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의 던전 사냥-33화 (33/126)
  • 제 33화

    다른 각성자들

    쉬이익! 파앙!

    눈앞에서 터져 나가는 공기들.

    목검을 끊어칠 때마다 굉음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그 위력이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문후는 어렵지 않게 날아오는 검격을 피해냈다.

    ‘이 자식. 뭐지?’

    목검을 휘두르는 노경민은 이를 악물었다.

    계속해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공격을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앞에 있는 놈은 미꾸라지처럼 그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이게 말이 되냐고!”

    그는 울분을 토해내듯 소리치며 검을 뻗었다.

    순간, 내지른 목검의 수가 늘어났다. 하나의 검첨이 두 개로 갈라지면서 이문후의 여러 요혈을 노리며 쏘아졌다.

    ‘검술을 익힌 건가?’

    갑자기 강력해진 공격에 이문후 역시 손을 움직였다.

    지금까지는 일부러 공격을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대로 밀린다면 더 피곤해질 것 같았다.

    언제 다른 사람들이 쫓아올지 몰랐다.

    차라리 최대한 빨리 끝내서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좋았다.

    타다닥! 터엉!

    그는 눈앞에서 갈라지는 목검을 쳐냈다.

    작정하고 휘두른 주먹이 순식간에 여러 개로 분열됐다.

    상대와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오히려 더 많은 잔영을 만들어내자 목검을 휘두르는 나경민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 어떻게?’

    3성의 나한권이라면 이런 속도를 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리 없는 나경민은 이를 악물었지만, 아려오는 팔에 결국 신음을 흘리며 물러나야만 했다.

    “크윽!”

    맞받아친 목검이 잘게 떨려왔다.

    목검을 타고 흘러들어온 충격은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매화검법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막힌다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자신의 검법이 상대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던전에서 얻은 것은 매화검법이었다.

    화산을 대표하는 유명한 무공으로, 단순히 검법만 장착한 게 아니었다. 독문심법인 매화심법까지 장착된 상태였기 때문에 더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목검이라지만, 이 목검에 쓰러진 고블린들은 가볍게 두 자릿수를 넘어갔다.

    무엇보다 충격인 것은 상대가 그와 같은 플레이어라는 점이었다.

    ‘어떻게 저런 괴물이 있지?’

    그는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각성을 한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스스로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2성의 매화검법과 2레벨에 오른 상태였다.

    같은 레벨은 있어서 장착된 능력은 누구보다 우위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눈앞에는 그보다 더한 사람이 존재했다.

    “마, 말도 안 돼!”

    “나는 싸우기 싫으니까, 다치기 싫으면 그냥 물러나.”

    “…….”

    나경민은 이문후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오히려 그를 배려하는 듯한 말이 그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닥쳐!”

    다시 목검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터엉!

    하지만 작정하고 내지른 목검은 허공에서 튕겨져 나갔다.

    이문후는 정확히 검면을 쳐냈고, 오히려 무방비가 된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서로의 차이를 확인시켜 줄 셈이었다. 하지만 주먹을 뻗기도 전에 새하얀 빛이 날아들었다.

    쐐에엑!

    허공에서 날아온 빛.

    그건 투명한 얼음이었다.

    고드름같이 생긴 날카로운 얼음 덩어리가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고, 놀란 이문후는 주먹에 내공을 담으며 얼음 덩어리를 쳐냈다.

    터엉! 파사삭!

    날아오던 얼음이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하얀 알갱이가 터지며 허공에 흩뿌려졌고, 가녀린 목소리가 두 사람을 일깨웠다.

    “위험해. 물러나!”

    “…….”

    또 다른 각성자였다.

    나경민과는 다른 성별이었지만, 앞에 있는 목검을 든 남자와 같은 편이라는 게 문제였다.

    ‘피곤하겠는데? 원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한 사람이라.’

    고블린과의 싸움에서 너무 많이 겪어봤던 패턴이었다.

    멀리서 얼음 덩어리를 날리는 걸 생각하면 먼저 처리해야만 했다.

    되도록 일을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끈다면 그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비켜서면 다치는 일은 없을 거다.”

    “네가 두 명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말이 안 통하네.”

    “흥! 처음에는 방심을 했지만, 이번에는 아니라고!”

    단호한 나경민의 말에 이문후는 메고 있던 짐을 내려놨다.

    쿠웅!

    지금은 던전에서 가지고 온 물건을 포기하더라도 앞에 있는 둘을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언제 또 다른 사람들이 올지 몰랐다.

    그 사람들이 총을 든 군인이라면 오히려 앞에 있는 사람들보다 상대하기 더 어려웠다.

    “그냥 보내주자!”

    “무슨 소리야?”

    “저 사람. 진심이잖아! 굳이 이렇게 싸울 이유가 없어!”

    “뒤에서 조금만 도와줘.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할 테니까.”

    “…….”

    나경민은 조유리의 말을 일축하며 목검을 고쳐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진검이라도 사용하고 싶었다. 그만큼 앞에 있는 상대는 버거웠지만, 그래서 더 꺾고 싶은 마음이 컸다.

    “덤벼!”

    나경민의 외침에 이문후는 바닥을 박찼다.

    뒤로 물러나 있던 그가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오자, 나경민의 눈이 커다래졌다.

    ‘뭐야? 이 빠르기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차이가 난다지만 뒤에는 조유리가 있었다.

    이대일의 상황.

    당연히 유리할 거라던 생각했지만, 지금 속도를 보면 도저히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하압!”

    나경민은 급하게 물러나며 목검을 찔러넣었다.

    혼신의 힘을 다하자 두 개로 분열됐던 검첨이 세 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회심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뭐, 뭐야?’

    달려들던 이문후가 사라졌다.

    뒤늦게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이문후의 뒷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미친!”

    이문후는 벽을 내달리고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건물의 외벽을 밟으며 나경민을 뛰어넘은 그는 뒤에 있는 조유리를 향해 쇄도했다.

    “조심해!”

    나경민의 외침에 조유리는 다시 아이스 볼트를 쏘아냈다.

    이미 이문후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그녀 역시 힘을 아끼지 않았다.

    까드드득!

    옆에서 생겨난 두 개의 아이스 볼트.

    한꺼번에 두 개의 아이스 볼트를 만들어낸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무리를 한 적이 없었다.

    비교적 뒤에 위치한 상태에서 나경민을 도와주는 형식으로 많이 싸웠기 때문에 무리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물러나세요!”

    조유리는 경고와 함께 아이스 볼트를 날렸다.

    나름 싸우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피력했지만, 그런 것치고는 너무나 위험한 공격이었다.

    쐐에엑!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차가운 얼음덩어리가 날아왔다.

    유도 기능이 있는지 정확히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에 이문후는 급하게 방향을 바꾸며 허리를 숙였다.

    파앗!

    복싱 동작을 응용하며 움직이자, 얼음 덩어리가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쳐 지나갔다.

    ‘저걸 피했어?’

    순식간에 두 개의 공격을 피하자, 조유리도 다급해졌다.

    이미 무리를 한 그녀는 다시 한번 힘을 쥐어짜며 아이스 볼트를 만들어냈다.

    “흐윽.”

    당연히 몸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위험을 무릅써야만 했다.

    지척까지 다가온 상대.

    간신히 아이스 볼트를 만든 그녀는 코앞까지 다가온 이문후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쐐에엑!

    뒤따라가던 나경민은 드디어 그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이 공격은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그대로 주먹을 내밀었다.

    콰앙!

    굉음과 함께 차가운 얼음이 터져 나갔다.

    비산하는 조각을 뚫고, 쇄도한 이문후는 놀란 조유리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끄어어어!”

    여자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괴성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고통에 조유리는 그대로 주저앉으며 괴로워했다.

    ‘엄살이 심한 편인가?’

    그래도 나름 힘조절을 한 편이었다.

    우선 상대를 제압할 생각이었지만, 힘이 과했는지 조유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잔뜩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개자식!”

    나경민은 그런 조유리의 모습에 흥분하며 언성을 높였다.

    목검을 고쳐잡은 그는 내공을 가득 실으며 이문후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행동과 함께 그는 힘없이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이 치사한…”

    “이대일로 덤빈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크윽.”

    이문후는 조유리의 목덜미를 잡은 상태로 그녀를 앞세웠다.

    고블린을 방패로 사용한 것처럼 나경민의 앞에 그녀를 내세운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나경민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이문후는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그거 버려.”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그냥 가겠다는데 붙잡고 싸우자고 한 사람은 너야!”

    “…….”

    말문이 턱 막혀왔다.

    조유리가 저렇게 잡힌 이유가 바로 그의 고집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부 쪽 사람이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는 국가를 적으로 돌리는 거야.”

    “정부?”

    “이번에 비상 대책 TF에 스카웃 된 각성자다.”

    나경민은 일부러 정체를 밝혔다.

    이런 식으로라도 알려야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뒤에 공권력이 있다면 앞에 있는 놈도 경솔하게 움직이지는 못할 거라고 여겼다.

    “우선 그 몽둥이나 버려.”

    “이거 목검이거든!”

    “아무튼 버려. 그 몽둥이.”

    “…….”

    나경민은 자신의 무기를 바라봤다.

    여기에서 목검이 없으면 도저히 앞에 있는 놈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장착한 건 매화검법뿐인데.’

    주저하는 그의 모습에 이문후는 손에 힘을 주며 그를 압박했다.

    “흐윽.”

    “유리야!”

    고통스러워하는 조유리의 모습에 나경민은 목검을 던졌고, 이문후는 그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지시를 이어갔다.

    “좋아. 그럼 이제 여기로 오는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내.”

    “뭐? 그게 무슨 개소리…”

    황당한 지시에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괴로워하는 조유리의 목소리였다.

    이문후는 일부러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짓누르며 나경민을 압박했다.

    “빨리 움직여. 괜히 일만 복잡해지니까.”

    “치사하게 인질을 잡아?”

    “먼저 치사했던 건 너였잖어. 그리고 애초에 네가 길을 비켜줬으면 이런 일도 없었어.”

    “이익…”

    “내 말이 우습지?”

    “아악! 사, 살려주세요. 흐윽.”

    조유리의 애원에 나경민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에 따라야만 했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조유리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 말에 따르면 유리를 놔줄 거냐?”

    “너 하는 거 봐서.”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내가 네 말에 따를 이유가 없잖아?”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어. 그게 싫으면…”

    “아악! 아파요!”

    “알았다고! 기다려! 기다리라고!”

    “…….”

    나경민은 어쩔 수 없이 이문후의 지시에 따랐다.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선 조유리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먼저였다.

    투덜거리며 움직이려고 하는 그때, 일련의 무리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달갑지 않은 지원군의 등장에 이문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사람은 그와 안면이 있었다.

    “이문후 씨?”

    “…….”

    “거기에서 뭐해요?”

    임성효였다.

    조유리를 인질로 잡고 있는 그의 모습에 놀란 그녀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

    [작품후기]

    코멘트, 추천, 선작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