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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35화 (35/126)
  • 제 35화

    다른 각성자들

    박정균은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 형사였다.

    강력계에서의 생활이 20년도 넘었지만, 계속 현역으로 뛰면서 조폭들을 상대했다.

    도합 15단이 넘을 정도로 많은 무술을 접했다.

    꾸준한 실전 감각과 타고난 신체적 능력을 가진 그는 스스로의 힘에 자신이 있었다.

    플레이어로 각성까지 한 그에게는 이문후가 우습게 느껴졌다. 하지만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온 그의 움직임에 헛바람을 집어삼켜야만 했다.

    “크흡!”

    파앙! 파앙!

    주먹을 뻗을 때마다 공기가 터져 나갔다. 짧게 끊어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운동을 한 놈인가?’

    복싱을 배운 게 분명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날 실력이 놀라웠지만, 곧 정신을 차린 그는 가드를 올리며 자세를 낮췄다.

    ‘이런 놈들은 잡기만 하면… 크윽!’

    단단히 가드를 하고 품으로 파고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팔을 때리는 이문후의 주먹이 심상치 않았다.

    ‘뭐, 뭐지?’

    마치 망치로 팔을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이문후의 주먹은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덩치와는 다른 힘이 예상을 벗어났지만, 박정균은 고통을 참아내며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주먹이 멈춘 순간, 이문후를 향해 다가갔다.

    “잡았다!”

    “…….”

    옷깃을 잡은 그는 힘을 주며 그를 끌어당겼다.

    이대로 엎어치며 그를 바닥에 꽂아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문후는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크윽. 무슨 힘이!’

    상대적으로 힘에서는 우위에 있을 거라고 확신을 했다.

    달려드는 속도로 봐서 반응속도만 부족할 거라고 여겼지만, 이문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게 가능한 건가?’

    순수한 근력만 13이었다. 거기에 레벨이 오르면서 14까지 올랐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4나 5까지 차이가 날 정도로 그는 근력에 자신이 있었다.

    당연히 이문후를 힘으로 압도해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압도당하는 쪽은 박정균이었다.

    쿠웅!

    허리를 비튼 박정균이 바닥에 꽂혔다.

    이문후는 멈칫거리는 그의 다리를 걸며 밀어냈고, 박정균은 무기력하게 나가떨어졌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힘으로 박 형사님을 이긴 거야?”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하다고?”

    “도대체 스탯이 어떻게 되길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문후가 우위를 점하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댔다.

    하지만 이문후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근력은 23이었다.

    2성의 건곤대나이가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올렸고, 레벨이 오르면서 근력 역시 커진 상태였다.

    여기에서 나한신공의 내공까지 더해지면 순간 근력이 30까지 넘어설 수 있었다.

    “크윽. 제법인데?”

    “… 더 싸워봤자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은근히 화를 돋우는군그래.”

    “…….”

    “이게 다가 아니라고!”

    박정균은 사용하지 않았던 능력을 펼쳤다.

    그 역시 던전을 돌면서 여러 능력을 얻은 상태였다. 모습이 추해져서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겨우 게임만 하던 놈들에게!’

    우두두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박정균의 얼굴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귀가 뾰족하게 변해갔다. 곧 상체가 털로 뒤덮기 시작했다.

    ‘뭐야? 늑대인간이야?’

    그 역시 잘 알고 있는 능력이었다.

    야수화라는 스킬로 육체적인 능력을 극대화 시켜줬다.

    말 그대로 야수로 변하면서 야수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했다.

    “바봅니까?”

    “크르르르.”

    “변신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이문후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야수화로 변신을 마치기 전에 공격을 하면 싸움을 쉽게 끌고 갈 수 있었다.

    퍼억! 퍼버벅!

    그는 내공을 끌어 올리며 주먹을 뻗었다.

    연타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고, 주먹질 하나하나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크아아아!”

    박정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쏟아지는 주먹이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지만, 주먹이 멈추기 전에 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털썩.

    의기양양해하던 그가 힘없이 무너졌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각성자들은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치, 치사하게!”

    “변신할 때 기다려 주는 건 국룰 아니었나?”

    “직접 싸울 때도 그런 말을 할 겁니까?”

    “…….”

    아쉬움을 토로하던 그들은 이문후의 질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이문후를 보낼 생각은 없었는지 몇몇이 앞으로 나섰다.

    “또 싸우자는 겁니까?”

    그의 말투가 차갑게 변했다.

    아무리 몰래 던전에 들어갔다지만, 이런 식이라면 끝이 없었다.

    이문후는 작정을 한 듯 무기를 꺼냈다.

    날이 선 단검을 꺼내자, 모두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주변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때, 지켜보고 있던 임성효가 나오며 모두를 가로막았다.

    “여기까지 해요.”

    “이대로 보낼 수는 없…”

    “서로 싸워서 좋을 건 없어요. 거기에… 우리가 원한다고 저 사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

    “여기에서 끝내죠. 이문후 씨 말대로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거기까지 해요. 저 사람이 잘못이라면 제가 책임을 질 테니까요.”

    임성효는 나경민의 말을 일축했다.

    계속 싸운다고 이문후를 붙잡아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이문후와 관계가 틀어져서 좋을 건 없었다.

    “돌아가시죠. 박 형사님도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 사람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임성효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이문후를 강제할 수단도 없었고, 조사를 한다고 성실하게 임할 것 같지 않았다.

    곧 사람들이 물러났다.

    골목에 덩그러니 남은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몸은 어때요?”

    “그냥 그럽니다.”

    “미안해요. 일이 이렇게 흘러갈지는 몰랐어요.”

    “그쪽이 사과할 일은 아니죠. 저도 잘한 건 없어 보이니까요.”

    “…….”

    임성효는 다행히 말이 통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문후는 임성효에게는 작은 빚이 있었다. 연쇄 살인마와의 일로 그녀의 손을 빌렸기 때문에 마냥 모질게 대할 수 없었다.

    거기에 앞으로 임성효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굳이 박정균과 그렇게 싸운 이유도 임성효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주셔야 할지도 몰라요.”

    “시간이요?”

    “네. 그래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아야 보고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그냥 보내줬다가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가서요.”

    “알겠습니다. 지금 가시죠.”

    “지금이요?”

    굳이 따로 시간을 낼 생각은 없었다.

    괜히 날을 잡아서 불려 나가면 오히려 시간만 소비하고, 더 골치 아파질 게 분명했다.

    차라리 상대가 준비가 되지 않은 지금 말을 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해 보였다.

    “괜찮으시겠어요?”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알았어요. 따라오세요.”

    “잠깐만요.”

    그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짐을 챙겼다.

    모두가 던전에서 나온 물건들로, 살짝 튀어나온 물품을 본 임성효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것들은?”

    “던전에서 얻은 것들이에요.”

    “그렇게 많이요?”

    “아, 생각보다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걸 처리하는 것도 일인데.”

    “그, 그렇겠네요.”

    이문후는 일부러 가지고 온 물건들을 보였다.

    일전에 개인적으로 거래를 하면서 양아치들을 만났기 때문에 되도록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돈은 좀 적게 받아도 정부 쪽과 거래가 된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사실 지금 임성효에게 협조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잘하면 앞으로의 거래는 물론이고, 던전의 출입까지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던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장비가 부족했다.

    입고 있는 옷은 물론이고,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역시 던전에서 얻은 게 아니라면 가지고 갈 수가 없었다.

    “아, 그리고 그때 그 일도 고마웠어요.”

    “그 일이요?”

    “고무원이요. 이문후 씨 말처럼 그놈이 범죄를 저질렀더라고요. 그때 챙겼던 신분증에서 묻었던 피들이 다른 피해자들 피도 섞여 있었거든요.”

    “…….”

    “대부분 증거도 확보했어요. 미제로 남았던 비슷한 사건까지 모두 그놈이 벌인 짓으로 밝혀질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다 이문후 씨 덕이에요. 고생하셨어요.”

    임성효는 일부러 그를 칭찬하면서 어색함을 깨려고 노력했다. 지금 그녀가 속한 팀에서는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인재가 이문후 같이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이문후도 임성효의 의도를 눈치챘다.

    예전에 만났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그녀의 태도에 그는 쓰게 웃었다.

    ‘그래도 다행인가?’

    굳이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았다.

    짐을 챙기던 그는 던전에서 가지고 나온 과일을 꺼냈다.

    “아, 혹시 이거. 성분 같은 걸 알 수 있을까요?”

    “성분이요?”

    “먹을 수 있는 건지.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이요.”

    “아, 그거 혹시 던전에서 가지고 온 건가요?”

    “맞아요. 혹시 가능하다면…”

    “충분히 가능해요! 아니,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은데요?”

    임성효는 이문후의 부탁을 반겼다.

    일 자체가 던전이라는 곳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게 하나의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이문후 역시 이런 임성효의 반응이 반가웠다.

    다행히 별다른 위험 없이 먹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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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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