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화
웨이브
건곤대나이가 제 역할을 다 했다.
겨우 3성의 나한신공이었지만, 건곤대나이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기운이 그의 단전으로 스며들었다.
[나한신공의 성취가 5성이 되었습니다.]
[극독과 화염이 2레벨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가지고 있던 스킬이 한 단계 성장했다.
나한신공의 경우에는 흡수한 기운이 커지면서 순식간에 5성으로 올라섰다.
원래대로라면 3성 이상의 효과는 낼 수 없었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이니만큼 운용할 수 있는 기운은 5성 그대로였다.
5성의 나한신공이 가질 수 있는 내공.
기존에 가지고 있는 내공의 4배는 커진 듯한 느낌이었다.
묵직한 내공을 느낀 이문후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확연히 달라진 변화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건 그때랑 느낌이 비슷하잖아?’
다시 환골탈태를 한 것 같았다. 허공에 떠 있는 미세한 먼지가 눈에 가득 들어올 정도로 시력이 좋아진 것 같았다.
시력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몸 상태도 좋았다.
히드라와의 싸움 이후에 조금 쉬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5성의 나한신공이라.”
순식간에 2성의 성취가 오른 만큼 이 힘을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이대로 다시 정규 던전을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최준태의 장례로 모두가 정신이 없는 이때, 물색없이 던전을 들어가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상념을 떨쳐낸 그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두 스킬을 살폈다.
[극독]
소량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짧은 순간 원하는 곳의 속성의 변화시킬 수 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만들어내는 양이 증가한다.
[화염]
주변을 태워버릴 수 있는 뜨거운 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짧은 순간 원하는 곳의 속성의 변화시킬 수 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열기가 더 강력해진다.
히드라가 사용했던 그 능력과 비슷했다.
따로 브레스를 토해내지는 못 했지만, 가지고 있는 무기의 속성을 변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가령 단도에 독을 스며들게 한다거나, 순간 화기를 담아서 불꽃을 일으킬 수 있었다.
‘속성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라.’
이것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탐낼 만한 능력이었다. 그것도 다른 속성이 2개였다.
“하나 같이 전투에 특화돼 있네.”
극독은 물론이고 화염도 강한 파괴력을 낼 수 있었다.
적어도 고블린과 싸울 때처럼 불을 내기 위해서 횃불을 찾는 수고는 덜 수 있었다.
[극독을 장착합니다. 장착된 스킬은 1레벨로 고정됩니다.]
이문후는 곧 건곤대나이로 장착한 수 있는 능력을 바꿨다.
유운보법을 빼고 극독을 장착한 그는 조심스럽게 단검을 꺼내며 능력을 사용했다.
파스스스.
검은 검신이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단검의 날에 그가 만들어낸 독이 스며들었지만, 딱히 시험을 해볼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몸에 할 수는 없잖아?’
잡념을 떨쳐낸 그는 극독을 빼고 화염을 장착했다.
그리고 조금 전에 극독을 사용한 것처럼 화염 능력을 사용했다.
파스스스.
이번에는 검신이 빨갛게 달아 올랐다.
쥐고 있는 손에도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달궈진 검신이 놀라웠다.
‘1레벨로는 이게 최선인가?’
이것만으로도 상대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짝 스친다고 하더라도 피부에 닿으면 곧바로 화상을 남길 정도였다.
내성이 있는 그가 뜨겁다고 느낄 정도였기 때문에 위력은 충분해 보였다.
“근데, 내공은 왜 그대로인 거야?”
손에 넣은 새로운 스킬의 위력보다 줄어든 것 같지 않은 내공이 더 마음에 들었다.
기존의 단전보다 4배 정도 커진 만큼 엄청난 내공을 품고 있었다. 이 정도 양이라면 더 이상 순간이동을 사용하는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이제 연속으로 대여섯 번은 써도 끄떡없으려나?”
장착할 수 있는 스킬 2개는 무조건 고정이 된 것 같았다.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새로운 능력은 건곤대나이를 통해서 이용하는 게 좋아 보였다.
“근데, 이놈은 왜 이렇게 늦는 거지?”
아직까지 정민석이 돌아오지 않았다.
히드라의 내단을 복용하고 흡수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정민석은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래도 최준태의 일로 바쁜 것 같았다.
이제 정민석 역시 재생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게 된 만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위이이잉.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민석이잖아? 여보세요?”
[야, 큰일 났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히드라라도 나타났냐?”
[몬스터! 몬스터가 쏟아지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뉴스 봐봐. 뉴스!]
너무나 뜬금없는 말이었다.
갑자기 몬스터가 쏟아진다는 말에 급하게 TV를 켜자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 멀리 보이는 거대한 게이트. 그곳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근처를 지키던 군 병력들도 현재는 퇴각한 상태입니다. 몬스터들의 기세가 워낙 강한 지금, 당국은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고…
“이게 다 뭐야?”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출몰.
다른 채널을 돌려봐도 모두가 비슷한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다.
[문후야?]
“너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아니, 여기는 몬스터들이 안 나오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지키는 곳. 여기에는 몬스터들이 안 나와. 그래서 지금 다른 곳으로 지원을 가려는 것 같아.]
“…….”
정규 던전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일회성 던전이 있었고, 정규 던전으로 분류되는 것들도 여러 개였다.
이문후는 개중에 가장 가까운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들어갔던 곳을 제외하고 다른 정규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거대한 파도처럼 쏟아지는 몬스터.
게임에서는 이걸 웨이브라고 불렀다. 언젠가는 웨이브가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일회성 던전이 모두 클리어된 이후였다.
‘아직은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후야? 팀장님이 좀 바꿔달래!]
“어. 그래.”
[이문후 씨. 권형태입니다.]
“예.”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충분히 아실 것 같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이요? 이쪽 던전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고…”
[다른 쪽으로 지원을 갈 생각입니다. 그곳 상황이 좋지 않아서요. 도와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조금 전에 차를 보냈습니다. 그걸 타고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지금 바로 준비하도록 하죠.”
통화를 마친 이문후는 곧바로 채비를 갖췄다.
따로 챙길 거라고는 단검과 옷이 전부였다. 조금 전에 흡수한 내단으로 내공은 충분했고, 새로운 능력도 확인했다.
‘이참에 화염을 시험해 봐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새 능력을 시험할 기회였다.
이문후는 곧 집앞에 도착한 경찰차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공권력의 힘을 이용할 생각인 것 같았다.
***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는 커다란 총성과 괴성이 난무했다.
“오크들이네요? 근데, 총을 쏘는데도 밀리는 겁니까?”
“총알도 한두 방 맞아서는 죽지 않습니다. 거기에 워낙 갑자기 튀어나와서 제대로 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미리 주둔하고 있었다지만, 튀어나온 놈들이 너무나 강했다.
개중에 일부는 거대한 늑대를 탄 채로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몬스터와의 싸움은 쉽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손발이 잘려나가고, 머리가 쪼개지는 모습을 본 병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그 틈을 노리고 오크가 달려들었다.
늑대는 쓰러진 병사들을 물어뜯었고, 오크는 중병기를 휘두르며 병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그나마 방어선을 구축하며 총을 날렸지만, 오크들도 화살과 마법을 날리면서 군인들을 공격했다.
싸움이 어려운 건 이곳이 도심지였기 때문이다.
지형 자체가 시가지였기 때문에 몸을 숨길 수 있는 오크들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방어선이 구축된 곳으로는 다가가지 않고 있었다.
“치열하네요.”
“기계화 부대 투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아직까지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서…”
오크들이 다른 지역으로 움직일 수 없게 막고 있었지만,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토벌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총을 든 군인을 투입할 수는 없었다.
이미 크게 당한 전적이 있는 만큼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오크들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 뿐이었다.
“바로 움직여도 괜찮겠습니까?”
“저는 준비 됐습니다.”
“저희도 준비 됐어요.”
“좋아. 그럼 부탁하네. 부탁하겠습니다.”
이문후는 권형태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함께 움직일 정민석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때처럼 움직이죠.”
“어떻게?”
“나는 혼자가 편해. 너는 팀원들이랑 같이 움직여.”
“괜찮겠냐?”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가면 되니까.”
“그래. 그게 좋겠네.”
역할을 정한 그들은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들을 발견한 오크들도 무기를 들어 올리며 싸울 준비를 마쳤다.
“던전에서 나온 오크들이라.”
일회성 던전에 있던 놈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춘 놈들이 험상궂은 얼굴로 그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이문후는 기운을 끌어올리며 바닥을 박찼다.
쿠웅!
굉음과 함께 그의 몸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나한보를 펼친 그는 순식간에 오크에게 다가가며 그대로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손끝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감각.
순식간에 한 놈을 처리한 그는 더욱 빨라진 나한보에 만족하며 화들짝 놀란 다른 오크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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