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화
다른 각성자들
여기에서 임성효와 만날 줄은 몰랐다.
처음부터 그녀를 만났다면 도움을 받았을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누가 봐도 협박을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조유리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이문후는 영락없는 납치범 같았다.
“저 사람이 먼저 공격을 하더라고요.”
“예? 도대체 왜…”
“도망가는 놈을 잡으려고 한 겁니다.”
“도망이요?”
“던전에서 빠져나온 사람. 앞에 있는 저놈이에요.”
임성효는 다시 한번 놀란 눈으로 이문후를 바라봤다.
지금 주변이 난리가 난 이유가 앞에 있는 이문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경악스러운 것은 조유리를 제압한 채로 대치하고 있는 이문후의 모습이었다.
‘설마 저 두 사람을 이긴 건가?’
뒤에서 나경민을 돕는 조유리가 저렇게 무기력하게 붙잡힌 모습이 너무 어색했다.
더군다나 나경민이 사용하는 목검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두 사람은 상당한 실력자였다.
개인인 전투력만 놓고 보자면 조유리는 평범한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가 전부였지만, 나경민이 앞에 선다면 상황은 달라졌다.
나경민의 힘을 배로 끌어 올려주는 게 바로 조유리의 능력이었다. 무엇보다 나경민은 지금 모인 각성자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나경민을… 그것도 조유리가 도와주는 나경민을 이겼다고?’
어쩌면 조유리를 먼저 잡고, 나경민을 협박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나경민의 모습은 평소에 봐왔던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만만해 하던 그가 은연중에 기를 못 펴고 있었다.
100만이 넘어가는 거대한 채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여러 게임을 섭렵하면서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었고, 각성자가 나타나면서 더 큰 기회를 잡은 걸로 잘 알려져 있었다.
‘두 사람 모두 2레벨일 텐데. 그럼 저 사람도?’
2레벨의 플레이어 두 명을 상대한 이문후도 2레벨이거나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임성효는 다시 한번 놀랐다.
조금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이문후가 이렇게 강할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때 민석 씨를 찾으러 다녔던 게…’
이문후와 처음 만났을 때, 정민석을 찾아서 움직였던 건 그만큼 스스로의 힘을 믿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때는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새삼 의미있게 느껴졌다.
임성효는 놀란 마음을 뒤로하고 이문후를 바라봤다.
이 상황에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우선 그 손 좀 놓고 말해요.”
“…….”
임성효는 겁에 질린 조유리의 상태를 걱정했다.
잡혀 있는 조유리는 그에게는 최소한의 보험이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 계속 있어서 좋을 건 없었다.
‘도망가는 거야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데.’
순간이동을 사용하면 모두를 따돌리고 여길 빠져나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중이 애매했다.
이미 정체를 들킨 만큼 지금은 협조를 하는 게 좋아 보였다.
이문후는 조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뗐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사라졌다. 하지만 조유리는 쉽게 움직이지 못 했다.
이미 다리가 풀렸다.
대부분 뒤에서 싸움을 지켜봤던 그녀에게는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리야? 괜찮아?”
“흐윽. 못 걷겠어.”
“이 자식 가만히 안…”
“계속 그렇게 나오면 나도 안 참아.”
“뭐, 뭐라고?”
“나를 범죄자 취급하지 마.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은 너였으니까.”
“그거야 네가 던전에서 나왔으니까!”
“그게 무슨 잘못이지? 당신들도 모두 던전에 들어갔다 나온 거 아닌가?”
“… 뭐, 뭐?”
순간, 말문이 턱 막혀왔다.
하지만 이문후는 단순히 일회성 던전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너는 정규 던전에서 나온 거잖아!”
“너는? 아니, 당신들은 정규 던전에 안 들어갔다는 건가?”
“여기 있는 사람들중에서 정규 던전을 들어가 본 사람은 없어요.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통제를 하고 있었죠.”
정규 던전을 들어갔다 나온 사람은 이문후가 유일했다.
임성효의 설명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지만, 이 정보가 그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았다.
‘아무도 안 들어갔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 추궁하듯 몰아붙이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정규 던전은 언제 들어가신 거죠?”
“…….”
이문후는 임성효의 질문에 머뭇거렸다.
사실대로 말을 하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밝혀야 할지도 몰랐다.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순간이동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서 좋을 건 없었다.
고민하던 그는 결정을 내렸다.
굳이 사실을 말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던전이나 이 힘을 얻게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일회성 던전을 들어간 게 전붑니다.”
“예? 일회성 던전이요?”
“예. 평소처럼 일회성 던전에 들어갔어요.”
“말도 안 돼! 근데, 어떻게 저기에서 나온 거야?”
나경민은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는 물론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황당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문후는 그 말이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걸 알면 내가 이렇게 추궁당하지는 않았겠지.”
“추, 추궁이라니요?”
“나도 모르는 일로 이렇게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 않겠어요?”
“범죄자 취급이 아니라…”
대꾸를 하던 임성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문후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어찌 됐든 지금은 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만큼 나중을 위해서라도 불편한 관계가 돼서 좋을 건 없어 보였다.
“정말로 일회성 던전을 들어간 겁니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 역시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지만, 이문후는 그에게 반문했다.
“저렇게 많은 병력들이 지키고 있는데 정규 던전을 어떻게 들어갈 수 있다는 거죠?”
“…….”
“누가 들어갔다면 보고가 됐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던전 내부로 진입하고 아무도 쫓아 들오지 않은 걸 보면 그가 들어온 것을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보면 던전으로 들어온 건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경민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어떻게 일회성 던전이 정규 던전으로 이어져?”
“그건 나도 모르지.”
“봐봐! 저건 거짓말이라고!”
“너는 어떻게 그 힘을 가지게 됐지?”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네 힘도 거짓말이겠네?”
“…….”
“네가 알고 있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
일부러 거짓을 섞어서 말을 했다.
지금 겪고 있는 것들 대부분이 모두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게 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일회성 던전이 정규 던전으로 이어졌다는 겁니까?”
“저도 처음 겪는 일이라 당혹스럽기는 한데…”
“저거 뻥이라니까!”
“… 더 이상 이런 대화는 무의미하겠군요. 묵비권을 행사하죠.”
“뭐, 뭐야?”
이문후는 입을 닫았다.
계속되는 나경민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싸늘한 그의 태도에 불만의 눈초리가 나경민에게로 향했다.
처음 듣는 내용이라 그들에게 도움이 됐지만, 나경민 때문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죄송한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아요. 경위를 알아야 보고를 할 수 있으니까요. 일회성 던전이 어디에 있었는지, 정규 던전에서는 뭘 했는지…”
“알고 있는 건 조금 전에 말한 게 전붑니다.”
“예?”
“내가 왜 이런 정보를 다른 사람들하고 공유를 해야 하는 거죠?”
“그건…”
이런 것 하나하나가 엄청난 정보였다.
조금 전에 모두가 나경민을 노려봤던 것도 더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경민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일을 이렇게 만든 이문후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그럼 왜 도망간 거지?”
“저기에서 잡혀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았으니까.”
“뭔가 구린 게 있으니까 도망을 간 거지. 아무튼 순순히 조사에 협조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뭐, 뭐?”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있나? 아니면 내가 한 짓이 엄청난 범법행위라도 되는 건가?”
굳이 이 사람들에게 끌려갈 이유가 없었다.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지킬 만한 충분한 힘이 있었다.
이미 나경민을 통해서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각성한 플레이어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최소한 나경민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은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저렇게 나대는 걸 보면 어느 정도 힘이 있다는 소린데.’
나경민의 모습을 통해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실력을 대충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서로 죽이기 위해서 싸우면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싸우더라도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상당히 위험한 생각인 것 같군.”
“…….”
“그리고 건방져.”
그의 말에 뒤에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지금까지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그는 이문후의 말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큰 키와 덩치.
체격만 보면 정민석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느낌이었다.
“박 형사님. 진정…”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버릇만 고쳐줄 생각이니까.”
자신감이 가득한 말투였다.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여기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 같았다.
겉모습만 보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문후는 자신이 있었다.
“어쨌든 우리랑 같이 가줘야 될 것 같은데?”
“싫다면요?”
“싫어도 가게 될 거야.”
“떼로 덤빌 겁니까?”
“역시나 건방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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