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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박순애 질식사건 (1) (7/250)

007. 박순애 질식사건 (1)2021.12.07.

김성호 이사는 으리으리한 보험조사 1팀의 널찍한 사무실을 지나 복도 끝에 있는 사무실로 둘을 데려갔다. 10평도 안 될 것 같은 사무실엔 벽면의 책상이 둘려 있고, 가운데는 커다란 회의 테이블이 있었다. 작은 창 때문인지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이거…… 저희를 어디 창고 같은데 박아두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왜? 그럴싸한 사무실이라도 주는 줄 알았어?” “그래도 옆의 1팀과는 너무 차이가 있는 거 아닙니까?” “박강준, 최 회장님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아나?” “그게 뭡니까?” “낭비! 쓸데없이 겉치레로 포장하는 거 딱 질색이시지. 일에서도 마찬가지고.” 성원그룹의 최창식 회장은 자수성가한 전형적인 기업가로 알려져 있었다. IMF 시절 매물로 나온 부실 보험사를 인수해 대한민국 최고의 우량 보험사로 만들었다. 그걸 바탕으로 증권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신화적인 경영자가 됐고 말이었다. 지금은 건설과 레저로까지 계열사를 확장하며 성원그룹을 중견그룹의 반열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바꿔말하면 실적이 없으면 대우도 없다…… 뭐 엄청 합리적이네요. 최은정 씨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박강준 씨가 좋은 결과 만들어줄 거라 믿어요.” 최은정의 말에는 상대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둘이 팀웍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군!” 김성호 이사는 둘을 번갈아 보더니 흐뭇하게 웃었다. “박강준, 저기 있는 의자 가져와서 앉아. 일단은 사건에 집중해보자고!” 최은정은 단출한 자신의 책상 위에서 노트북을 집어 들고는 회의 테이블 위로 가져왔다. “최은정, 그럼 박순애 사건 개요부터 설명해봐!” 김 이사의 말에 최은정은 벽면에 프로젝트를 띄우고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느새 사뭇 진지해져 있었다. “닭갈비 집에서 일하던 박순애 씨는 20년 전에 이혼했고, 그 이후로 혼자서 생활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5년 전부터 이 닭갈비 집에서 서빙 일을 하면서 닭갈비 집 사장이자 건물주인 오미영 씨가 제공한 숙소에서 생활해 왔고요.” “그 숙소가 혹시 닭갈비 가게가 있던 건물에 함께 있는 겁니까?” 강준이 날카롭게 물었다. “네, 맞아요. 90년대 지어진 건물인데 1층은 가게이고 2층부터 4층까지는 투룸으로 개조해서 세를 주고 있었어요. 그 가운데 한 곳이 박순애 씨가 살던 곳이고요.” “사인이 질식이라고 되어 있네요?” “어이없게도 떡을 삼키다 질식한 것으로 되어 있어요. 보통 떡을 먹다가 죽나요……? 좌우간 119가 출동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어요.” “최초 신고자는요?” 강준의 질문은 누가 봐도 경찰수사관의 말투였다. 김성호 이사와 최은정은 그런 강준의 모습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아차! 나 사회초년생 박강준이지…….’ “아! 오해할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저 원래 꿈이 형사였습니다. 물론 그 꿈은 못 이뤘지만, 평소에 탐정물이나 수사물을 엄청나게 좋아하거든요. 하하!” 강준이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지만, 둘의 굳은 얼굴은 다시 펴지지 않았다. “최초 신고자는 함께 일하던 김미리 씨요.” 최은정의 대답에 함께 듣고 있던 김성호 이사가 말을 보탰다. “거기 기록에 나와 있다시피 사망보험금 수혜자가 오미영으로 되어 있어. 사망보험금은 총 18억 원. 여기저기 보험을 들었는데 우리 쪽에서 든 보험에서 나갈 돈은 4억 원 정도 되는 거고.” “아…… 그럼, 오미영이 일부러 죽였다는 거네요. 근데…… 보통 사망보험금 수령자를 그렇게 아무나 해도 되는 겁니까?” “그게…… 오미영이 박순애의 자매로 되어 있었거든.” “네? 성이 다른데 자매라고요?” 박순애는 이혼 후 가게에서 일하는 걸 제외하고는 지인과도 만나지 않는 꽤 고립된 생활을 이어왔다. 그런 박순애를 지켜봐 왔던 닭갈비 집 사장 오미영이 돌봐준다는 핑계로 자신의 모친 밑으로 박순애를 입양했던 것이었다. 박순애에게는 어릴 적에 헤어진 딸이 있었지만, 박순애 앞으로 된 재산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장례 이후에 재산상속도 포기해버린 상태였다. “오미영은 입양 절차가 끝나자마자 보험사를 돌아다니며 사망과 질병 보험을 들기 시작한 거고요. 경찰에서도 그 부분 때문에 정식 수사를 하기는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왜요?” “사망하기 얼마 전에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초기 당뇨 증세로 진단받았었거든요. 그러니 갑작스럽게 다수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게 설명되는 거죠.” 최은정이 어느새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안경테를 매만지면서 보충 설명을 했다. “CCTV는요?” “가게 앞에 하나가 있긴 한데…… 가게 문을 닫은 이후에 드나든 사람은 없었어요.” “현장은 가봤고요?” “네?” “그 닭갈비 집에 가봤냐고요?” “…….” 강준은 어느새 김성호 이사의 존재를 잊고 최은정을 다그치고 있었다. “현장에 가보는 것도 좋지. 언제까지 경찰에만 매달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주변인들을 탐문하다 보면 의외로 쉽게 문제가 풀리기도 하고 말이야.” 김성호 이사는 둘 간의 긴장된 공기를 풀기라도 하듯 현장 방문을 따졌던 강준의 말에 대신 대답했다. 강준도 김 이사의 말을 듣고는 최은정에게 더 이상 따지듯이 물어서는 안 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가봤어요. 현장!” 불편한 침묵을 깨고 최은정이 말을 꺼냈다. “네, 정말요? 가서 뭘 봤는데요?” “가게 문이 굳게 닫혀 있었어요. 우리가 경찰도 아닌데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강제로 따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최은정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강준은 자신이 이제 경찰이 아니라 보험수사관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근데, 최은정 씨…… 대학에서 전공이 뭐였습니까?” “그건 왜요?” “사건 기록 정리해놓은 걸 보니까 경찰이 됐어도 잘했을 거 같아서요. 하하!” 긴장을 풀려는 강준의 뜬금없는 칭찬에 최은정이 피식 웃었다. “……전 통계학과를 나왔어요. 논문은 몬테카를로 기법을 이용한 적정 암 보험료 산출에 관한 연구죠.” “네? 무슨 기법요?” “그러니까…… 난수나 랜덤 실험을 통해서 수학적인 문제의 근삿값을 찾아가는 방식인데…… 잠깐만! 제가 왜 그걸 박강준 씨한테 설명하고 있어야 하죠?” 박강준에게 되묻는 최은정이었다. 옆에서 김성호 이사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작년 한 해 보험사기가 7,980억 원이야. 그중에서 손해보험 사기가 90.7%이고. 그걸 한 건 한 건 들여다보며 잡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결국, 전체 데이터를 통해 역추적하는 수밖에는 없어.” 강준은 팔짱을 낀 채 테이블 위로 기대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보험조사팀에 통계학과를 나온 최은정 씨가 필요하다는 얘기군요.” “그렇지. 하지만 데이터로는 짐작만 할 뿐이야. 현장에서 보험사기를 잡아내는 건 전혀 다른 얘기지. 자네가 얼마 전에 차량 보험사기 조직을 잡았다고 하니 우리도 한번 일을 맡겨보는 거야.” “일종의 테스트군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안하지만 사실이야. 난 거짓말은 질색이거든! 워낙 거짓말쟁이들을 많이 봐서 말이야…….” 여러 범죄자를 다뤘던 강준은 객관적인 데이터로만 사실 파악을 하겠다는 김성호 이사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 인물은 자신의 경찰대 동기이자 연남시의 경제 범죄를 수사하던 이진철 경위였다. 둘은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강준은 다시 서류 파일로 시선을 옮겼다. “근데, 이거 우리가 막을 금액이 4억이네요?” 김성호 이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 건을 해결한다고 해서 우리 회사에서 지급될 4억 원을 아낄 수 있는 건 아니야.” “왜요? 오미영에게 지급 중지를 해둔 거 아니었나요?” “숨진 박순애에게 친딸이 있거든. 친모가 다른 곳으로 입양되더라도 친딸 관계는 뒤바뀌지 않으니까.” “아까 친딸이 상속 포기를 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강준의 질문에 최은정이 나섰다. “보험금은 상속 재산에 포함되지 않아요. 상속 포기를 했다 하더라도 유족이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죠. 그 정도는 보험조사관으로서 상식이에요.” 최은정은 한 방 먹였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앉은 강준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네! 알려줘서 고맙네요. 앞으로도 보험법은 부탁 좀 드릴게요~!” 최은정의 의도와는 달리 넉살 좋게 받아치는 강준이었다. 그런 강준을 보며 최은정을 피식 웃었다. “그럼, 이사님. 성원화재에서는 왜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겁니까? 민간 기업은 이익을 내려고 움직이는 거 아니었나요?” 경찰 시절 강준은 기업에서 수많은 뇌물 유혹에 시달린 바 있었다. 그런 강준의 시각에서 기업이 이익을 좇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보험금을 원래 받아야 할 수령자에게 가게 하는 것도 보험사의 의무야. 그게 우리 성원화재의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김성호 이사는 무자비하게 보험지급액을 깎으려는 보험조사관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야 할 곳에 보험금이 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보험조사관이 꼭 비용을 아끼는 역할은 아니다…… 뭐 이런 건가요?” “보험에 대한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는 건 장기적으로 보험사에 이익이기도 하지.” 강준은 경찰로서의 신념을 지키다 처참하게 깨진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그래도 이번 생은 다를 거다. 남의 기억을 읽는 능력이 있으니까…….’ 강준은 갑자기 김성호 이사의 기억이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이 말한 것처럼 신념을 지키고 살아왔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감동적인 말인데요? 저도 여기 보험조사 2팀에 온 만큼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보험조사관으로서 배워야 할 점들은 이사님께 많이 배우겠습니다!” 강준은 허리를 굽히고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었다. “그래, 열심히 한번 해봐! 보험조사관 업무가 나름 보람된 일이지.” 뜬금없는 행동이었지만, 김 이사는 선의로 받아들였는지 덥석 손을 잡아줬다. 그 순간 김 이사가 그간 보험조사관으로서 싸워왔던 장면들이 전이됐다.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싸웠지만 대체로 그는 합리적으로 일 처리를 해나가려는 사람이었다. 그가 한 말이 그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근데 내 전이 능력은 그때마다 달라서 그게 한계군.’ 강준은 타인을 접촉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기억들이 매번 다르고 그 강도와 깊이 또한 천차만별이라는 걸 이해했다. 어쩌면 전이 능력이란 타인의 뇌 속에 떠오른 기억을 자기공명영상처럼 전달받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사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들어주지.” “이번 건 해결하면 이 팀에 팀원 충원 부탁드립니다.” “뭐? 벌써?” 최은정이 강준의 말을 듣고는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강준 씨, 아직 그런 말 할 때는 아니지 않나요?” “이번 사건만 해결하고 끝낼 건 아니지 않나요? 팀원이 있어야 수사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무척 단호한 말투로 말하는 강준이었다. 최은정은 그런 강준의 단호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좋아! 박강준, 이번 건 잘 해결하면 보험조사 2팀에 인원을 충원해주지.” 고심하던 김성호 이사는 강준의 요구가 얼토당토않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요구가 실현되기 위해선 미제사건으로 끝날 박순애 사건을 강준이 해결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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