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화
범죄자
다행히 정민석은 무사했다.
비전의 서를 이용해서 회복이라는 스킬을 아이템에 장착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몸은 어때?”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우선 밖으로 나가자. 먼저 병원부터 가자.”
“괜찮다니까.”
“내가 안 괜찮아!”
이문후의 채근에 정민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모두 처리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놈들은 다 처리한 거야?”
“어쩔 수 없잖아.”
“…….”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 사실을 묻는 정민석이나 대답을 하는 이문후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적막을 뒤로한 그들은 곧바로 던전 밖으로 나왔다.
일회성 던전은 빛과 함께 자취를 감췄지만, 정민석은 던전이 사라진 곳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평소에 그가 알던 모습과는 달랐다.
던전이 사라지는 건 이제 익숙했지만, 정민석은 뭔가를 찾으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
“미안하다. 나 때문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머지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 너는 먼저 가.”
“뭔 개소리냐고?”
“그냥 가라고! 여기 있는 일은 모두 내가 한 짓이니까!”
뒤늦게 정민석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에 일어난 일을 모두 자신이 책임질 생각인 것 같았다.
이제야 평소에 그가 알던 정민석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장난기 없는 진지한 모습은 여전히 어색했지만, 이문후는 그런 정민석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친놈. 머리까지 다친 거냐?”
“내가 지금 장난하는 것 같아?”
“닥치고, 빨리 병원이나 가자.”
“이번에는 내가 책임진다고! 너는 그냥 나가라고.”
이 많은 인원을 죽였다는 것만 봐서는 정상 참작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정민석으로서도 힘든 결정이었지만, 이문후에게 이 일을 떠넘길 생각은 없었다.
“뭘 책임지냐고!”
“그거야…”
“개소리 하지 말고, 그만 가자고.”
“그럼 죽은 놈들은?”
“사라졌잖아! 던전하고 같이.”
정민석은 남아 있을 흔적을 걱정했다. 모든 게 사라지면 다행이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흔적이 남는다면 문제였다.
“자책하지 마. 이런 걸 생각 못 한 내 탓이니까.”
“이 새끼가 또 그러네.”
“사실이잖아. 내가 돈을 벌려고…”
“지랄하지 마. 그 새끼들 탓이지 왜 네 탓이야? 힘이 없었으면 우리가 죽었겠지! 나도 죽을 뻔했었고.”
“…….”
“작정하고 달려든 놈들을 어떻게 해? 그놈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어.”
정민석은 그들의 행동이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피력했다.
이문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사실 그놈들이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다.
모든 원인은 그놈들에게 있었지만, 사회 교육을 받은 만큼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렇게 안 했으면… 우리가 당했을 거야. 그러니까 죄책감 가질 거 없어. 어차피 저놈들 죽인 것도 다 내가 한 일이니까.”
“이번 일은 나 때문이라고! 너는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괜히 덤터기 쓸 생각은 하지 마. 알았지?”
“…….”
정민석은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면 쓸데없는 걱정인지도 몰랐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단단히 해 둘 생각이었다.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테니까.”
“그렇겠지? 차라리 잘됐어. 그냥 뒀으면 다른 사람들이 다쳤을 거야. 설마, 그때 일… 잊은 건 아니지?”
“그걸 어떻게 잊어.”
“그러니까. 어설프게 봐줘봤자… 씨발. 미안하다.”
지난 일을 떠올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딱딱하게 굳은 이문후의 표정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것이다.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그 일은 모두에게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 일도 결국에는 나 때문에 벌어졌으니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정민석은 고개를 떨궜다.
시무룩한 그의 모습에 이문후는 쓰게 웃으며 그를 일깨웠다.
“개소리 그만하고 병원이나 가자고.”
“괜찮다니까.”
“안색이 안 좋은데, 뭐가 괜찮아? 그러다 잘못되면 어쩌려고? 나는 민영이한테 시달리기 싫다고.”
“…….”
정민석도 계속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말은 괜찮다고 하고 있었지만, 스스로가 평상시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잘 알았다.
생각보다 피를 많이 흘렸는지 조금 어지러웠다.
애써 참고 있었지만, 이제는 굳이 강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
병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까지 처리되지 않은 몬스터들 때문에 다친 사람들은 물론이고, 던전에 들어갔다가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가 병원을 찾았다.
한참을 기다린 뒤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으로 오는 와중에도 그의 상처는 회복되고 있었다. 속에 입고 있는 바지의 힘은 그만큼 대단했다.
‘어차피 옷이야 계속 입을 테니까 아깝지는 않은데.’
이문후는 누워 있는 정민석을 바라봤다.
비전의 서로 친구를 살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다행히 정민석에게 큰 이상은 없었다.
조금 안정을 취하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히려 그의 몸보다 정신적인 충격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은 만큼 충격이 컸겠지. 근데, 나는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멀쩡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곽문상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그래서 비교적 충격이 덜한 것 같았지만, 그때도 그렇게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 일에 익숙해진 건가?’
사람마다 편차가 있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차분했다.
‘건곤대나이 때문인가? 아니면 나한신공 때문에?’
처음 곽문상과 목숨을 걸고 싸웠을 때는 건곤대나이만을 장착하고 있었다. 거기에 제대로 정신을 추스리기도 전에 일이 생겨서 급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았다.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감정이 무뎌진 건가?’
지금하고 상황은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손에 넣은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괴로워하는 정민석의 반응을 확인하자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문득 그동안 스스로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나 자신도 모르게 변하고 있는 건가?’
이문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이런 고민을 한다고 달라질 게 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세상도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힘이었다.
다음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민석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상황을 끝내는 게 최선이었다.
‘내공이나 다시 채우자.’
그는 자리에 앉았다.
운기조식을 통해서 사용한 내공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흐으읍.”
곧 호흡을 통해서 이질적인 기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착된 나한신공이 주변의 기운을 흡수했고, 단전에 쌓인 내공이 천천히 사지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힘들이 그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조금 전에 했던 고민과 잡념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나는 안정을 취하라고 했잖아. 마음 같아서는 내가 가고 싶은데.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어야지.”
“이럴 때만?”
“내가 나 좋으라고 이러냐? 너도 먹을 거잖아. 내가 가지고 온 거. 그거면 일주일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고!”
“돼지 새끼야. 그거 절반 이상은 네가 다 처먹었잖아!”
“그러니까. 다시 가지고 오라고. 공짜로 준다고 해도 지랄이야. 지랄이!”
“에휴. 말을 말자.”
“빨리 갔다 와! 되도록 유통기한 짧은 거 위주로 가지고 오고.”
이문후는 누워서 환하게 웃는 정민석의 표정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아프다는 놈을 보낼 수도 없었다.
내공을 회복하자마자 움직여야만 했다.
정민석이 원룸으로 오면서 가지고 왔던 음식들이 모두 바닥났기 때문에 먹을 게 필요했다.
‘원래 먹성이 좋은 놈이기는 했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많이 먹는 것 같기도 하고.’
며칠 사이에 격하게 움직인 탓인지 평소보다 식사량이 늘어난 것 같았다.
장착한 능력을 사용하면서 더 허기진 것을 보면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 몸에 있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다행인가?’
몬스터라는 놈들이 나타나고 음식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약탈이 일어났고, 곳곳에서 사재기를 하느라 물건이 부족했다.
그나마 정민석이 편의점을 운영했기 때문에 그 걱정은 덜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도 없었다.
“편의점은 괜찮겠지?”
아무리 문을 닫아놓고 물건을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웠다고 하지만, 편의점 자체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장소였다.
당연히 약탈을 하는 사람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위이이잉!
도로에는 수시로 순찰차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사이렌 소리만으로도 범죄를 예방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안심할 수준은 아니었다.
“확실히 사람들이 안 다니네.”
거리가 휑했다.
평소라면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닐 시간이었지만, 몬스터라는 놈들이 나타나면서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정민석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셔터가 내려진 텅 빈 가게.
불이 꺼진 편의점의 진열장은 텅 비어 있었다.
“난장판이네.”
찌그러진 셔터와 금이 간 유리창.
곳곳에 약탈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매장에는 이렇다 할 상품이 없었기 때문에 포기한 것 같았다.
“꼭 망한 것 같잖아?”
정민석의 편의점뿐만 아니라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문후는 자물쇠를 향해 다가갔다. 이제 셔터를 올리고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물쇠를 열기도 전에 안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뭐지?’
밖에서 문이 잠긴 상태였다. 그렇다고 안으로 들어갈 만한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상함을 느낀 그는 조심스럽게 안을 살폈다. 그리고 가방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당신 뭐야?”
“… 씨발!”
도둑이었다. 어떻게 안으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뒤에 숨겨둔 물건들을 챙기고 있었다.
이문후는 급하게 자물쇠를 열었다. 그리고 셔터를 올리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면서 천천히 내공을 끌어 올렸다.
“뭐야? 어떻게 들어온 거야?”
따로 개구멍이 있는지 둘러봤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묘한 대치 상황이 이루어졌다.
침입한 도둑은 품에서 단검을 꺼냈고, 이문후는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냥 놓고 가지? 싸우기 싫으니까.”
“그럴 거면 이렇게 들어오지도 않았지!”
“도둑놈이 꽤 당당하네.”
“죽기 싫으면 그냥 비켜!”
이문후는 싸늘한 말투에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무기를 들고 있다지만, 지금 부딪쳐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잠깐! 근데 저 단검은?’
기회를 엿보던 그는 도둑이 들고 있는 단검에 주목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칼자루와 형태를 보면 일회성 던전을 클리어해야 보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
‘플레이언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잖아?’
문이 잠긴 편의점 안으로 들어온 걸 보면 평범한 사람이 아닌 건 확실했다.
대충 상대의 정체를 유추한 그는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나한보를 펼치며 단검을 든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쿠웅!
멀리 떨어져 있던 이문후가 순식간에 쇄도했다.
예상을 벗어난 움직임에 도둑은 깜짝 놀랐다.
“크흡!”
따로 단검을 휘두를 수도 없었다.
눈앞에 나타난 그의 얼굴에 단단한 이문후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러게 좋은 말로 했을 때 들었으면… 어?”
파앗!
허공을 때린 그는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뭐, 뭐야?”
하지만 곧바로 그 사람을 찾아냈다.
사라진 도둑은 어느새 편의점 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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