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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남이 훅 들어왔어-65화 (65/100)
  • 65화

    르나르와 내가 캐스티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렸다.

    그리고 놀라게 될 수밖에 없었다.

    숲속엔 폭포가 딸린 작은 못이 하나 있었는데, 캐스티나가 그곳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던 것이었다.

    “저기엔 대체 어쩌다가….”

    “기사들을 불러올까요?”

    르나르가 형식적인 안부 인사를 전하듯 건조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기사들이요?”

    내가 캐스티나 쪽을 다시 봤다.

    때마침 캐스티나의 머리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당황한 내가 몸을 움찔하자, 작은 한숨을 쉰 르나르가 물속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르나르는 그의 품에 안겨 축 늘어진 캐스티나를 데리고 물속에서 나왔다.

    “괜찮아요, 케이시?! 거긴 대체 왜 들어간 거예요!”

    내가 캐스티나에게 물었다.

    그러자 캐스티나가 입을 꾹 다물고 르나르 쪽으로 고개를 묻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내가 잠시 당황하는데, 르나르가 캐스티나를 안고 있던 손을 놨다.

    철벅 소리와 함께 젖은 드레스에 쌓인 캐스티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놀란 그녀가 금안을 깜빡였다.

    멍해진 나도 눈만 깜빡였다.

    “기사들을 불러오겠습니다.”

    불쾌해진 표정의 르나르가 말했다.

    ‘…스킨십 혐오증?’

    같이 가자고 하면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캐스티나를 또 르나르가 안아야 할 것 같아,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대체 왜 물에 빠지게 된 거예요?”

    르나르와 기사들을 기다리며, 내가 캐스티나에게 물었다.

    “갑자기 바닥이 깊어져서….”

    “애초에 저긴 왜 들어간 건데요.”

    “더웠어요. 발만 담그려 그랬는데, 그렇게 갑자기 깊어질 줄은 몰랐죠.”

    숲속 연못물에 발을 담그려 그랬다고?

    플루토나 제국 황녀님께서?

    게다가 물속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더운 날씨도 아니었다.

    내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는데, 르나르가 데려온 기사 세 명과 주치의가 도착했다.

    주치의는 바로 캐스티나를 진찰했고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진단했다.

    내가 기사 중 한 명에게 캐스티나를 맡겼다.

    캐스티나의 표정이 좋지 않아졌다.

    하지만 별다른 소리는 하지 않았고, 이내 캐스티나를 안은 기사와 다른 기사들, 주치의가 마차가 있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내가 르나르를 돌아봤다.

    “르나르도 출발 준비를 해줄래요? 저도 곧 따라갈게요.”

    “…대공녀님을 두고 저 먼저 가란 말씀이신 건가요? 대공녀님께선 왜 같이 안 가시고 저만….”

    “잠시면 돼요. 곧 따라갈게요.”

    내가 싱긋 웃으자 르나르가 탐탁지 않아 보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르나르가 사라진 뒤.

    나는 구두를 벗어 물가에 두고 못 안으로 발을 들였다.

    정말로 바닥이 갑자기 깊어지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혹시라도 정말 갑자기 깊어질 것을 대비해 긴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미리 앞을 짚으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이 점점 깊어져 골반 아래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바닥은 갑자기 깊어지진 않았다.

    그런데 그때,

    “로즈, 지금 뭐 하는 거야!”

    강한 힘이 내 손목을 낚아챘다.

    다음 순간 내 몸이 돌아갔고,

    돌아가는 순간 순식간에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날 공주님 안기로 안은 르나르가 뚜벅뚜벅 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화난 건지 걷는 속도가 빨랐다.

    거친 그의 걸음마다 공중으로 튀어 오른 물방울들이 투명한 햇빛에 부딪힌 뒤 공중에서 무지갯빛으로 부서졌다.

    르나르의 표정은 그런 평화로운 풍경과 대비되게 험악했다.

    “말해봐, 엘로즈. 저 안엔 왜 들어간 건데.”

    어느새 못 밖으로 나온 르나르가 커다란 바위 위에 날 앉히며 물었다.

    목소리는 위협적이었지만 날 내려놓는 손길은 분명 조심스러웠다.

    “캐스티나가 바닥이 갑자기 깊어졌다고 해서.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그걸 네가 왜 확인해. 나나 다른 사람을 시켰으면 되잖아.”

    “혹시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너는. 위험해도 된다는 얘기야?”

    “…….”

    르나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제야 르나르가 왜 화가 난 건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요…. 거기까진 미처 생각 못 했어요.”

    하지만 르나르의 표정은 여전히 험악했다.

    나는 어쩔 줄 모르겠는 심정이 됐다.

    코웰 가문 가족들을 만나기 전까지 이런 걱정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그 가족들이 아닌 다른 이의 걱정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정말… 미안해요. 위험한 짓 해서.”

    “…….”

    “하지만 혹시 위험할지 모르겠다고만 생각했지 정말 위험할 거라곤 생각 안 했어.”

    “…….”

    “지팡이로 미리 앞도 잘 짚고 있었는걸요? 앞이 깊어지면 딛지 않으려고.”

    “…….”

    “그리고 캐스티나에게 내가 의심하고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물속에 들어가면 나만 드레스를 갈아입으면 되는데, 다른 사람을 시키면 그 사람 입단속까지 시켜야 하니까. 이 편이 나을 걸로만 생각….”

    “나를….”

    “…….”

    “나를 시키셨으면 됐을 거 아니야.”

    “…….”

    “내게 입단속이 따로 필요했을 거로 생각해?”

    “…….”

    “너는 왜 아직도 나를 못 믿어? 나한테… 네가 나한테 어떤 마음인지 내가 다 아는데….”

    “…….”

    내가 그에게 어떤 마음인지 그가 안다고?

    어떻게?

    내 눈이 조금 커지자 내 두 손을 양손으로 그러쥔 르나르가 그 위에 입을 맞췄다.

    그러다 별안간 고개를 들며 물었다.

    “…다치신 곳은 어디십니까?”

    “다친 곳이요?”

    “피 냄새가 납니다. 대공녀님한테서.”

    내가 답하지 못하자 르나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다친 것도 모르신 거예요?”

    내가 어버버 하는 것과 동시에 르나르가 내 왼쪽 발목을 들어 올렸다.

    놀란 내가 급하게 치맛자락을 눌렀다.

    “르, 르나르! 예고 좀…!”

    내 발목을 들여다보는 르나르의 미간이 좁아졌다.

    “베였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물속에서 걷다 발목이 따끔했을 때가 있었다.

    물속에 있는 무언가에 잘못 스친 모양이었다.

    “별거 아니에요.”

    “피가 흐르는데 별 게 아니라고요?”

    신경질적으로 말한 르나르가 내 발목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러곤,

    “아……!”

    흡혈귀처럼 피를 빠는 르나르에 놀란 내가 발목을 당겼다.

    하지만 르나르의 큰손에 붙잡힌 발목은 아무리 세게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만있어요. 오염된 피가 있을지 몰라서 조금 빼내야 하니까.”

    내 발목에서 입술을 뗀 르나르가 날 노려보며 말했다.

    그는 화가 난 듯 내 발목을 이로 한번 물더니 다시 피를 빨기 시작했다.

    나는 기분이 이상해 몸을 움찔거렸다.

    지저귀는 숲속의 새들의 소리가 유난히 부산스럽게 들렸다.

    나뭇잎 사이를 통과한 조각난 햇살이 아프게 눈을 찔렀다.

    어쩐지 숨이 가빠오기 시작하던 즈음 르나르가 내 발목에서 입술을 뗐다.

    몸을 일으킨 르나르가 연못 쪽으로 가 손수건을 물에 담갔다.

    그러곤 다시 내 쪽으로 와 젖은 손수건으로 내 상처를 닦은 뒤,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한 후 물기를 짜낸 손수건을 내 발목에 묶었다.

    내 발목에 내가 그에게 선물한 네이비색 손수건이 감겼다.

    “…꽤 실력이 좋은데요?”

    붕대 못지않게 단단히 감긴 손수건을 보며 내가 말했다.

    “어렸을 적에 다친 일이 많았으니까요.”

    르나르의 대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나마 내가 르나르의 흉터를 없애줄 수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혹시 스킨십 강도가 강해지면 흉터가 더 빨리 사라지려나?

    안는 것보단 입맞춤이 효과가 더 좋은 것 같다고 르나르도 말한 적이 있으니.

    ‘입맞춤 이상이면….’

    생각하는 내 눈이 점점 커지는데, 르나르가 내게 묻지도 않고 날 공주님 안기로 다시 안아 들었다.

    발칙한 생각을 하던 내가 당황해 몸을 비틀었다.

    “뭐, 뭐해요! 내려주세요!”

    “그 발로 걸어가시려고요?”

    “걷지 못할 만큼 다친 게 아니잖아요! 이러고 모두가 있는 곳에 돌아가겠다고요?!”

    “안 될 거 없죠.”

    “당장 내려….”

    휙-

    당황한 내 입이 벌어졌다.

    물가에 벗어놓은 내 구두를 르나르가 못 쪽으로 던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첨벙-

    “아…….”

    “사드릴게요. 훨씬 비싼 걸로.”

    “그렇다고 멀쩡한 신발을……!”

    “그러니까 다치지 마셨어야죠.”

    결국 르나르는 그 상태 그대로 날 안은 채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 모습을 보고 혹시 충격 받지 않을까 걱정했던 에반은 아직 열 기운이 남았는지 다행히 마차 안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나와 르나르를 보지 않는 척 흘긋흘긋 바라보는 와중, 차갑게 식은 캐스티나의 시선이 내 시야에 걸렸다.

    그녀의 시선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날 불편하게 했다.

    * * *

    ‘어쩐지 찝찝해. 캐스티나를 구해주기로 한 건 내 실수였을까?’

    그레이시아나 제국으로 돌아온 어느 날, 거울을 마주한 내가 고민했다.

    하지만 기우 같기도 했다.

    ‘올렌도와 캐스티나만 서로 만나면 다 해결될 일인데 내가 너무 성급하게 고민하는 것일지도.’

    그때, 안나가 내게 우는 소리를 냈다.

    “아이참, 아가씨! 움직이시면 안 된다니까요!”

    안나는 내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뒤 한쪽씩 틀어 올리는 중이었다.

    플루토나 제국에서 돌아온 뒤부터 내 외양에 부쩍 신경 쓰는 안나였다.

    “요즘 왜 이렇게 열심인 거야?”

    “왜냐뇨, 아가씨. 이게 제 일이잖아요.”

    “정말 단지 그것 때문이라고?”

    “전 양귀비보다 장미를 좋아하니까요.”

    “?”

    안나가 내게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장미를 꾸미지 않는다고 장미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꾸밀 수 있을 땐 꾸며야죠. 양귀비 콧대를 옴팡지게 눌러주려면.”

    연이어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안나를 심문하려 내가 입을 여는데, 때마침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아가씨. 들어가겠습니다.”

    노크 후 나타난 건 코웰 가문 집사였다.

    집사가 난감한 얼굴로 내게 말을 전했다.

    “아가씨. 아가씨께 손님이 오셨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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