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화
단순하게
“놀랐어요. 갑자기 경찰서라고 해서요.”
“갑자기 일이 생겼거든요. 미안합니다.”
“이문후 씨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잖아요. 근데 괜찮아요? 차가 완파될 정도로 큰 사고였다던데.”
“괜찮습니다.”
이문후의 모습은 멀쩡했다. 오히려 현장에서 잡은 다른 사람들의 상태가 더 심각했다.
사고를 일으킨 사람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앞뒤에서 차를 가로막았던 사람들은 이문후의 손에 잡혔다.
그 와중에 크게 다친 것 같았지만, 계획적으로 일을 벌인 게 확인된 만큼 큰 불이익은 없을 것 같았다.
“나머지 일은 저희 쪽 변호사가 도와줄 거예요.”
“고맙네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근데, 정말로 병원은 안 가봐도 되겠어요?”
“괜찮아요. 다친 곳도 없으니까요.”
“그건 다행이네요.”
김연희는 이문후의 모습을 보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에 일어난 사고는 너무나 작위적이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다고 해도 이렇게 급하게 움직일 이유가 있었을까?’
그녀는 나선 건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당한 힘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이문후를 적으로 돌려서 좋을 건 없었다.
물론, 이들 사이의 관계가 안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움직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활력단은 어떻게 됐죠?”
“가지고 왔어요. 우선 3알을 드릴게요. 지금도 계속 구하고는 있지만 쉽지가 않네요.”
이문후는 김연희가 건네는 작은 환약을 받았다. 그리고 아직 받지 못한 보상에 관해서 물었다.
“일회성 던전은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거죠?”
“예? 예. 원하시면 지금이라도 들어갈 수 있어요.”
“위치를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지금부터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던전을 공략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요?”
“할 일이 있거든요.”
“…….”
할 일이 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김연희는 이문후의 대답이 나선 그룹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들에게도 이문후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물론, 나선과 부딪쳐서 좋을 건 없었다. 하지만 이문후 정도의 실력자를 품을 수 있다면 나선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던전 위치는 메신저로 보낼게요. 그리고 연락을 해서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철수시키라고 전할게요.”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근데… 괜찮겠어요?”
“뭐가요?”
“나선 건설. 거기하고 싸울 생각인 거죠?”
“…….”
“원하신다면 우리 DS도 도울게요.”
“아니요. 그건 제가 해결해야죠.”
“… 쉽지 않을 거예요.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
“잘 알고 있어요. 보내준 것들 모두 확인했거든요.”
김연희는 이문후의 대답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투에서 왠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선과 확실히 단판을 지을 생각인 것 같았다.
“오늘 일은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죠.”
“조심하세요.”
“…….”
“조직하고 싸우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이문후는 김연희의 말에 옅은 미소를 보였다.
이 와중에도 도움을 주려는 그녀의 마음이 잘 느껴졌다.
***
김연희의 도움으로 경찰서를 빠져나온 이문후는 천천히 움직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낯선 시선.
원룸에서부터 따라붙은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선을 통해서 이미 모든 상황이 나명진에게 보고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가 좋을까?’
이문후는 몰래 주변을 살폈다.
계속해서 뒤쫓아오는 낯선 사람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나명진이 있는 곳을 알아낼 생각이었다.
주변을 살피던 이문후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따라붙는 시선이 당황하는 틈을 타서 모습을 감췄다.
타다닥!
급하게 뒤를 쫓아온 도유준은 사라진 이문후의 행방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로 간 거야?’
아무래도 자신의 존재를 들킨 것 같았다.
보고를 하느라 너무 거리를 벌린 게 문제였다. 하지만 잠깐 머뭇거리던 그는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들켰다면 도망갈 이유가 있나?’
이문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굳이 숨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쫓아오는 사람을 잡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았다.
‘눈치를 챈 거라면!’
재수가 없게도 건물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나오면서 점점 정상화되는 곳이 늘어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여기는 정상화되고 있지 않았다.
깜짝 놀란 도유준은 급하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도망가려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흐읍!”
비호처럼 달려든 이문후의 모습에 도유준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쉽게 당할 생각은 없었다.
파앙!
그는 곧바로 주먹을 뻗으며 이문후를 견제했다.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주먹이 아니었다. 그 역시 나선 건설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이문후였다.
뻐억!
강력한 충격에 절로 허리가 꺾였다. 하지만 도유준은 이를 악물었다. 이미 이 정도의 충격은 예상하고 있었다.
고통을 뒤로한 그는 주먹이 날아오는 곳을 공격했다.
비틀거리면서도 로우킥을 날리자, 정강이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됐다!’
이걸로 잠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대로 뒤로 물러나면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멀쩡한 그림자에 깜짝 놀랐다.
‘뭐, 뭐지?’
조금 주춤거리는 모습이라도 보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림자는 단단한 고목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조금 치는 놈인가?”
“크윽!”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등에서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도유준은 무릎을 꿇었다.
숨이 턱 막혀왔다.
나름 혼신의 힘을 다해서 로우킥을 날렸지만, 상대는 그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놈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끄으윽.”
도유준은 힘없이 끌려 올려지는 스스로의 모습에 좌절했다.
어느 정도 이문후의 힘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상대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한 괴물이었다.
“나명진이 보낸 놈이지?”
“…….”
“그래. 쉽게 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
“너. 나 누군지 알지? 최대한 버텨라.”
“뭐, 뭐?”
“버텨봐. 그래야 나도 보람을 느낄 테니까.”
“미친…”
싸늘한 이문후의 눈빛에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마치 고양이 앞에 선 쥐 같았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올 정도로 강한 살기가 그를 옥죄어왔다.
뻐억!
곧 그의 의식이 끊겼다.
이문후는 축 늘어진 도유준을 들쳐 업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도유준은 낯선 장소에 당황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문후의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명진의 최측근으로 옆에 있었던 만큼 이문후와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때 그걸 막았어야 했는데.’
그 사고를 칠 때 직접적으로 개입은 하지 않았다.
고작 고등학생들 사이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무시한 게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살고 싶지?”
“…….”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버리지 마라.”
“크큭.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냐?”
사람을 죽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직 폭력배로 활동했던 그조차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들 중에 하나였다.
오랜 시간을 이 생활에 몸담으면서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일반인의 경우에는 아니었다.
“맞아. 협박.”
“지랄하네. 내가 비록 네 손에 잡혔지만…”
“네 뒤를 봐.”
도유준은 이문후의 말에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시린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게이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에 어떤 미친놈을 만났거든. 연쇄 살인마였어. 그놈이 던전에서 시체를 처리하더라고.”
“…….”
“언젠가는 나명진하고 있었던 일을 해결할 생각이었어. 그놈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갚아 줘야지. 안 그래?”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나명진 그놈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해줘야지. 나선 건설? 거길 지울 생각이거든.”
“미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해 봐야지. 그전에 너부터 걱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
이문후의 진심어린 표정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나선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남아 있는 가족들이 위험했다.
“자, 나명진한테 연락해.”
“… 뭐?”
“그놈한테 연락하라고. 그리고 내가 여기 있다고 알려.”
“무슨 소리야? 내가 그 말에 따를 것 같아!”
도유준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아무리 협박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에 따를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이문후가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나선을 상대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찰칵!
이어지는 이문후의 행동에 도유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자신의 사진을 찍는 이문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하자는 거야?”
“DS그룹이라고 알지?”
“…….”
“그쪽 정보력이 좋더라고. 네 신상을 알아내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씨발,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결혼은 했나? 아이는?”
“뭐, 뭐?”
“상관없겠지. 가족이 없는 건 아닐테니까.”
“무슨 개소리야?”
“없으면 너한테는 축복이려나? 적어도 눈앞에서 죽은 가족들을 보지는 않을 테니까.”
“미, 미친!”
도유준은 광기 가득한 그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너희들이 먼저 시작했어.”
“자, 잠깐! 잠깐만.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해? 네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야.”
“…….”
“그놈한테 연락하든가. 눈앞에서 죽은 가족을 보든가.”
그냥 허튼 말이 아니었다. 진지한 이문후의 표정으로 봐서 금방이라도 눈앞에 가족들을 데리고 올 것 같았다.
“어떡하라는 거야?”
“나명진한테 내가 뭘 하는지 보고했었지?”
“그, 그래.”
“그걸 하면 돼. 내가 지금 일회성 던전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지금이 기회라고 전해.”
“뭐?”
“최대한 많이 끌고 오라고 해. 던전에서 죽이면 뒤처리도 쉬울 테니까.”
“…….”
도유준은 진심 어린 그의 눈빛에 핸드폰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연락처를 살폈다.
‘차라리 잘 된 건가? 이 기회에 저놈을 죽이면…’
나명진이 나선에 있는 사람들을 끌고 오면 오히려 이문후의 말대로 그를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이문후의 과하다 못해 무모해 보이는 자신감이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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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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