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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23화 (23/126)
  • 제 23화

    범죄자

    조금 전에 휘두른 단검의 궤적이 날카로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삼재검법이라는 능력을 장착하고 싸운 만큼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삼재 검법? 다른 놈들은 왜 아무것도 안 남긴 거지?’

    처음 쓰러뜨린 이철영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도 이렇다 할 능력을 남기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이렇게 능력을 얻는 것도 운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어찌 됐든 지금 중요한 건 이런 능력이 아니었다.

    이문후는 상념을 떨쳐내며 근처에 있는 다른 놈을 향해 다가갔다.

    파앗!

    바닥을 밀어내기 무섭게 그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순식간에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나한신공을 실은 주먹을 날렸다.

    파앙!

    섬광 같은 일격.

    순식간에 세 명을 쓰러뜨린 공격이 다시 펼쳐졌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뭐지?’

    움직임이 범상치 않았다.

    상대는 그의 주먹이 닿기도 전에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났다.

    보법과 관련된 능력을 가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문후는 계속해서 그를 쫓았다.

    “저리 꺼지라고!”

    김민수는 쫓아오는 이문후를 피해서 연신 유운보법을 펼쳤다. 흘러가는 구름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상대의 주먹을 피할 수 있었다.

    다행히 상성이 나쁘지 않았다.

    직선적인 움직임으로만 쫓아오는 나한보를 비교적 수월하게 피할 수 있었지만, 곧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야이 개새끼들아! 어디가!”

    “너도 알아서 피해!”

    “이 새끼들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놈이 아니라고!”

    그가 이문후를 붙잡는 사이, 남아 있던 두 명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회성 던전인 만큼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잡아야 했지만, 지금은 이문후가 더 괴물처럼 느껴졌다.

    “비겁한 새끼들!”

    “걱정하지 마. 곧 너랑 똑같이 될 테니까.”

    “씨발! 누가 쉽게 잡혀준대!”

    김민수는 도발하는 이문후를 향해 소리치며 유운보법을 펼쳤다.

    이대로 앞에 있는 놈을 떨쳐낼 생각이었다.

    빠르게 보법을 밟으며 이문후를 따돌리려고 했지만, 상대방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파앙! 파앙!

    끊어치는 주먹의 위력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한기공을 운용하고 있는 만큼 스치기만 해도 뼈가 부러질 정도였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나한보를 배제했다.

    “허억. 허억.”

    점점 김민수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신체적인 능력으로만 그를 쫓는 이문후와 다르게 그는 계속해서 유운보법을 펼치고 있었다.

    ‘슬슬 체력이 부족할 텐데.’

    보정을 받아서 3성이 된 나한기공으로도 많은 내공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하물며 상대는 내공이 없을 가능성도 높았다.

    특별한 심법이 장착되지 않았다면, 내공이 없으면 체력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유운보법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 지친 거냐?”

    “씨발!”

    뒤늦게 이문후의 행동을 이해한 김민수는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억울했지만, 이문후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후들거리는 다리로는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확연히 느려진 움직임.

    동시에 검은 그림자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자, 잠깐!”

    “X까.”

    “끄어어.”

    복부에 꽂히는 묵직한 한 방.

    저절로 허리가 꺾이면서 입이 벌어졌다.

    안에 있는 장기가 모두 입을 통해서 쏟아질 것만 같았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모든 걸 게워내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나오지도 않는 비명을 쥐어짜는 것뿐이었다.

    “그냥 거래만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다.”

    “끄으으으.”

    이문후는 고개를 숙인 김민수의 얼굴을 차올렸다.

    내공을 실으며 무릎을 차올리자, 김민수의 몸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스킬, 유운보법(流雲步法)을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1개 획득하였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상대는 보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는지 김민수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곧바로 쓰러져 있는 정민석에게 눈을 돌렸다.

    “민석아? 괜찮아?”

    “크윽. 괜찮아.”

    “피잖아? 이게 뭐가 괜찮은 거야!”

    “살짝 긁힌 거야. 호들갑 떨지 마.”

    “미친 새끼.”

    정민석의 가슴이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조금 전에 삼재검법을 사용하는 놈에게 당한 상처였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었다.

    아무리 철비공을 펼치고 있었지만, 고작 1성이었다. 이것만으로는 날이 선 단검을 피해 없이 막아낼 수는 없었다.

    “크윽. 뭐해?”

    “참아. 지혈은 해야 할 거 아니야.”

    “… 좀 살살해.”

    정민석은 얼굴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간신히 참고 있었지만, 상처에 손이 닿자 저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어떡하지?’

    당장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정민석을 병원에 데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점점 하얗게 질려가는 얼굴을 보면 조금 더 빠른 응급조치가 필요했다.

    ‘그래! 회복!’

    장착되지 않은 능력들 중에 회복이라는 스킬이 있었다.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능력을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회복을 장착하였습니다.]

    나한신공을 대신해서 회복 스킬을 넣었다. 그리고 정민석의 가슴에 손을 대며 스킬을 활성화 시켰다.

    파스스스.

    단전에 남아 있던 기운이 손바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힘은 조금씩 정민석의 상처를 회복시켜나갔다.

    ‘생각보다 너무 느리잖아?’

    상처가 아물었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겨우 1레벨짜리 회복이라 많이는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응급처치 정도는 될 정도였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을 피한 것 같았다.

    “그건 또 뭐야?”

    “스킬. 회복이야.”

    “완전히 사기네. 그래도 죽지는 않겠다.”

    “잠깐만 기다려.”

    이문후는 너스레를 떠는 정민석을 뒤로하고 손을 뗐다.

    마음 같아서는 완전히 회복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지만, 내공이 부족했다.

    아직은 던전 안이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싸울 힘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도망간 두 놈을 쫓기 위해서도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다.

    ‘이게 도움이 될까?’

    그는 비전의 서를 꺼냈다. 그리고 장착된 회복 스킬 대신 나한신공을 넣었다.

    [비전의 서에 회복 스킬을 넣습니다.]

    [평범한 바지에 회복 스킬을 장착합니다.]

    [한번 장착한 스킬은 다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장착하시겠습니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차라리 회복 스킬을 정민석이 입고 있는 바지에 넣고 천천히 치유되기는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뭐 하는 거야?”

    “이 바지에 치유 스킬을 넣었어.”

    “미친! 그 아까운 걸 왜?”

    “천천히 몸이나 회복하고 있어라. 나는 마저 마무리 할 테니까.”

    정민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문후를 바라봤다.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나름 도움이 되기를 원했지만, 오히려 친구의 발목만 잡은 것 같았다.

    “미안하다.”

    “몸이나 회복하고 있어. 빨리 끝내고 돌아올 테니까.”

    “… 조심해!”

    정민석을 뒤로한 이문후는 도망간 둘을 쫓았다.

    다행히 그들은 멀리 가지 못했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던전의 몬스터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겨우 둘만으로는 다수의 고블린을 압도할 수 없었다.

    이미 이문후와 싸우면서 많은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 거기에 경황없이 도망가다 몬스터들에게 기습을 당한 만큼 제 기량을 낼 수 없었다.

    “어떻게 좀 해 봐!”

    “나도 이게 최선이라고. 네가 묶인 놈들을 죽여야… 그 새끼다!”

    “씨발!”

    천천히 다가오는 이문후의 모습에 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왔다.

    어떻게든 이문후에게서 멀어져야만 했지만, 오히려 그런 조급함이 집중력을 잃게 만들었다.

    “끄악!”

    “뭐해?”

    “이 새끼 좀 어떻게 해!”

    “…….”

    “야이 개자식아! 끄아악!”

    한 명이 쓰러지자 고블린들이 달려들었다.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둘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엉망진창이네.’

    이문후는 천천히 움직였다.

    정민석을 회복하면서 사용한 내공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그를 피해서 더 안으로 도망간 한 명은 곧 고블린에게 에워싸일 수밖에 없었다.

    “저리 꺼지라고!”

    그는 단검을 휘두르며 차근차근 고블린들의 수를 줄여나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뒤쫓아온 이문후와 마주해야만 했다.

    “왜, 왜 이러는 거야?”

    “…….”

    “크흑. 살려주세요. 저는 저놈들이 시키는대로 한 게 다예요.”

    “그래?”

    “맞아요. 어쩔 수 없었다고요.”

    “나도 어쩔 수 없어.”

    “씨, 씨발! 죽어!”

    무릎을 꿇으며 애원하던 그는 단검을 앞세우며 달려들었다.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앞에 있는 놈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필사적이었다.

    쉬이익!

    내지른 단검이 아슬아슬하게 이문후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였다. 조금만 더 옆을 노렸다면 목을 베었을지도 몰랐다.

    “그냥 죽으라고!”

    그는 억울한 마음을 담아 크게 소리치며 내지른 단검을 휘둘렀다.

    무작정 휘두르고 있었다. 그저 앞에 있는 놈이 위협을 느끼고 물러나기만을 바랐다.

    공격이 실패한 이상, 어떻게든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휘두르던 그의 팔이 가로막혔다.

    “그만 끝내자.”

    “자, 잠깐!”

    다급함에 소리를 쳤지만, 곧 이질적인 힘이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힘은 그의 내부를 철저하게 유린했다.

    “끄어어어!”

    그 역시 쓰러진 다른 친구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내부가 찢어지는 것 같은 극렬한 고통에 무릎을 꿇었고, 이문후는 다시 손을 쓰며 그를 처리했다.

    [경험치 구슬을 1개 획득하였습니다.]

    기계적인 알림과 함께 쓰러진 놈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적의를 가지고 있는 놈들이었지만, 이렇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내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어설픈 동정심은 갖지 말자. 민석이가 죽을 뻔 했는데.’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고블린들을 확인하며 상념을 떨쳐냈다.

    지금은 고블린들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나가서 정민석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만 했다.

    “후우.”

    떨어진 단검을 손에 쥔 그는 호흡을 골랐다.

    지금은 내공이 부족한 만큼 단검을 이용해서 고블린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곧바로 달려들며 단검을 휘두르자, 고블린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제대로 된 무기도 없는 놈들이었다.

    굳이 나한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스탯에서부터 큰 차이가 났기 때문에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후우.”

    일회성 던전에 있던 고블린들이 모두 쓰러졌다.

    상자를 지키고 있던 놈들도 모두 처리한 그는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나무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킬, 유운심법(流雲心法)을 획득하였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유운보법을 쓰는데 필요한 심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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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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