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0화
연결된 던전
“각성자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매출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재료를 수급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제 던전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줄어드는 추세라 고급화 전략을…”
띠리리리. 띠리리.
회의 중에 울리는 핸드폰 소리.
사람들은 김정우의 눈치를 살폈다. 이런 상황을 매우 싫어하던 그인지라,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콰앙!
“뭐해? 전화 안 받아?”
“…….”
“회의가 장난이야! 누가 회의하는데 핸드폰을 켜놓나!”
김정우는 언성을 높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연에 앉아있던 김연희는 그런 김정우를 진정시키며 그의 가슴을 가리켰다.
“사장님 핸드폰입니다.”
“뭐, 뭐?”
“사장님 핸드폰이 울리고 있다고요.”
“… 크흠.”
김정우는 헛기침을 하며 핸드폰을 살폈다.
정말로 그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어떤 개념 없는 자식이…”
“빨리 받아보세요. 아니면 그냥 끊으시든지.”
“…….”
민망한 상황이라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옆에 있는 딸은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일전에 이문후와 함께 있을 때 놀렸던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크흠.”
김정우는 멋쩍어하며 핸드폰을 바라봤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통화를 이어갔다.
“사위? 어쩐 일이야? 사위가 먼저 연락을 다 하고?”
“…….”
뜬금없는 말에 김연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호칭을 들은 회사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고, 김연희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김정우를 쏘아봤다.
“누가 사위라는 거예요?”
“쉿! 잠깐만!”
“…….”
김정우는 김연희를 뒤로하고 통화에 집중했다.
이문후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 도움? 도움이라니? 잠깐만!”
예상하지 못한 소리에 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굳이 이들이 들어서 좋을 건 없어 보였다.
“회의는 다음으로 미루지.”
“예? 예. 사장님.”
그의 손짓에 사람들은 급하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유일하게 김연희만 남아서 자리를 지켰지만, 김정우는 개의치 않으며 통화를 이어갔다.
“도움이라니? 어떤 도움?”
[지금 중국인데,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중국? 언제 출국한 거야?”
[…….]
별다른 말이 없는 이문후의 모습에 김정우는 의아해했다.
그가 출국을 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었다.
‘밀항을 한 것도 아니고. 설마?’
번뜩 스치는 생각에 그는 깜짝 놀랐다.
그가 갑자기 중국에서 연락을 한 이유는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던전인가? 던전으로 거기까지 간 건가?”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도록 하죠. 지금은 상황이 좀 어려워서요.]
“아, 그래. 여권이 없는 거지? 출입국 신고도 안 됐을 테고.”
[그것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다시 되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경험치 구슬을 사용하자니 10개를 그냥 날리는 것 같아서 너무 아까웠다.
어차피 앞으로는 DS와 함께 할 생각이었다.
조금 부담은 되겠지만, 김정우를 통해서 일을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지금 빈털터리겠네? 우선 따로 연락처를 줄 테니까, 그곳에 연락을 하게.”
[연락이요?]
“중국에 지부가 있어. 사람을 보낼 테니까 그곳에서 쉬고 있어. 돌아올 방법은 따로 찾아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마. 곧바로 조치를 취해줄 테니까.”
김정우는 이문후의 연락을 반겼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이었지만, 이렇게 직접 연락을 줬다는 것 자체가 그와의 거리를 많이 좁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중국이라니요?”
“지금 중국에 있는 것 같아.”
“이문후 씨죠? 그 사람이 왜…”
며칠 연락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해외로 움직였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원래 그렇게 많이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DS그룹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만큼 멀리 움직이는 걸 모르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던전에서 어떻게 일이 진행된 것 같아.”
“던전이요? 던전에 들어간 사람이 중국으로 나왔다는 건가요?”
“이상한 일도 아니지. 게이트는 많으니까.”
던전이 연결되어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직접 다른 곳으로 나온 경우를 찾지는 못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연락이 온 이문후를 통해서 던전의 게이트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확실히 알아낸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익이었다.
“우선 우리 사위를 데리고 올 방법을 찾아야겠다.”
“무슨 소리야! 왜 계속 사위라고 그래!”
“크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떻게 할까? 방법이 없을까?”
김정우는 삐진 딸아이의 모습에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김연희는 그에 대한 답을 내놨다.
“전용기를 띄우면 되지 않나?”
“전용기?”
“내가 데리고 올 게. 어차피 그 사람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비행기에는 탈 수 있을 테니까.”
너무나 간단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것 같았다.
김연희의 말대로 이문후의 능력이라면 공무원들의 눈을 쉽게 속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DS그룹의 전용기를 보내는 일이었다. 중국에서도 그 위상이 낮지 않았기 때문에 철저한 검사를 피할 수 있었다.
“아! 우선 중국에 연락 먼저 해야겠다.”
“그건 내가 할게요.”
“그럴래? 하긴 자기 사람은 자기가 챙기는 게 당연…”
“아빠!”
“아, 약속! 깜빡했네.”
***
연락을 마친 이문후는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 널브러진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밖으로 나오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복장이 너무 다르다는 게 문제였다.
잠행이라는 능력이 있었지만, 유난히 튀는 옷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사달이 났다.
“어차피 잠재적인 적인 건 분명한데.”
쓰러진 사람들을 본 그는 씁쓸해했다.
되도록 부딪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호, 홍콩입니다.”
“홍콩 어디? 정확히 위치를 말해 봐.”
“그게…”
옆에 있던 자는 급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설명을 들어도 어딘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때, 익숙한 번호로 연락이 왔다.
김연희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여보세요?”
[혹시, 이문후 씨 되십니까?]
“그런데요?”
[본사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중국 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임기현이라고 합니다. 혹시 지금 계신 위치를 알 수 있겠습니까?]
“잠시만요.”
이문후는 옆에 있는 사람한테 핸드폰을 넘겼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지금 있는 곳의 위치를 설명했다.
일부러 통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남겼다.
이미 이문후의 힘을 확인한 그 남자는 최선을 다해서 그들이 있는 위치를 알려줬다.
하지만 그때, 복잡한 골목길로 일련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아직도 더 있어?”
적의를 가지고 나타난 자들은 삼합회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본능적으로 정체를 파악했지만, 이어지는 그들의 행동에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철컥.
타앙! 타앙!
놈들은 골목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방아쇠를 당겼다.
커다란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놈들이 쏜 총알이 골목을 가득 채웠다.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오는 총알.
뛰어난 동체 시력으로 모든 총알을 확인한 이문후는 곧바로 판단을 내리며 바닥을 박찼다.
피잉! 피잉!
놈들은 몸을 피하는 그를 향해 총구를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몸을 띄우면서 총알을 피할 줄은 몰랐다.
말도 안 되는 움직임에 깜짝 놀랐지만, 아직도 총알은 많이 남아 있었다.
타앙! 타앙!
그들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위로 몸을 날린 만큼 더는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을 띄운 이문후는 그대로 벽을 내디디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미친! 저게 뭐야?”
“괴, 괴물이잖아!”
중력을 거스르는 것 같았다.
총구가 그를 쫓아가기도 전에 이문후는 그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허름한 벽을 내달린 그는 곧장 팔을 뻗었다.
어느새 손에 쥔 봉이 길게 늘어났고, 권총을 든 자의 몸에 꽂혔다.
터엉!
봉에 맞은 사내가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엄청난 위력에 같이 있던 자들은 당황했지만, 곧바로 날아온 봉에 힘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커헉!”
총알까지 피할 정도로 이문후의 움직임은 빨랐다.
도저히 그들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각성자가 아니었나?”
이문후는 쓰러진 그들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여기가 삼합회의 구역이라지만, 총까지 사용할 줄은 몰랐다.
던전에서와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살상력이 강한 화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화기들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다행히 가속이라는 능력을 통해서 총알을 쉽게 피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무모한 놈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던전이 아닌 현실이 더 위험했다.
그를 향해 달려든 자들은 모두 무식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손도끼는 예사였고, 정글도와 청룡언월도까지 휘둘렀다. 거기에 권총까지 사용한 걸 보면 곧 자동화기도 등장할 판이었다.
“다시 던전으로 들어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했지만, 우선 DS의 도움을 기다려볼 생각이었다.
이문후는 총에 맞고 남자를 바라봤다.
임기현과 통화를 하다가 죽은 사내였다. 나름 도움이 됐지만, 이 사람까지 살릴 수는 없었다.
“여보세요?”
[괘, 괜찮으십니까?]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희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때까지 무사하게 계신다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이문후는 현장을 벗어났다.
골목 안은 시체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에 남아있어 봤자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았다.
=============================
[작품후기]
코멘트, 추천, 선작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