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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남이 훅 들어왔어-42화 (42/100)

42화

선물치곤

“알고…, 있었다고…?”

레오의 얘길 들은 내가 당황해 되물었다.

레오는 전부 알고 있었다고 했다.

올렌도가 레오의 반역 준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조만간 북부 성을 기습할지 모른다는 것도.

“코웰 저택 고용인 중에 첩자가 있다고 했지? 하지만 첩자는 황자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나와 아버지도 가지고 있지. 황자가 북부 성을 기습하더라도, 그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할 거야.”

레오가 메이슨 대공과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니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조금 시무룩해졌다.

내가 이곳까지 놀라 달려온 게, 완벽히 불필요했던 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날 눈치챈 건지 레오가 내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기 시작했다.

“그래도 로즈, 난 네가 이곳까지 와줘서 정말 기뻐. 내가 위험할 거로 생각해 온 거잖아. 그 마음이 내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지만 그래도 영 쓸모가 없었던 것 같아서….”

“네 덕에 황자가 지금 오고 있단 걸 알 수 있었잖아? 언제 올지 모르고 기다리는 것보다 철저하게 대응할 수 있으니 당연히 이게 훨씬 낫지. 게다가 네가 여기 온 덕분에 네가 아버지와 내 계획을 눈치채고 있단 걸 알게 됐어. 우리가 네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는데도. 다 알아냈다니 나 정말 놀랐다고. 나는 든든해. 이렇게 똑똑한 내 동생이라면, 곧 우리에게 더 큰 힘이 되어줄 거야.”

레오가 내게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내 안의 마력이 갑자기 신이 나 널뛰는 게 느껴졌다.

마력은 나보다 솔직했다.

날 사랑해 북돋워 주는 것을 느끼니 그대로 신이 난 것이었다.

나는 그 날것의 감정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주먹을 꾹 쥐었다.

* * *

하늘에 짙은 회색의 먹구름이 가득했다.

르나르는 그 먹구름 아래에서 북부 성의 명물 크리스털 정원을 걸었다.

이름 그대로 벤치와 분수대 등 정원을 이루는 모든 것이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아주 예쁜 정원이었다.

부분부분 눈이 덮인 안델슨 산맥과 어우러진 모습은 특히 예술이었다.

하지만 정원 어디에도 꽃은 없었다.

엘로즈가 좋아하는 꽃을 찾아 정원으로 나온 것이었던 르나르는 불만스러운 듯 혀를 쯧 찼다.

꽃은 없는데 나비가 있는 게 우스웠다.

꼭 엘로즈가 옆에 없는 제 모습 같아 르나르는 나비를 제 곁으로 불러들였다.

르나르의 마력에 홀린 나비가 일렁이는 불빛처럼 춤을 췄다.

“나비야, 우리 여왕님은 어떤 모습일까? 응? 너도 기대되지?”

르나르가 내민 손끝에 나비가 앉았다.

엘로즈를 상상하는 르나르 입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져 올라갔다.

남자 연미복형 여자 코트.

그것은 1년 365일이 겨울인 북부에만 존재하는 일종의 지역 전통의상이었다.

보온성과 활동성이 뛰어나면서도 칼같이 각이 잡혀 있어 제복 같은 느낌을 물씬 풍겼다.

때문에 엘로즈가 은근히 풍기는 위엄을 평소에도 즐기는 르나르는, 엘로즈가 이 옷을 입을 것을 무척 기대하는 중이었다.

“예쁘겠지?”

르나르의 질문에 따라 나비가 아래위로 천천히 움직였다.

“아니, 멋있을 수도?”

나비가 같은 움직임을 반복했다.

나비를 움직이던 르나르는 나비의 대답이 썩 만족스럽다는 듯 씩 웃었다.

그때, 레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옷은 마음에 드시나요?”

르나르가 흠칫 놀랐다.

레오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르나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국 최고의 검이라더니….’

마력을 담은 검이야 쓸 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레오 역시 보통내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레오가 르나르 앞의 나비를 봤다.

그러곤 다시 르나르를 봤다.

그다음,

“예쁘죠?”

대뜸 묻는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나비 말씀이십니까?”

“제 동생이요. 아까 보니까 밥 먹는 내내 눈을 못 떼던데.”

‘…그렇게 티가 났나?’

르나르가 생각했다.

르나르는 언젠가부터 엘로즈를 보지 않고 있는 순간들이 힘들었다.

그래서 시선이 자연스럽게 엘로즈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는 듯했지만.

어젯밤 이후 엘로즈에게서 더욱 눈을 못 떼고 있는 르나르였다.

깨닫게 된 감정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레오가 이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 르나르가 고민하는데 레오가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요, 이해해요. 남자라면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겠지. 그쪽 마법사예요? 내 동생은 마녀인데.”

다시 나비를 빤히 보며 레오가 묻는 말에 르나르가 당황했다.

그가 마법사란 걸 알아본 것도 놀라웠지만, 엘로즈가 마녀라는 걸 알고 있는 게 더 놀라웠다.

‘엘로즈 본인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알고…, 계셨습니까…?”

“뭐요, 로즈가 마녀인 거요? 당연하죠. 마녀에게서 태어나는 것도 제가 봤는데.”

“돌아가신 코웰 부인께서 마녀셨습니까? 그럼 대공자님도….”

“그건 아니고. 돌아가면 우리 집에 한 번 들러요. 내가 아닌 다른 가족들이 잘 설명해줄 거예요. 나는 곧 플루토나 제국으로 출발할 거예요. 그쪽에서부터 시작할 거예요, 반란 밑 작업.”

이어지는 레오의 말에 르나르가 눈을 빛냈다.

현명한 판단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플루토나 제국에서 마녀와 마법사들의 반란이 잠깐이라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곳이, 그레시아나 제국에 비해, 마력을 가진 이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플라토나 제국민들은 플루토나 제국 황실이 마녀와 마법사들을 탄압했음에도, 마력을 가진 이들에 대한 반감이 그레이시아나 제국민들에 비해선 훨씬 약했다.

게다가 플루토나 제국민들은 마녀와 마법사들의 반란 당시엔 그 반란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했지만, 이후 그레이시아나 제국이 반란군들을 진압하며 플루토나 제국을 속국으로 삼자, 오히려 그 반란을 지지했던 듯 행동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줬다.

제국을 속국으로 만든 그레이시아나 제국 황실에 대한 반감 때문에.

“제국민들이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반역은 성공한다 해도 한여름 밤의 꿈일 뿐입니다. 제국민 없는 제국은 존재할 수가 없잖아요? 저와 아버지는, 우리 로즈에게 무너지지 않을 제국을 선물해줄 겁니다.”

선물치곤 꽤 거대한 스케일이었다.

‘내가 분발해야겠네.’

그 스케일에 조금 감명 받은 르나르가 생각했다.

그런데 르나르에겐 아직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더 남아있었다.

“그런데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오늘 처음 만난 저를 어떻게 믿고요.”

대공자의 동생이 내색은 안 해도 사람을 얼마나 잘 못 믿는지 떠올리며 르나르가 말했다.

이에 레오가 싱긋 웃더니 답했다.

“제가 사람 하나는 잘 보거든요. 근데 그쪽이 로즈를 보는 눈빛이 꼭….”

“꼭?”

“다시 로즈가 위험에 빠지면 대신 죽어주기라도 할 것 같아서?”

레오가 의미심장하지만 가볍게, 그렇게 웃었다.

어느새 조금 흩어진 먹구름 사이로 실낱같은 햇살이 스며들었다.

크리스탈 정원에선 보기 드문 밝은 햇살이었다.

* * *

“레오가 제가 마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요?!”

황자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르나르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놀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오와 코웰 대공이 플루토나 제국에서부터 반란을 시작할 예정이란 것도 놀라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보다 놀라웠던 건, 가족들이 내가 마녀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단 사실이었다.

“대공녀님 친어머니께서 마녀셨던 모양입니다. 마녀에게서 대공녀님께서 태어나는 걸 봤다고, 레오 대공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코웰 부인이 마녀였다고?’

금시초문이었다.

코웰 부인이 마녀란 것은.

원작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코웰 형제들 중에서도 마법사가 있는 걸까…?’

알 수 없었다.

최대한 빠른 이른 시일 내에 몰래라도 집에 들러 이 내용을 알아봐야겠다고 내가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그 생각을 지속할 수 없었다.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 르나르가 무척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내가 묻자 르나르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선을 떼진 않았다.

어쩐지 불편해진 내가 르나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태연히 말머리를 돌린 르나르가 내 얼굴이 향한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황당해 바라보니 또다시 방긋 웃어 보이는 르나르였다.

레오가 찾아다 준 르나르의 흑마가 그런 제 주인이 귀찮다는 듯 푸르르 투레질했다.

“정말 제 얼굴에 뭐가 묻은 게 아닌 거예요?”

“네. 대공녀님 얼굴은 언제나처럼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럼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은요?”

“하고 싶은 말이요? 음… 옷이 잘 어울려요…?”

르나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훑더니 능글맞게 씩 웃었다.

그런 르나르가 실없게 느껴져 나는 결국 가볍게 웃고 말았다.

“근데 그 옷 정말 잘 어울려요. 아세요?”

“고마워요.”

“대공녀님… 혹시 방에서만 지내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르나르가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

“그러니까 식사도 매일 바뀌고 필요한 건 전부 제공되는데 방에서만 지내야 하는…, 그런 것에 대해…….”

“제가 저택에 갇힌 것만으로도 답답해했던 거 르나르도 알잖아요.”

“아, 맞아요. 그러셨었죠.”

르나르가 가볍게 실소하며 한숨을 흘렸다.

르나르의 적갈색 눈동자가 이내 먼 하늘을 향했다.

그 얼굴 위로 날 안고 강물을 보던 르나르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이유가 뭘까.’

나는 고민하게 됐다.

내 호감을 사려고 마법사의 맹세를 한 것이라고까진 억지로 납득해 보아도, 내 호감을 사려고 그 급박한 상황에 절벽에서 뛰었단 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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