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의 던전 사냥-65화 (65/126)

제 65화

꼭 필요한 사람

‘자리를 피한 이유가 이거였나?’

김정우가 급하게 자리를 뜬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그냥 단순히 던전에 같이 가야만 하는 게 다가 아니었다. 진정한 목적은 김연희를 동행시키려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뻔뻔하시네요?”

“예?”

“처음부터 이걸 몰랐을 리는 없을 테고. 바로 말을 안 한 이유가 있었군요?”

“아, 그게…”

김연희는 생각했던 것보다 까칠한 이문후의 반응에 당황했다. 여차하면 여기에서 관계가 틀어질지도 몰랐다.

그의 생각처럼 같이 동행을 하면서 친분을 쌓을 생각이었다. 물론, 김정우의 계획이었지만, 이문후의 반응을 보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냥 밀어붙이기에는 이문후의 실력이 부담이었다.

이미 그가 김민기를 어떻게 대했는지 눈으로 확인을 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누구라도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이 상황을 잘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오해요?”

“제가 짐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

“일회성 던전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정규 던전을 들어갈 생각은 없어요.”

“그럼 식수를 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죠?”

지금 김연희는 주변에 흩어져 있는 수증기를 이용해서 얼음을 만들었다. 당연히 이렇게 식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던전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여기에서 물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밖에서 만든 것은 던전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일회성 던전에서 만들었어요.”

“일회성 던전?”

“차근차근 준비해 뒀어요. 던전 안에서 이런 방법을 이용해서 얼음을 만들었고, 물을 만들고 모아놨어요.”

“…….”

“물론, 여기에서 한가지 과정을 더 거쳐야 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쏴아아!

김연희는 다시 또 다른 능력을 사용했다.

그녀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무섭게 들고 있던 얼음 덩어리로 스며들었다.

“정화라는 능력이에요.”

“정화?”

“말 그대로 독이나 해로운 것들을 정화 시킬 수 있죠. 원래는 이 능력을 건네주려고 준비를 했어요. 하지만 쉽게 구할 수가 없었죠. 능력 자체가 희귀한 것 같더라고요.”

김연희가 가진 또 다른 능력이었다.

아무리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를 얼린다고 하더라도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이 능력을 이용하면 해로운 요소를 줄일 수 있었다.

“이렇게 정화 시킨 물을 따로 모아뒀어요. 그 양이 많지는 않지만, 당분간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

그의 걱정이 무색해질 정도로 완벽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물론, 이런 것들 전부가 처음 생각했던 계획은 아니었다.

차선책으로 준비한 계획이었지만, 다행히 이문후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활력단하고, 준비한 식수는 따로 드릴 거예요. 한 번에 많은 양은 드릴 순 없겠지만, 사흘 정도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활력단은 얼마나 있는 거죠?”

“양이 많지 않아요. 일부는 성분을 분석하고 있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꾸준히 시장에 나온 것들이 있는지 살피고 있지만, 물건 자체가 거의 없더라고요.”

이런 물건을 그들만 찾는 게 아니었다.

지금 경쟁하고 있는 신전은 물론이고, 다른 각성자들 역시 활력단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일회성 던전은 어떻게 하실 거죠?”

“시간이 되면…”

“지금 바로 움직이는 건 무리겠죠?”

“크게 상관은 없는데, 설마 거기도 같이 움직여야 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관리를 하는 곳이니까요. 거기에 연락도 해야 하고, 준비도… 필요하고요.”

“…….”

“안 피곤하세요?”

김연희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하지만 이문후를 걱정하는 것보다 지친 스스로의 상태를 알리려는 느낌이 강했다.

“피곤하시면 나중에 가죠.”

“그러실래요?”

나중으로 미룬다는 말에 김연희의 활색이 살아났다.

고블린을 잡고 사촌들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인 상태였다. 이제야 조금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 활력단이요. 넉넉하게 다섯 알을 드릴게요. 그리고 여기 물통이에요. 물은 부피가 있어서 많지는 않을 거예요.”

이문후는 김연희가 건네는 것들을 받았다.

이 정도라면 이틀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활력단은 충분했지만, 마실 수 있을만한 물이 문제였다.

“정화 스킬을 구하고는 있어요. 비전의 서라는 것도 찾고 있지만 구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비전의 서요?”

“마음 같아서는 정화 스킬을 드리고 싶은데. 사실, 빙결이라는 스킬도 있어야 얼음을 만드는 게 가능하거든요.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까지 생각하면 이 스킬들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김연희는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했다. 복잡한 조건을 갖추느니, 자신을 직접 데리고 움직이라는 뜻이었다.

“그럼 비전의 서만 있으면 되는 건가요?”

“예?”

“비전의 서를 가지고 오면 정화 스킬을 줄 수 있냐고 묻는 겁니다.”

“그, 그렇겠죠?”

대화가 의도했던 것과는 흘러갔다.

이문후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김연희는 당황했다.

“하지만 저도 새로운 스킬을 찾아야 하고… 이문후 씨도 여러 개의 스킬을 사용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어차피 식량이나 식수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거라면 그때그때 바꿔서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만…”

“알겠습니다. 그럼 비전의 서를 얻으면 그때 연락을 드리죠.”

“… 예.”

이제 와서 거절을 할 수도 없었다.

되도록 그가 비전의 서를 얻지 못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김연희는 이문후를 배웅했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나가자 곧바로 전략실로 연락을 취했다.

[예. 실장님!]

“비전의 서! 무조건 사수하세요!”

[예? 갑자기…]

“시중에 나오는 비전의 서가 있다면 무조건 사수하시라고요! 돈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으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단단히 지시를 내렸지만, 그녀의 수심이 깊어졌다.

“괜히 준다고 했나?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정화 스킬을 보유하고, 꾸준히 식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김연희 혼자여야만 했다. 그래야 이문후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하아. 내가 왜 저 사람한테 매달려야 하는 거지?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그녀는 김정우에게 화살을 돌렸다.

좋은 사윗감이 나타났다느니, 건실한 청년을 봤다는 헛소리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

이문후는 손에 들어온 물건을 살폈다.

활력단과 가죽으로 된 물병. 그리고 DS로고가 새겨진 옷과 가방까지.

가방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활력단과 물병을 넣기에는 충분했다. 거기에 몸에 달라붙는 옷도 던전에서 활동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이것들인데.”

활력단과 식수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였다.

‘이제 슬슬 던전을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웨이브가 터지면서 변화는 불가피해 보였다.

이제 정규 던전에 관한 규제가 더 늘거나 풀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좋을 건 없었다.

규제가 풀린다면 다른 각성자들이 던전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만약에 규제가 강화된다면 던전으로 들어가는 게 막힐 지도 몰랐다.

“차라리 지금 움직이는 게 나을까?”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움직이는 게 좋았다.

고민을 하던 그는 결정을 내렸다. 우선 활력단과 식수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거기에 전보다 더 멀리 움직여서 적당히 상대할 놈을 찾아야만 했다.

“지금 가자!”

마음을 정한 그는 곧바로 권형태를 찾았다.

아직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책임자인 권형태도 정신이 없었지만, 그는 이문후와의 만남을 피하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던전을요? 지금이요?”

웨이브를 막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이문후라지만 곧바로 던전으로 들어간다고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언제 규제가 생길지 모르니까요.”

“아! 지금 논의 중에 있습니다.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던전으로 들어갈 각성자들을 차출할 것 같습니다.”

“던전으로 들어간다는 건가요?”

“예. 던전 밖에서 몬스터들을 막는 것보다 안에서 동향을 살피는 것들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정해진다고 하더라도 실행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 같고요.”

던전으로 진출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과감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어찌 됐든 그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시간은 조금 있다는 건데.’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몬스터들을 잡고, 경험치를 채울 필요가 있었다.

레벨업은 무리겠지만, 건곤대나이를 4성으로 올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지금 던전을 들어가는 건 무리라는 겁니까?”

“아니요. 가능합니다. 다만, 위험하지 않을까요?”

안에서 튀어나온 놈들이 더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들이 지키는 게이트에서는 몬스터들이 튀어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놈들이 벼르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제 몸 하나는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겁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날이 어두워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권형태는 과감하게 움직였다.

웨이브가 터지면서 그의 권한과 위상이 더 높아졌다.

그는 박정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한데 불러모았다. 그리고 잠깐 던전 내부를 살핀다는 명목으로 게이트로 향했다.

“우리도 들어가는 겁니까?”

“바로 빠져나올 거야.”

“왜요?”

“위험하니까.”

“하지만 저놈은…”

“그게 부러우면 이문후 씨만큼 강해지든가.”

“…….”

던전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에 들떠 있던 나경민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이문후와의 격차를 좁히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괜히 무리하는 건 아니지?”

“걱정하지 마. 위험하면 바로 빠져나올 테니까.”

“우리도 같이 움직이는 건 어때?”

“알아서 해. 나는 따로 움직일 테니까.”

“쳇! 치사하게.”

투덜거리는 나경민을 뒤로한 그들은 게이트로 들어섰다.

몸이 빨려 들어가기 무섭게 주변이 달라졌다.

처음 들어선 정규 던전.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온 그들을 반긴 건 넓은 초원이 아니었다.

하얀 털을 가진 놈들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달려오는 놈들을 발견한 이문후는 어리둥절해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조심해요!”

“끼이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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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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