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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신입 팀원 박강준 (5/250)

005. 신입 팀원 박강준2021.12.05.

연남경찰서 경제수사팀.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젊은 여자가 한정수 경사를 따라다니며 뭔가를 따지고 있었다. “한 경사님! 정말 이러시기예요?” “아! 또 뭐가요? 그 여자가 정말 타살된 건지 증거 있습니까?” “정황이 그렇잖아요! 박순애 씨가 사망하면 혈연관계도 아닌 오미영이 18억 원의 보험금을 타게 돼 있다고요!” “네네……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이라는 거 저도 인정합니다. 인정한다고요! 근데, 질식사라는 사인은 바뀌지 않아요.” 한정수 경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가 나간 곳을 바라보며 허탈해하고 있는 이는 성원화재 보험조사과의 최은정이었다. 그녀는 성원그룹 최창식 회장의 막내딸이기도 했다. “와! 정말 이러기예요? 경찰에서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수사하면 검찰에서도 정식으로 기소할 거라고요!” 최은정은 성원화재의 보험조사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변호사였다. 자수성가한 최 회장의 핏줄답게 그녀는 자신의 힘만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성원그룹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이복 오빠이자 성원그룹의 후계자를 노리는 최진태 이사를 두고 볼 수 없어서였다. 최진태는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기도 전에 해외사업 파트를 만들어 그룹의 자금을 빼돌릴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그런 최진태를 막아서지 않는다면 자신의 친모와 최창식 회장이 함께 일궜던 성원그룹을 지켜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은정아, 너는 법무팀을 맡아!] 최 회장은 야속하게도 그런 그녀를 법무팀에 한정시켜 두려 했다. 하지만 최은정은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법무팀이 아니라 보험조사팀에 지원했다. 어릴 적부터 따랐던 김성호 이사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무의식중에 최은정도 보험조사관으로서의 꿈을 키워왔던 것인지도 몰랐다. “혹시 성원화재에서 나오셨어요?” “네, 맞아요! 누구시죠?” 최은정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은 이진철이었다. “경제수사팀 이진철 경위입니다. 얼마 전에 성원화재에서 나오셨었는데…… 아시죠?” “네? 저희 성원화재에서요? 금시초문인데요?” “조직적인 차량 보험사기에 대한 자료를 받았습니다. 덕분에 우리 경찰에서도 정식으로 수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요.” 전보다 얼굴이 밝아진 이진철이었다. 강준이 제공한 자료를 가지고 진철은 윗선에 조직적인 차량 보험사기에 대한 사건보고서를 올렸고, 그 결과로 대대적인 수사 지시가 내려온 상황이었다. 덕분에 이진철은 더 이상 텃세를 부리던 한정수 경사에게 끌려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혹시 그 자료 저도 볼 수 있을까요?” 최은정은 눈치 빠르게 이진철에게 착 달라붙었다. “그…… 그건, 직접 말씀하시면 되지 않나요? 같은 회사 직원일 텐데…….”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근데 누구라고 했죠?” “박강준 사원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보험조사과에 있는 거 아니었나요?” 오히려 되묻는 진철이었다. “아…… 뭐, 그런 것 같네요……. 성원화재가 워낙 커서 제가 모든 직원을 일일이 알 수는 없거든요. 좌우간 정식 수사가 들어가면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글쎄요. 2주 정도요? 결과가 나오면 피해를 본 보험사들에는 결과를 직접 통보해드릴 겁니다.” 최은정은 재빨리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성원화재 보험조사과 최은정이에요! 결과는 이쪽으로 보내주시면 돼요.” “아…… 알겠습니다! 연락드리죠.” 이진철은 적극적이면서도 똑 부러지는 최은정을 보며 얼마 전 자신에게 자료를 제공했던 강준을 떠올렸다. 둘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였다. * * * 성원화재 본사 보험조사팀.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연남지점의 영업사원 한 명이 밝혀낸 거랍니다.” “이거 큰일인데…… 이렇게 될 때까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거 아니야…….” “입장이 무척 곤란하게 됐습니다. 다른 보험사들에도 알려져서 수습하기가…….” 김성호 이사는 머리가 지끈 아파져 왔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건들에 업무가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연남경찰서는 박강준이 제보한 차량 보험사기 건을 언론에 공개하며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다. ―외제 차를 활용한 조직적인 차량 보험사기단.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문구였다. 고병훈과 양태식은 보험사기를 기획하고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그들을 따라 차명으로 차를 매입하고 사기 범행을 도운 죄로 나머지 양아치들은 불구속 기소됐다. 똑똑! 이사실의 문을 두드린 사람은 보험조사팀의 막내 최은정이었다. “무슨 일이야?” “이사님, 회장님이 올라오시라는데요?” 김성호 이사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또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 팀장, 일단 그 영업사원이 누군지 좀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김 이사는 대화를 중단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은정아, 나한테 뭐 힌트 하나 줄 거 없냐?” 복도에 들어선 두 사람은 사무실에 있을 때와는 말투가 사뭇 달라졌다. 최은정은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김성호 이사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랐다. “아저씨, 혹시 박강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들어봤어요?” “휴…… 너도 그거 알고 있었냐?” “이 바닥 소문 빠른 거 아시잖아요.” “회장님이 뭐라 그러시냐? 화가 단단히 나셨나?”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반대라면…….” “박강준을 보험조사팀으로 데려오자고 하세요.” “뭐? 그게 정말이냐?” “네, 마음먹으신 거는 꼭 하는 분이시잖아요.” 김 이사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최 회장의 뜻은 거스를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음…… 회장님 뜻이 그렇다면…….” “전 반대예요.” “어? 그게 무슨 말이야?” 김 이사가 최은정을 홱 돌아봤다.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전 뜨내기 같은 누가 보험조사팀으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건 별로네요.” “은정아 근데 남들이 봤을 땐, 너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법무팀으로 가는 게 어떠냐?” 최은정은 슬쩍 김 이사를 한번 돌아봤다. “아빠가 아저씨한테 그렇게 설득해 달래요?” “내 생각도 회장님이랑 같아. 어렵게 변호사까지 됐는데 능력을 썩힐 수는 없는 거 아니냐…….” “아시잖아요, 보험조사관은 제가 꿈꿔왔던 일이라는 거요.” “흠흠…… 그래, 여기서 경력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저씨,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아저씨 하시던 대로 하시면 돼요.” “은정아, 그게 무슨 말이냐?” “제가 모르는 줄 알았죠? 아빠가 절 뺑뺑이 굴려서 못 버티고 법무팀으로 가게 하라고 했잖아요. 안 그래요?” “은정아…… 그건…….” 마침 엘리베이터는 최창식 회장이 있는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면서 곧바로 회장의 집무실이 나타났다. “어쨌든 다시 얘기하자꾸나.” “아저씨 입장…… 이해해요.” 최은정은 김 이사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집무실 내부는 현대적인 실내장식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가구로 채워져 있었다. 일체 불필요한 것들을 용납하지 않는 최창식 회장의 검소한 스타일이 집무실에도 묻어난 것이었다. 널찍한 테이블에서 최창식 회장은 홀로 식사하는 중이었다. 깔끔한 현대식 인테리어와는 어울리지 않게 회장의 식사 메뉴는 된장찌개였다.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식사했나?” “네, 직원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그래, 실례가 안 된다면 먹으면서 얘기하지.” “네, 회장님.” 테이블 위에는 박강준이 제보한 차량 보험사기 건이 대서특필된 신문이 놓여 있었다. “자네도 이거 봤겠지?” “물론입니다. 면목 없습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을…….” “자네가 그간 얼마나 회사에 헌신해왔는지 나도 잘 아네.” “네, 감사합니다.” “근데 이제는 자네도 감각이 무뎌졌어! 한곳에 머물다 보면 관성에 빠지게 되는 거지!” 회장은 수저를 탁 내려놓고는 김성호 이사를 바라봤다. 안경 너머 검버섯이 낀 회장의 얼굴에서는 매서운 눈빛이 서려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해야 했던 일인데…….” “내가 자네를 탓해봤자 뭐 하겠나? 내가 자네를 부른 건 젊은 사람에게 기회를 줘보자는 거야. 어때?” “……박강준을 보험조사관으로 키워보자는 말씀입니까?” 김성호 이사는 박강준의 영입을 조직 쇄신 차원에서인지 아니면 인재발굴 차원에서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왜? 안 될 거라도 있나? 내가 알아보니 그 친구도 뺑소니 사고를 당해 몇 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하더군…….” 회장은 아직 박강준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결정을 완전히 내린 건 아닌듯했다. 대화를 함께 듣던 최은정이 끼어들었다. “아빠, 그렇다고 검증되지도 않은 사람을 우리 보험조사팀에 넣는 건 말도 안 되죠!” “너는 입 다물고 있어. 지금 내가 김 이사랑 말하고 있잖아!” “알겠어요. 하지만 제 생각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최은정은 불같은 성격의 최 회장 앞에서도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전하는 스타일이었다. “회장님. 제가 알아보니 이번 일은 범인들이 박강준의 지인들이라고 하더군요. 어쩌다 한번 걸린 것뿐입니다.” “그럼, 그 녀석이 제대로 된 놈인지 테스트를 해보는 건 어떤가?” 최 회장은 냅킨으로 입을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창가로 다가가 통유리창 너머의 청계천을 내려다봤다. “회장님, 테스트라면…… 뭐 생각하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김 이사, 박강준한테 저번에 그 박순애 사건부터 맡겨봐.” “회장님 그 사건은 사망자 직계 가족이 있지 않습니까? 저희로서는 사건이 바로 잡힌다고 해도 보험금 환수는 어렵습니다.” 최은정은 회장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뺑뺑이 돌고 있는 사건이 바로 박순애 의문사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알아. 하지만 진짜 보험금이 가야 할 사람한테 지급되는 것도 우리 할 일이 아닌가?” “……네, 옳은 말씀입니다…… 분부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김성호 이사는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최은정과 함께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최은정이 곤란하다는 듯 속사포처럼 말을 꺼냈다. “아저씨, 아빠가 혹시 일부러 제 사건에 박강준을 배치한 거예요?” “왜. 안 될 거라도 있어?” “그게 아니라 아빠의 의도를 잘 모르겠거든요……!” 김성호 이사는 최은정을 한번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너 일타쌍피라고 들어봤냐?” “무슨 말씀이시죠?” “회장님이 너를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 하는 거 같다.” “박강준을 시험하려는 게 아니고요?” “물론 그런 의중도 있겠지. 하지만 박강준은 일개 사원일 뿐이야.” 최은정은 지금까지 최 회장이 자신을 경영에서 배제하려는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이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회장님은 너한테 회사경영을 맡길 수 있는지를 보려는 거다. 내심 최진태 이사를 맘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다. 이번 기회에 네가 만약 실력을 입증한다면 그걸 빌미로 더 중요한 역할을 맡기시려는 거 아니겠냐?” “박강준은 그럼 왜 저한테 붙이는 거예요?” “그야, 뭔가 실패해도 부담이 없으니까!” 김성호 이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성원그룹의 입장에서는 박강준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를 데리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은정아,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잘 교육해 봐라. 혹시 아냐? 너랑 괜찮은 팀을 이루게 될지.” 최은정은 김 이사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의 팀을 성공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계모와 이복 오빠 최진태 이사의 횡포를 막을 방법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잃을 게 없는 법이었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은정아, 지금 네 눈빛…… 누굴 닮았는지 아냐?” “……누구요?” “최 회장님! 핏줄은 못 속인다더니!” 김성호 이사는 최은정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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