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차대번호 위조 (1)2021.12.03.
―제이모터스. 벤츠, BMW 수입차 전문 고병훈의 카센터는 외제 차를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곳이었다. 카센터 한쪽의 공터에는 대여섯 대의 외제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오! 병훈이 너 성공했구나.” “원래 우리 집이 좀 살았었잖아? 기억 안 나냐?” 병훈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강준에게 대꾸했다. “그나저나 양태식, 네가 사고 낸 차량이 뭐냐?” 뒷좌석에서 한껏 기가 죽어 있던 양태식이 병훈의 눈치를 살폈다. 분명 강준이 뭔가 알고 있는데 말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 그건 사고 나서 벌써 폐차했지.” 강준은 당장에라도 해당 차량의 수리 기록과 폐차 기록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경찰이 아닌 신분이었다. 흥신소처럼 여기저기를 쑤시고 돌아다니다가는 오히려 더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 있었다. “강준아, 그러지 말고 들어가서 커피라도 한잔하자.” 병훈은 차로 데려다준다는 핑계를 대고는 자신의 카센터로 데려왔다. 강준이 자신들의 구린 짓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남자끼리 커피는 무슨…… 됐고! 아까 차 빌려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냐?” “어? 뭐 빌려줄 수야 있지…… 근데, 뭐에 쓰려고……?” “내 차 박고 도망간 뺑소니 놈들 잡아야지. 왜? 차 빌려주기 싫냐?” 강준의 입에서 뺑소니라는 말이 나오자 병훈이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그래봤자 증거를 어떻게 찾겠냐는 듯 표정을 싹 바꾸고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차야 빌려줄 수 있지. 근데 일단 앉아서 얘기나 좀 하자…….” “……지금은 바쁘고 저녁에나 거하게 한잔하자.” “뭐…… 그럼, 그러든가…….” 할 말이 없어진 병훈이 못 이기며 내준 차는 낡은 스포츠카였다. 얼마나 손바뀜이 많이 된 건지 알 수 없게 외관을 싹 다 바꾼 차량이었다. “고맙다. 쓰고 돌려주마.” “근데…… 강준아. 너 뺑소니범 어디 가서 잡으려고?” “일단 경찰서 가야지. 왜? 혹시 뭐 아는 거 있냐?” 병훈은 굳은 얼굴로 강준에게 자동차 키를 넘겨줬다. “내가…… 너 생각해서 얘기해 주는 건데…… 쓸데없이 기운 낭비하지 마. 경찰이 언제부터 우리 편 들어줬다고 그래? 찾아가면 귀찮아하기만 하지.” “그래도 불법 저지른 놈들 잡는 게 경찰 아니야? 경찰 아니면 누가 내 뺑소니범 잡아주겠냐?”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병훈은 말끝을 흐렸다. “됐고! 저녁에 보자! 야, 양태식 너도 와라. 친구가 퇴원했는데 축하해 줘야지.” “어……? 뭐…… 그러자…….” 양태식은 아까 당한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강준의 말에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부릉! 부르르릉! 외관은 그럴듯했지만, 차량의 엔진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겉만 번지르르한 새끼들……! 이제 네놈들 잡을 증거 찾으러 간다.’ 강준은 익숙하게 차를 몰고는 카센터를 빠져나왔다. 타인의 기억을 읽는 능력으로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강준은 적어도 남들이 하는 거짓말의 실체를 까발릴 수는 있겠다 싶었다. * * * 강준이 도착한 곳은 경찰서가 아니라 중고차 매매시장이었다. 병훈의 기억에 따르면 그들은 그곳에서 사고기록이 있는 외제 차를 사들였었다. 단지 내로 진입하자 매매상들이 보닛을 ‘툭툭’ 치며 호객행위를 했다. “뭐, 찾는 거 있으세요?” “차 사러 온 거 아니고요. 뭐 하나 물읍시다. 여기 C동이 어딥니까?” “……저쪽으로 가보슈…….” 호객꾼은 실망한 눈초리로 C동 방향을 가리켰다. 오래된 5층 상가. 그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의 중고차 매매단지 C동은 인기척조차 드문 장소였다. 강준이 차에서 내려 계단을 타고 익숙하게 올라갔다. 근처의 A, B동은 그나마 간판이라도 내건 곳들이 대부분이었지만 C동은 정체불명의 업체들이 드문드문 입주한 곳이었다. ‘김용식이라고 했지……?’ 김용식. 도난차량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인간으로 전직 조폭 출신이었다. 강준이 경찰이었던 시절 김용식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은퇴했다고는 하지만 조직의 자금세탁을 해주는 거로 유명한 놈이었다. “대충 이쯤인데……?” 창고로 위장한 용식의 사무실을 제대로 찾은 듯했다.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지만, 전력기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는 거로 봐서 회귀한 세계에서도 용식은 여전한 모습인 게 틀림없었다. 텅! 텅! 텅! “안에 누구 없어요? 김용식 씨! 김용식 씨! 얼굴 좀 봅시다!” 굳게 닫힌 철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문을 반만 열고는 강준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너 뭐냐? 왜 우리 형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지랄이냐? 이 새끼야!” “어, 미안한데…… 당신한테는 볼일 없고, 김용식 씨랑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근데 이 새파란 새끼가 말하는 본새가 왜 이러냐!” 남자는 막 주먹이라도 한 대 날릴 듯이 노려봤다. ‘아차! 나 박강준이지. 28살! 젊어서 좋긴 한데…… 이런 게 불편하네…… 쯧!’ 경찰대 동기 중에 유도실력은 최고였던 강준이었다. 당장에라도 덩치 녀석을 업어치기로 넘겨버리고 싶었지만, 김용식을 찾아온 용건부터 해결해야 했다. “저기요 형씨, 김용식 씨가 필리핀 정킷방에서 나오는 돈을 환전해 주고 있다는 거! 그거 딴 데 가서 말해도 되는 겁니까?” “너 누구야 이 새끼야!” 덩치가 강준의 어깨를 툭 치고 밖으로 밀었다. 그때 안에서 용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시끄럽게 하지 말고 들여보내!” 오랜만에 들어보는 용식의 목소리였다. 그는 조직의 뒷일을 봐주며 살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 정상적인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업가를 지향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용식이 제일 싫어하는 건 일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야! 여기 차나 한 잔 가져와라. 여기 앉으쇼.” 단추를 두 개나 풀어헤친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은 용식은 사업가를 지향하는 그의 바람과는 달리 영락없는 건달이었다. “아까 했던 얘기 그거 뭐요?”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다시 인사드리죠. 성원화재 박강준 사원입니다.” “성원화재? 보험사?” 용식은 한쪽 눈을 치켜뜨고 강준을 노려봤다. “요즘 도난차량에 번호판만 바꿔서 보험사기를 치는 놈들이 있어서요. 제이모터스 쪽으로 나간 차량만 확인해주시면 더 이상 문제없게 해드리겠습니다.” “뭐야? 보험조사단…… 뭐 그런 데서 나오셨나?” “네. 전 도난차량의 거래나 출처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걸로 장난질하는 피라미들이 있어서 좀 성가실 뿐이죠.” 용식은 정중하게 태도를 바꾼 강준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빤히 쳐다봤다. ‘뭘 쳐다봐! 느끼하게 생겨갖고는……!’ 강준은 용식의 머리통을 한 대 후려갈겼으면 했지만 참았다. 먼저 피라미 두 마리를 해결해야 했으니까 말이었다. “크크! 크하하하! 이 새끼 좀 보게. 아주 재밌는 말을 하네. 난 제이모터스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내가 너한테 그걸 왜 가르쳐 주냐?” 말투를 험하게 바꾸며 조롱하는 눈빛을 쏘는 용식이었다. “저희 보험사에서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하게 되면 경찰에서도 여기를 수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장님 입장에서도 꽤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뭐? 경찰? 크크…… 우리가 경찰 라인도 없이 일하는 줄 아냐? 너희보다 우리가 경찰이랑 더 친하다고!” “황재규 반장…… 혹시 그 인간하고 친분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황재규 반장. 이때쯤이면 황 반장이 연남경찰서의 강력계 반장으로 활동하고 있을 터였다. 웬만한 관내 조직들과는 적당히 관계를 맺으면서 연남시의 아슬아슬한 평화와 균형을 조율하던 황 반장이었다. 그것 때문에 강준과도 수많은 마찰을 빚었었다. 김용식 같은 인간들이 언급하는 경찰이라면 황 반장과 연결이 되지 않았을 리 없었다. “너…… 뭐야? 너 누구야, 이 새끼야!” 황 반장의 얘기에 표정이 급격히 굳은 김용식이었다. “보험사에서도 보험금 지급 전에 사기 건이 의심되면 경찰서를 많이 들락거립니다. 황재규 반장이야 워낙 연남시 관할에서는 유명하신 분이시고요.” 강준의 답에 용식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손가락을 까딱하며 옆에 있던 부하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야! 너 구라치면 죽는 거 알지?” “못 믿으시겠으면 직접 전화해 보시던지요.” “쓰읍…… 이 새끼가 자신만만하기는…….” 강준은 용식이 황재규 반장에게 연락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면 용식이 경찰과 친분이 있다고 한 건 허풍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용식은 바로 1년 뒤 불법 환전으로 털리게 된다. 그 작전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이 바로 강준이었다. 강력반에 와서 처음으로 조직을 일망타진한 사건이었다. ‘황 반장이 맨 먼저 버린 조직이 용식이파니까…… 둘이 친분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부하는 자동차 거래장부를 가져왔다. 두터운 하드 커버에 씌워진 장부를 뒤적이던 용식은 뭔가를 찾은 듯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야, 여기 이 새끼들이 전부 양태식이랑 같이 온 놈들 아니야?” “네, 맞습니다. 형님!” 부하가 장담한다는 듯 확신했다. “어이 보험사 직원! 우린 얘네가 차를 사겠다고 해서 판 일밖에 없어. 뭔 일인인지는 모르겠다만…… 괜히 우리한테까지 불통 튀기게 하지 말라고. 알겠어?” “걱정하지 마시죠. 저 누구 뒤통수치고 그런 인간 아닙니다.” “쯧…… 워낙 속이는 새끼들이 많아서 말이지.” 용식은 탁자 위에 놓인 담뱃갑에서 담배꽁초를 빼내고는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의 손목에 채워진 금팔찌가 번쩍거렸다. 강준은 잠시 후 부하가 내민 메모를 건네받았다. 그 메모는 수십 대의 차량이 여러 명의 명의로 이전된 기록이었다. 명의는 여러 명이었지만, 대금 지불자는 제이모터스 한 곳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럼 다음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야! 맨입으로 그냥 가냐?” “원하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내가 네가 누군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명함이라도 한 장 놓고 가!” 강준은 주머니에서 미리 챙겨두었던 성원화재 연남지점의 명함을 꺼냈다. “앞으로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나 같은 사람 찾아와서 뭐 하려고……?” 용식은 피우던 담배를 그대로 물고는 강준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처음 보는 나를 경계하는 거군……! 일단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되지.’ 강준은 용식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한참을 눈빛을 교환하던 용식은 피식 웃으며 담배꽁초를 쥔 손으로 강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재밌네. 이런 데 처음 오면 보통 쪼는 데 말이야……. 나 젊은 시절 보는 거 같아! 나도 제법 깡이 있었거든. 후후!” ‘뻥 치지 마라. 너 새가슴이라 조직 그만두고 환전상 차린 거잖아.’ “그 번호로 필요하신 일 있으시면 연락해주십시오. 보험사기의 많은 사건이 차량 관련해서 일어나거든요. 제보가 정확하면 보험협회 측에서 포상금도 지급될 수 있습니다.” “크하하! 내가 그 정도 돈 받으려고 움직일까?” 용식의 웃음에 옆을 지키고 있던 험상궂은 부하들이 호응이라도 하듯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분위기가 한껏 부드러워졌다. “또 보자고! 다음에 만나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말이야! 어때?” “……그럼요. 좋죠! 어쨌든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강준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하가 용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저 새끼 저대로 보내도 되겠습니까? 뒤라도 한번 밟을까요?” “됐다. 내버려 둬라! 우리도 어쨌든 중고차 취급하는데 보험사 놈 한 명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 용식은 자신을 찾아온 강준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바닥글: 외제차를 이용한 [자동차 고의사고] 보험사기 적발, 금융감독원 보험조사국 손해보험조사팀 보도자료,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