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화
새로운 구도
오랜만에 보는 김정우의 표정은 밝다 못해 환했다.
이미 김연희와의 일을 들은 게 분명했지만,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서 오게. 사위!”
“아빠!”
“크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야. 그리고 네가 먼저 결혼을 할 사이라고 했다면서?”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나는 찬성이야.”
“찬성이라니?”
“그 결혼. 찬성이라고. 네 엄마한테는 내가…”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라고!”
“… 하하. 농담.”
결국 김연희가 짜증을 내자 김정우는 입을 닫았다.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약이 오를 정도로 얄미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우선 앉지.”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은? 우리 사이에 꼭 일이 있어야만… 크흠.”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는 김연희의 눈빛에 김정우는 헛기침을 하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여기에서 더 나갔다가는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줄 게 있어서 불렀어.”
“줄 거요?”
“그때 얻은 가죽으로 방어복을 만들었거든. 우리 사… 람이 될지도 모르는? 아니, 우리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한테 돌아가는 게 당연한 것 같아서.”
김정우는 준비해 둔 물건을 꺼냈다.
붉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슈트였다. 던전에서 우두머리 웨어 울프를 처리하고 얻은 물건을 방어구로 만든 것이다.
“나쁘지 않을 거야. 나름 최신식 기술을 적용시키느라고 애를 썼거든.”
“최신식 기술이요?”
“한계는 있더라고. 하지만 가죽 자체가 워낙 좋아서 괜찮은 물건이 나왔다고 하더군.”
웨어 울프를 이끄는 놈의 가죽이었다.
다른 가죽과는 질이 더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신축성도 뛰어나고 통풍도 잘 된다고 하네. 거기에 상당히 질겨서 어지간한 방검복보다 더 뛰어나다고 하더라고. 이미 충분한 실험을 거친 놈이야.”
지금 입고 있는 옷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무엇보다 김정우가 건넨 방어구에는 또 다른 기능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스킬까지 붙여놨지.”
“스킬이요?”
“복구라는 스킬이야. 그 방어구가 찢어지거나 손상을 입으면 알아서 복구가 될 거야.”
이문후는 김정우가 건넨 방어구를 바라봤다.
수치도 정확했다. 오직 한 사람을 보고 만든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돈 좀 들였네.”
“부담스럽네요.”
“사위한테 이 정도도 못…”
“아이 씨!”
“농담이야. 농담.”
“몰라!”
김연희는 민망한 듯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계속 놀려대는 김정우에게 화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김정우는 딸아이의 그런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환한 웃음을 보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두 사람이 교제하는 건 찬성이야.”
“그냥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한 말이었습니다.”
“아무렴 어때. 이렇게 인연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흐음.”
김정우는 진심이었다.
단순히 이문후가 강한 힘만 있다고 이렇게 찬성하고 나서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문후와의 관계는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
굳이 김연희와 엮지 않아도 나선이나 신전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용하면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번 겪어본 이문후라면 가족이 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도도해 보여도 숙맥이야. 잘 부탁하네.”
“…….”
김정우는 별다른 말이 없는 이문후를 보며 쓰게 웃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이문후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혹시 여자친구가 있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그렇지? 난 또… 크흠.”
“…….”
“그럼? 연희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어디에 내놔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딸아이의 외모는 재계에서 유명할 정도로 빼어났다.
배우인 엄마를 닮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이문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씩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여기에서 더 나간다면 다음에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김정우는 화제를 돌렸다.
“사실, 그걸 주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의했으면 해서 불렀어.”
“앞으로 있을 일이라니요?”
“아직 모르겠지만… 협회가 만들어질 것 같네.”
“협회요?”
“말 그대로야. 초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서 제 목소리를 내자는 거지. 사실, 대부분이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말이야.”
“…….”
처음 듣는 고급 정보였다. 하지만 김정우의 말이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언젠가는 이런 단체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스킬을 얻게 된 각성자들도 사람이었다. 저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정부에게 뜻을 관철시키 위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려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 중심이 되려는 곳이 너무 많다는 거지.”
“그게 무슨…”
“우두머리가 되려는 곳이 많거든.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협회장 자리를 노리고 있어. 특히나 신전 같은 경우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신전이라는 말에 이문후는 조규종을 떠올렸다.
언젠가는 반드시 부딪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이들이 만들려는 협회가 어떤 활동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신전이 중심이 되면 그에게 좋을 건 없었다.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서로 돕자는 거야. 장인과 사위로 엮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그렇죠.”
DS가 뒤에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이들의 지원을 받으면 여러모로 유리했다.
“연희와 결혼할 사이… 비록, 그날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을 했다지만, 이 상황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떤가?”
“괜찮겠습니까? 저는 상관없는데. 연희 씨는…”
“나도 상관없어! 계속 말했다시피 두 사람이 이어졌으면 하거든.”
“하지만 연희 씨는…”
“사실, 그 아이도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야.”
“예?”
“어느 정도 호감이 있으니까 그런 말을 했겠지. 아무렴 그냥 돕자고 결혼할 사이라는 말을 꺼냈을까?”
“…….”
김연희도 사회 경험이 적지 않은 편이었다.
김정우의 말처럼 어느 정도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과감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앞으로 자네 이름을 이용해도 되겠지?”
“제 이름을요?”
“DS의 가족으로 엮이게 된다고 말이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관계가 틀어지게 된다면 그때는… 파혼을 한 걸로 하자고.”
결국, 이렇게 부른 이유는 이것 때문인 것 같았다.
협회를 구성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이문후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문후에게 나쁜 점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좋아. 잘 생각했어.”
“그럼 이제 볼 일은 끝난 겁니까?”
“아니.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어.”
“또요?”
“시간되면 차나 보러 가지? 망가졌다며?”
“차요?”
“원하는 거 있으면 골라 봐. 장인이 사위한테 주는 선물이니까.”
“…….”
***
턱을 괸 상태로 보고를 듣던 나창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동안 속을 썩이던 놈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혈육이었다. 고운 정과 미운 정이 든 아들놈의 죽음에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담그러 간 놈한테 오히려 담가졌다?”
“도망간 곳에 하필 몬스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놈한테 참변을…”
“크크큭.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증거가 너무나 명확해서…”
“후우. 몬스터든 나발이든! 아무튼 그 새끼하고 엮이면서 내 자식놈이 죽었다는 거잖아?”
“… 그렇습니다.”
“그럼 조져야지! 내걸 가져간 놈을 가만히 두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병신으로 보겠어? 안 그래?”
나창준은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화가 난 그의 모습에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정준표는 그런 그를 만류했다.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형님. 신중하게 움직이셔야 합니다.”
“후우.”
“이번 일로 아이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지금은 조직을 정비하시는 게…”
“준표야? 네 조카가 죽었어.”
“…….”
“내가 X으로 보이냐?”
“아닙니다. 아시잖습니까? 저는 우리 나선 건설이…”
퍼억!
충심으로 말을 하던 정준표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충격과 함께 바닥에 처박혔다.
나창준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나선 건설을 여기까지 키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동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충심을 알아주는 것보다 자신의 뜻을 관철 시키는 게 먼저였다.
“요새 사업 좀 한다고 너무 풀어줬지?”
“아닙니다!”
“사업이고 나발이고. 씨발, 내 새끼 죽인 놈 먼저 조질 거야.”
“…….”
“찾아와! 그 새끼 조질 방법!”
“예! 회장님.”
나창준의 명령에 자리에 있던 덩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나창준은 예전에 스치듯 봤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때 깔끔하게 처리했어야 했는데.’
애들 싸움이라 끼어들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나명진도 어려운 일을 겪어봐야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고, 결국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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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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