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2. 퇴원 (2/250)

002. 퇴원2021.12.02.

“아니…… 근데 이 새끼는 왜 기분 나쁘게 눈깔을 뜨고 누워 있는 거야?” “정말 깨어나는 거 아니냐?” 중환자실에 있는 박강준을 면회 온 이들은 그의 동창생이자 보험사기꾼 양태식과 고병훈이었다. 둘은 조심스럽게 누워 있는 강준을 살피고 있었다. 강준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거였다. 자해공갈단 녀석의 목에는 촌스러운 금목걸이가, 카센터를 운영하는 놈의 손목엔 고가의 명품 시계가 걸려 있었다. 강준은 눈을 부릅떠 둘을 노려봤다. “아이 시발! 무서워……!” 양태식은 박강준을 조심스럽게 내려다보다 이내 조롱하는 눈빛으로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게…… 왜 기껏 보험 들어준 친구 뒤통수를 때려? 그러니까 네가 맨날 이 모양 이 꼴로 여기 누워 있는 거야. 좀 발전적으로 생각을 했었어야지, 안 그러냐? 병훈아?” “야, 잠깐만…… 눈동자가 움직이는데?” “어? 뭐? 눈동자?” 양태식은 겁먹은 얼굴로 박강준에게 바짝 다가가 살폈다. 강준은 의식적으로 눈동자를 양태식에게로 고정했다. 양태식은 조심스럽게 병상에 누운 박강준의 눈꺼풀을 감겼다. 양태식이 강준의 몸에 손을 댄 순간 그의 기억이 강준에게로 전이됐다. 양아치 같은 놈들에게 외제 차를 주고 고의로 사고를 일으키는 장면, 그 사고를 빌미로 과다 수리비를 보험사에 청구하는 장면……. 두 놈은 차량 보험사기의 공범이었다. “태식아, 됐다! 그만 가자.” 카센터 사장인 고병훈. 그는 양태식보다는 좀 더 치밀하고 신중한 인물이었다. 둘 다 보험사기꾼이라는 건 매일반이었지만……. 강준은 그간 병실을 찾아온 사람들과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빙의한 몸의 주인인 박강준이 왜 그곳에 누워 있는지를 소상히 알고 있었다. 박강준은 입사 후 보험영업을 위해 몇 개월이나 뛰었지만, 실적은 언제나 지점 최하위였다. 그러다 뜬금없이 연락 온 양태식과 고병훈이 수십 개의 상해보험과 운전자 종합보험을 들어줬다. 학창 시절 별로 친하지도 않던 그들에게 계약을 얻어낸 박강준은 순수한 고마움에 삼겹살을 사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내 그 계약들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야! 박강준! 너 때문에 우리 지점 지급률 올라가서 실적 다 까먹게 생겼어, 인마! 공채로 들어왔다고 우습게 생각하나 본데…… 너 영업부서 실적 없으면 다른 부서로도 못가! 알아?] 정승태 지점장은 강준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면박을 줬다. 그 일을 계기로 신입사원 박강준은 동창들이자 보험사기범인 두 놈의 사기행각을 밝히겠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박강준이었다. ‘이 몸의 주인도 조금만 더 살았으면 나랑 비슷한 길을 걸었을지도…….’ 강준은 몸을 빌려준 원래의 박강준에게 몸값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태식아, 그만 가자. 이 새끼 상태 확인했으니까 됐어.” 태식의 팔을 붙잡은 고병훈은 누워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강준이 꽤 거슬린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에이…… 개…… 자…… 식…… 들.” 강준은 성대의 근육이 아직 덜 풀렸는지 더듬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 * 2개월 후. 몸이 완전히 회복되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굳었던 근육이 하나둘 풀리면서 강준은 박강준이 가졌던 육체를 직접 느끼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강준은 침대 옆에 기대있던 목발을 짚고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언제봐도 타인의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서는 건 어색한 일이었다. 거울 속에는 중년을 향해 달려가던 강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청년이 보였다. ‘오 다행이다! 전보다 훨씬 인물이 훨씬 낫네!’ 잘생긴 건 덤이었다. 원래보다 커진 키, 그리고 오랫동안 병실에 누워서 그런지 모를 하얀 피부. ‘이제 근력만 좀 더 키우면 되겠네…….’ 강준은 부실한 삼두근을 손으로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이제 강준은 정말 자신이 강준의 몸에서 또 다른 박강준으로 빙의했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어! 박강준! 어떻게 된 거냐?” 병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이는 성원화재의 정승태 지점장이었다. 그는 강준의 산재 처리를 종결지으러 온 모양이었다. 정승태의 뒤에는 강준을 곁에서 항상 지켜왔던 모친이 보였다. 정승태는 그런 모친을 압박해 산재 처리 대신 합의금을 받게 했었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회복이 됐습니다.” “정말 괜찮은 거냐?” “아직 목발 신세를 지는 상태이긴 하지만, 며칠 내로 완전히 회복해서 다시 회사에 복귀할 겁니다.” 복귀라는 말을 꺼내자 정승태 지점장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 몸도 안 좋은데 회복이 먼저지. 복귀는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아…… 그리고 어머님, 기존에 드렸던 합의금은…….” 박강준의 몸으로 깨어난 강준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먹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몸의 주인이었던 박강준에게 몸값은 하자는 거였다. 그가 억울하게 당했던 건 돌려줘야 했다. ‘우선 정승태 이놈부터 조져보자!’ 보험사기를 쫓다 뺑소니를 당해버린 강준의 사고를 산재 처리 대신 5천만 원의 합의금으로 퉁 쳐버린 정승태 지점장이었다. 더군다나 강준의 심기를 건드린 건…… 눈앞에 있는 정승태가 자신이 회복되자마자 모친에게 줬던 합의금을 되돌려받으려고 떡밥을 던진다는 거였다. “지점장님, 혹시 산재 합의금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어? 박강준 너 알고 있었어?” 놀란 눈을 뜨며 경악하는 정승태였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긴 해도 의식은 있었습니다. 지점장님이 산재 처리하는 거 대신에 일시에 지급할 보상금 5천만 원으로 합의하신 거 아닙니까?” 정승태는 찔리는지 말을 더듬었다. “물론…… 그, 그렇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잖아. 원래 그 보상금은 지속적인 병원비에 대한 보상이었는데…… 자네의 지금 상태는 기적적으로 회복이 됐고.” 강준은 병상 옆 삼단서랍에 있던 합의서를 꺼냈다. “어디 보자…… 여기 이런 문구가 있네요. 합의 당사자 박강준은 성원화재에 아래 합의금 외에 추가적인 보상을 요구하지 않으며, 향후 산업재해와 관련한 어떠한 민, 형사상 문제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5천만 원이라는 금액이 적은 액수는 아니잖냐. 그리고 자네 어머니도 선뜻 동의하신 거고. 안 그렇습니까? 어머님?” 정승태는 모친을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모친은 정승태의 눈치에 못 이겨 강준을 달래려 했다. “그래…… 실은 내가 그랬다. 지점장님이 정말 신경 많이 써주신 거야…….” 모친은 진심으로 정승태 지점장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원래 당한 자들은 자신이 당했다는 걸 모르기 마련이다. 강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승태의 말에 반박을 시작했다. “지점장님은 제가 계약했던 보험계약 건을 조사하라고 업무지시를 하셨고, 그 조사차 보험계약 당사자였던 양태식을 만나고 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건 분명히 업무 중 일어난 사고로…… 산재 기준에 해당합니다.” “그…… 그거야, 네가 바락바락 우겨서 그런 거 아니냐?” “어쨌든 지점장님의 승인이 있었으니 계약 건을 조사하러 나갔겠죠?” 평소 어리바리했던 박강준을 기억하던 정승태는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말을 버벅거렸다. “야…… 박강준, 너 머리도 다친 거였냐?” “머리만 다쳤겠습니까? 식물인간이 됐다 살아났는데 여기저기 다 다쳤겠죠. 영구적인 장해판정을 받을 수도 있고요…….” 장해판정이라는 말이 정승태에게는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산재 소송의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장해등급을 받아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합의금으로 5천만 원을 지급하셨는데, 식물인간은 누가 보더라도 장해 1등급입니다. 그에 대한 1년 보상연금은 저 박강준이 받았던 월급 180만 원을 기준으로 계산한 329일분.” “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하루 일당 6만 원으로 계산했을 때, 연간 보상연금 1,974만 원! 60세까지 근로가능연한으로 봤을 때 상실 노동연한 32년에 대한 보상연금은 총 6억하고도 3,168만 원. 근데 지점장님은 겨우 5천만 원으로 합의를 보셨던 거죠?” 강준의 말에 정승태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호의인 척했던 악의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강준아…… 그래도…….” 모친이 강준을 달래려 했다. “어머님, 만약 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면 한 달 몇백에 이르는 병원비는 어찌 감당하시려고 하셨어요?” “그거야 내가 어떻게라도 해서…… 마련하려고 했다.” “당하신 겁니다. 지점장님의 알량한 호의에 말이죠.” 식물인간에서 깨어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전투태세였는지도 모르겠다. 모친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 중간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어…… 어쨌든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자. 일단은 네 몸이 우선 아니겠냐?” 정승태는 불리하면 일단 후퇴하는 인물이었다. 일종의 책임회피 전술. 그의 회사생활 비결이기도 했다. ‘그렇게 몸 걱정해주는 양반이 합의부터 하려고 했나…… 쯧! 합의금 5천만 원은 내가 먹는다! 낙장불입!’ “알겠습니다. 그럼 회사에서 뵙죠.” “그…… 그래.” 강준은 자신이 이미 성원화재에서 퇴직 처리가 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업무 중 사고로 인해 퇴직했던 직원의 복직을 막을 대의명분은 없을 터였다. 게다가 전쟁 같은 영업부서이긴 했지만, 강준은 성원그룹의 공채를 통해 입사한 정직원이었다. 아무리 지점장이 갈군다고 해도 순순히 나가주는 건 도리가 아닐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양태식이랑 고병훈…… 이 새끼들부터 조져야지.” * * * 하체에 감각이 모두 돌아와 정상적으로 걷기까지는 몇 주가 더 걸렸다. 그사이 강준이 회복됐다는 소식이 퍼졌는지 급하게 사기꾼 두 놈이 병실을 찾아왔다. “오! 강준아! 너 어떻게 된 거냐?” “어떻게 되긴. 침대 위에서 죽기라도 바랬냐?” 안면을 바꿔 강준을 엄청나게 걱정이라도 했다는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강준의 단호한 대답에 양태식이 찔렸는지 말을 버벅거렸다. “에이! 무슨 소리야!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그래?” 양태식은 옆에 서 있던 고병훈을 돌아봤다. 그는 조심스럽게 강준의 눈치를 살폈다. “강준아, 너 없는 동안 우리가 고생 좀 했다.” “뭐? 뭘 말이야?” “너 사고 난 자동차 그거 원래 폐차해야 하는데 내가 중고로 처분해줬거든.” “아 그래? 혹시 너희들이 사고 차량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니었고?” 정곡을 찔린 고병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강준아…… 너 혹시 우리한테 뭐 오해하고 있는 거 있냐?” “오해? 뭔 오해?” “그러니까 너 아까부터 말하는 투가 좀 그렇잖아…… 우린 진심으로 널 걱정해 왔는데…….” 강준은 침대 아래로 내려와 고병훈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긴장하는 눈빛과 콧소리가 강준의 바로 앞에서 느껴졌다. “오해는 무슨! 너희나 나를 그렇게 걱정했다니까 부탁 하나만 하자. 당분간 너희 카센터에서 남는 차 좀 쓰자. 내가 어디 갈 데가 좀 있거든.” 병훈은 똥 씹은 표정으로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이내 입꼬리를 억지로 말아 올렸다. 나름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는 표정이었다. 강준은 퇴원 절차를 밟으면서 원무과에서 그간의 밀린 입원비와 치료비를 정산했다. ―580만 원. 회사와 합의한 돈으로 버틸 수 있는 건 고작 몇 년밖에 되지 않았을 터였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연남(燕南)시. 서울시의 인구 분산을 목적으로 신도시로 개발되어 온 곳으로 박강준으로 빙의하기 전 강준이 경찰로 근무했던 담당구역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강준은 누구보다도 연남시를 잘 알고 있었다. ‘역시…… 내가 박강준으로 빙의한 건 우연이 아니다. 여기 연남에서 이 몸의 주인과 한 번은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네.’ 고병훈과 양태식은 주차장에 세워진 외제 차로 강준을 안내했다. “여~ 차 좋네! 병훈아 너 카센터 해서 이렇게 돈 많이 번 거냐? 요즘에 경기 안 좋다고 하던데…… 넌 아닌가 봐?” “에이, 외관만 바꿔서 보기에만 그럴듯한 거지 뭐…….” 애써 변명하는 고병훈이었다. 강준은 양태식에게로 눈길을 돌려 그를 노려봤다. 양태식은 마음에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강준의 시선을 피했다. “야, 양태식…… 너 나한테 뭐 죄지은 거 있냐?” 양태식은 돌직구를 던지는 강준의 말에 놀라 사색이 된 얼굴로 아무 말도 못 했다. 강준은 그런 태식을 두고 차갑게 뒤돌아섰다. “뭐 하냐? 얼른 출발하자!”

16555202018698.png

16555202018705.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