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화
새로운 놈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상당히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숲으로 들어선 이문후는 이전과는 많이 변한 한 것 같은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블린들이 사라져서 그런 건가?’
숲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인적이 없는 곳이라 고요한 것은 당연했지만, 왠지 모를 위화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뭔가 찝찝한데.’
누군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높아진 감각이 그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원숭이들인가?’
지능이 높은 놈들이라 숨어서 기습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이미 던전 입구 쪽에서 원숭이들과 부딪쳤기 때문에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경각심을 가진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불안했던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원숭이다!’
수풀 너머에 하얀 털을 가진 두 놈을 발견했다.
놈들은 서로 앉아서 털을 골라주고 있었다. 안에 있는 이를 잡아먹고 있는 전형적인 원숭이의 모습이었다.
‘저놈들 때문이었나?’
불안함의 정체를 깨달은 그는 곧바로 움직였다.
수적으로 불리했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한 놈을 확실하게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그는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파앗!
공간을 건너뛰자 눈앞에 하얀 털이 가득 들어왔다.
순식간에 이를 잡아먹고 있는 놈의 뒤로 움직인 그는 극독을 펼치며 그대로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키에에엑!”
화끈한 고통에 화들짝 놀란 하얀 털 원숭이가 괴성을 지르며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동료의 비명에 놀란 다른 놈도 그대로 뛰어오르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본능적으로 거리를 벌린 놈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게거품을 물며 바들바들 떨고 있는 동료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끼이이익?”
의문 가득한 소리로 상태를 물었다. 하지만 연신 몸을 비틀어대며 괴로워하던 동료는 곧 축 늘어지며 움직임을 멈췄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놈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재사용시간이 길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한 놈을 쉽게 처리한 만큼 극독이라는 능력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투웅!
한 놈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이문후는 곧바로 바닥을 박찼다. 나한보를 밟으며 놀란 듯 눈을 부릅 뜬 남은 원숭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끼이이!”
뒤늦게 그를 발견한 원숭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분개했다.
쓰러진 동료를 해친 놈이 앞에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광분한 놈은 뛰어드는 이문후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부우웅! 부우웅!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원숭이의 손에서 굉음이 흘러나왔다.
무식한 공격에 이문후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를 노리고 움직이면 그에 따라 반응을 하겠지만, 막무가내로 팔을 휘젓는 행동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난감한데?’
급하게 방향을 바꾼 그는 원숭이의 측면을 노렸다. 하지만 놈은 곧바로 몸을 돌리며 계속해서 기다란 팔을 휘저었다.
“우끼이이!”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오히려 그를 향해 달려들며 분노를 표출했다.
‘흐읍!’
이문후는 놈을 피해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놈을 견제할 생각으로 권기를 날렸다.
쐐에엑! 터엉!
황금빛 기운에 달려들던 원숭이가 움찔거렸다.
강한 충격에 놈의 기세가 꺾이자, 한숨을 돌린 그는 다시 권기를 날리며 조금씩 원숭이와의 거리를 좁혔다.
잽으로 상대를 견제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유형화 된 기운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허공에서 날아드는 강력한 기운에 원숭이는 주춤거렸고, 거리를 좁힌 그는 내공을 끌어 올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키아아악!”
계속되는 주먹질에 하얀 털 원숭이도 반격을 이어갔다.
무작정 휘두르는 주먹질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놈은 긴 팔이 미친 듯이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거리가 좁혀진 이후였다.
가속이 붙지 않은 상태에 거리까지 가까웠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공격을 흘리며 반격을 할 수 있었다.
퍼억!
곧바로 옆구리를 때리자, 원숭이가 크게 휘청거렸다.
충격을 입은 놈은 비틀거렸고, 이문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투웅!
곧바로 내공을 흘러 넣으며 충격을 가했다. 발경을 이용해서 내부를 휘젓자, 원숭이는 피를 토하며 무너졌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원숭이의 죽음을 확인한 이문후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게이트를 넘고 한 놈을 상대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그 경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게 놈들을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얻을 수 있는 건 경험치가 전분가?”
고블린 같은 경우에는 도구를 썼기 때문에 얻을 게 많았다. 하지만 하얀 털 원숭이는 쓸만한 게 없었다.
그나마 가죽을 벗기면 괜찮은 방어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런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지? 여기 있는 놈들은 다 잡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숲에 들어서고 느꼈던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보다 그 느낌이 더 커졌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한 기분에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대한 원숭이가 햇빛을 가리며 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저거였나?’
뒤늦게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기습적으로 떨어져 내린 놈은 그의 머리를 노리며 거대한 몽둥이를 찍어 내렸다.
급하게 물러난다고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원숭이의 기습은 매서웠고, 늦었다고 판단한 이문후는 과감하게 능력을 사용했다.
파앗! 쿠웅!
몽둥이가 닿으려는 순간, 그의 몸이 사라졌다.
갑자기 없어진 사냥감에 기습을 한 원숭이는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끼이이!”
그런 놈의 눈앞에 이문우가 나타났다.
급하게 순간이동을 펼치느라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앞에 있는 놈은 기존에 상대했던 놈들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큰 놈이었다.
“하압!”
원숭이 앞에 나타난 이문후는 곧장 주먹을 뻗으며 기운을 쏟아냈다.
콰앙!
다급한 만큼 곧바로 권기를 통해내자, 얼굴을 얻어맞은 원숭이가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가볍게 2m를 넘길 정도로 큰 체구가 끈 떨어진 연 마냥 밀려났다. 그만큼 이문후의 주먹은 위력이 있었지만, 바닥에 내려선 그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영악한 놈이잖아?’
앞에 있는 놈의 심계가 대단했다.
동족을 잡을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기회를 노린 것만 봐도 평범한 놈은 아닌 것 같았다.
“크르륵!”
그의 예상대로 놈은 바로 일어나며 얼굴을 매만졌다.
엄청난 충격에 놀란 눈치였지만, 그만큼 적의는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끼이아앗!”
기습은 실패했지만, 원숭이는 곧바로 곧바로 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손에 쥔 두꺼운 몽둥이를 휘두르며 거리를 좁혀오자, 이문후는 허리를 숙이며 놈의 공격을 피해냈다.
부우웅!
두꺼운 몽둥이가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위빙으로 공격을 피한 그는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주먹에 내공을 실었다.
뻐억!
묵직한 일격에 하얀 털 원숭이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쿠엑!”
고통을 버티지 못한 놈은 그대로 배를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문후는 놈의 머리에 손을 뻗으며 힘을 흘러 넣었다.
퍼석!
스며든 기운이 그대로 원숭이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결국 놈은 쓰러졌고, 이문후는 생각보다 쉽게 잡힌 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왜 이렇게 허접하지?”
앞에 상대한 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날카로웠던 기습에 깜짝 놀라며 힘을 과하게 사용한 것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쇄도한 놈의 공격은 너무 단순했다.
“그냥 기습에 특화된 놈이었나?”
조금 전의 기습은 그만큼 은밀했다.
순간이동이 아니었다면 쓰러진 쪽은 원숭이가 아니라 이문후가 됐을지도 몰랐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잘게 몸을 떠는 놈을 바라봤다.
다행히 놈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회복력을 가지고 있는 놈이라도 파괴된 머릿속까지 회복할 수는 없었다.
쓰러진 원숭이는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놈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이 전해졌다.
[새로운 스킬, 잠행(潛行)을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확실히 다른 놈들과는 달랐다. 경험치만 주는 게 아니라 새로운 스킬을 남긴 것이다.
그는 곧바로 잠행이라는 스킬을 확인했다.
[잠행]
누군가의 눈을 피해서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다.
집중력과 감각이 높을수록 잠행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잠행? 나쁘지 않은데?”
원숭이를 잡고 이런 스킬을 얻을 줄은 몰랐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숲에서 이렇게 몸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감각하고 집중력이 높아서 그놈을 찾을 수 있었던 건가?’
죽은 원숭이보다는 그의 스탯이 더 높았다.
건곤대나이를 통해서 보정된 수치만 하더라도 기본 수치의 배가 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걸 생각하면, 잠행이라는 스킬 자체가 상당히 좋아 보였다.
‘당분간은 화염을 안 쓰겠지?’
어차피 발경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화염을 사용할 일은 없어 보였다.
이문후는 곧바로 화염 스킬 대신 잠행 스킬을 장착했다.
따로 활성화 시켜야만 하는 스킬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장착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유지되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느낌은 없었다.
‘작정하고 몸을 숨겨야 하나?’
잠깐 고민하던 그는 죽은 원숭이의 행동을 떠올렸다. 그리고 높게 치솟은 나뭇가지를 바라봤다.
“그렇다고 나무를 타고 움직일 수는 없잖아?”
마음만 먹는다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순간이동을 잘 이용하면 나무 위에서 움직이는 것도 가능했다.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는 곧바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하얀 털 원숭이들을 찾아서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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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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