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화
오크 슬레이어
길게 늘어난 봉이 바닥을 찍었다.
달려들던 대전사들은 허공을 가르는 그의 공격에 당황했다. 조금 전까지 강력한 힘을 보였던 상대의 공격이 너무 터무니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둘 중에 하나를 노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일부러 바닥을 찍으며 둘 사이를 파고들었다.
“크킁! 이놈!”
두 대전사는 파고드는 이문후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대로 그의 몸을 쪼갤 생각이었지만, 도끼가 가까이 오는 순간 이문후는 바닥을 박찼다.
쿠웅!
굉음을 낸 그의 몸이 떠올랐다.
길게 늘어난 봉은 순식간에 그와 대전사와의 거리를 벌렸고, 위로 몸을 피한 그의 모습에 대전사 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막아라!”
혼자 남은 주술사가 걱정이었다.
이미 둘을 스쳐 지나간 이문후를 가리키며 소리치자, 곧바로 주술사가 물줄기를 뿜어냈다.
콰과과과!
허공에 떠오른 만큼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근처에 있던 또 다른 대전사는 도끼를 던지며 다른 오크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도끼를 던져라!”
곧바로 날아드는 도끼들.
모두가 그의 몸을 두 동강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위력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당황하지 않고, 모든 것들을 눈에 담았다.
‘흐읍!’
모든 공격이 집중된 순간, 거리를 가늠하던 그의 몸이 사라졌다.
“주, 주술사를 지켜라!”
허공에서 흩어진 그의 모습에 대전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처음 이곳에 와서 이문후와 부딪쳤던 오크였다.
이미 순간이동을 경험한 만큼 그 힘이 가진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오크의 외침.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오크들이 반응을 하는 걸로 봐서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반응을 보였을 때는 너무 늦었다.
푸욱!
주술사의 옆에 나타난 이문후는 놈의 옆구리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평범한 공격이 아니었다.
극독을 사용한 만큼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크윽. 이놈!”
극렬한 고통에 주술사는 비틀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강한 힘이 느껴지기 무섭게 바닥이 뒤틀리면서 돌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쿠구궁!
주술사는 가까이 붙은 이문후를 떨쳐내기 위해서 주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문후는 오히려 주술사에게 가까이 붙었다.
파바밧!
그가 있던 자리에 뾰족한 돌가시가 솟구쳐 올랐다.
그대로 있었다면 몸에 꿰였겠지만, 그는 과감하게 주술사에게 붙었다.
이문후의 행동에 당황한 주술사는 다시 힘을 끌어냈다.
우선 가까이 붙은 그를 떨쳐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힘을 움직이기 무섭게 극렬한 고통이 전해졌다.
“커헉!”
오크 주술사는 검은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이문후는 곧바로 내공을 끌어 올렸다.
주술사가 독에 중독이 된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놈을 확실히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처음 상대했던 오크 대전사도 극독에 당하고도 버틴 것을 생각하면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하물며 주술사는 오크 대전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놈이었다.
“하압!”
이문후는 오크 주술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쐐에엑!
연신 내뻗은 주먹에서 황금빛 기운이 쏟아졌다.
권기를 날리면서 주술사에게 최대한 큰 피해를 남길 생각이었다.
뻐억!
다행히 주술사는 힘을 쓸 수 없었다.
중독된 상태였기 때문에 쉽게 힘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문후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상대적으로 근접전이 약한 만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뻐억! 뻐억!
이문후는 내공을 실은 주먹을 휘둘렀다.
주술사를 지키기 위해서 오크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나한권을 펼치자, 주술사의 몸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독기를 억누르기에도 벅찼다. 그 와중에 강한 내공이 실린 주먹이 날아들자 그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놈! 멈춰라!”
가까이 다가온 오크 대전사가 크게 소리쳤다.
다행히 조금 전에 주술사가 만들었던 돌가시들이 오크들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었다.
뒤늦게 대전사들이 가시를 부수며 달려들었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다.
주술사는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넝마가 되어 있었다.
“그만 죽어!”
이문후는 비틀거리는 주술사의 머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머릿속으로 파고든 기운이 놈의 뇌를 뒤흔들었고, 결국 주술사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오크 대주술사, 카르번을 쓰러뜨렸습니다.]
[다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완성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완성하였습니다.]
……
오크 주술사를 쓰러뜨리고 엄청난 경험치를 얻어냈다.
경험치 구슬을 완성했다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거기에 낯선 보상이 더해졌다.
[‘광휘의 탑’의 사용자로 등록됩니다.]
‘광휘의 탑?’
처음 듣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 탑이 얼마 전에 오크들의 의식에서 봤던 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용자로 등록이 됐다는 걸로 봐서 그 탑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상으로 얻어서 나쁠 건 없었다.
“크아아아!”
손에 넣은 보상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주술사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오크들의 눈이 뒤집혔다.
광분한 놈들은 이문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주술사가 죽자, 놈이 만들어낸 돌가시 역시 사라졌고, 늑대를 탄 오크 대전사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쐐에엑!
콰과광!
놈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급하게 뒤로 물러났지만, 주변을 휩쓰는 공격에 급하게 봉을 휘둘러야만 했다.
투두둑!
쏟아지는 파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문후는 다시 한번 순간이동을 사용하면서 대전사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크아아아!”
급한대로 뒤로 물러났지만, 놈들은 맹목적으로 이문후를 쫓아왔다.
“미친!”
무리를 하면서 불길 너머로 움직였지만, 오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내던졌다.
뜨거운 열기에 몸이 타들어갔다.
하지만 오크들은 개의치 않았다. 놈들은 오직 이문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불길을 뛰어넘었다.
“크아아!”
터엉! 터엉!
불길을 잔뜩 머금은 도끼들이 날아왔다.
이문후는 연신 뒤로 물러나면서 도끼를 흘려보냈지만, 점점 날아오는 도끼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힘들어!’
아무리 주술사를 막아냈다지만, 아직도 남은 적들이 많았다.
특히 셋이나 남은 대전사가 부담이었다. 개중에 한 놈도 불길을 헤치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크흡!’
이문후는 다시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일부러 연기가 가득 차 있는 곳으로 모습을 감췄고, 그를 향해 달려들던 오크들은 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찾아라!”
대전사는 늑대와 함께 주변을 뒤졌다.
남아 있을 놈의 체취를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불길과 함께 주변을 가득 채운 연기가 그걸 방해하고 있었다.
캐앵!
뿌연 연기에 냄새를 맡는 게 불가능해졌다.
거기에 자취를 감춘 이문후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샅샅이 뒤져라! 주변에 있다!”
“그쪽이다!”
“안 보인다. 사라졌다!”
“크윽. 확실히 살펴봐라!”
더 많은 오크들이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문후를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멀리 가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그는 자취를 감췄다.
“불길이 점점 커지고 있다!”
“크윽. 놈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이대로는 힘들다. 우선 불을 꺼야 한다!”
“크으윽.”
시간이 지날수록 쓰러지는 오크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이 들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우선 마을로 돌아가자!”
“산불을 먼저 잡아야 한다. 이대로라면 마을도 위험하다!”
“지금은 여길 벗어나는 게 먼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에서 시간을 더 지체한다면 모두가 위험해졌다.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오크들이 쓰러져 나갔다.
기침을 해대는 그들의 모습에 결국 그들은 물러나는 것을 택했다.
남아 있던 오크들이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주술사의 죽음으로 눈이 뒤집혔다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후우. 다행이네.’
오크들 사이에 끼어 있던 이문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이동을 사용하자마자 오크로 변했던 게 주효했다.
몸에 무리는 갔지만, 비틀거리는 그의 모습은 주변에 있던 다른 오크들과 다르지 않았다.
퇴각을 결정한 놈들의 모습에 그도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계속 오크 행세를 할 수도 없었다.
‘여기에서 다시 분탕을 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지금이야 연기로 체취를 덮었지만, 조금만 더 움직인다면 정체를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물러나야 했다.
이문후는 가까이에 있는 오크를 향해 다가갔다.
“크킁. 무슨 일이냐?”
푸욱!
가까이 붙은 놈의 목을 찌른 이문후는 주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돌변한 그의 행동에 오크들이 쓰러져 나갔다.
동료라고 생각했던 놈이 공격을 할 줄은 몰랐다.
뒤늦게 이상함을 느낀 오크들은 무기를 겨누며 서로를 견제했다.
불길과 연기로 가득한 숲에서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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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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