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같이 자면 안 될까요?
“르나…르…?”
내가 조심스럽게 르나르를 불렀다.
내가 빠져나가고 싶어 하는 것을 느낀 건지, 르나르가 대답 없이 나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가 내게 속삭였다.
“잠시만요. 잠시만 이렇게 계셔주세요. 숨이 쉬어져서 그럽니다….”
새순같이 여린 목소리였다.
거친 쇳소리 같았던 아까와 목소리 자체가 달라진 걸 보니, 날 안고 있으니 숨이 쉬어진다는 게 아주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거 지금 덜 아프단 소리 맞죠?”
내가 묻자 여전히 내 어깨에 머리를 묻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르나르가 왜 아픈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리아네크 행성 때문이었다.
마녀나 마법사들의 마력과 공명하는 이리아네크 행성은 지구와 가까워지면 그들의 마력을 강하게 혹은 약하게 만들었다.
이리아네크가 분출하는 파동과 같은 위상을 가진 마력, 즉 강한 마력은 보강간섭에 의해 세기가 더 강해진다.
하지만 반대 위상을 가진 약한 마력은 상쇄간섭에 의해 세기가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력은 지나치게 강해지면 그것을 가둔 몸체를 괴롭혔다.
마력이 몸체를 부수고 나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르나르가 그런 경우였다.
르나르는 평소에도 마력이 강한 편이었다.
그가 매일 밤 악몽을 꾸는 것도 필요 이상으로 넘쳐 날뛰는 마력 때문이었으니.
“후……. 후우…….”
르나르는 내 목에 입술을 묻고 가쁜 숨을 이어갔다.
“괜찮은…, 거예요…?”
내가 조심스레 묻자 르나르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볼에 스친 르나르의 머리칼이 간지러워 나는 아랫입술을 꽉 물어야 했다.
그를 밀어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픈 그를 밀어낼 수는 없었으니.
“확실히…, 낫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조금만 더…, 있게 해주세요…….”
르나르가 간지러운 노래의 선율처럼 내게 속삭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르나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날 부술 것처럼 꽉 안았다가, 힘을 풀었다 다시 꽉 안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르나르의 숨소리는 점차 안정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래 르나르와 몸이 맞닿아있었을까.
그의 열이 식는 게 느껴졌다.
르나르가 마침내 식은땀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들어 나를 마주 봤다.
여전히 품에 날 안고 있었기에 아주 가까이에서였다.
가까이에서 본 르나르는 묘하게 퇴폐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별생각이 다 하게 되네.’
“이제 괜찮은 거예요? 그럼 저 좀 놔주시겠어요?”
내가 르나르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르나르는 나를 빤히 보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르나르……. 나 좀…….”
“저 아직 아픈 것 같습니다.”
“열 내린 것 같은데…. 놔줬으면 좋겠는데….”
“…….”
르나르가 느릿느릿 내게서 물러났다.
어찌나 느렸던지 나는 하마터면 아픈 사람에게 쓴소리를 할 뻔했다.
날 완전히 풀어준 르나르가 침대 헤드에 기대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에 부담을 느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는 마법사인 거죠?”
“…….”
이젠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알릴 때도 된 것 같았다.
게다가 그레이시아나 제국 고위 귀족 중 이리아네크 행성과 마력의 관계에 관해 배우지 않는 귀족이 없었으니, 눈치채는 게 이상한 것 같지도 않았고.
“…맞습니다.”
꽤 한참 만에 르나르가 대답했다.
그 후 잠시 생각에 잠겼던 르나르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눈치채실 만한 상황이었긴 했지만 역시 놀랍네요. 한 번에 맞히시다니.”
“그냥 추측….”
“제가 느낀 대공녀님께선 저에 대해 그동안 꽤 많은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단지 추측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요.”
“…….”
내가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르나르에 대해 많이 아는 걸 르나르도 눈치채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었다.
“대공녀님을 속이려 할 때마다 저는 오히려 제 수가 읽히고 있단 생각을 하게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대공녀님,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죠? 제 뒷조사라도 하신 건가요?”
르나르의 표정이 심각했다.
내가 계속 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에 대해서, 혹은 자객 계략에 속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도 그동안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르나르에게 줄 수 있는 답이 없었다.
내가 르나르의 성향을 잘 알고 있고, 또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모두 원작 때문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이건 르나르에게 할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마녀나 마법사보다 믿지 못할 이야기였으니.
할 말을 찾지 못한 내가 눈알을 굴리는 동안 르나르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숙여 작게 웃었다.
허탈한 듯한 인상을 풍기는 웃음이었다.
“근데 우스운 게 뭔지 아십니까? 제가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단 겁니다. 대공녀님 손바닥 위에 있는 것 같은 지금이, 아무렇지가 않습니다.”
르나르가 갑자기 뜻 모를 소리를 했다.
그러곤 내 손목을 낚아채 나를 그의 품으로 당겨 안았다.
“대공녀님만 제 옆에 계신다면…,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제 결론인 것 같습니다.”
오늘 밤만 몇 번째 그에게 안기게 되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속으로 손가락을 꼽아보는데, 르나르가 손으로 내 뒤통수를 감쌌다.
그러곤 마치 소중한 것을 다루듯 쓰다듬기 시작했다.
기분이 이상해진 내가 그를 밀어냈다.
그러곤 황급히 침대 밖으로 벗어나며 횡설수설했다.
“이제 정말 안 아픈 것 같아요, 르나르. 아까에 비해 열이 하나도…”
하지만 나는 다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가 나를 뒤에서 안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르나르가 내 가슴 바로 아래를 팔로 휘감고 침대로 주저앉아 나는 꼼짝도 할 수가 없게 됐다.
불편한 자세였다.
그의 허벅지 위였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르나르의 단호한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아직은 못 보내드립니다. 저 아직 아픕니다.”
그러자 그 얘길 증명이라도 하듯 르나르의 몸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아직 아프단 걸 인정하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등 뒤에서 르나르가 작게 웃었다.
“대공녀님께선 그렇게 안 생기셔서 마음이 약하신 것 같으세요. 봐요, 제가 아픈 것 같으니 다시 또 이렇게 머무르시잖아요.”
그는 지금 상황이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안 생겼다는 건 또 뭐죠? 방금 욕하신 것 같은데.”
“욕 아닙니다. 얼음 인형 같이 생겼다는 게 욕은 아니잖아요.”
“…욕 맞았네요.”
“저 얼음 인형 좋아합니다.”
뒤돌아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니, 르나르가 그런 날 마주 보며 웃었다.
그의 눈동자가 혼탁해지며 여전히 날 안은 르나르의 몸이 조금 더 뜨거워졌다.
놀란 내가 그의 팔을 무의식중에 더듬었다.
내가 닿아 열을 내려주기 위해서였다.
나와 닿으면 르나르가 덜 아파진다는 걸 나도 은연중에 믿게 되었던 것이었다.
날 보는 르나르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리고 그의 몸이 점점 뜨거워져 나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듣지 않는 거지?’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르나르의 심장 소리였다.
“저 오늘…, 조금 아프네요…. 참기 어려울 만큼….”
한숨 쉬듯 깊은 숨을 입술 새로 흘린 르나르가 내 머리칼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다시 고개를 든 그의 입술엔 내 은색 머리칼이 붙어 있었다.
그가 눈을 휘어 웃었다.
“그래도 대공녀님 일부에 이렇게 입술을 가져다 댔을 때 숨쉬기가 가장 편하긴 합니다. 어쩌죠? 이제 대공녀님 없이는 숨도 못 쉬어서.”
르나르의 달콤한 숨결이 와 닿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작은 불길이 일어난 것 같았다.
그때, 르나르가 내게 물었다.
“오늘…, 같이 자면 안 될까요…?”
“…….”
“대공녀님 한 번만 안고 자면…, 악몽도 안 꾸고 몸도 다 나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나는 캐스티나의 마법약.’
르나르는 나를 필요로 했다.
“…근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당신의 악몽에도, 이리아네크 행성 때문에 아픈 것에도 내가 도움이 된다는 게…, 정말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내가 나를 빤히 마주 본 르나르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르나르는 그 또한 알지 못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아팠던 것은 마력과 관련 있으니.”
“…….”
“대공녀님께서는 혹시 마녀이십니까?”
담백한 목소리로 르나르가 물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가 마법사인 것처럼, 나 또한 마녀이길 그는 바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 르나르와 나는 입장이 같을 수가 없었다.
굳어지는 내 표정을 눈치챈 르나르의 팔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내가 그런 그의 팔을 밀어내고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우리 둘을 둘러싼 분위기가 삽시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저는 마녀가 아니에요.”
단호하게 말했다고 생각했으나 뱉어진 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만약 마녀라면, 우리 가문은 멸문될 것이었다.
굳이 올렌도가 나서지 않아도, 황실의 마녀, 마법사 말살 정책을 차치하고서라도.
제국민들이 먼저 나서 우리 가문을 멸문시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레이시아나 제국에서 마녀, 마법사들은 그런 취급을 받게 되는 존재였다.
지킬 가문이 없고 스스로가 강한 르나르는 자신이 마법사인 걸 밝히는 게 어렵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의 내 유일한 목표가 코웰 가문의 멸문을 막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마녀냐고?’
참으로 위협이 되는 가정이었다.
나는 그런 말도 되지 않는 가정으로 우리 가문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르나르가 그런 나를 설득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는 믿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제가 마법사인 것도 이미 대공녀님께….”
“전 아닙니다.”
“대공녀님?”
“전 마녀가 아니라고요. 절대.”
목소리가 여전히 떨렸다.
르나르의 적갈색 눈동자가 그런 내 목소리를 따라 잘게 흔들렸다.
이내 그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르나르의 적갈색 눈동자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절…, 못 믿으시는군요…. 절 너무 잘 아셔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태도를 바꾸지는 않았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부정하지 않을 순 없었다.
“저는 정말 아닙니다. 저는…, 정말….”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짰으나 끝내 말을 맺진 못했다.
르나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그의 적갈색 눈동자는 여전히 일렁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