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화
거래
처음부터 거절을 하는 상황도 고려를 한 건지,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렇다고 손해를 보는 일은 없었다.
앞으로 계속 거래할 것은 생각해서인지 DS에서는 오히려 많은 배려를 해줬고,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벨트와 단검이라.”
집으로 돌아온 이문후는 손에 들어온 물건을 바라봤다.
던전에서 나온 물품을 현대의 기술을 이용해서 다시 재가공한 물건은 확실히 질이 달랐다.
벨트는 평소에도 착용할 수 있을 정도로 깔끔했다.
임현철의 말처럼 이런 형태의 물건을 평소에 착용하고 다닌다면 던전에 들어간다고 다시 옷을 갈아입는 귀찮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단검도 좋네.”
던전에서 얻었던 조잡한 단검과 날붙이들을 녹여서 새롭게 만든 단검은 날이 잘 벼려 있었다.
쉬이익! 쉬이익!
가볍게 단검을 휘두르던 그는 예리함에 만족했다.
지금까지 써왔던 무기들 중에서는 가장 좋았다.
“연습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제부터 적극적으로 무기를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놈들의 수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무기의 도움이 필요했다.
조금씩 단검을 휘둘러보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뭐지? 물품 대금?”
DS그룹에서 온 문자와 은행에서 온 알림이었다.
집으로 오면서 던전에서 가지고 왔던 물건들을 DS그룹 쪽 사람들에게 넘겼다. 그에 대한 값이 입금된 것이다.
“2천만 원?”
녹이 슨 단검이나 도끼들이 대부분이었다.
천이나 가죽으로 된 것은 정민석이 따로 챙겨갔기 때문에 남은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돈이 입금된 것이다.
“쏠쏠한데?”
첫 거래가 나쁘지 않았다.
공략하는 던전이라고 해봐야 일회성 던전이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장비나 재료가 많지 않았다.
그것들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스스로가 사용하고 있었다.
DS그룹이 얻을 수 있는 재료 자체가 귀했기 때문에 당연히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을 최대한 빨리 확보하는 게 중요하겠네.”
시간이 지나면 이런 것들의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던전을 공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정규 던전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면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경쟁자들이 몰려들기 전에 재료를 모을 필요가 있었다.
‘이걸 쓸 때가 된 것 같은데.’
이문후는 고블린에게서 얻은 마비초를 꺼냈다.
게임에서 편법으로 사용했던 방법이 있었다. 이게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수를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위해서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그전에 그 사람이랑 대화를 끝내야겠지?”
권형태와 협의를 끝내야 할 것 같았다.
던전에서 얻은 물건 대부분은 DS그룹과 거래를 하겠지만, 어차피 전부일 필요는 없었다.
마음을 굳힌 그는 권형태에게 연락을 취했다.
던전과 관련된 일을 마무리하고, 마음 편하게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왜 여기 있어?”
“아, 나 취직했어. 이제부터 여기에서 일하기로 했어.”
“…….”
권형태를 만나기 위해서 온 곳에서 만난 사람은 정민석이었다. 임성효를 만나기 위해서 나간 놈이 여기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차라리 정민석이 정부쪽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
“그게… 공무원이더라고.”
“공무원?”
“특별 채용으로 공무원 자격을 얻더라고. 너도 알잖아! 엄마가 얼마나 극성이었는지.”
“…….”
아무래도 공무원이라는 말에 혹한 것 같았다.
매번 공무원 공부를 하라던 어머니의 말을 듣고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문후를 위한 마음도 컸다.
그동안 정민석도 생각이 많았다.
이문후와 같이 움직이면서 던전을 돌았지만, 그를 돕는 것보다는 도움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미안한 마음에 이문후에게 보상을 몰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매번 미안해하는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하면 너를 도울 수 있을 것도 같더라고.”
“나를 도와?”
“너랑 같이 다닐 수는 없을 것 같더라고. 괜히 네 발목만 잡는 것 같아서.”
“뭔 개소리야.”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괜히 짐이 되느니 이런 곳에 일하면 네 뒤를 봐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았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다니면서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여기에서라면 자그마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뭐 네 선택이니까.”
“앞으로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다.”
“괜히 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사고 치지 말고 진득하니 붙어 있어.”
“이상한 생각은 무슨! 앞으로 형님만 믿어.”
“…….”
뜻밖의 만남을 뒤로한 그는 권형태와 마주했다.
아직 확답을 주지 않았던 만큼 권형태는 이문후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 앉으시죠.”
“민석이는 어떻게 된 겁니까? 특채라던데.”
“예. 우리 팀에 스카우트된 대다수가 특채입니다. 정민석 씨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사람입니다. 이상할 건 없죠.”
“그렇군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무모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아니니까요.”
보는 눈이 많았기 때문에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오히려 둘이 움직이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봐야 했다.
권형태는 무덤덤한 이문후의 모습에 말을 아꼈다.
여기에서 정민석과 관련된 말을 더 해봤자 좋을건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제 제안은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예. 그것 때문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던전 출입을 가능하게 해준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건 비공식적인…”
“예. 제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는 걸로 하죠.”
“감사합니다.”
이문후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책임을 전가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따라 붙는 말에 권형태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던전에서 나오는 물건들 중에 일부만 넘기는 걸로 하죠.”
“흐음.”
권형태는 이문후와 만나기 전에 보고받았던 내용을 떠올렸다.
이문후와 DS그룹과의 만남.
그들이 DS를 비롯한 다른 기업들의 움직임을 모를 리 없었다. 거기에 이문후는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이문후가 DS그룹과 접촉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이문후가 내건 조건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일부라면 절반 정도는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 정도는…”
“대신, 이번에 가져왔던 과일이나 다른 열매 같은 것들은 꼭 챙겨왔으면 좋겠군요.”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던전에서 얻은 것들을 어떻게 할지는 주인 마음이니까요.”
던전에서 얻은 물건의 소유권은 이문후에게 있었다.
그가 물건을 어떻게 처분하는지에 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문후는 나름 그들을 배려하고 있었다.
이미 DS그룹과의 거래가 있었지만, 던전에서 얻은 물건들 중에 일부만이라도 그들에게 넘겨준다는 것 자체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아, 그리고 그때 가지고 온 과일 말입니다.”
“성분 분석이 된 건가요?”
“예. 가장 흡사한 게 배라고 하더군요. 대부분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구에서 검출되지 않은 것들 몇 개가 새롭게 발견된 것 같습니다.”
“새로운 물질 같은 겁니까?”
“예. 학계에서는 난리가 날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던전 자체가 정상적인 곳이 아니었다.
갑자기 생겨난 던전과 이상한 능력들. 기존에 알고 있던 기본적인 법칙들을 무시하는 것들은 이 세상의 힘이 아니었다.
“그럼 먹을 수는 있는 겁니까?”
“일부를 실험용 쥐에게 먹여봤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큰 탈은 없었지만,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큰 탈이 없다면 먹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아무래도 확인되지 않은 성분이 검출된 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장복했을 때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니까요.”
당장은 먹을 게 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전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던전 초입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체력을 보충하고,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다시 밖으로 나오면 충분했다.
“그럼 언제부터 던전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 밤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예? 오늘이요? 괜찮겠습니까?”
이문후가 던전에서 나온 지 겨우 반나절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던전에 들어간다는 말 자체가 놀라웠다.
“잠깐 확인해 볼 게 있어서요.”
“…….”
이런 적극적인 모습이 나쁠 건 없었다. 하지만 무리를 하는 듯한 이문후의 행동이 걱정이었다.
‘생각보다 던전이 덜 위험한 건가? 아니면 실력이 더 뛰어난 건가?’
아직 정규 던전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알고 있는 거라고는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게 전부였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던전 안으로 사람이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고블린들은 일회성 던전에 나오는 놈들과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만 밝혀진 상황이었다.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오늘 바로 들어가 보는 걸로 하죠.”
“… 알겠습니다.”
“근데, 매번 이렇게 만나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가요?”
어차피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나왔을 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건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앞으로는 정민석 씨에게 말을 하면 될 겁니다.”
“민석이 한테요?”
“예. 아무래도 그게 편하실 것 같아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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