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화
악연
정민석은 초조한 모습으로 이문후를 기다렸다.
벌써 이틀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이문후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던 희미한 비명과 괴성들.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좀처럼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직도 허가가 안 떨어진 겁니까?”
“미안하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인 것 같아요.”
“하지만…”
“문후 씨도 민석 씨가 움직이는 걸 바라지는 않을 거예요.”
임성효는 정민석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친한지 잘 알고 있는 만큼 정민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가진 힘만으로는 이문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 같이 움직였다면 이런 고생도 없었잖아?”
“그만! 우선 여기에서 기다리다가 상황을 지켜보는 게 최선이니까 그 얘기는 그만 꺼내는…”
“어? 저게 뭐지? 뭐가 와요!”
초조하게 이문후를 기다리던 그들은 조유리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거대한 실루엣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했다.
“미친! 저게 뭐야?”
“괴, 괴물! 몬스터 아니야?”
거대하고 기괴한 형태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당히 거리가 있었지만, 갑자기 나타난 놈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하죠?”
“…….”
다가오는 놈이 어떤 놈인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좀처럼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물러나야죠! 저런 놈하고 싸울 겁니까?”
“하지만…”
“저는 기다립니다!”
“뭐, 뭐라고?”
“문후가 움직인 방향에서 온 놈이야. 뭔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
“미친! 저런 괴물이라면 아무리 그놈이라도…”
“닥쳐! 주둥아리 함부로 놀리지 마!”
“…….”
나경민은 날 선 정민석의 반응에 말을 아꼈다.
굳이 여기에서 싸워서 좋을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문후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저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을 혼자서 돌아다녔으니. 쯧!’
잠깐 경험을 한 게 전부였지만, 여기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평범해 보이는 놈들도 어지간한 각성자는 한 번에 찢어죽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이문후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이런 던전을 활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나타난 괴물만 봐도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덤벼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은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물러나는 게 좋겠어.”
“가세요. 저는 기다릴 테니까요.”
“민석 씨! 밖에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세요!”
“… 저한테는 문후도 가족입니다. 먼저 가세요.”
“…….”
정민석의 단호한 태도에 그들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더 지체한다면 앞에 있는 놈과 싸워야 할 판이었다.
“그냥 붙자!”
“미쳤어?”
나경민의 말에 옆에 있던 조유리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무리 이문후가 중요하다지만,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굳이 이 싸움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다 싶으면 도망가면 되겠지. 저 새끼도 느끼는 게 있을 테니까.”
“…….”
그는 정민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은 말로 해서는 들을 놈이 아니었다. 앞에 있는 괴물의 힘을 직접 느껴보고 판단을 해도 늦지 않았다.
사실, 나경민도 욕심이 났다.
이런 싸움을 무조건 피해서는 힘을 얻을 수 없었다.
“어차피 싸워야 할 놈이야. 저놈이 밖으로 나온다고 생각해봐!”
“앞은 내가 맡는다!”
“당연하지! 누구 때문에 남는 건데!”
정민석은 더블 헤드 엑스를 들고 앞에 섰다.
나경민이 그에 호응하면서 검을 빼들자, 임성효와 조유리도 그들의 뒤에서 기운을 끌어 올렸다.
“저도 돕겠습니다. 괜찮겠죠?”
“…….”
박정균은 옆에 있는 권형태를 바라봤다.
어찌 됐든 지금 상관은 권형태였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라도 그의 의도를 물어야만 했다.
“알았네. 나도 돕겠네.”
“팀장님도요?”
“나도 각성자야. 대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물러나야 해!”
“…….”
“모두를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알겠습니다.”
그는 정민석의 확답을 듣고 난 이후에야 그들의 옆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가까워지는 괴물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권형태의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아직까지 그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먼저 공격하겠네.”
“예? 예.”
가까워지는 괴물의 모습에 권형태는 능력을 사용했다.
화르르르!
활짝 편 손바닥 위로 불길이 모이기 시작했다.
작게 피어오른 불길은 점점 크기를 불려갔고, 농구공 정도의 크기가 되자 움직임을 멈췄다.
‘파이어 볼인가?’
정민석은 생각보다 강한 권형태의 힘에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마법 계열 능력인 것 같았다. 원거리 공격으로 전투에서 상당히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능력이었지만, 지금까지 쓴 모습을 본 기억은 없었다.
“조금 더 가까워지면 그때 공격을… 어?”
“왜요?”
“괴물이… 아닌데?”
“그게 무슨 소리…”
“사람이다! 이, 이문후다!”
“저게 다 뭐야?”
뒤늦게 정체를 깨달은 사람들은 힘겹게 걸어오는 이문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멀리서 실루엣만 봤을 때는 영락없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저게 다 뭐지?”
“몬스터들 사체 같은데?”
“뭐가 저렇게 많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문후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 가죽이었다. 거리가 있어서 모두 몬스터들로 보였지만, 뒤늦게 정체를 확인한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지금 그가 들고 오는 게 가죽이든 사체든 중요한 것은 엄청난 수의 몬스터를 잡았다는 것이었다.
“문후야!”
“뭐야? 여태까지 기다린 거야?”
“당연하지! 그것들은 뭐야?”
쿠웅!
이문후는 그제야 짊어지고 있는 것들을 내려놨다.
어깨 위로 짊어진 것들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상당한 양의 부산물들이 많았다.
은빛 막대기에 질질 끌고 오는 것들을 확인한 정민석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저것 좀 옮기자.”
“이게 다 뭐야?”
“뭐긴 뭐야. 돈이지.”
“…….”
정민석뿐만 아니라 같이 있던 사람들도 모두 동원됐다.
기백은 넘을 것 같은 가죽과 손톱, 송곳니에 일행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건 원숭이고, 이것들은 늑대잖아?”
“종족이 다르네요? 그것도 이 정도 양이면…”
“이걸 너 혼자 다 잡은 건 아니지?”
아무리 이문후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놈들을 잡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충분한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말이 되지 않았다.
겨우 3일이었다. 이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놈들을 모두 잡는 건 불가능했다.
“… 당연하지.”
“그럼 어떻게 된 거야?”
“그냥 운이 좋았어.”
“운이 좋았다고? 이걸 운으로 설명할 수 있나?”
나경민은 이문후의 대답에 말이 되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부산물을 얻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현실에서 로또를 맞는 게 더 쉬울 것 같았다.
이런 의문은 나경민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산물에 관심을 드러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냥…”
이문후는 고블린으로 변해서 가죽을 벗기던 기억을 떠올렸다. 빠른 손재주와 습득한 스킬로 가죽을 얻을 수 있었지만, 죽은 놈들의 수가 많은 만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가죽을 벗기고 부산물을 챙기는데 거의 이틀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이미 많은 체력을 소진했지만, 고블린의 사냥 지식을 이용해서 부족한 부분을 해결하게 되면서 욕심을 부렸다.
‘이걸 일일이 다 설명할 수도 없잖아?’
두 종족 간의 싸움은 물론이고, 부산물을 얻게 된 경위까지 설명하기에는 밝혀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싸우는 과정에서 웨어 울프들이 ‘여’족과 영역 다툼을 벌였던 것은 말 그대로 운이 좋았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 알겠습니다.”
권형태는 이문후의 대답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꼬치꼬치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이문후가 무사히, 그것도 엄청난 재료들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게 중요했다.
“우선 밖으로 나가죠.”
“알겠습니다. 그게 좋겠네요.”
이문후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어차피 이 부산물 중에 일부는 그들에게 돌아올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권형태도 그를 도왔다.
***
그들은 부산물을 가지고 게이트를 넘었다.
그렇게 많은 양이 앞에 쌓이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경계를 맡고 있던 군인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권형태는 그들을 단속시키며 곧바로 사람들을 불렀고, 곧 불러온 사람들이 부산물을 나르기 시작했다.
“우선 이것들은 안전한 곳으로 옮기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워낙 많은 양이라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정부와 DS그룹에게 넘겨야 할 물건이었다. 지금은 권형태의 도움을 받는 게 나아 보였다.
“괜찮은 거지?”
“피곤해. 우선 좀 쉬는 게 좋겠어.”
“그래. 그게 좋겠다.”
쉬지 않고 일을 한 만큼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멀리서 일련의 무리들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 사람.
앞에 있는 놈은 그렇게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이게 다 뭐야?”
“…….”
“대단한데? 이것들을 다 잡은 건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온 사람은 조규종이었다.
다른 각성자들과 함께 나타난 그는 이문후가 가지고 온 부산물을 보며 놀라워했다.
‘생각보다 팀 실력이 좋은데?’
이만한 몬스터를 혼자 잡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문후는 물론이고, 옆에 있는 다른 각성자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놀라는 것과 별개로 이문후는 그의 등장에 놀라워했다.
조규종이 갑자기 여기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권형태도 똑같은 의문을 가졌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아, 나도 뭔가 도울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도울 일이요? 그런 건 없…”
“그건 팀장님 생각이고요. 장관님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장관님이요?”
“던전에 좀 들어가 볼 생각입니다. 이미 장관님한테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
자리를 비운 3일. 그동안 조규종이 손을 쓴 게 분명했다.
아직 그 내용을 전해 듣지 못했지만, 조규종 뒤에 있던 사람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며 그에게 건넸다.
“승인섭니다.”
“흐음.”
정규 던전의 출입을 허가한다는 문서에는 장관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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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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