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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46화 (46/126)
  • 제 46화

    3성의 힘

    집으로 돌아오고 씻은 그는 곧바로 운기조식을 이어나갔다.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나한신공을 이용해서 운기를 하는 게 피로를 풀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가부좌를 튼 채로 앉은 이문후는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시며 내뱉었다. 들숨 사이에 스며든 기운이 단전으로 모였고, 날숨과 함께 탁한 기운이 빠져나갔다.

    ‘내상을 입은 건가?’

    몸이 정상이었을 때와는 많이 달랐다.

    내공을 돌릴 때마다 기맥의 일부가 아려왔다. 아무래도 순간이동을 연속으로 펼치면서 몸이 상한 것 같았다.

    ‘각혈을 하고 코피까지 쏟았으니 당연한 건가?’

    내상을 입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때는 다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무리를 해야만 했다.

    그래도 운기를 통해서 조금씩 상처를 회복시켜나갔다.

    내상뿐만 아니라 외상에도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비전의 서로 회복 스킬을 새겨넣은 바지가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 바지를 입어야 하는 단점이 있었지만, 따로 능력을 장착하지 않아도 효과가 있었다.

    “후우우.”

    이문후는 호흡을 고르며 가만히 눈을 떴다.

    운기도 좋았지만, 이제는 배를 채워야 할 것 같았다.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수많은 고블린들을 상대로 사투를 벌인 만큼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기운을 갈무리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신중하게 내공을 움직여야 하는 만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곳이 필요했다. 그가 살고 있는 원룸에서 그나마 안전한 곳은 화장실뿐이었다.

    “뭐야? 이제 나온 거야?”

    “깼냐?”

    “설마 한숨도 안 잔 건 아니지?”

    “…….”

    정민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문후를 바라봤다.

    분명히 잠이 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죽상이었던 얼굴이었다. 하지만 곧 죽을 것 같은 놈의 안색이 너무 좋아졌다.

    “잠도 안 잤는데 왜 그렇게 쌩쌩해?”

    “내공심법이 있잖아.”

    “그걸로 충분한 거야?”

    “나쁘진 않아.”

    “이해가 안 가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민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이렇다 할 내공심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문후의 기이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밥이나 먹자.”

    “밥? 지금이 몇 신데?”

    “1시 34분이네.”

    “벌써? 무슨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

    정민석 역시 이문후를 기다리느라 밤을 샜다.

    친구의 귀환을 걱정하면서 신경을 많이 쓴 만큼 정신적인 피로가 많이 쌓인 상태였다.

    “먹을 게 있나?”

    “냉동? 아니면 배달을 시키든가.”

    “배달이 되나?”

    “조금씩 문을 여는 곳이 늘어나더라고. 처음에 나왔던 몬스터들도 다 잡히고, 게이트도 군인들이 지키고 있으니까.”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큰 피해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게이트가 생기고 튀어나온 몬스터가 전부였다. 그 이후로 몬스터가 나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럼 뭐라도 시키자. 배고파 죽겠다.”

    “뭐 먹을래?”

    “뭐든. 근데, 배달이 되나?”

    ***

    “아직도 부족하다고?”

    “그냥 배가 좀 찬 것 같아.”

    “뭔가 이상하게 변한 것 같다?”

    “밤새 뛰어다녀서 그래. 체력을 너무 많이 썼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문후의 식사량이 달라졌다.

    오랫동안 봐왔던 그인지라, 갑자기 변한 것 같은 친구의 모습이 어색했다.

    “뛰어다녔다고? 몸은 왜 그렇게 됐는데?”

    “불난 곳을 뛰어다녔거든.”

    “불이 날 일이 있나? 듣기로는 내부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던데. 그냥 대자연이라고… 아무튼 괜찮은 거지?”

    “괜찮다니까.”

    “그럼 됐네.”

    정민석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 많은 걸 물었다. 그때는 걱정이 돼서 캐물었지만, 다시 멀쩡한 걸 보면 괜찮은 것 같았다.

    ‘어련히 알아서 말해줄까.’

    굳이 알아서 좋을 건 없었다.

    괜히 임성효나 다른 사람에게 실언을 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냥 모르는 게 더 나았다.

    “근데, 앞으로도 계속 혼자 들어갈 거냐?”

    “그래야지.”

    “위험한 거 아니야?”

    “이제는 더 할만 할 거야. 왜? 도와주려고?”

    “힘이 있어야지. 괜히 같이 들어갔다가 네 발목만 잡겠지.”

    정민석은 씁쓸해하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스로의 힘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에 들어가서 박정균과 잠깐 대련을 해봤다.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 별다른 힘도 써보지 못하고 너무나 허무하게 쓰러졌다.

    그런 박정균을 꺾은 이문후가 힘들어하는 곳이 정규 던전이었다. 지금 같이 들어가 봐야 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그래. 그게 좋지.”

    “그럼 이제 편의점은 어떻게 할 거야? 처분할 거야?”

    “당분간은 민영이가 도와줄 것 같아.”

    “민영이가? 아직은 위험하지 않을까?”

    “바로 맡지는 않을 거야. 계약 기간이 남아있으니까 알바도 쓰고, 민영이도 돕고. 점점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씩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었다.

    처음에야 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러웠지만, 점점 적응을 해나가는 추세였다.

    “근데, 넌 집으로 언제 들어가는 거야?”

    “어? 왜? 불편해?”

    “이 좁은 방에 너 같이 덩치 큰 놈이랑 같이 지낸다고 생각해봐라. 이제 얼굴도 다 나았고, 공무원까지 됐겠다. 굳이 이렇게 좁은 방에서 있을 이유가 없잖아?”

    “나갈 거야. 네가 다쳐서 오니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잔 거지.”

    “출근은?”

    “어제 밤샜잖아. 오후에 일이 있으면 부른다고 하더라고.”

    말을 꺼내기 무섭게 정민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리고 번호를 확인한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이 씨, 너 때문에!”

    “별게 다 나 때문이래.”

    “몰라! 이제 나가야 돼.”

    이문후는 바빠진 정민석을 뒤로하고 자리에 누웠다.

    아무리 운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눈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눈을 감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뭐야? DS그룹에서 무슨 일이지? 벌써 소식이 들어간 건가?’

    조만간 다시 연락을 해야 할 곳이었다.

    어차피 고블린들을 잡고 얻은 물건을 처분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만나야 했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연락이 왔다.

    “내가 던전에 들어갔다 나온 거. 너희들 다 알고 있는 거야?”

    “너? 아니. 나랑 성효 씨. 그리고 팀장님만 알고 있을걸?”

    “확실해?”

    “모르지. 나랑 성효 씨가 따로 거기에 투입된 거는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으니까. 뭐 그게 너랑 관련됐다고 생각하면… 대충 예상하고 있지 않을까?”

    “…….”

    “근데 왜?”

    “아니야. 그냥 물어봤어.”

    생각했던 것보다 DS그룹의 영향력이 더 큰 것 같았다.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였다고는 하지만, 정민석의 말처럼 그와 임성효가 게이트 앞을 지킨다는 게 어색하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른데.’

    DS그룹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았다.

    예상보다 훨씬 저력이 있는 것 같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이문후 씨. DS그룹 비서실 김민우입니다.]

    “예. 근데, 무슨 일이시죠?”

    임현철이 소개해준 담당 직원이 따로 있었다.

    던전에서 나온 물건 거래는 그 사람과 하는 걸로 알고 있었지만, 김민우가 따로 연락을 준 것이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연락을 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오늘이요?”

    [예. 너무 급하게 연락을 취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만, 이문후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미 회장인 김영환과는 한 번 만남을 가졌다.

    그때 거절의 의사를 밝혔고, 김영환 역시도 큰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 김영환이 이제 와서 다시 만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사람이 누군데요?”

    [사장님이십니다. 괜찮으시다면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예상과 다르게 던전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회장에 이어서 사장까지 이렇게 부를 줄은 몰랐다.

    ‘굳이 만날 필요가 있나?’

    어차피 DS그룹과는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따로 계약을 파기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때, 핸드폰 너머로 김민우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문후 씨? 나 김정우라고 합니다.]

    “…….”

    [시간 좀 내주시죠.]

    “급한 일입니까?”

    [그건 아니고. 아버지께서 그냥 돌려보냈다길래. 아쉬워서.]

    “…….”

    [남자끼리 얼굴 좀 보고 얘기합시다.]

    꽤나 호탕한 말투였다.

    목소리 너머로 그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1시간 뒤에…”

    [미리 차를 보내놨으니까 준비되면 바로 오면 될 겁니다.]

    “…….”

    김정우의 말에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원룸 앞에 주차되어 있는 고급 세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문후의 얼굴을 봤는지 가볍게 목례를 건넸고, 이문후는 그 모습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 간다면 억지로라도 끌고 갈 기세네.’

    썩 유쾌한 제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기에는 마음에 걸렸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그는 옷을 찾았다. 그리고 던전에서 얻은 금속 덩어리들을 챙겼다.

    DS그룹으로 가는 김에 거래까지 마칠 생각이었다.

    “뭐야? 어디 가?”

    “일이 있어서.”

    “나보다 더 바쁜 것 같다?”

    “그러게. 이상하게 바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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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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