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식물원에 들어서자 메마른 흙냄새가 훅 끼쳤다. 빛이라고는 희미하게 새들어오는 가로 등불과 달빛이 전부인 공간.
이곳의 선인장들은 오래된 만큼 크기도 남달랐다. 모양도 제각각이어서 어떤 건 두꺼운 기둥이 빼곡하게 모여있기도 하고 어떤 종류는 두툼한 잎사귀에 위협적인 가시를 달고 화단 바깥쪽까지 늘어져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아시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인장 꽃이 피면 그렇게 화려하다면서요?”
“로디안 정원에 처음 와보나?”
“아무래도 올 일이 없었죠.”
별생각 없는 대답에 드루쉬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어렸다.
“연애, 안 해봤지?”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정략으로 결혼하게 될 텐데. 담담하게 대꾸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얼굴이었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놓치고 살면 억울할 만한 일이지.”
어느새 둘 사이가 부쩍 가까워져 있었다.
식물원 내부는 선인장이 차지한 면적이 커서 정작 사람이 다니는 통로가 좁았다. 거기다 외부의 시선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
어둡게 그늘진 남자의 체구가 생각보다 더욱 크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저보다 훨씬 커다란 형체가 아시카는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뭐, 억울할 것까지는 없죠.”
“여기, 들어오자고 한 건 내가 아니야.”
“네? 그야….”
세 걸음 정도의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커다란 손이 다가올 때까지도 아시카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뒷머리를 감싼 손에 확 끌려가는 순간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입술을 삼켜버렸다.
“흡.”
다급하게 달라붙는 입술에 서로의 치열이 슬쩍 부딪혔다. 그러나 드루쉬아는 거침없이 혀를 밀어 넣었다. 끈적하게 젖은 입술이 달라붙고 격하게 움직이는 혀가 입안을 휘저었다.
아찔한 향기가 훅 끼친다. 열기 탓에 진해진 남자의 향기였다. 숨이 가쁘게 차오르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기에 몸의 반응은 더욱 격렬해졌다.
작은 혀가 저를 희롱하는 상대를 쫓아 휘감고 열렬히 살을 비볐다. 한껏 빨아대던 입술이 물러나려고 하자 아시카의 가녀린 팔이 그의 목을 확 휘감았다.
“후읍….”
드루쉬아는 그대로 다시 아시카에게 끌려가 입술을 부딪혔다. 헐떡거리며 숨을 뱉으면서도 그를 휘감은 팔의 힘은 더욱 단단해졌다.
질척이던 입술이 뺨을 따라 목 언저리를 미끄러졌다. 아까부터 내내 군침이 돌게 탐나던 가녀린 목을 한껏 핥아대며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간다.
“이러면… 내가, 후….”
“흐으, 아….”
커다란 손은 어느새 얇은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어둠 가운데 하얀 다리가 허벅지까지 드러나는데도 아시카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흥분한 몸을 부딪쳐오며 더한 자극을 갈구했다.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체온과 흥분한 열기가 뒤엉킨다.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기 직전, 드루쉬아는 뺨을 스치는 까끌거리는 감각을 느끼고 정신이 들었다. 사람 키의 곱절을 넘어가는 선인장이 두툼하고 넓은 잎사귀를 화단 너머 바닥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드루쉬아는 간신히 입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아시카의 목과 가슴 언저리가 온통 그의 타액으로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드루쉬아는 아슬아슬하게 이성을 붙들고 아시카를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여기서?”
사방이 가시투성이인 선인장으로 가득하다. 기댈 곳이라고는 건물을 지탱하는 내부 기둥뿐. 아시카는 달뜬 숨을 뱉으면서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제안한 건 그쪽이 아니었나요?”
맹세코 드루쉬아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침실도 아닌 이런 곳에서 다름 아닌 아시카를 상대로.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드루쉬아는 검은 눈동자에 어린 욕망을 읽었다. 지나치게 솔직해서 순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
“이건 못 물러줘.”
짧은 대답과 함께 다시 입술이 덮쳐왔다. 아시카는 거칠게 파고드는 두툼한 혀를 제 것과 문지르며 빨아들였다.
“흐으….”
드루쉬아는 아시카를 그대로 기둥으로 밀어붙였다.
“흐읏”
굳은살 박인 거친 손길이 허벅지 안쪽의 여린 피부를 쓸었다. 일순 아래를 파고드는 자극에 엉켜있던 입술이 떨어지며 신음을 뱉었다. 다급히 몰아쉬는 숨을 그의 입술이 도로 집어삼켰다.
드루쉬아의 인내심은 순식간에 바닥났다. 손가락 몇 개가 겨우 들어갈 뿐인 속옷을 거칠게 잡아당기자 부욱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흥분한 나머지 아시카는 그가 뭘 하는지 따져 물을 정신이 없었다.
뜨거운 체온과 순식간에 밀려드는 뻐근한 둔통, 거추장스러운 옷의 감촉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조급하게 굴지 않으려 해도 본능적으로 허리짓이 빨라졌다. 조금의 빈틈도 만들고 싶지 않은 듯 그녀의 머리와 등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은 채. 가녀린 여체가 사나운 몸짓에 들썩였다.
“후우…. 미치겠네.”
좋았다. 이 여자가 미치도록 좋았다. 할 수만 있다면 호주머니 속에 숨겨놓고 몰래 제 방에 데려다 가둬버리고 싶을 만큼.
이 와중에도 철저하게 신음을 삼키는 여자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드루쉬아는 아시카가 깨물고 있는 입술을 손끝으로 꾹 눌러 벌렸다.
“후욱… 입술 다쳐. 차라리 내 손을 깨물어.”
동시에 강한 힘이 아랫도리를 치받았다.
“흐윽.”
아시카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콱 깨물었다. 그 통증이 쾌감이 되어 드루쉬의 허리짓은 더욱 격해졌다.
아시카의 몸이 들썩이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품에 완전히 갇힌 채 한 덩어리가 된 몸이 위아래로 들썩인다. 풀어 헤쳐진 검은 머리칼이 쏟아져 함께 출렁거렸다.
“아아, 아시카.”
“흐으….”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집어삼키는 것만 같았다. 흠뻑 젖은 채 사납게 아래를 들쑤시는 감각이 온몸을 집어삼킬 듯이 달구었다.
토해내지 못한 열기에 목구멍이 타는 것만 같았다. 숨을 뱉어도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는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며 정신을 아득하게 내몰았다.
시야가 창백하게 탈색되어가고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은 열기가 폭발하는 순간, 아시카는 드루쉬아의 손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크흑.”
겹쳐진 몸이 바짝 굳어진다.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에서 힘이 쭉 빠지고 머리 위로 가쁜 숨결이 쏟아졌다.
“후우, 너무 좋아. 이 기분, 나만 느끼는 건가?”
드루쉬아는 자신의 중심을 그녀의 아랫도리에 묻은 채 물었다. 이대로 나가고 싶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고 싶은 마음이었다.
“응? 그래?”
아시카는 대답 대신 그의 손에서 입술을 떼고 혀를 내밀었다. 붉게 잇자국이 난 손을 할짝 혀로 핥고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떨어진다.
“후, 이건….”
대답보다 몸으로 드러내는 사소한 애정이 그의 심장 어딘가에 뭉클하게 닿았다.
아시카는 드루쉬아의 너른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빠르게 진동하는 심장 소리와 거친 숨결. 온몸에서 땀이 배어나는데도 서로의 체온이 맞닿아있는 지금이 좋았다.
천장 가까이 넓게 개방된 창문에서 밤바람이 불어온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열기를 식혀주는 바람이었다.
드루쉬아가 겹쳐있던 몸을 떼어내면서 그녀의 아래쪽에서 무언가 주륵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드루쉬아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아래로 가져갔다.
“아니, 잠깐만….”
“가만히 있어. 그대로 나갔다간 걸음마다 뭔가를 흘리게 될 거야.”
그 뭔가가 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아시카의 얼굴이 삶은 가재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손수건은 나도 있어요.”
“가만히 있으라니까.”
한 손으로는 드레스를 걷어 올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의 아래를 닦아냈다.
흥분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도 아직 열감이 남아있었다. 얼얼한 아래를 문지르는 조심스러운 감각. 조금 전과는 또 다른 자극에 아시카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참았다.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친밀하고도 민망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했다.
“이제 좀 알겠어.”
뒤처리까지 말끔하게 끝낸 드루쉬아는 손수건을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저걸 어찌 처리하려는지 상상하는 것조차 민망해서 아시카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서툴고 무모하고. 그게 당신이로군.”
“어쩐지 그게 좋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물론이지. 이런 것도 마음에 들고.”
드루쉬아는 슬며시 미소지으며 엉망이 되어버린 드레스를 정리했다. 한쪽 어깨로 흘러내린 옷을 올리고 구겨진 옷자락을 팽팽하게 당겨 폈다.
아시카가 힘이 빠져 간신히 서 있는 동안 드루쉬아의 손은 바쁘게 그녀의 매무새를 정리했다.
“아, 이건 어떻게 안 되겠는데.”
아시카의 등 쪽을 살피던 드루쉬아가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드레스 원단이 워낙 얇아서 기둥에 쓸려버린 등 쪽에 거친 흔적이 남아 버렸다.
“망토로 가리면 돼요.”
언제 벗겨졌는지 후드 망토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드루쉬아는 망토를 털어 아시카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왜 등만 상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게?”
“그걸…. 누가 물어봐요? 물어봐도 대답 안 하면 그만이죠.”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마치 그러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양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 낯설었다.
“지금 절 놀리는 거죠?”
“그럴 리가. 그래서 말인데, 지난번에 내가 한 제안을 몸으로 대답한 건가?”
“그건 좀 더 생각해보고요.”
기분 좋게 웃던 드루쉬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러나 이내 스르륵 풀어진다.
“지금 이게 고민하는 과정이라면, 뭐 이것도 좋아.”
“얘기가 왜 그렇게 돼요?”
얄미운 남자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시카의 태도조차 제 입맛대로 해석했다. 그게 얄미워서 뻗대 보려 해도 슬쩍 넘어가고야 만다.
“고민하는 중이라며? 쭈욱 생각해보고, 그 사이 체력도 좀 더 키우고.”
평소처럼 툭 뱉는 어조였지만 부드럽게 뺨을 쓰다듬는 손길이 다정하다.
까만 눈동자가 가만히 그를 마주 보았다.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새카만 색인데도 망울진 감정이 툭 튀어나오는 것만 같아서 더욱 신비로운 눈동자.
그를 끌어당기는 거부할 수 없는 인력이었다. 조심스레 내려앉은 입술이 아직도 식지 않은 숨결을 삼켰다. 말캉하게 뭉그러지는 입술 안쪽으로 슬며시 혀가 파고들어 타액이 고인 입속을 훑었다.
정사의 여운이 채 식기도 전에 또다시 열이 올랐다. 빈틈없이 겹쳐진 몸은 서로를 품고자 안달을 내고 있었다.
느른하게 겹쳐있던 입술이 떨어지면서 가라앉은 깊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우…. 오늘 밤.”
드루쉬아의 손이 드레스 위로 그녀의 허벅지를 쓸며 바짝 끌어당겼다. 아시카를 품에 가두고 그녀의 목덜미에 아쉬운 한숨을 뱉었다.
“함께 있으면 안 될까?”
“하…, 당연히.”
아시카는 그녀의 아랫도리를 지분거리는 손을 잡아 밀어냈다.
“안되죠.”
정신 나간 짓은 지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 아니었는데, 흥분한 나머지 다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마음을 품는다 한들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관계. 지금 이 순간이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모든 고민을 날려버렸다.
아시카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드루쉬아의 표정이 서서히 식어갔다. 부드럽게 머금던 미소가 사라지고 다정했던 푸른 눈동자가 가라앉는다.
극명하게 변하는 감정이 눈에 보여서 아시카의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아니, 그렇다고….”
불현듯 드루쉬아가 아시카를 확 끌어 품에 가두며 고개를 들었다.
“쉿.”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건물 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한두 명이 아닌 사람들의 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