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의 던전 사냥-36화 (36/126)

제 36화

거래

인근에 있는 경찰서로 간 이문후는 또 다른 사람과 마주했다.

“일회성 던전이 정규 던전하고 연결된 겁니까?”

“저도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네요.”

“… 혹시, 따로 정규 던전으로 들어가신 건 아니고?”

“그 경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문후 씨에게는요.”

“저를 너무 과대평가 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권형태는 능청스럽게 그의 말을 받아냈다.

유들유들해 보이는 그는 생각과 다르게 예리했다. 뭔가를 눈치챈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문후도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임성효를 대신해서 들어온 사람.

비상 대책 팀을 이끌고 있다고 밝힌 권형태는 이문후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힘만 놓고 보자면 박정균 형사는 우리 팀에서 가장 세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나경민 씨의 실력도 뒤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뒤에서 조유리 씨가 도와준 것을 이겼다고 하니…”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흐음. 운이라. 그렇군요.”

권형태는 이문후의 대답에 쓰게 웃었다.

생각보다 신중한 사람이었다. 작은 틈이라도 찾아내려고 했지만, 그는 틈을 보이지 않았다.

뭔가를 바라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굳이 던전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을 보여주고, 그 성분을 알고 싶다는 부탁을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런 식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이문후의 눈을 직식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일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 글쎄요.”

“대우가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대우가 있죠?”

“가령, 생명 수당을 받고 던전에 들어간다거나.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동료가 같이 움직인다거나.”

“지금은 혼자가 편한 것 같아서요.”

“그 외에도 편의를 봐줄 수 있습니다. 던전에서 나온 물건들의 성분을 알 수 있다거나. 가지고 나온 것들을 처리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모두 임성효와 나눴던 대화들이었다.

일부러 드러내며 도움을 구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권형태는 이문후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권력의 힘이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어필했다.

‘당분간은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한데.’

잠깐 고민이 됐지만, 지금은 혼자 움직여야 할 때였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여러 사람과 같이 나누는 것보다 독식하는 게 많은 걸 얻을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은 다른 곳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곳이라니요? 그런 곳이 있습니까?”

“기업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죠. 결국에는 던전에서 나온 물건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쪽도 투자를 할 것 같은데요?”

“…….”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의 말대로 기업들이 돈이 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게임 내에서도 그런 식으로 기업이 움직였다.

그래서 던전 밖에서 질 좋은 장비를 만들거나 강화시킬 수 있었고, 그 장비를 토대로 힘을 키우는 형식이었다.

물론, 게임 내에서의 배경이었다.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게임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상황이라면 현실에 있는 기업 역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권형태도 그 사실을 걱정했다.

지금도 여러 대기업들이 각성한 플레이어들과 접촉을 하고 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힘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지금은 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있어서 노골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힘을 가지게 되면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을 게 분명했다.

‘결국에는 이 사람 정보도 그쪽으로 흘러갈 텐데.’

모두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없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은 조만간 대기업들에게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나라에서도 접촉을 해 올 수도 있을 테고.’

잠깐 고민하던 그는 이문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원하는 게 있습니까?”

“예? 그게 무슨…”

“어떻게 하면 우리와 같이 일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노골적인 질문이었지만, 권형태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만큼 앞에 있는 이문후의 가치가 높아 보였다.

“아직은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요.”

“식상한 말이지만,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식상하네요.”

“…….”

“제가 원하는 거라면… 그냥 간섭받지 않고 움직이는 겁니다.”

“우리 팀에 들어오더라도 심한 간섭은 없을 겁니다.”

“글쎄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일로 껄끄러운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

그동안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봤던 권형태였다.

그는 이문후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팀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보내기에는 그의 실력이 너무 아까웠다.

“굳이 우리 팀에 들어오지 않아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아니,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거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군요. 그곳에서 얻은 물건의 성분을 확인한다거나, 그 재료들을 처분하는 것들에서는 우리가 도움이 될 겁니다.”

“…….”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문후 씨만 원한다면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

지금 그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그런 지원을 받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 저한테 뭘 원하시는 거죠?”

“지금은 호감이라고 말해두죠.”

“호감이요?”

“좋은 관계가 지속된다면 언젠가 같이 힘을 합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

“지금은 그곳에서 가지고 오는 물건들의 종류, 사용할 수 있는 용도. 그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직 던전에 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다.

특히 정규 던전을 들어갔다가 많은 전리품을 들고 돌아온 사람은 이문후가 처음이었다.

그들도 조만간 던전으로 진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그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만 했다.

‘제대로 된 준비가 될 때까지만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문제는 던전에 진입한 이후였다.

만에 하나라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면 그들도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쯧. 언론을 의식 안 할 수가 없으니.’

던전을 통제하고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무래도 국민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던전에 관한 정보가 필요했다.

개인의 활동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은밀하게 지원을 해주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생각이었다.

정보와 장비 확보.

이런 것들을 만족 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앞에 있었다.

“정보라.”

“그곳에서 나온 장비나 재료도 필요합니다. 그것들을 우리가 매입하도록 하죠. 그리고 연구를 통해서 만들어진 장비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이문후가 바라는 것과 권형태가 원하는 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먼저 제안해야 할 말을 권형태가 하고 있었다.

“저한테 너무 유리한 조건 같은데요?”

“당연히 그럴 수밖에요.”

“왜죠? 굳이 이렇게 할 이유가…”

“지금은 이문후 씨가 힘이 있지 않습니까? 갑의 입장이니까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런 상황이 너무 낯설었다.

‘매번 을이었던가.’

생소한 느낌이 씁쓸했다.

갑자기 생긴 힘으로 평소라면 만날 수도 없는 권형태와 독대를 하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원하신다면 따로 정규 던전을 드나들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한 겁니까?”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문제가 된다면 이건 이문후 씨의 개인적인 활동이라고 하겠습니다.”

“흐음.”

“정부가 공식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가 필요합니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당연히 시간도 오래 걸릴겁니다. 던전 출입이 가능한 대신에 위험은 이문후 씨가 안고 가야 할 겁니다.”

어차피 던전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도록 하죠.”

“… 더 원하는 게 있습니까?”

권형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이것도 많이 양보를 한 편이었다. 이문후에게만 특혜를 주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는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아니요. 그 정도 조건이라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좀 쉬고 싶어서요. 조금 피곤하거든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조사를 빙자한 회유 자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문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제안에 만족했다.

‘던전을 출입할 수 있는 조건이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거기에 던전에서 나오는 것들을 정부측에서 매입한다면 걱정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세세한 부분은 조율을 할 필요가 있었다.

재료들의 가격이나 판매할 것들에 관해서는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

“너무 파격적인 제안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나?”

“그냥 정규 던전을 들어갔다 나온 게 전부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빨리 움직인 게 전부인데…”

“박정균을 쓰러뜨렸네. 거기에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내기도 했지.”

“하지만 그건…”

“거기에 던전에서 나오는 물건들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을 챙겨왔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투자해 볼만 한 사람이야.”

권형태는 이문후를 높이 평가했다.

가지고 있는 힘도 대단했지만, 앞으로를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그곳에서 먹을 식량을 찾으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식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식량은 필수였다.

이문후는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던전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준비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가까이 둬야 할 사람이었다.

“지원을 아끼지 마. 지금은 저런 각성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시도 게을리하지 말고. 재벌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기업들과의 경쟁. 거기에 타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쯧.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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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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