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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77화 (77/126)

제 77화

악연

이문후는 달려드는 조폭의 모습을 살피며 뒤로 물러났다.

상대도 일반인이 아니었다. 여기에 있는 조폭들 중에 대다수가 각성을 한 것 같았지만, 레벨이 높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쉬익! 쉬익!

조폭이 휘두른 사시미가 번뜩였다.

하지만 이문후는 여유롭게 물러나며 손에 쥔 봉을 휘둘렀다.

타악! 타악!

빛이 번뜩일 때마다 조폭들이 쓰러졌다.

손목을 부여잡은 그들은 사시미를 떨어뜨리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이문후의 눈에는 조폭들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였다.

공격을 피하거나 흘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힘 조절을 하는 게 더 어려웠다.

하지만 뒤에서 지켜보는 정민영은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는 사시미를 든 조폭들에게 둘러싸인 이문후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그들의 칼에 찔릴 것 같았다.

“112죠. 큰일 났어요. 지금 조폭들이 칼을 들고 위협…”

신고를 하던 정민영은 자신을 가로막은 손에 깜짝 놀라며 상대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를 막은 사람은 조폭이 아니라 정민석이었다.

“뭐 하는 거야?”

“그냥 지켜봐.”

“미쳤어? 빨리 경찰을 불러야…”

“그냥 지켜봐. 괜찮으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끄악!”

정민석의 황당한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조폭들은 빠르게 쓰러지고 있었다.

정민영은 처절한 비명에 이문후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바닥을 뒹굴고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저게 뭐야?”

“그냥 지켜보는 게 도와주는 거야.”

“말도 안 돼!”

“그래. 말도 안 되지! 저런 놈한테 덤빈 놈들이 미친놈들이야.”

정민석은 동생의 말에 십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각성자들도 비비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이문후였다. 하물며 지금 그에게 덤비는 조폭들은 지금까지 봐왔던 각성자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고작 1레벨 정도인 것 같은데.’

이제 막 플레이어가 된 모습이었다.

가지고 있는 능력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그들은 정민석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그들의 상태는 어설펐다. 하지만 조폭들답게 좀처럼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끄악!”

“끄아악!”

시간이 지날수록 쓰러지는 놈들이 더 많아졌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민석은 은근슬쩍 다가오는 놈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만만해 보였나?”

“어떡하려고?”

“어떡하긴, 내가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지.”

정민석은 여동생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멀리서 은빛 섬광이 날아들었다.

퍼억!

섬전처럼 날아든 빛에 그에게 다가오던 놈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이문후였다. 그 와중에 집중을 잃지 않은 그는 봉을 휘두르며 둘을 지켰다.

“저게 뭐야? 갑자기 길어졌어! 맞지?”

정민영은 길게 늘어난 그의 무기를 신기해했다.

이번에 던전에 들어갔다 나오고 생긴 물건이었다. 그냥 평범한 몽둥이로 생각했지만, 순간 길어지고 줄어드는 것을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물건인 것 같았다.

“쩝. 내 몫도 남겨두지.”

“그러다가 얻어맞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에휴. 말을 말자. 네가 뭘 알겠냐.”

정민석은 바닥에 쓰러진 놈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허세 가득한 오빠의 말에 정민영은 눈을 흘겼지만, 다시 들려오는 비명에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근데, 정말로 괜찮은 거야?”

“몇 번을 말해. 그냥 지켜보는 게 도와주는…”

“아니. 저 사람들. 쉽게 못 일어나잖아.”

이제는 이문후가 아니라 쓰러진 조폭들을 걱정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쓰러진 사람들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끄악!”

맞은 곳이 퉁퉁 부은 걸 보면 부러진 게 확실했다. 하지만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다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봉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폭이라도 저렇게 되면 문후 오빠가 곤란한 거 아니야?”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왜? 저번에도 잘못은… 흠흠.”

정민영은 굳어진 정민석의 표정에 말을 아꼈다.

이문후가 걱정이었지만, 지금 쓰러진 놈들 대부분이 흉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불리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괴물 같은 자식! 죽어!”

그녀가 걱정을 하는 사이, 오주완이 달려들었다.

이문후가 다른 조폭들을 쓰러뜨리는 사이에 틈을 노리던 그는 곧바로 능력을 사용했다.

‘보법인가?’

빠르게 품으로 파고드는 걸 보면 보법을 펼친 게 분명했다.

그의 예상대로 질풍보를 펼친 오주완은 텅 빈 가슴을 향해 사시미를 찔러 넣었다.

그는 거침이 없었다. 진짜로 이문후를 해칠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시미가 닿기도 전에 이문후는 옆으로 비켜섰다.

‘피, 피해?’

분명히 찔렀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고 하더라도 이 공격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오주완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뻐억!

오주완은 묵직한 주먹에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순간 아득해진 정신을 간신히 추스른 그는 바닥에 처박힌 몸을 인지하며 현실을 파악했다.

‘씨발, 괴물이잖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던전에서 힘을 얻은 놈들만 10명이 넘었다. 그 많은 수가 덤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 바닥을 구른 것이다.

그들은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었다.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조폭이었기 때문에 적응이 더 빨랐지만, 이문후는 너무나 쉽게 그들을 쓰러뜨렸다.

“크윽.”

“그때 내가 너무 봐줬던 거지?”

“저, 저리 가!”

“이럴 거면 여기로 오지 말았어야지!”

이문후는 쓰러진 오주완을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에 다른 놈들이 움직이려고 했지만, 누구 하나 일어설 수가 없었다.

뻐억!

몸을 일으키려고 하면 여지없이 은빛 섬광이 날아왔다.

그가 휘두른 봉에 얻어맞은 조폭들은 그 위력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는 게 최선이었다. 괜히 오주완을 돕겠다고 움직여 봐야 돌아오는 건 강한 고통뿐이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쉽게 안 끝낸다.”

“미, 미친놈아!”

“좋은 감정도 없는 놈이 왜 자꾸 나타나는 거야?”

“자, 잠깐! 잠깐!”

오주완은 팔을 붙잡는 이문후의 행동에 기겁하며 소리쳤다.

이미 두 팔이 부러져 봤던 만큼 지금 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개의치 않았다.

“지랄!”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 너 후회한다!”

“…….”

다급한 그의 외침에 이문후의 움직임이 멈췄다.

오주완은 먹혀든 협박에 안도했지만, 곧 차갑게 가라앉은 이문후의 눈빛을 마주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걸 시킨 놈이 있었다는 거냐?”

“…….”

“너 혼자 벌인 짓이 아니다?”

“그, 그래! 씨발, 우릴 건들면 너도 죽어!”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다.

낯설지 않은 상황에 그는 굳은 얼굴로 오주완을 내려다봤다.

“그래서? 네 뒤에 누가 있는데?”

“그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팔을 붙잡는 이문후의 행동에 오주완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명진이!”

“… 뭐?”

“나명진! 아니, 나선 건설!”

“…….”

“네가 나선 건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예전처럼 험한 꼴 당하기 전에 그냥…”

우두둑!

“끄아아악!”

이문후는 곧바로 그의 팔을 꺾었다.

다시 한번 기괴하게 꺾인 팔에 오주완은 게거품을 물었지만, 이문후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남은 팔을 붙잡았다.

“씨발! 이 미친…”

“너도 그때 그 개새끼들 중에 한 명이었지?”

“자, 잠깐! 아니야. 나는 아니라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도 그 개새끼 밑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냥… 끄아악!”

다시 한번 강한 고통이 전해졌다.

남아 있던 다른 팔도 꺾이자 오주완은 비명을 내질렀다.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두 팔이 모두 부러진 것이다. 하지만 이문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그 새끼를 찾아가려고 했었어.”

“…….”

“내가 어떻게 그 새끼를 잊겠냐. 안 그래?”

“이, 이러지 마.”

오주완은 감정 없이 내뱉는 이문후의 말에 섬뜩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발로 향하자, 급하게 손을 빌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사과하지 마.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빠각!

“끄아아아!”

옆에 있던 조폭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평소에 그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힘없는 사람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일을 자주 했지만, 처지가 바뀌자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개새끼야!”

“…….”

오주완은 다리까지 부러뜨린 이문후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이제는 오기가 일었다. 더는 잃을 게 없다고 판단한 그는 독기를 품으며 그를 노려봤다.

“명진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나명진이 뭐? 그 새끼가 가만히 안 있으면.”

“너는 이제 뒤졌어! 내가 왜 혼자 찾아왔는지 아냐?”

“…….”

“명분이다! 이 새끼야.”

악에 받친 그는 언성을 높였다.

지금은 이렇게라도 된 거 이문후가 당황하는 모습이라도 볼 생각이었다.

“명분? 너 같은 조폭한테도 명분이 필요하냐?”

“크크큭. 조폭? 나선이 그때 그 조폭으로 보이냐? 그때도 너는 아무것도 못 했지? 이제는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어. 이 새끼야!”

“그래서?”

“조만간 싹싹 빌게 될 거다. 살려달라고!”

“할 말은 그게 전부냐?”

“뭐, 뭐?”

“난 또 뭐 대단한 게 남았다고.”

“이 씨발, 하지 마!”

오주완은 남은 다리를 향해 손을 뻗는 이문후를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역시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남은 다리를 잡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명진한테 되도록 빨리 오라고 해. 아니, 조만간 내가 찾아간다고 전해.”

“하, 하지 마! 끄아악!”

오주완은 사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뒤이어 전해지는 강한 충격에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잠잠해진 그를 바라보는 이문후는 굳은 표정으로 남은 조폭들을 바라봤다.

‘나명진. 나선 건설?’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선 건설이라는 곳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어쩔 수 없는 상대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가진 힘이라면 놈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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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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