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화
꼭 필요한 사람
결국 던전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모두 여섯이었다.
이문후는 김연희와 함께 움직였고, 김민태와 김민철은 그들이 데리고 온 각성자와 함께 했다.
“다행히 고블린만 있는 곳 같습니다.”
“겨우? 고블린 정도라면 보상은 별로겠네.”
김민태는 아쉬워하며 투덜거렸다.
강한 놈들이 있는 던전이 더 좋은 보상을 줄 가능성이 높았다. 고블린 정도라면 대개 나무 상자가 보상으로 나왔기 때문에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없었다.
“시작하시죠?”
“예. 천천히 진입하겠습니다.”
김민철의 말에 각성자 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전에 이문후의 눈치를 살폈지만, 차마 같이 가자는 말을 하지 못 했다.
김민태와 김민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문후는 김연희가 데리고 온 사람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앞서 이문후의 실력을 확인한 만큼 섣불리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저 두 사람만 보내는 겁니까?”
“예. 우선 고블린들을 데리고 올 거예요.”
“저는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게…”
이 사람들과 움직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싸우는지 알아야 맞춰줄 수 있었지만, 김연희가 설명을 하기도 전에 먼저 움직인 둘이 고블린을 몰고 왔다.
“끼아아!”
두 마리의 고블린이 그들을 쫓아왔다.
무기도 들지 않은 놈들이었다. 앞에 있는 사람들 실력으로 충분히 해결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부러 고블린을 끌고 왔다.
‘각개격파를 할 생각인가?’
굳이 이렇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들이 행동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압!”
가까이 다가온 두 각성자는 고블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돌변한 그의 행동에 뒤쫓아오던 놈들이 깜짝 놀라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뻐억! 뻐억!
재벌 3세를 보호하기 위해서 뽑힌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블린에게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고블린을 압도했다.
이렇다 할 능력을 쓴 것 같지도 않았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운동을 한 사람들인가?’
움직임이 간결했다. 정확히 급소를 타격하는 모습도 날카로운 걸로 봐서 각성하기 전부터 운동을 해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고블린에게 충격만 누적시킬 뿐, 죽이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비키세요.”
“…….”
고블린을 상대하던 사람은 곧 쓰러질 것 같은 놈을 김민태에게 넘겼다. 그리고 김민철도 휘청거리는 고블린을 넘겨받으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푸욱!
들고 있던 검을 찔러 넣자, 고블린이 힘없이 쓰러졌다.
이미 반항할 여력도 없는 놈들이라 목숨을 끊는 건 닭모가지를 비트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간에 기별도 안 가네. 이래서 고블린들이 싫다니까.”
“그러게. 조금 더 많이 몰고 와 봐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바로 움직이세요!”
이문후는 황당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앞에 있는 두 사람이 몬스터를 데리고 오는 것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원래 이런 겁니까?”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았어요.”
“지금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요?”
“…….”
김연희는 민망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녀 역시 두 사촌의 이런 모습들이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이런 방법을 택한 것은 두 사람의 선택이었다.
고용한 각성자들에게 값을 지불한 것은 저들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었다.
“저도 저렇게 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요. 저는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
그나마 김연희는 개념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저렇게 도와달라고 해도 이문후는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완전 왕이 따로 없네.’
어차피 그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이었다.
김연희는 계속 봐야 할 지도 몰랐지만, 앞에 있는 둘을 더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끼아아아!”
곧 다른 고블린들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수가 많았다. 안에 남아 있는 놈들이 모두 몰려온 것 같았지만, 기다리던 사람들의 얼굴은 평온했다.
“다섯은 저희가 막고 있겠습니다.”
“예. 수고해주세요!”
“누나? 누나도 움직일 거지?”
“그래야지.”
“그럼 저 사람… 크흠. 알아서 하겠지. 먼저 간다!”
김민태는 이문후의 눈치를 살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일부러 흘린 고블린 한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김민철도 한 놈을 맡았다.
손에 쥔 검을 앞세우며 달려나가자, 김연희도 남아 있는 한 놈을 향해 움직였다.
‘일대일로 싸우게 만드는 건가?’
같이 온 각성자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 사람이 편안하게 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들은 고블린들을 몰아오고, 놈들의 수를 조절하면서 뒤에 있는 세 사람이 편하게 고블린을 상대할 수 있게 도왔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이문후도 움직였다.
굳이 이들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남은 고블린을 죽이지도 못하고 막고만 있어야 하는 각성자들이 불쌍했다.
“가, 감사합니다.”
“원래 이런 겁니까?”
“예. 두 명이 더 있어야 했는데…”
조금 전에 있었던 일로 두 명이 빠진 만큼 그들이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
이문후는 그들을 도왔다.
이런 고생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키아악!”
손톱과 송곳니를 앞세우며 달려드는 고블린들.
겨우 두어 놈을 맡는 게 전부였지만, 죽이지 않고 놈들을 막아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퍼억!
가벼운 주먹질 만으로도 한 놈이 떨어져 나갔다.
조금만 더 힘을 줬으면 그대로 죽었을 거라는 사실에 쓰게 웃은 그는 뒤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살폈다.
“하압!”
“죽어!”
서로가 각자가 능력을 사용하자, 고블린들이 순식간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김연희도 생각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패와 날이 잘 벼린 도를 들고 있었지만, 막무가내로 도를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뿌리는 도격을 보면 오랫동안 무기를 수련한 사람 같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도에 베인 고블린의 상처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걸 보면 얼음 속성의 능력을 가진 게 분명했다.
“끄르륵!”
세 사람이 고블린을 쓰러뜨리자, 옆에서 고블린을 막고 있던 각성자가 놈을 흘려보냈다.
이문후도 그들이 하는 것처럼 휘청거리는 놈을 김연희에게 밀었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곧 죽어가는 놈을 벴다.
‘저렇게 버스를 탄 건가.’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이런 식으로 경험치를 쌓는다면 어렵지 않게 힘을 키울 수 있었다.
대신 이렇게 도움을 주는 것 자체가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왕이 사냥을 할 때 일부러 사냥감을 몰아오는 몰이꾼이 된 느낌이었다.
“후우. 후우.”
마저 남은 놈들을 처리한 그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고생이라는 고생은 앞에 있는 두 사람이 다 했지만, 오히려 그들보다 더 지친 모습이었다.
“조금만 쉬었다가 움직이겠습니다.”
“그래요.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확실히 고블린들이라 대처가 쉬웠다.
마지막에는 전사 같은 놈이 지키고 있었지만, 세 사람의 협공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너무나 쉽게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굳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충분했을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김정우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게 확실했다.
‘일부러 인연을 만들어 줄 속셈이었나?’
상황이 어떻든 큰 상관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 일로 얻게 될 식량이었다.
“저 보상은 어떻게 할까?”
“나는 다음에 가질 게.”
“포기하겠다는 거야?”
“어차피 나무 상자잖아. 내 차례도 아니고.”
“원래 누구 차례였는데?”
“민기 형.”
“아!”
나름 순번을 정해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김민기가 보상을 획득할 차례였지만, 이문후에게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다. 그가 자리에 없는 만큼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해서 상자를 열어야만 했다.
“크흠. 그럼 누나가 열어.”
“내가?”
“뭐… 그게 좋을 것 같아. 조금 전에 내가 잘못한 것도 있으니까. 이번에는 나도 양보할 게.”
김민태도 보상을 양보했다. 이문후의 눈치를 살피면서 실수했던 것을 거론한 걸 보면 이걸로 퉁 치자는 속셈이었다.
이문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얻을 보상도 아니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보다 김연희가 얻는 게 나아 보였다.
***
던전에서 나온 그들은 가벼운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다.
사촌이라고 하기에는 관계가 너무 딱딱했지만, 그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었다.
“이제 끝난 건가요?”
“맞아요. 고생하셨어요.”
“그럼. 식량과 식수는 언제 받을 수 있는 거죠?”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다.
몬스터들을 몰아주고 버스를 태우는데 동참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김정우가 제시한 것들 때문이었다.
“시간 끌 것도 없죠. 따라오세요.”
김연희는 곧장 이문후를 이끌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한 그들은 DS그룹의 본사로 들어왔다.
김연희의 사무실에서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가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이거예요.”
“이게… 뭡니까?”
“활력단이에요.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단약 같은 거죠.”
“활력단?”
그는 김연희가 건네는 작은 환단을 받았다.
[활력단]
복용하면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이건 어떻게 구한 거죠?”
“던전에서 나온 보상이에요. 물론, 이미 검증은 마쳤어요.”
“던전에서 이런 것도 나오다니.”
그로서도 처음 접하는 물건이었다. 게임에서는 이런 아이템이 없었다.
다행히 이미 검증까지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소진한 체력은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만 있으면 식량은 해결한 것 같은데.’
활력단을 복용하면 더 멀리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식수는 해결되지 않았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시는 것 역시 중요했다.
“그럼 식수는요?”
“그건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예? 제가 도와줄 수 있다는 게 무슨…”
김연희는 설명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고운 손을 한데 모은 그녀는 곧 능력을 사용했고, 손바닥 주변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까드드득!
빙결이라는 능력이었다.
그녀의 손바닥 위로 작은 얼음이 만들어졌다.
“이걸로 식수를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달은 이문후의 표정이 굳어졌다.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앞에 있는 김연희의 능력이 필요했다.
“손은 씻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심각한 그의 표정에 김연희는 해명하듯 말했다. 하지만 이문후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
[작품후기]
코멘트, 추천, 선작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