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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78화 (78/126)
  • 제 78화

    악연

    이문후는 쓰러진 오주완의 품을 뒤져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그의 지문을 통해서 패턴을 풀고 통화 목록을 살폈다.

    ‘분명히 그놈이랑 통화를 했을 텐데.’

    명분을 얻기 위해서 움직였다는 말이 헛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지시를 받은 만큼 나명진과 통화를 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목록을 살피던 그는 원하던 이름을 찾았다.

    오랜만에 보는 기분 나쁜 이름에 눈살을 찌푸리며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됐어?]

    연결음이 들리기 무섭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들었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한 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글쎄. 어떻게 됐을까?”

    [너 누구야? 너… 이문후?]

    “치졸한 건 여전하구나? 그때도 뒤에서 숨어서 눈치만 보더니.”

    [야이, 개…]

    “…….”

    [크큭. 크크크큭.]

    나명진은 예상하지 못한 통화에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너무 어색했다.

    “미친 거냐?”

    [그래. 미쳤다! 좋아서 미치겠네. 크크큭.]

    “좋다고?”

    [이번에는 너를 확실히 끝낼 수 있으니까!]

    나명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생각없이 이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각성을 했다고 이러는 건가?’

    나명진도 각성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각성을 한 오주완을 보낸 걸 보면 각성을 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나선 건설을 이을 놈이었다.

    다른 재벌들처럼 다른 각성자들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이렇게 자신감을 드러낸다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아무런 대책 없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믿을만한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지만, 어차피 큰 상관은 없었다.

    “재미있네.”

    [재미? 과연 재미있을까?]

    “이번에도 네가 지리는 걸 볼 수 있을 테니까.”

    [뭔 개소리야! 이 새끼야!]

    “그때도 잔뜩 쫄아서 바지에…”

    [미친 새끼가! 이름 좀 얻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냐! 조규종하고 비슷하다고 하니까 네가 조규종이라도 된 것 같아!]

    “…….”

    [너는 그냥 힘 좀 얻은 찐따야. 이 새끼야!]

    “크큭. 왜 이렇게 발끈해? 그때처럼 겁먹은 건 아니지?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던가?”

    핸드폰 너머라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큼 나명진은 분노했지만, 그는 곧 마음을 가라앉히며 통화를 이어갔다.

    [조만간 찾아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라. 이번에는 그때처럼 안 끝난다!]

    “그건 내가 할 소리고.”

    [기대해! 너도 네 엄마처럼…]

    “끄아아악!”

    […….]

    나명진은 곧바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문후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곳으로 간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내지른 비명 같았다. 하지만 그 소리가 너무나 처절했다.

    “들리지?”

    […….]

    “너도 곧 이런 소릴 낼 거야. 기다리고 있어.”

    [씨발, 넌 꼭 죽여…]

    이문후는 그 대답을 듣지도 않고 통화를 끝냈다.

    곧바로 다시 핸드폰이 울렸지만, 그는 무시하고 핸드폰을 내던졌다.

    “꺼져.”

    싸늘한 말에 잔뜩 움츠리고 있던 조폭들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들은 쓰러진 오주완과 동료를 데리고 물러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민석은 심각해 보이는 이문후의 표정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오빠, 괜찮은 거야?”

    “… 괜찮아.”

    뒤에 있던 정민영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봐왔던 이문후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늘따라 무표정한 얼굴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나명진. 그 새끼지?”

    “…….”

    “미친 새끼. 갑자기 왜 이런 거지?”

    지금까지 잠잠했던 놈이었다.

    얼마 전에 오주완과 마찰이 있기는 했지만, 갑자기 이렇게 나온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하는 건 아니지?”

    “무슨 소리야? 이상한 생각이라니.”

    “갑자기 그 새끼를 찾아간다거나 그런 거.”

    “…….”

    “괜히 싸워봤자 너만 손해야. 알잖아. 법은 있는 새끼들한테만 관대하다는 거.”

    “…….”

    “민후야!”

    그는 아무런 대답도 없는 이문후가 걱정이었다.

    이문후가 나명진에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아무 힘도 없었지만, 지금의 이문후는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문후는 오크 대전사를 상대로 우위를 보였다.

    그런 이문후가 일을 벌인다면 아무리 나선이라도 무사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된다면 이문후 역시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계획적으로 움직인 것 같았어. 그 새끼가 아무 생각도 없이 일을 벌였을 리가 없잖아?”

    “알고 있어.”

    “그런데도 그 새끼 장단에 놀아나려는 건 아니지?”

    “아무것도 안 해. 지금은 그냥 쉴 거야.”

    “…….”

    그는 정민석을 안심시켰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나선 건설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정민석의 말처럼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나랑 조규종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나명진과의 통화를 떠올리면 그 역시 이문후가 가지고 있는 힘을 얼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놈이 일부러 오주완을 보내서 일을 벌인 것을 보면 작정을 하고 도발을 하려고 했던 게 분명해 보였다.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단순히 나선 건설의 힘만은 아닌 게 분명했다.

    ‘뭐지? 그 새끼가 믿을 만한 게?’

    그 역시 자신은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나명진을 처리할 수 있었다.

    순간이동과 극독이라는 능력. 거기에 가지고 있는 건곤대나이의 힘이라면 나명진은 물론이고, 나선 건설까지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일을 벌이면 그 이후가 문제였다.

    ‘흐음. 이건 조금 고민을 해봐야겠는데.’

    던전에서 나온 이후로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은 사용한 내공과 체력을 회복하는 게 먼저였다.

    고민하는 이문후의 모습에 정민석이 그를 일깨웠다.

    “그만 가자.”

    “가자니? 어딜?”

    “쉰다며? 집으로 가는 거 아니었어?”

    “왜? 너도 가려고?”

    “당연하지! 네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데 같이 가야지.”

    “미친놈. 아무것도 안 한다니까.”

    “그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내가 미쳤냐? 그때 겪은 실수를 또 하게?”

    “…….”

    “나보다 민영이나 챙겨. 많이 놀란 것 같으니까.”

    “나, 나는 괜찮아.”

    정민영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앞에서 팔다리를 부러뜨리는 모습을 본 만큼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민영이보다는 네가 더…”

    “걱정하지 마라니까. 지금은 지쳐서 움직일 수도 없어.”

    “그럼 어떡하려고? 그 새끼도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그건 천천히 고민해 봐야지.”

    “후우. 그 미친 새끼는 왜!”

    “아무튼 지금은 네가 걱정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을 거니까, 민영이 먼저 챙겨. 나도 이제 쉬어야 할 것 같으니까.”

    “괜히 허튼 생각하지 마라. 연락 안 되면 나도 바로 찾아갈 테니까.”

    정민석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런 어쭙잖은 협박뿐이었다.

    “걱정하지 마라니까.”

    이문후는 두 남매를 뒤로하고 차로 돌아왔다.

    ‘나선 건설이라.’

    그래도 언젠가는 부딪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직 스스로의 힘에 관한 확신이 없었고, 경황도 없었기 때문에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계기가 주어진 것 같았다.

    ‘그래도 뭘 좀 알아봐야겠지?’

    무작정 부딪칠 생각은 없었다.

    즉흥적으로 움직이기에는 나명진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그는 곧바로 한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다.

    몇 번의 연결음이 이어지자, 김연희가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여보세요? 이문후 씨?]

    “예.”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려고 했어요. 편의를 봐주신 덕에 재료는 전부 건네받았어요. 고마워요.]

    “부탁이 있는데요.”

    [부, 부탁이요?]

    김연희는 갑작스러운 이문후의 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렇게 부탁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만큼 이문후가 그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뭔데요?]

    “나선 건설에 관해서 알 수 있을까요?”

    [나선… 건설이요?]

    그곳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퇴라고 우선 앞으로 상대해야 할 놈들에 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DS그룹의 정보력이라면 최소한 자신보다 많은 것을 알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 가능합니까?”

    [불가능한 건 아닌데. 급한 건가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지금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아니요. 감사할 것까지야… 근데, 무슨 일이 있나요? 갑자기 나선 건설을…]

    “…….”

    김연희도 나선 건설과 이문후와의 관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영입해야 할 사람이 바로 이문후였다. 그에 관한 조사가 없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흠흠. 나선 건설도 요즘에 각성자들을 모으면서 세를 키우고 있어요.]

    “그건 다른 곳과 비슷하지 않나요?”

    [조금 달라요. 그 사람들 겉모양은 기업이지만, 사실 조직 폭력배들이라서요. 지금 외국에 있는 조직들하고도 서로 손을 잡고 있을 거예요.]

    “외국이요?”

    [중국의 삼합회나 일본의 야쿠자들이요. 그쪽도 각성자들이 있으니까요.]

    폭력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었다.

    일반인이 각성을 한 것보다 전투에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명진이 그렇게 자신감을 내비친 것 같았다.

    [자세한 건 더 알아볼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죠.”

    [조사가 끝나면 바로 연락을 드릴게요. 그리고… 조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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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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