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화
웨이브
오크 부대장을 쓰러뜨린 그는 남은 오크들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그를 공격했던 오크 넷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부대장이 너무나 쉽게 죽었다.
거기에 그가 타고 있던 늑대까지 순식간에 목숨을 잃자, 오크들의 눈에 불신이 어렸다.
“크흥! 죽인다!”
분노한 놈들은 곧바로 이문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호전적인 종족인 만큼 동료의 죽음에 분개하며 달려왔지만, 그들이 닿기도 전에 이문후가 먼저 움직였다.
순식간에 다가온 그의 모습에 놀란 오크는 도끼를 휘둘렀다.
쉬이익!
오크의 도끼가 아슬아슬하게 이문후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허리를 숙인 것만으로 휘둘러진 도끼를 피했다.
위빙이었다. 복싱의 기본적인 회피 기술로 너무나 쉽게 공격을 피한 그는 곧바로 텅 빈 놈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았다.
뻐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오크의 몸이 꺾였다.
평범한 주먹 같았지만, 내공이 실린 만큼 그 충격이 가벼울 수 없었다.
내공이 늘어난 만큼 그 위력도 더 강력해졌다.
일격에 놈을 쓰러뜨린 그는 곧바로 발을 내디디며 남아 있는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따로 나한보를 밟을 필요도 없었다.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가벼운 스텝만으로도 놈들의 품을 파고들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게 이런 말이었나?’
너무나 유명한 그 말을 재현해내고 있었다.
높아진 신체 능력으로 오크들 사이를 파고든 그는 매서운 한 방을 꽂아넣으면서 놈들을 쓰러뜨렸다.
굳이 단검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주먹이 흉기와 다를 게 없었다.
“쿠웩!”
다시 한번 복부를 맞은 오크가 그대로 주저앉으며 괴로워했다. 단단한 근육은 마치 갑옷 같았지만, 안으로 파고드는 충격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주저앉은 놈의 관자놀이에 다시 한번 주먹이 꽂혔다.
다시 일격을 허용한 오크는 그대로 튕겨져 나갔고, 익숙한 알림이 뒤를 이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순식간에 두 놈이 쓰러졌다.
남아 있던 오크 둘은 고개를 돌리는 이문후의 행동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앞에 있는 놈은 도저히 그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부대장을 쓰러뜨린 것도 모자라서 순식간에 동료 둘을 더 처리한 것이다.
“크킁! 대전사를 부르자!”
“흩어져!”
그들은 결국 도망을 택했다.
이문후를 상대할 수 있는 아군을 부르기 위해서 전략적인 선택을 내린 것이다.
‘오크가 도망을 간다고?’
그가 알고 있는 오크는 호전적인 종족이었다.
쉽게 물러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지만, 둘은 겁을 집어먹었다.
서로가 다른 방향으로 뛰는 걸로 봐서 그냥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는 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다른 놈들을 더 불러올 생각인가?’
죽은 놈들을 뒤로한 그는 도망가는 놈들을 쫓았다.
우선 이 싸움을 끝을 내고 숨을 돌릴 생각이었다. 다른 놈들이 더 오기 전에 둘을 먼절 끝낼 생각이었다.
타앗!
나한보를 밟기 무섭게 그의 몸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순식간에 물러나는 놈의 뒤를 잡은 그는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내뻗은 주먹에서 황금빛 기운이 쏘아졌다.
다시 한번 권기를 날린 그는 꼬꾸라진 오크에게 다가가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후우.”
조금씩 단전이 비어가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내공이 늘었다지만, 권기를 날리기 위해서는 많은 내공이 필요했다.
‘조금 아낄 필요가 있나?’
아직도 남아 있는 놈들이 많았다.
그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힘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호흡을 고른 그는 반대편으로 뛰어가는 오크를 쫓았다.
우선 저놈까지 마저 처리하고 숨을 돌릴 생각이었다.
거리가 떨어져 있는 만큼 다시 나한보를 펼쳐야만 했다. 하지만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허공에서 날아온 창이 그대로 오크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뭐야?”
창에 꿰인 오크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그 창을 던진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새끼는 왜 혼자 싸돌아다니는 거지?”
“…….”
“어? 뭐야? 사람이 있었잖아?”
오크를 잡은 박규호는 뒤늦게 이문후를 발견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그의 시선에 박규호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뭘 꼬나봐?”
“…….”
“설마, 이놈. 네가 잡으려고 한 거냐?”
“보면 모르냐?”
“하! 모르냐? 씨발, 뒈질래?”
사냥감을 빼앗아 간 것은 그러려니 넘길 수 있었다.
어차피 최대한 빨리 이곳을 정리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누가 잡든 큰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말들이 문제였다.
시비를 거는 듯한 말투가 거슬렸다.
박규호의 거친 말에 이문후도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죽일 수는 있고?”
“아니. 이 새끼가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
박규호는 이문후의 말에 오크의 몸에서 창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몸을 돌리는 순간, 그 주변으로 보이는 광경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저 새끼 뭐야?’
이문후의 주변에 오크와 싸운 흔적이 가득했다.
놈들의 시체는 사라졌지만, 가지고 있던 무기나 장비는 그대로였다.
여러 흔적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서 최소한 넷 이상의 오크와 싸운 게 확실해 보였다.
‘설마, 저 새끼 혼자 다 잡은 건 아니겠지?’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박규호지만, 저만한 수를 혼자 잡을 수는 없었다.
오크 세 마리 이상이 붙으면 그 역시도 힘에 부쳤다.
특히나 이번에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놈들은 일회성 던전에서 만났던 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놈들이었다.
그런 오크를 넷이나 쓰러뜨렸다?
불안한 마음이 스쳤다. 왠지 모를 싸한 느낌에 평소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왜? 덤비게?”
“…….”
이문후는 멈칫거리는 박규호의 모습에 일부러 도발하듯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조금 전에 들었던 욕설을 이런 식으로 되돌려준 것이다.
하지만 박규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앞에 있는 놈이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때, 그의 뒤로 몇몇 사람들이 다가왔다.
“거기에서 뭐 하고 있어?”
“뭐야? 무슨 일이야?”
박규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혼자였다면 사과를 하고 물러났겠지만, 다른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저 사람은 뭐야?”
“또 시비라도 붙은 거야?”
이미 다가온 동료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 같았다.
‘설마, 저 새끼 혼자 저것들을 다 쓰러뜨렸겠어? 일행들이 있겠지.’
혼자 저놈들을 처리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주변에 다른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 게 이상했지만,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이문후를 노려봤다.
“쪼개지 마라. 뒤진다!”
“주둥이만 터네. 안 덤비냐?”
“이 새끼가 진짜 뒤질라고!”
뒤에 동료들이 와 있었지만, 상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물러나지 않는 이문후의 행동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이런 경우는 둘 중에 하나였다.
스스로의 힘에 자신감이 있을 정도로 강하다거나 개념이 없다거나.
‘맨주먹으로 저놈들을 잡는 건 말이 안 되지!’
박규호는 창을 겨누며 소리쳤다.
“넌 뒤졌다.”
“…….”
험악해진 분위기에 뒤늦게 온 그의 일행들도 심각해졌다. 하지만 누구 하나 박규호를 막아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여러 번 겪었다. 말린다고 해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지켜보는 게 최선이었다.
차라리 빨리 상황이 끝나는 게 나았다.
‘개자식들. 왜 아무도 안 말려!’
대충 누구 하나가 그만하라는 말만 했으면 여기에서 끝낼 생각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나중을 기약하겠지만,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느낌이 별론데.’
어차피 시험해 보면 될 일이었다. 한 번 붙어보고 버겁다 싶으면 뒤에 있는 동료들을 끌어들이면 될 것 같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걱정을 했다고!’
마음을 다잡은 그는 창을 겨누며 이문후를 노려봤다.
“눈 깔아라! 진짜 죽는다.”
“그냥 꺼져. 한 번은 봐줄 테니까.”
“이 새끼가!”
봐준다는 말에 흥분한 그는 곧바로 이문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창대를 옆구리에 낀 그는 부채꼴 모양으로 창을 휘둘렀다.
부우웅!
그래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던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플레이어를 죽였다가는 법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박규호의 창이 순식간에 눈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이문후의 눈에는 오크의 도끼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저 조금 더 길이가 길 뿐이었다.
‘피, 피해?’
박규호는 가볍게 공격을 피하는 이문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래도 쉽게 피할 수 있을 만한 속도는 아니었지만, 허리를 숙이는 것만으로 그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박규호는 다시 몸을 회전시키며 공격을 이어갔다.
양가창법의 초식을 사용하려면 우선 상대를 밀어내고, 창을 찔러 넣어야만 했다.
부웅!
곧바로 몸을 회전시키며 이문후를 밀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휘두른 창은 허공에서 튕겨져 나갔다.
‘크윽!’
손을 타고 전해지는 묵직한 충격.
주먹으로 힘이 실린 창을 쳐내는 이문후의 모습에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이문후가 가까이 다가왔다.
“자, 잠깐만… 커헉!”
이미 자세가 무너진 그의 배에 묵직한 주먹이 꽂혔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장까지 뒤흔든 강한 충격에 절로 무릎이 꿇어졌고, 곧바로 이문후의 무릎이 꽂혔다.
뻐억!
박규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그의 동료들은 경악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저 사람 뭐야?”
“미친! 말이 돼? 박규호가 아무것도 못 하고 쓰러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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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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