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화
악연
[저주받은 피]
기운을 사용하면 저주받은 종족으로 변할 수 있다.
변신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기운이 소진된다.
말 그대로 몬스터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놈들처럼 외형을 바꾸는 것이었지만, 얼마나 큰 효용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굳이 몬스터로 변해도 좋아 보이는 게 없었다.
다른 영역에 침범하면 그곳에 있는 놈들이 공격을 해왔기 때문에 던전 안에서 활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없는 것보다는 나은데.’
이문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한 번은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던전 안에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파스스스.
스킬을 장착하고 능력을 사용하자, 시야가 달라졌다.
달라진 몸을 확인한 그는 절로 얼굴을 찌푸렸다. 몸이 변했지만,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고블린?’
당연히 웨어 울프로 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시야도 낮아지고, 팔도 짧아진 것을 보면 고블린이 확실했다.
‘1레벨이라서 그런가?’
저주받은 피라는 스킬이 고작 1레벨이었다.
레벨이 높아지면 더 강한 몬스터로 변할 수 있는 것 같았지만, 여기에서 더 강한 놈으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큰 효용이 없었다.
우우우웅!
‘그래도 내공은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탯을 살펴봤다.
반응속도와 동체 시력이 더 높아지는 작은 스탯 변화는 있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고블린 고유 스킬, 사냥을 획득하였습니다.]
[고블린 고유 스탯, 손재주를 획득하였습니다.]
[건곤대나이의 공능이 손재주의 잠재력을 활성화 시킵니다.]
[1이었던 손재주 능력치가 34로 보정됩니다.]
‘이것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스킬과 스탯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사냥이라는 스킬과 함께 낯선 지식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미쳤다!”
새로 얻은 스킬은 그냥 단순히 생명체를 잡는 게 다가 아니었다. 나한신공처럼 사냥과 관련된 부가적인 것들이 통합된 스킬이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사냥 스킬 안에 도축이라는 스킬까지 포함됐다는 점이었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많은 사체들.
가죽을 얻을 웨어 울프와 원숭이들의 많았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두고 갈 놈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다니.”
이문후는 쓰러져 있는 사체로 다가갔다.
붉은 털을 가진 웨어 울프. 다른 놈들보다 훨씬 큰 덩치를 가진 놈으로, 가죽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가능하려나?”
그는 반신반의하며 조심스럽게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붉은 털을 가진 놈의 몸에 단검을 가져갔다.
스스슥.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사냥으로 얻은 도축에 관한 지식과 높은 손재주 스탯이 도움이 되고 있었다.
가죽을 벗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손이 너무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데?’
속도도 그렇게 느리지 않았다.
오히려 빠르다고 봐야 할 정도로 능숙하게 가죽을 손에 넣었다.
스킬과 무기. 거기에 수많은 가죽까지.
이번 싸움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얻어냈다.
***
쉬이익!
콰과광!
쏘아진 푸른 기운이 전방에 세워져 있던 목각 인형을 터뜨렸다. 제법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들이었지만, 강한 파괴력을 가진 검기를 버틸 수 없었다.
“후우. 이건 좀 부족해 보이지?”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놈은 쉽게 막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게…”
오현민은 조규종의 물음에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이문후의 실력을 알고 있는 만큼 이것만으로는 그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답이 없는 그의 모습에 조규종은 쓰게 웃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 정도로는 이문후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부족해. 너무 부족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사람 역시 그렇게 강하지는 않으니까요.”
“과연 그럴까? 그날 붙었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사장님 뒤에는 든든한 각성자들이…”
“각성자라면 그놈도 있었잖아.”
“모두가 국가에 소속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문후, 그 사람은 혼자 움직인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미 그에 관한 조사를 마친 이후였다.
오크들과의 싸움에서 만났을 때는 조금 운이 안 좋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조규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거야.”
“예? 무섭다니요?”
“어디로 붙어도 이상하지 않잖아. 소속이 없으니까 그놈한테 잘 보이려고 애를 쓰겠지.”
권형태가 그날 중재를 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 역시도 이문후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그놈에 관한 것들은 알아봤어?”
“예. 말씀하셨던 것처럼 철저하게 조사를 했습니다.”
“그래? 어때?”
“기존에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혼자 살고 있고…”
“그놈을 상대할 때 쓸만한 게 있냐고 묻는 거야.”
조규종의 말투가 딱딱해졌다.
지금 이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오현민은 그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조금 특이한 게 있었습니다.”
“특이한 거?”
“예. 고등학교 때 학교 폭력 가해자였던 걸 확인했습니다.”
“그래? 그냥 일진 양아치였던 거 아니야?”
“아닙니다. 확인을 해 봤는데 오히려 피해를 본 것 같았습니다.”
“피해? 근데 왜 가해자가 됐다는 거야?”
“상대 집안이 힘이 좀 있었습니다. 나선 건설 손자가 일을 주도하면서…”
“나선 건설? 그 조폭들?”
“… 예.”
제법 이름이 있는 건설사였다. 하지만 그 근본은 조직 폭력배들이었다.
조규종은 그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나선 건설과는 어느 정도 연이 있었다. 동급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신전 그룹과 사업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은 곳이었다.
물론, 신전 그룹에 비할 바는 못 됐다. 하지만 나선 건설은 재계에서 제법 이름이 있는 곳이었다.
“그 손자라면 나명진이라는 거지?”
“예. 어떻게…”
“성격 더러운 놈은 나명진밖에 없잖아? 이문후. 그놈하고 비슷한 나이인 것 같고.”
조규종은 나명진을 떠올렸다.
인상이 좋은 놈은 아니었다. 비록,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몇 번 본 사이였다.
그 와중에 더러운 성격을 확인할 정도라면 질이 좋은 놈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지랄 맞은 성격을 보면 뭔가 일을 저질렀을 게 분명했다.
“그럼 나명진하고는 사이가 안 좋다는 거지?”
“예. 거기에 나명진 씨가 따로 일을 벌였던 것 같습니다.”
“일을 벌여?”
“그게… 사건이 커졌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학교 폭력이었지만, 이문후 씨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복싱을 했다고 했지?”
“예.”
제법 유명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이문후를 떠올려봐도 그냥 당하고 있을 놈이 아니었다.
“싸워서 졌다는 거야?”
“예. 그리고 조직 폭력배 몇 명을 동원한 것 같습니다.”
“치사한 놈이네.”
아무리 나선 건설이 뒤에 있다고 하더라도 애들 싸움에 조폭이 끼어드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말이었지만, 이어지는 설명에 조규종은 다시 한번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람이 죽어?”
“사고라고는 하는데. 다른 사람이 죄를 뒤집어 쓴 걸로 확인했습니다.”
“…….”
살인이라는 말에 조규종의 표정도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 때 그만한 일에 휘말렸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누가 죽었는데?”
“이문후 씨. 가족입니다.”
“뭐? 가족?”
“예. 어머니와 동생이…”
“나명진이 그 사람들을 죽였다는 거야?”
조규종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이 꼬인 것 같습니다만… 그 배후에는 나명진 씨가 있었던 것으로…”
“완전히 미친놈이잖아?”
아무리 막 나가도 살인 교사까지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라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런데도 이문후가 가만히 있었다는 거야?”
“아니요. 그래서 가해자가 된 것 같습니다.”
“흐음.”
“그리고 그때는… 힘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작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진즉에 도망을 간 상황이라서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
“그 일로 운동도 그만두고, 그때부터 집안에서 처박혀 있던 걸로 확인했습니다. 아무래도 충격이…”
생각보다 기구한 삶을 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과거가 있는 이문후라도 지금 그에게는 걸림돌이었다.
“아무튼 그 일로 이문후를 흔들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거잖아?”
“예. 나선 건설을 이용하면 어떻습니까?”
“나선을?”
“나명진 씨 말입니다.”
“그놈을? 하긴, 그놈도 각성자니까. 근데, 그놈이 움직이려고 할까?”
“그때 이문후 씨에게 맞아서 몇 달을 병원에 입원을 했던 걸 확인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놈 성격상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제 이문후가 유명해진 상태에서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문후 씨를 움직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문후를?”
원한이 있는 걸 알겠지만, 이제 와서 그 일로 다시 나명진을 공격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오현민의 말에 조규종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가족을 해친 놈을 지금 나명진 씨가 케어하고 있습니다.”
“진범을 나명진이 데리고 있다?”
“예. 그 사실을 알린다면…”
“이문후가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그전에 나선 그룹의 힘을 더 키워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충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이문후 정도의 실력이라면 나선 그룹도 위험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이문후를 매장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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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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