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의 던전 사냥-61화 (61/126)

제 61화

꼭 필요한 사람

기운을 갈무리한 이문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오크 대전사와 싸우면서 얻은 내상으로 반나절 정도를 고생해야만 했다.

‘생각보다 내상이 잘 안 낫네.’

연거푸 펼친 순간이동과 무리하게 내공을 사용하면서 내상을 입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상처였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나절을 운기에 집중해야 할 줄은 몰랐다.

그나마 회복 스킬이 붙은 바지를 입고 있어서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조금 늦었나?’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했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바로 준비를 해야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빠듯한데?’

그는 급하게 옷을 챙겨입었다. 그리고 김정우가 줬던 슈퍼카를 타고 곧바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이문후는 기다리고 있는 김정우를 향해 사과의 말을 건넸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늦었다. 나름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아니야. 거의 제시간에 도착했네. 나도 잠깐 일이 있어서 끝내고 이제 들어왔어.”

김정우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미안해하는 이문후의 부담을 줄여줄 생각인지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거기 앉아.”

그런 김정우의 모습에 김연희는 놀라워했다.

평소라면 곧바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양반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웃으며 상대를 대하고 있었다.

‘그만큼 저 사람이 중요하다는 건가?’

낯선 모습이 너무 어색했다. 하지만 이문후에 관한 것들을 전해들은 그녀는 말을 아꼈다.

“아, 여기는 김연희 실장. 아니 팀장? 너 직책이 뭐였지?”

“그냥 팀원이나 하라면서요.”

“아, 그랬나. 아무튼 여기는 김연희.”

“…….”

김정우는 갑자기 옆에 있는 여자를 소개했다.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친한 모습이었지만, 영문을 모르는 이문후는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김연희예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예. 이문후입니다.”

어색한 인사를 지켜보던 김정우는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이번에 웨이브에서 활약이 대단하다고 들었어.”

“아닙니다.”

“그 싸가지 없는 놈한테 한 방 크게 먹였다면서? 하하하. 내가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아무래도 조규종을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호탕하게 웃던 김정우는 옆구리를 찌르는 김연희의 행동에 곧 헛기침을 내뱉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크흠. 사실, 그놈들하고는 좋게 엮일 수가 없거든.”

“그런 것 같더군요.”

“아무튼 잘 했어. 근데, 그 싸가지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만약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곧바로 나한테 연락해. 내가 만사를 제쳐두고 도와줄 테니까.”

“…….”

김정우가 호방한 성격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사이가 그렇게 안 좋은 건가?’

신전과의 관계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관계가 이문후에게 나쁠 건 없었다. 조규종과의 관계가 틀어진 상황에서 DS와 관계를 좋게 만드는 건 오히려 좋아 보였다.

“근데, 저는 왜 부르신 겁니까?”

“아, 사실 부탁이 있어서 불렀네.”

“부탁이요?”

“자네한테도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야. 아니,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지.”

김정우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왠지 그 미소가 꺼림칙하게 느껴졌지만, 뭐라고 말을 할 겨를도 없이 김정우는 급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 싸가지. 아니, 조규종이라는 놈을 만나봐서 알겠지? 다른 곳에서도 이번 일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네. 우리 DS뿐만 아니라 신전, 광진, 미래. 아무튼 돈 좀 있다는 놈들은 죄다 이 일에 뛰어들고 있어.”

“오히려 가만히 지켜보는 게 더 이상하겠죠.”

“그렇긴 하지.”

새로운 사업에 관한 것도 있었지만, 초인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각성을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힘을 이용하면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재벌들이 이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사실, 신전에 비하면 우리도 조금 뒤진 상황이야.”

“DS가요?”

“사업 쪽으로는 반발 앞섰지. 하지만 후계들이 가진 힘을 생각하면 조규종이라는 놈을 따라잡을 수 없어.”

“사장님도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어? 눈치챘네?”

“모르는 게 더 이상하죠.”

나름 감춘다고 감췄지만, 이문후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풍기는 기운이 남다른 것도 있었다. 하지만 DS의 사장이, 그것도 각성자들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런 힘도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을 키우면 그놈과 비슷해지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다고 쳐도 내 다음이 문제야. 사실, 그 싸가지도 어떻게 보면 내 아들뻘이지 않나?”

김정우는 조금 더 뒤를 내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역량을 집중하는 만큼 신전 그룹도 모든 힘을 쏟아부을 건 당연했다.

“다음 대에 DS를 이끌만한 놈들을 키울 필요가 있어.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거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은데요?”

“아니야. 자네가 제격이야.”

김정우는 확신하듯 말했다.

겨우 한 번만 만나봤을 뿐이었지만, 이문후라면 이 일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우리 그룹 경영에 참여할 놈들을 추려서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네.”

“그곳에 저도 같이 가라는 겁니까?”

“최소한 안전장치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네. 거기에서 경호를 좀 맡아주게.”

“경호요? 일전에 만났던 사람들은요? 그 사람들이 더 제격인 것 같은데요?”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DS와 관련된 재벌 3세라면 분명히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굳이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DS와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내키지 않은 거겠지? 졸부 놈들이 얼마나 싸가지가 없겠어. 그렇지?”

“…….”

김정우는 일부러 더 신랄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문후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딱히 부정도 하지 않는 모습. 김정우는 이런 이문후의 모습을 반겼다.

지금 이 반응이 그가 바라던 이문후의 모습이었다.

“한 사람만 보호하면 되네. 다른 놈들은 알아서 보호 장치를 마련해 올 거야.”

“예?”

“그냥 한 명만 보호하면 돼. 만약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도 모두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 사람만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해주면 되네.”

“불미스러운 일이요?”

“부모가 돈이 많다고 다 지들 돈인 줄 아는 놈들이야. 콧대가 하늘을 찌르고 있지. 그놈들이나 조규종이라는 놈이나 성격은 비슷비슷할 거야.”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라는 겁니까?”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어. 뭐 어쩔 수 없이 부딪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네.”

“…….”

무조건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재벌 3세라고 하지만 굳이 굽히고 갈 이유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조규종과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 같았다.

“제가 굳이 욕을 먹을 이유가 있을까요?”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거네.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그냥 평소처럼 행동하면 돼!”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김정우라면 자기가 한 말은 지킬 것 같았다. 그가 호언장담한 것처럼 뒷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내키지 않았다.

“싫습니다.”

“왜? 뒷일은 걱정하지 말라니까!”

“귀찮습니다.”

“… 허! 그건 예상에 없는 대답인데.”

김정우는 곤란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문후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 이럴 건가?”

“비즈니스 관계 아닙니까?”

“그것보다는 조금 더 깊은 관계 아닌가? 어쩌면 더 깊어질 수도 있고.”

“깊어져요?”

“크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자는 거지.”

“싫습니다.”

김정우는 단호한 그의 대답에 쓰게 웃었다. 하지만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문후를 부른 이유는 그가 쉽게 뿌리치지 못할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자네한테 꼭 필요한 걸 주겠네.”

“저한테 꼭 필요한 거요?”

“그래. 우리가 관리하는 일회성 던전들 중에 한 곳을 주지.”

이제 일회성 던전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였다.

DS에서 따로 관리하는 곳이 있는 줄은 몰랐지만, 이것도 썩 내키는 제안은 아니었다.

“글쎄요. 그냥 마음 편하게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요.”

“하긴, 정규 던전을 들어가는데 일회성 던전이 무슨 대수겠어. 그래도 이건 혹할 것 같은데?”

“무슨 조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일을 맡을 생각이 없…”

“정규 던전에서 먹을 수 있는 식수와 식량을 해결해 줄 수 있는데. 어떤가?”

“식수요?”

“그래. 식수! 그리고 식량까지.”

던전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바로 나와야 했던 이유는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과 싸우면 자연스럽게 체력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체력을 채우고, 다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물과 식량이 필요했다.

이문후는 김정우가 왜 꼭 필요한 것을 주겠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당연하지! 어떤가?”

일 자체는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식수와 식량은 꼭 필요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DS그룹의 사장이나 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DS에서 벌써 그걸 해결한 겁니까?”

“DS가 아니야.”

“예? 그럼 어떻게…”

“여기 있는 김연희 실장… 아니, 팀장이랬나?”

“팀원이나 하라면서요.”

“크흠. 그래. 팀원. 아무튼. 이 아이가 해결해 줄 거야.”

뜬금없는 말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이문후의 시선에 김연희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부족한 설명을 이어갔다.

“식수나 식량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어떻게요?”

“그걸 지금 밝힐 수는 없죠. 우선 저 부탁에 대한 답을 듣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요?”

“흐음.”

가장 부족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규제가 풀리면 던전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많아질 수밖에 없을 거고.’

다른 형태로 우위를 점하는 게 중요했다.

그때가 되면 던전에서 더 멀리 움직이거나, 더 오래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앞설 수 있었다.

“좋습니다. 대신 뒷일은…”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런데 누굴 보호하는 겁니까?”

“아, 이제 정식으로 인사하지?”

“인사라니요?”

“여기는 내 딸내미야. 앞으로 던전에 같이 들어갈 거네. 이 아이를 지켜주게.”

이문후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손을 내미는 김연희를 바라봤다.

“김연희예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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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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