해도 최은정에게 보험사기 관련자들을 직접 만나는 건 긴장되는 일이었다. “직접 만나 봐야죠. 사기꾼 오미영이요!” 김성호 이사는 강준의 현장 방문을 승인했고, 강준은 최은정을 앞세우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제가 운전해요?” “그럼 차 주인이 운전하지. 누가 운전합니까?” 강준의 말에 인상을 쓰면서도 순순히 운전석에 앉는 최은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강준에게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 슬슬 헷갈리고 있었다. 부릉! 부르릉! “물증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차에 시동을 건 최은정이 강준을 떠보듯이 물었다. “이제 찾아봐야죠. 근데 찾지도 않고 처음부터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죠?” 강준이 버릇처럼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려 하자 최은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차 안에서 흡연은 절대 안 돼요!” 강준은 막 피려고 했던 담배를 순순히 내려놓았다. 잠복수사를 하며 차에서 담배를 태웠던 버릇은 이제는 버려야 했다. “알겠어요, 금연…… 오케이!” 최은정은 오미영이 운영한다던 부천의 닭갈비 집으로 차를 몰았다. 강변북로와 서부간선도로의 끔찍한 차량정체가 이어지는 동안 강준은 역시나 조수석에서 잠에 곯아떨어졌다. “박강준 씨!” “……어! 어어…… 다 왔어요?” “네, 저 앞에 원조 닭갈비라고 쓰인 간판 보이시죠? 저기가 박순애가 일했던 가게예요.” 강준은 조수석 문을 열고는 무턱대고 가게 쪽으로 걸어갔다. “뭐예요, 같이 가요!” 최은정이 급하게 강준의 뒤를 쫓아 걸었다. “계십니까?” “몇 분 오셨어요?” “네, 두 명이요.” 가게의 테이블은 총 8개, 평수는 15평, 애매한 규모의 가게였다. 장사가 그리 잘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홀에는 두 명의 인원이 손님 응대와 서빙, 그리고 계산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오미영 씨 만난다면서요?” 최은정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강준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밥은 먹고 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혹시 법인카드 가져왔어요?” “네? 저 법인카드 없는데요?” “어? 저 돈 없는데?” 강준은 최은정이 계산하라는 말이었다. “저 얼마 전까지 병원에 누워 있던 사람입니다.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월급 받으면 제가 쏠게요. 오늘은 최은정 씨가 내시죠.” 최은정은 너무 대놓고 자신더러 결제하라는 강준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리 싫지는 않았다. “알겠어요. 이 사건만 잘 해결해 주면 밥이야 제가 얼마든지 사죠.” “앗싸! 소고기도 괜찮습니까?” “물론이죠.” “오케이! 근데…… 저기 오미영 아닙니까?” “네?” 최은정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서류에서 봤던 오미영이 분명했다. 50대 후반의 화려한 옷차림과 얇은 스카프, 그리고 뾰족한 스틸레토 힐을 신은 걸 보면 분명 가게에서 직접 일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요? 가서 직접 박순애 죽였냐고 물어볼 겁니까?” “그래도 직접 얘기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에요?” “본디…… 현장에는 서류에서 말하지 않는 걸 찾으려고 오는 거거든요.”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요?” “제가 봤던 탐정물에 나오는 얘깁니다.” “영화 같은 거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탐정물이라면 안 가립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아니면 소설이든지요.” 강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점원이 양념에 버무려진 닭갈비 생고기를 내왔다. “와! 먹음직한데요? 그나저나 여기 장사는 좀 어때요?” 강준은 점원에게 친숙하게 말을 건넸다. “장사요? 그냥 그렇죠. 경기가 안 좋아서…….” “매장 내놨다는 얘기도 들리던데요?” “정말요? 사장님이 그런 말씀 없으셨는데……?” 점원은 카운터에 있는 오미영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당연히 그런 말씀 없으셨겠죠. 근데 아마 보험금을 받으면 달라질 겁니다.” “네?” “모르셨어요? 박순애 씨 사망보험금, 오미영 사장이 수령인이거든요.” “어머……!” 점원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란 기색이었다. “최은정 씨, 명함 있어요?” “네? 네 잠시만요!” 최은정은 핸드백 속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강준에게 건넸다. ―성원화재, 보험조사팀, 최은정 사원 “오미영 씨가 수령할 예상 보험금은 총 18억 원이죠. 18억이면…… 어디 보자. 신고포상금이 얼마입니까?” 강준의 질문에 최은정이 호흡을 맞추듯 대답했다. “네, 11억 원 이상일 경우 천만 원이죠!” “들으셨죠? 혹시나 생각나시는 거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근데, 이거 언제 먹으면 되는 겁니까?” 점원은 명함을 받아들고는 눈치를 보다 앞치마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걸 보면 오미영 사장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닌 듯했다. “……한 번만 더 익히고요. 아직 드시지 마세요.” 오미영은 테이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전화기를 붙잡고는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오미영은…… 뭔가 좋은 일이 있나 보네요.” “박강준 씨, 이런 식으로 탐문하는 거예요?” “보험수사관이 뭘 할 수 있겠어요? 주변인들 탐문하고 수상쩍은 거 있으면 수집하고…… 그게 다겠죠. 뭐.” “흠…… 전에 영업부서에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나 영업사원이었었지…….’ 강준은 최은정이 예리한 눈빛으로 자신에 관해 물어보자 익어가는 닭갈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까 말했잖아요. 제가 탐정물이랑 형사물을 좀 좋아한다고요. 거기서 보험사기도 단골 소재죠…….” “그래서요? 거기서 본 대로 한다는 거예요?” “왜요? 안 될 거라도 있습니까?” 최은정은 영화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하려다 속으로 삼켰다. 어쨌든 강준 덕분에 닭갈비 집 점원의 협조를 얻어냈기 때문이었다. 강준은 집게로 다 익은 닭고기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아까 왔던 점원이 주방에서 나오면서 조심스럽게 강준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저 사장님께 말씀드려서 일찍 퇴근하기로 했거든요. 6시면 끝나니까…… 요 앞에 사거리 커피숍에서 봬요…….” 강준은 최은정을 향해 거봐라는 듯 씩 웃어 보이고는 점원에게 손가락으로 오케이 표시를 만들어 보였다. 배를 채운 둘은 점원이 말한 사거리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뭔가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전 남들 얼굴만 봐도 뭔가 속이고 있는 사람들은 금방 알아보거든요.” “어떻게 알아보는데요?” “감. 감으로요!” 강준은 자신이 15년 경력의 강력계 경찰이었다는 사실도, 신체가 닿으면 상대의 기억을 읽는다는 것도 말할 수 없었다. 진짜를 말한다고 해도 미친놈 취급할 게 뻔했다……. “감이라는 건…… 설득력이 없잖아요!” “제가 최은정 씨를 설득해야 합니까? 갑자기 달달한 게 땡기네요. 전 카라멜 마끼아또요!” 최은정은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골이 난 표정으로 강준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제가 밥을 샀으면 커피는 박강준 씨가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 월급 받을 때까지만 부탁합니다!” 강준의 정중한 부탁에 최은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주문하러 일어났다. 강준은 자리에 혼자 남자 얼른 핸드폰 화면을 꺼내 보았다. 연남시 경찰인 이진철에게 미리 부탁했던 자료였다. ―김미리,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 한국빌라 503호. 최초 신고자인 김미리. 질식사로 판정된 이 사건이 보험사기라면 박순애의 죽음을 지켜봤던 김미리도 공범이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이진철의 문자가 이어졌다. ―강준 씨, 계좌 추적은 수사 시작하면 딸 수 있으니까 일단 거주지부터 확인해보세요. 출입국 기록은 없으니까 집에 있을 겁니다. 이진철은 차량 보험사기 사건으로 경제수사팀에서 입지를 단단한 굳힌 모양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동갑내기 두 남자인 강준과 이진철은 무척 가까워져 있었다. 커피를 가져오는 최은정이 닭갈비 집에서 봤던 점원과 함께 왔다. 그녀의 이름은 이혜숙, 40대의 중반의 땅딸막한 키를 가진 평범한 인상의 인물이었다. 강준의 예상대로 그녀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원래 그 가게가 순애 언니네 가게거든요. 처음에는 장사가 잘됐는데 어느 순간부터 탁 꺾이더니…… 근데 그게 실은 오미영이 벌인 일이라는 얘기가 있어요.” “오미영이 가게를 빼앗은 거라고요?” 이혜숙은 비밀이라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니 글쎄, 계속 단속이 나오는 거예요. 처음에는 위생단속을 나오더니…… 나중에는 미성년자 주류판매로 한번 크게 걸려서 그것 때문에 순애 언니가 나자빠진 거거든요.” “하긴 임대료가 클 테니 영업정지를 버티기 힘들었겠죠.” “맞아요. 거기 한 달에 월세가 그래도 200만 원이었거든요. 게다가 이것저것 직원들 월급까지 따지면…… 한두 달 문 닫으면 안 돌아가는 거죠. 딱! 그때 오미영이한테 딜이 들어온 거고요.” “가게를 넘기라고요?” “네, 그렇게 된 거죠. 순애 언니로서는 가게 들어간 돈이라도 건져야 했으니까요.” 이혜숙의 얘기를 듣고 있는 최은정은 수첩에 깨알같이 메모를 적고 있었다. “그 이후로 둘의 관계는 어땠는데요?” “둘이 엄청 친하게 지냈죠. 가게 인수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가게는 순애 언니가 관리했으니까요……. 근데 보험금을 오미영이 먹은 걸 보면 철저하게 계획하고 그런 거네!” 손바닥을 마주치면서까지 흥분하는 이혜숙이었다. “박순애 씨가 사망했던 날…… 직접 보셨습니까?” “아니요. 전 비번이었거든요. 미리가 있었죠. 원래는 서빙하는 동포분이 한 분 더 계셨는데 그날따라 결근했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박순애의 죽음을 직접 지켜본 건 김미리 씨밖에 없군요.” “……그런 셈이죠. 근데 미리가 그랬을 리는 없어요.” “왜요?” “순애 언니가 미리한테 돈을 빌렸어요. 갑자기 죽어버리면 무슨 수로 그 돈을 받겠어요?” “얼마나요?” “2천만 원이요. 미리한테는 큰돈이에요. 그리고 그날 충격으로 일도 쉬고 있는 마당인데…….” “알겠습니다. 혹시 또 알고 계신 거 있으시면 연락 주시죠.” 강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화를 마치려 했다. “아…… 근데 신고포상금은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나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최은정이 답했다. “오미영이 꾸민 보험사기 살인사건이라는 걸 확인할 물증을 주셔야 해요. 어차피 이 건은 보험사 측에서 조사를 착수한 사건이라서요.” “아…… 알겠어요. 찾아볼게요. 근데, 선생님. 정말 오미영이 순애 언니를 죽인 걸까요?” “저희도 조사를 더 해봐야 알겠죠.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두고 생각해야 하니까요.” 강준이 다시 바톤을 이어받아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박순애 씨 남은 짐은 어떻게 했나요?” “오미영이 장례식 끝난 다음에 다 치웠어요…… 트럭이 와서는 한꺼번에 싣고갔죠.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박순애 씨가 가게를 계속 관리해왔다면 이전의 가게 계약서도 보관하고 있을 겁니다. 거기에 박순애 씨 필적이 남아 있을 거고요. 그걸 찾아오시면 포상금을 받을 물증이 되겠네요.” 강준의 말에 이혜숙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럼, 또 연락드릴게요.” 이혜숙이 사라지자마자 강준은 시계를 한번 보고는 화제를 돌렸다. “최은정 씨! 이제 퇴근할 시간 아닙니까? 요즘 사람들은 칼퇴근 이런 거 안 하나요?” “아니, 벌써 퇴근할 생각을 한다고요?” 강준은 대답 대신 손목시계의 바늘을 가리켰다. 벌써 오후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