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화
던전 진입
이제 3레벨이었다.
계속되는 싸움으로 부족한 경험치를 채웠고, 레벨을 올렸다. 동시에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3성 이상의 스킬 제한이 해제됩니다. 나한신공의 효과가 정상적으로 적용됩니다.]
‘어? 뭐야?’
그동안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건곤대나이의 보정을 받아서 3성이라고 알고 있었던 나한신공이 이제야 제대로 된 위력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그동안 2성을 3성으로 알고 있었던 건가?’
낮은 레벨이 그 힘을 제한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한됐던 나한신공의 힘도 상당한 위력을 냈다.
‘아닌데. 3성이 되면서 달라지긴 했는데.’
나한신공의 성취가 오르면서 가지고 있던 내공의 한계가 늘어났다. 거기에 나한권이나 나한보의 위력도 올랐다.
직접 경험을 해본 만큼 확실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흐음.’
이문후는 천천히 달라진 몸을 살폈다.
단전에 있는 내공을 움직이면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제대로 된 3성의 나한신공은 기존에 사용하던 힘과 조금 달랐다.
움직이는 내공의 양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기맥을 달리는 내공의 속도도 더 빨라졌다.
단전이 더 커진 만큼 더 빠르고 강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이런 게 있었네.’
생각하지 못한 제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체더월을 하면서 건곤대나이 같은 능력은 없었다. 성취를 올리는 것만으로 다른 능력치나 스킬에 영향을 주는 일은 전무했기 때문에 고인물이었던 그조차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레벨의 제약이라.’
다행히 레벨이 오르면서 제약은 사라졌다.
그 영향으로 스탯도 조금 올랐지만,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장착할 능력이 더 늘어날 줄 알았는데. 아쉽네.’
시스템 자체는 이전에 했던 게임과 거의 비슷했다.
아무래도 5레벨이 돼야 새로운 능력을 장착시킬 수 있는 것 같았다.
남은 2레벨. 문제는 레벨을 올리는 게 더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4레벨이 되기 위해서는 30개의 경험치 구슬이 필요했다.
거기에 레벨이 높아지면서 몬스터를 잡고 얻을 수 있는 경험치의 양이 줄어든 상태였다.
‘장착한 스킬도 올려야 하는데.’
오히려 레벨을 올리는 것보다 건곤대나이의 성취를 먼저 올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다시 나타날지도 모를 고블린을 피하는 게 먼저였다.
“계속 이렇게 싸울 수는 없는데.”
매번 소수와 싸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게 가능했지만, 조금씩 싸워야 하는 고블린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고블린들도 각개격파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처음에는 서넛이었던 추격조가 이제는 대여섯으로 늘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열 마리가 함께 다닐지도 몰랐다.
‘그만큼 속도는 느려지기는 했어.’
처음보다 고블린들이 쫓아오는 속도는 더 느려졌다.
날이 어두워진 것도 있었지만, 그 수까지 늘어나면서 당연히 뒤쫓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상념을 떨쳐낸 그는 쓰러진 고블린의 품을 뒤졌다.
아직까지는 쓸만한 장비가 없었지만, 그래도 원하는 물건은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쓰러뜨린 고블린의 품에서 나온 것은 검은색 풀이었다.
마비초라고 불리는 놈으로, 고블린들이 사용하는 독초였다.
바람총에 묻히는 독이었다.
체내에 흡수되면 몸을 경직시키고, 강한 고통을 주는 놈이었다.
“이제 이걸 써먹어야 하는데.”
지금 가진 힘만으로는 여기에서 활동하는 고블린 모두를 상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벌써 던전에 들어온 지 네다섯 시간 가까이 된 것 같았기 때문에 돌아갈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되돌아갈 생각이었다.
조금씩 줄어드는 체력도 문제였지만, 지금까지 격하게 움직이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게임과 현실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게임에서는 배고픔을 몰랐다. 그저 체력만 유지되면 언제든지 던전에서 활동할 수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배고픔과 추위, 더위 등 활동을 제약하는 게 너무나 많았다.
‘그나마 내공으로 버티고 있는 느낌인데.’
마비초를 챙긴 그는 다른 고블린들의 물건을 뒤졌다.
조잡하지만 날이 선 단검과 손도끼. 거기에 나무로 만들어진 허름한 방패까지.
마음 같아서는 모두 다 챙기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담을만한 가방이 없었다.
더군다나 무게까지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피잉! 푸욱!
쓸만한 것들을 챙기던 그때, 무언가가 날아와 박혔다.
갑자기 날아든 가느다란 침에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걸치고 있던 가죽옷이 침을 막아냈다.
‘고블린인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한 것 같았다.
바람총을 쏜 놈을 시작으로, 그를 쫓아온 다른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나타난 놈들의 수는 모두 열 마리였다.
개중에 셋은 바람총을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근거리에서 공격을 하는 놈들이었다.
‘저놈들이 골친데.’
아무리 그라도 몸이 마비되면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되도록 뒤에 있는 세 놈을 먼저 처리해야 했지만, 고블린들도 누가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놈들은 뒤에 있는 셋을 지켰다.
곧바로 대열을 갖추며 이문후를 견제했고, 다시 한번 독침이 날아들었다.
피잉!
어두워진 상태에서 날아오는 가느다란 침.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문후의 높은 동체 시력은 날아오는 침을 간파했다.
파밧!
두 개의 침이 몸에 박혔다. 하지만 정작 독침을 날린 고블린은 이문후의 행동에 분개했다.
“키아악!”
그는 죽은 고블린을 방패로 삼았다.
쓰러진 동료를 이용하는 그의 모습에 분노한 놈들은 흥분하며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문후도 나한보를 밟으며 놈들을 향해 달려갔다.
투웅!
바닥을 밀어내기 무섭게 그의 몸이 튀어나갔다.
그는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고, 무모한 돌진에 고블린들은 들고 있던 창을 찔러넣었다.
푸욱!
작은 창이 몸에 틀어박혔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감각에 공격을 한 고블린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뒤늦게 그 정체를 파악한 그들의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키아아악!”
그들이 공격한 건 죽은 고블린의 시체였다.
죽은 동료의 몸에 창을 꽂은 놈들은 기겁했고, 남은 고블린들은 사라진 이문후를 찾았다.
‘확실히 다르네!’
제한이 풀린 3성의 나한신공은 큰 차이가 있었다.
나한보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기맥을 내달리는 내공의 힘도 더욱 강력해졌다.
날아오는 공격을 고블린으로 막아낸 그는 앞을 가로막은 놈들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고블린을 향해 도끼를 내던졌다.
휘리릭! 퍼억!
힘이 실린 공격에 머리가 쪼개진 놈이 그대로 쓰러졌다.
바닥으로 내려선 이문후는 다시 나한보를 밟으며 방향을 바꿨다.
“키에엑!”
난입한 그의 행동에 뒤에서 침을 재장전하던 고블린이 괴성을 질러댔다.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 비명이었다.
푸욱!
가볍게 손을 뻗자, 놈이 힘없이 쓰러졌다.
날이 선 단검을 이용해서 한 놈을 더 처리한 그는 다시 한번 바닥을 찍으며 방향을 바꿨다.
“키아아악!”
그런 그를 향해 고블린이 달려들었다.
어떻게든 그를 막기 위해서 몸을 날렸지만, 이문후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빨라졌어!’
나한보를 극성으로 펼치자 고블린들이 쫓아오지 못했다.
순식간에 남은 한 놈에게 달려간 그는 뒷걸음질 치는 놈의 머리를 잡으며 단검을 찔러 넣었다.
“크르륵.”
무기력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이문후는 그런 놈의 몸을 붙잡으며 몸을 돌렸고, 달려오는 고블린들을 향해 죽은 동료를 내던졌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싸움을 유리하게 끌고 가는 게 중요했다. 최대한 효과적으로 싸워서 체력과 내공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퍼억!
힘이 실린 고블린의 사체가 동료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달려오던 놈이 주춤거리는 순간, 이문후는 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단검을 찌르며 다시 한번 목숨을 취했다.
“후우.”
짧은 시간 동안 격하게 움직인 그는 호흡을 골랐다.
아직도 남은 놈들이 많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싸움을 훨씬 수월했다.
‘레벨이 깡패지!’
스스로도 강해졌다는 것을 인지할 정도였다.
제대로 된 나한신공의 힘은 고블린들을 압도했다.
거기에 점점 단검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확실히 무기를 사용하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고블린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상대하는 고블린들과는 수적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일대다수의 싸움이었만, 지치지 않는다면 고블린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체력인데.’
높은 스탯과 회복이 붙은 바지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 정규 던전에 들어온 만큼 해결할 게 많았지만, 지금은 남아 있는 놈들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흐읍!”
숨을 들이쉰 그는 죽은 고블린을 들어 올렸다.
다시 남은 고블린에게 동료를 던지며 정신을 분산시켰고, 빈틈을 노리며 단검을 휘둘렀다.
푸욱! 촤아악!
나한신공을 사용하며서 움직이자, 고블린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이제는 앞에 있는 놈들이 일회성 던전에 나오는 놈들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전열을 갖추고 무기를 들고 있다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후우.”
순식간에 남은 놈들을 처리한 그는 스스로의 상태를 체크했다.
몇 번은 더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무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이놈들 장비만 챙기고. 돌아가는 게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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