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화
새로운 놈들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하얀 털 원숭이들의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확실히 위에서 움직이는 이유가 있었나?’
높은 곳에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모습을 감추고 시야를 확보하는 것에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나한보만으로는 한계가 있네.’
운신이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나마 커다란 나무들 틈에 기대서 버티고 있었지만, 조금만 잘못하면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계속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도 없는데.’
아무래도 보법이 아닌 다른 능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도 잠행의 효과는 확실했다. 고작 1레벨이었지만, 높은 집중력과 감각으로 원숭이들의 시야를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건곤대나이를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이대로는 사냥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체력도 빠르게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기습을 하면서 순간이동을 사용하는 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렇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자니 그것도 부담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기습이 실패한다면 그 이후가 걱정이었다.
‘그냥 부딪쳐 봐?’
차라리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아직 이대일로 붙지는 않았지만, 만약 붙는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다른 놈들인데.’
대놓고 싸우기에는 원숭이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비록, 저마다 따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제법 큰 소리가 난다면 순식간에 둘러싸일 수 있었다.
‘숲이라 도망가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 같고.’
지금은 이 잠행이라는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는 게 좋았다.
벌써 그의 기습에 쓰러진 원숭이들의 수만 하더라도 거의 두 자릿수에 육박했다.
그때 한 놈이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놈은 같이 있던 다른 원숭이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걸어오고 있었다.
‘설마 눈치챈 건 아니겠지?’
그의 존재를 눈치챘다면 저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세를 낮추며 놈을 바라보자, 홀로 움직인 원숭이는 일행과 떨어진 곳에 숨어서 감춰놨던 뭔가를 꺼냈다.
‘과일이잖아?’
예전에 챙겨갔었던 과일이었다.
몰래 먹을 심산인지 놈은 히쭉 웃으면서 구석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을 혼자 먹기 시작했다.
행동만 보면 영락없는 원숭이였다.
그 덩치가 고릴라보다 더 크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문후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저정도 거리라면 다른 놈들한테 들킬 것 같지는 않은데.’
원숭이와의 거리를 가늠한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높이가 상당했지만, 높은 신체 능력을 믿었다. 스탯만 놓고 보면 다른 각성자들보다 많게는 세 배 정도 높았기 때문에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계속 순간이동을 쓸 수도 없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천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쭈왑! 쭈왑!
이문후가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도 원숭이는 과일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힌 그는 그대로 나뭇가지를 박차며 몸을 날렸다.
‘흐읍!’
순식간에 가까워진 원숭이의 뒤통수.
이문후는 내공을 실은 단검을 그대로 찔러 넣었다.
푸욱!
짧은 검신이 원숭이의 머리에 박혔다.
체중과 내공이 실린 단검은 마치 두부를 찌른 것처럼 수월하게 원숭이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리고 놈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일격에 하얀 털 원숭이를 처리할 수 있었다.
워낙 은밀했기 때문에 다른 놈들은 동료가 죽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무리를 지으며 움직이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개개인이 독단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수를 줄이는 게 가능했다.
쿠웅!
바닥에 내려선 이문후는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제법 큰 소리와 함께 충격이 올라왔다. 최대한 무릎을 굽히며 충격을 줄였지만, 높이가 높이인지라 모든 충격을 해소할 수는 없었다.
‘조금만 잘못했어도 다리가 부러졌겠는데?’
나름 높은 스탯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낙하의 충격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아 보였다.
나무 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았다.
쓰러진 원숭이를 뒤로한 그는 남아 있는 다른 원숭이를 향해 움직였다. 이제 한 놈이 사라진 만큼 남아 있는 놈도 혼자였기 때문에 마저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냥 움직여도 모르는 건가?’
잠행 스킬은 계속 적용되고 있었다.
남아 있는 원숭이는 제법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 정도라면 굳이 위에서 뛰어내릴 필요도 없겠네.’
이문후는 남은 원숭이의 뒤로 움직였다.
눈에 보이지 않을만한 곳을 선점했고, 곧바로 나한보를 펼치며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끼이?”
이상한 기척을 느낀 원숭이의 고개가 돌아갔다.
동시에 놈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갑자기 날붙이를 든 인간이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원숭이는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푸욱!
본능적인 동작이 그의 단검을 막아냈다.
아무리 내공을 실었다지만, 단검만으로는 팔을 뚫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개의치 않으며 텅 빈 품으로 파고들었다.
“끼이… 크륵!”
하얀 털 원숭이가 비명을 내지를 겨를도 없었다.
곧장 안으로 파고든 그는 손을 뻗으며 기운을 쏟아냈다.
발경이었다.
파고든 기운이 내부를 뒤흔들자, 원숭이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꼬꾸라졌다.
그리고 이문후는 놈의 머리에 다시 기운을 흘러 넣으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완성하였습니다.]
“후우우.”
참았던 숨을 몰아쉰 그는 쓰러진 놈을 바라봤다.
‘아직까지 단검은 너무 서툴러.’
다행히 큰 소리는 새어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판단이 늦었다면 지금쯤 다른 놈들이 여기로 몰려들었을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기운은 많이 사용하지만, 확실히 끝낼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쓰러진 놈에게서 단검을 뽑은 그는 조심스럽게 품을 뒤졌다.
혹시나 쓸만한 물건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죽은 놈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계속 경험치만 모으네.’
그나마 경험치라도 잘 모이는 게 다행이었다.
고블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험치가 쌓였다.
“우끼이이!”
모은 경험치를 확인하던 그는 상념을 떨쳐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낯선 소리가 들렸다.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었지만, 다급한 느낌이 역력했다.
‘들켰나?’
그동안 쓰러뜨린 원숭이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놈들의 흔적을 모두 지울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놈이 그걸 발견한 것 같았다.
슬슬 몸을 사려야 할 때였다.
다행히 곧 어두워졌기 때문에 몸을 숨기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이문후는 곧바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우선 원숭이들이 없는 곳에서 소진한 내공과 체력을 회복하는 게 좋아 보였다.
***
금세 날이 어두워졌다.
숲의 밤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지만, 이문후에게는 이런 상황이 더 좋았다.
‘무리를 이끄는 놈이 만만치 않아 보였는데.’
따로 움직이던 놈들은 대장으로 보이는 놈의 지시에 따라서 숲을 뒤지기 시작했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잡히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늦게 움직였다면 원숭이들에게 둘러싸였을지도 몰랐다.
‘이제 저놈들도 내 존재를 눈치챘을 텐데.’
놈들이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아무리 잠행 스킬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그는 가방에서 작은 환약과 물통을 꺼냈다.
김연희가 준 활력단과 얼음이었다.
이제 체력을 회복하고 갈증을 해소할 때였다.
꿀꺽.
주저하던 그는 활력단과 물을 마셨다.
평소 마시던 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활력단도 별다른 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복용하기 무섭게 전신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신기한 놈이네.”
말 그대로 체력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여러 번 순간이동을 사용하면서 조금씩 무거워졌던 몸이 확실히 가벼워졌다.
이것만 있으면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었다.
“슬슬 움직여볼까?”
순식간에 체력을 회복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대로라면 다시 던전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체력을 회복하고 갈증을 해결한 만큼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상황도 그렇게 불리하지만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진 게 오히려 더 유리하게 작용했다.
“기습이 더 잘 먹혔으면 좋겠는데.”
이문후는 다시 원숭이들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날이 어두워진 만큼 그의 시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흐릿한 달빛에 의지해서 사물을 분별해야 했지만, 상대는 원숭이였다.
새하얀 털을 가진 원숭이들.
어둠 속에서 유난히 밝아 보이는 놈들의 털이 그의 불편함을 없애줬다.
‘우선 저놈부터 시작해 볼까?’
달빛을 반사하는 하얀 털을 가진 원숭이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최대한 소리를 죽인 그는 조심스럽게 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뒤를 잡으며 놈의 머리에 기운을 흘려 넣었다.
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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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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