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화
범죄자
말도 안 되는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건곤대나이를 가지고 있던 그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몸 전체를 순식간에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이점이었다.
‘쉽진 않겠는데?’
이문후는 순간 고민했다. 어차피 피해는 없었기 때문에 이대로 보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밖으로 나간 도둑은 그냥 지나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싸울 생각인가?’
까다로운 상대인 건 분명했다.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서 단검을 휘두른다면 제대로 된 반응도 하지 못하고 당할지도 몰랐다.
되도록 싸움을 피하는 게 좋았지만, 상황은 그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대담한 놈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거기 있는 가방 넘겨! 그럼 그냥 갈 테니까.”
“…….”
다행히 상대도 싸울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이문후는 그가 가리키는 가방을 바라봤다. 하지만 가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잡했다. 그냥 보자기에 물건을 담은 형태였다.
‘이건 던전에서 나오는 천이잖아?’
그가 바지를 만들었던 그 재료였다.
이걸 무언가에 담는 형태로 쓰는 건 처음이었지만, 확실한 건 앞에 있는 도둑이 그와 같은 플레이어라는 점이었다.
문제는 안에 담긴 물건이었다.
대부분이 이 편의점에 있던 것들로, 도둑놈의 물건이 아니었다.
“이건 여기에 있는 물건 같은데?”
“죽기 싫으면 넘기라고!”
“여기 있는 물건은 빼고…”
“내가 장난하는 것 같냐!”
멀리서 들려오던 목소리의 크기가 달라졌다.
동시에 그의 감각이 경종을 울려댔다.
쉬이익!
우려했던 것처럼 도둑은 다시 능력을 사용하면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뒤를 잡으며 기습을 가한 것이다.
하지만 이문후는 어렵지 않게 그의 기습을 간파했다.
상대와는 거의 2배 차이가 나는 스탯과 감각이 갑자기 나타나는 그의 움직임을 알려왔다.
뻐억!
그는 오히려 공격을 피하면서 순간이동을 한 도둑놈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우웨엑!”
“그냥 가라. 죽기 싫으면.”
“끄윽.”
위액을 토해낸 놈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시 단검을 다잡으며 이문후를 노려봤다.
도저히 그 가방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모습이었다.
‘피곤해지겠는데.’
여기에서는 사람을 해칠 수 없었다.
던전이 아니라는 게 아쉬웠다. 아무리 상대가 도둑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어디 한군데 부러뜨리는 건 괜찮으려나?’
앞에 있는 놈은 거리낌 없이 흉기를 휘둘렀다.
이것저것 잴 것 없이 무조건 죽인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거지 같은 상황을 경험해 본 그였기 때문에 힘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편의점만 아니었어도.’
되도록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혼자 감당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여기는 그의 가게가 아니었다.
괜히 어설프게 끝낸다면 나중에 정민석이 해코지를 당할지도 몰랐다.
“후우. 당신 물건만 줄 테니까. 그냥 가라고!”
“안 돼! 만지지 마!”
조잡한 천에 손을 뻗는 이문후의 행동에 도둑은 질겁하며 소리쳤다. 동시에 천에 있던 물건이 쏟아졌다.
대부분이 편의점에서 나온 물건이었다.
개중에 몇 개는 도둑놈이 가지고 있던 것이 있었지만,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자식이!”
흥분한 그는 다시 이문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또 한 번 능력을 사용하면서 이문후를 노렸다.
‘죽어!’
작정하고 움직인 만큼 속도는 어느 때보다 빨랐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상대가 상상도 못 할 곳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반드시 공격을 성공시킬 거라고 확신했다.
쉬이익!
위에서 떨어진 그는 역수로 쥔 단검을 그대로 찍어 내렸다.
조금 전에 얻어맞은 복부가 욱신거렸지만, 움직이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 그의 기습을 흘렸다.
“편의점 안이 그렇게 높지가 않더라고.”
확실히 감각과 반응속도가 높으니 이런 기습을 피하는 게 어렵지만은 않았다.
잔뜩 힘을 주고 떨어진 상대는 허공을 베며 휘청거렸고, 이문후는 곧바로 손을 뻗었다.
이렇게 된 이상, 상대를 제압할 생각이었다.
다시 움직이지 못 하게 확실히 끝낼 생각이었지만, 도둑은 다시 능력을 사용하며 거리를 벌렸다.
“우웨엑!”
“…….”
반대편에서 나타난 도둑은 헛구역질을 해댔다.
공격을 허용한 것도 아니었지만, 꽤나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무리를 한 건가?’
순간이동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연속으로 펼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렇게 괴로워하며 코피를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에 따른 대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문후는 괴로워하는 도둑놈을 뒤로하고, 바닥에 쏟아진 물건으로 눈을 돌렸다.
‘얼마나 중요한 게 있길래…’
떨어진 물건을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예전에 그가 정민영의 생일 선물로 사준 지갑이었다. 거기에 그동안 정민영이 잃어버렸다던 신분증까지.
“이게 뭐야?”
“씨발!”
“…….”
놀란 이문후의 혼잣말에 괴로워하던 놈은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이문후는 여전히 널브러진 것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평범한 도둑놈이 아니었잖아?”
정민영의 주민등록증만 두 장이 넘어갔다.
그동안 새로 발급받은 것들로 계속 잃어버려서 덤벙댄다고 볼렸던 기억이 있었다.
이문후는 이상한 마음에 떨어져 있는 작은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수많은 신분증을 보며 경악했다.
“미친!”
그 가방에는 여러 장의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검붉은 자국이 묻어 있는 신분증.
그게 핏자국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이를 악물었다.
모두가 20대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똑같은 신분증이 두세 장 정도 모였고, 개중에 한 명은 낯이 익었다.
‘이 사람은?’
예전에 정민석이 혼자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편의점에 오던 손님들 중에 한 명이었지만, 예쁜 외모에 친절했던 사람이었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실종됐다는 소식까지.
“설마 저 새끼가?”
뒤늦게 그 도둑놈이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단순한 스토커가 아니었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놈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 그 대상이 정민석의 여동생인 것 같았다.
그에게도 여동생과 다를 게 없었다.
거리낌 없이 단검을 휘두르는 것만 봐도 사람을 해친 경험이 충분한 놈인 것 같았다.
그런 정민영을 노리는 놈이라면 더 큰 일이 생기기 전에 반드시 잡아야만 했다.
“이 새끼. 어디 갔지?”
이문후는 급하게 그 뒤를 쫓았다.
다행히 능력을 다시 사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지만, 힘을 사용하면 쫓아가지 못할 거라도 아니었다.
쿠웅!
내공을 끌어 올린 그는 나한보를 펼쳤다.
바닥을 밀어내기 무섭게 주변 건물들이 빠르게 뒤로 스쳐지나갔다.
쐐에에엑!
나한보를 극성으로 펼치면서 먼 거리 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굴을 때리는 거센 바람에 앞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가는 놈을 잡는 게 먼저였다.
‘저 새낀 뭐야?’
순식간에 다가오는 이문후의 모습에 도망가던 고무원은 혀를 내둘렀다.
지금 쫓아오는 놈은 도저히 그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순간이동이라는 능력을 얻고, 자신의 기습을 막은 놈은 뒤따라오는 놈이 처음이었다.
‘하필 걸려도 저런 놈한테 걸리다니!’
일진이 안 좋았다.
이 능력을 사용하면 취미 생활을 훨씬 더 스릴있고,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더 미친놈을 만난 것이다.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
어느새 뒤따라온 이문후가 손이 그의 옷을 붙잡았다.
뒷덜미가 잡힌 고무원은 질겁하며 능력을 펼쳤다.
찌이익!
다행히 입고 있던 옷이 찢어졌다.
아주 간발의 차이였지만, 다행히 급하게 사용한 능력으로 이문후의 손을 피해낼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사라진 고무원.
이문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았다.
“어디지?”
확실히 성가신 능력이었다. 완전히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자취를 감춘 것이다.
좀처럼 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걸 보면 연속으로 능력을 펼친 것 같았다.
‘계속 그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미 눈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무조건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잘해봐야 두 번이 최고일 것 같았다.
‘찾기만 하면 잡을 것 같은데.’
고무원의 상태를 생각하면 더 이상의 도망은 불가능해 보였다.
따로 도망갈 곳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길게 뚫린 도로와 건물로 막힌 주변.
사라졌다고 해도 멀리 가지는 못 했을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그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설마?’
편의점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린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건물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고무원을 확인했다.
“교활한 새끼!”
조심스럽게 지켜보던 고무원은 화들짝 놀랐다.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하는 만큼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여기에서 멀리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
“거머리 같은 새끼.”
이문후는 그가 있는 건물로 달려왔다.
아무래도 바로 옥상으로 올라오려는 것 같았다.
“씨발!”
고민하던 고무원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예전에 봐뒀던 곳을 떠올리며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앙!
고무원이 도망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옥상 문이 열렸다.
잠긴 문을 뜯어내듯이 열어젖힌 이문후는 다시 사라진 고무원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독한 새끼.”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으로 봐서 무리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놈은 그 고통을 참아내고 다시 능력을 사용했다.
그래서 더 잡아야 했다.
만약 여기에서 놓친다면 그 독종이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다.
“또 어디로 간 거야?”
옥상에서 주변을 살폈지만, 고무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작정을 하고 신중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도로 쪽은 아니고. 그나마 저 골목인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았다.
계속 지켜본다고 놈이 나타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
바닥에 남은 검붉은 핏자국.
그 단서를 이용해서 움직인 이문후는 폐가 앞에 섰다.
복잡한 길. 그것도 가장 후미진 곳에 있는 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흉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음침한 곳이었다.
왠지 모를 찝찝함이 느껴졌지만, 근처에 남은 핏자국을 확인한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이익.
낡은 경첩에서 거친 소리가 났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집이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선 그는 의외로 깨끗한 집에 깜짝 놀랐다.
‘뭐지?’
관리가 되고 있는 곳이었다.
어쩌면 잘못 짚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바닥에 핏자국이 집 뒤편으로 이어져 있었다.
우선 그 핏자국의 정체만 확인해 보는 게 좋았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핏자국을 따라 움직이며 한편에 만들어진 창고 앞에 섰다.
‘이건 최근에 만들어진 건가?’
곧 쓰러질 것 같은 집과는 너무 달랐다.
어설펐지만, 이제 막 만들어진 것 같은 창고였다.
그는 내공을 끌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창고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며 깜짝 놀랐다.
“이게 왜 여기 있지?”
게이트였다.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게이트가 창고 안에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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