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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47화 (47/126)

제 47화

3성의 힘

딱 달라붙은 와이셔츠 사이로 우람한 근육이 도드라졌다.

걷어 올린 소매와 함께 드러난 팔뚝은 굵은 통나무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잘 생겼네. 나 김정우요.”

“이문후라고 합니다.”

이문후는 김정우가 내민 큰 손을 맞잡았다.

살짝 힘을 줬는지 강한 악력이 느껴졌지만, 이미 평범한 사람과 다른 그는 별다른 압박을 느끼지 못했다.

‘제법 실력은 있다는 건가?’

이문후를 본 김정우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조금씩 힘을 주고 있었지만, 이문후는 어렵지 않게 그의 힘을 견뎌내고 있었다.

생긴 것과는 달랐다. 조금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큰 힘을 쓰지는 못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맞잡은 손을 통해서 느껴지는 힘은 자신 못지않았다.

“그래. 아버지 제안을 거절했다고? 백지수표를?”

“…….”

“하하. 생긴 거랑 다르게 배포가 대단하구만!”

확실히 큰 덩치와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부친인 김영환과는 분위기가 달랐지만, 김정우 역시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얼굴 한 번 보고 싶었어. 그 양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한 사람이 누군지.”

“…….”

“사실,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야.”

“궁금하다니요?”

“실력!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 양반 앞에서 바로 거절을 했는지 궁금했거든.”

“…….”

“우선 나가지. 따라와!”

김정우는 만나자마자 이문후를 이끌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었지만, 그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처럼 스스럼없이 이문후를 대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께서 좀 호탕하셔서… 그래도 뒤끝은 없는 분이십니다.”

“…….”

“모시겠습니다. 저쪽으로 가시죠.”

이문후의 굳은 표정에 옆에 있던 김민우는 안절부절 못했다.

여기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이문후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풀어주면서 김정우를 뒤따라가게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진땀을 흘리는 그의 모습에 이문후는 김정우를 따라갔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스스로도 궁금했다.

‘내가 얼마나 강한 거지?’

김정우 역시 각성을 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저렇게 자신만만해 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DS그룹에 소속된 각성자들.

나름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있는 사람들의 면모가 궁금했다.

김정우를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자, 넓은 공간이 나왔다.

한 층 전체를 체육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바닥과 벽 모두가 충격과 소음을 흡수할 수 있는 소재로 뒤덮여 있었고, 기둥을 제외하고는 걸리적거리는 게 없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그래.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배려해주신 덕분에 재미있게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김정우가 들어가자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그를 반겼다.

몇 명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고, 일부는 장난스럽게 손을 들어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각성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김정우를 대하는 모습은 생각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상하관계가 철저한 것 같지는 않았다.

“DS에 속한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여기에서 운동을 하지. 원하면 개인 연습실을 내어줄 수도 있고.”

“…….”

“잘 알겠지만, 던전은 위험한 곳이잖아? 꾸준히 단련을 해야 몸을 지킬 수 있지.”

그의 말에 처음 인사를 건넸던 안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같이 들어온 이문후를 찬찬히 바라봤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동료가 됐으면 하는? 아니면 용병이라도?”

“예?”

“잠깐 실력 좀 확인해 볼 생각이야.”

“아, 그렇군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안준호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문후에게 꽂혔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부터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것 같은 여자까지.

그들은 서로 목검을 부딪치며 합을 겨루거나, 허공에 봉을 지르면서 장착한 능력들을 시험하고 있었다.

“가볍게 대련을 했으면 좋겠는데.”

“제가 꼭 해야 하는 겁니까?”

“내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잖아?”

이문후는 노골적인 김정우의 말에 쓰게 웃었다.

이미 DS와 함께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냥 내 호기심 충족이라고 생각해줘. 이기든 지든 구질구질하게 붙잡지는 않을 테니까.”

“…….”

“대신에 보상은 확실하게 해주지! 파이트 머니라고 해야 하나? 이 기회에 서로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

싸우는 건 기정 사실화 된 상태였다.

여기에서 뺀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땀을 흘리며 무기를 섞고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행동을 멈추고 공간을 확보했다.

주변을 둘러싼 것처럼 일정한 거리를 벌린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문후를 바라봤다.

“보자. 누가 좋을까.”

“제가 상대하면 어떨까요?”

“민선이 네가? 괜찮겠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앳돼 보이는 여자애가 앞으로 나왔다.

정민영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지만,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내가 그렇게 약해 보이나?’

아무리 상대가 각성자라고는 하지만, 체급에서 차이가 났다. 물론, 체급이 다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싸움은 말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붙을 거라면 제대로 된 사람하고 붙죠. 한 번으로 끝내는 게…”

“나를 얕잡아보지 마!”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에 염민선은 곧바로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질 정도로 그녀의 움직임은 빨랐다.

‘이게 뭐야?’

갑자기 달려든 그녀의 발이 정확히 이문후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일부러 공격을 끊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녀는 뻗은 발을 내리며 고갯짓을 했다.

“이제 붙을 마음이 생겼나?”

“…….”

“어떤가? 이만하면…”

김정우는 염민선의 도발에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문후가 사라졌다.

파앗!

어느새 염민선의 앞으로 튀어나간 그는 내뻗은 주먹을 정확히 염민선의 얼굴 앞에 멈췄다.

“그러다 다친다.”

“이익! 어디서!”

당황한 염민선은 곧바로 발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그대로 이문후의 얼굴을 걷어찰 생각이었다. 하지만 휘두른 발이 허공을 갈랐다.

“뭐야?”

이문후는 너무나 쉽게 그녀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저 가볍게 뒤로 한걸음 물러난 것뿐이었지만, 허공을 때린 염민선의 얼굴이 붉어졌다.

“흥! 이제는 안 봐줘!”

승부욕이 강한 아이인 것 같았다.

염민선은 이문후를 쫓아가며 발을 뻗었다.

파앙! 파앙!

발을 뻗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만큼 상당한 힘이 실려 있었지만, 그녀의 발차기는 계속해서 허공을 때렸다.

‘이 사람 뭐야?’

염민선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최소한 옷깃이라도 스쳐야 정상이었지만, 앞에 있는 이문후를 잡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억울한 것은 여유가 가득한 이문후의 움직임이었다. 별다른 능력을 사용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흐읍!’

그녀는 다시 능력을 사용했다.

처음 이문후를 놀라게 한 그 보법이었다.

적당히 떨어져 있던 염민선이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익숙한 움직임에 이문후는 쓰게 웃었다.

‘정말로 나한보였잖아?’

그게는 너무나 익숙한 보법이었다.

처음에 염민선이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긴가민가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나한보가 확실했다.

주로 사용하는 보법이라 그가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다만 이렇게 같은 사용하는 사람을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잡았… 뭐, 뭐야?”

곧바로 이문후를 따라잡은 염민선은 힘을 실어서 발을 뻗었다. 이번에는 무조건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발은 다시 허공을 갈랐다.

‘어디로 갔지?’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문후의 움직임이었다.

방금 전까지 앞에 있던 이문후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옆에 조심…”

투욱!

“어?”

이문후는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밀었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그는 어느새 그녀의 옆으로 비켜서 있었고, 임민선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제 끝인가요?”

“누가 끝이래요!”

나름 배려를 해줬지만, 염민선에게는 오히려 치욕으로 느껴졌다. 태권도 국가대표까지 올라갔던 그녀에게는 이렇게 봐주는 것 자체가 모욕이었다.

흥분한 그녀는 다시 발을 뻗었다.

조금 치사하지만 기습을 해서라도 한방을 먹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다시 한번 그녀의 공격을 흘렸다.

“우와! 저걸 피하네!”

“저건 유운보법 같은데?”

누군가가 이문후의 움직임을 알아봤다.

부드럽게 움직이며 공격을 흘리는 모습은 구름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뒤늦게 이문후의 능력을 깨달은 염민선은 입술을 깨물며 연속으로 발차기를 이어갔다.

아무리 상대가 보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한 대는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파바바밧!

나한보와 함께 사용한 발차기는 흐릿한 잔영을 남길 정도로 빨랐다.

확실히 실력은 있었다.

싸우는 스타일은 달랐지만, 이 정도라면 나경민과 충분히 싸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문후에게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확실히 유운보법이 상성이 좋네.’

직선적인 나한보의 공격을 흘리기 더 쉬웠다.

던전에서 만났던 놈의 기억을 떠올린 그는 어렵지 않게 빈틈을 파고들었다.

‘말도 안 돼!’

염민선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속도를 끌어 올려도 이문후를 잡을 수 없었다.

스탯에서부터 큰 차이가 났다. 염민선과는 거의 2배 정도의 스탯 차이가 났기 때문에 오히려 발차기를 맞아주는 게 더 어려워 보였다.

“그만 하죠?”

“흥! 아직 안 끝났다고!”

“…….”

이문후는 옆에서 지켜보는 김정우를 바라봤다.

여기에서 염민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김정우밖에 없었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도 승부는 승부니까.”

“…….”

염민선을 통해서 이들의 실력을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염민선이 최약체라고 하더라도 여기에서 자신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파앙!

이문후는 다시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텅 빈 그녀의 배를 향해 가볍게 손을 뻗었다.

투욱!

그냥 손이 닿는 걸로 끝이었다.

처음에 어깨를 밀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난은 그만하고 제대로 싸우는 게 좋을…”

“우웨엑!”

가벼운 손짓에 눈살을 찌푸리던 김정우는 토악질을 하는 염민선의 격한 반응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가볍게 손이 닿은 것뿐이었다.

크게 충격을 가한 것 같지도 않았지만, 염민선은 배를 부여잡은 채 쓰러진 것이다.

“바, 발경이다!”

“발경? 그게 뭐야?”

“내가중수법! 저 사람이 장착한 능력 같은데?”

“뭐야? 저 사람 누구야? 정말 우리 쪽에 합류하는 겁니까?”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모두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문후는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힘을 보이기 무섭게 다른 사람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저랑 한 번 붙어보죠!”

“…….”

지켜보던 사람들이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김정우는 흐뭇한 표정으로 이 모습들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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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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