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화
범죄자
이문후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동안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거래하는 입장에서 이런 의심은 당연했다.
‘어떻게 확인을 시켜 줄 방법이 없네.’
던전을 들어가서 직접 보여주는 게 최선이었다.
어쩔 수 없이 던전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그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왠지 모를 찝찝함이 불편할 뿐이었다.
“괜찮겠어?”
“어쩔 수 없지. 너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저 새끼들 딱 봐도 양아치인 것 같던데.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닐까?”
“지들만 손해겠지.”
“하긴.”
이미 그의 실력을 눈을 본 정민석은 쓸데없는 걱정에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문후라면 저놈들 모두를 상대해도 충분했다.
“여깁니다.”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선 그들은 게이트를 마주했다.
크기가 작은걸로 봐서 고블린 정도의 몬스터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저 둘은 남을 거예다. 혹시 모르니까 보험이라고 해두죠.”
“편할 대로 하세요.”
연신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놈과 거친 말을 내뱉은 놈이 골목을 지켰다. 마치 퇴로를 막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정민석을 잘 알고 있는 이문후는 그들을 무시했다.
“선수금 먼저 받죠?”
“여기요. 그냥 다 드리죠. 대신에 거짓말이었다면… 각오하세요.”
탈색을 한 놈은 당당하게 200만원을 넘겼다.
제법 배포가 있는 모습을 보이며 위협적인 말을 남겼지만, 이문후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물건은요?”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믿음을 줬는데, 거기는 믿음을 안 주네요?”
불쾌하다는 듯한 반응에 이문후는 가지고 온 바지를 건넸다. 나중에 물건을 넘기면서 트집을 잡히느니 지금 건네고 헤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조심해라.”
“걱정하지 마.”
이문후는 앞서 움직이는 두 사람을 따라 던전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정민석은 밖에 남아서 그런 이문후의 모습을 바라봤다.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가뜩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처음 보는 양아치 둘과 함께 있자, 어색함이 맴돌았다.
하지만 둘의 낌새가 이상했다.
‘뭐야? 왜 내 눈치를 살피는 거야?’
그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던 둘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도망갈 수 있는 길을 막는 느낌이었다.
뭔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정민석은 두 사람의 행동에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병신 같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뭐? 병신 같은 생각? 이 새끼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네.”
“…….”
“덩치 믿고 까부는 거냐?”
거친 말을 내뱉던 놈은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새롭게 나타난 대여섯 명의 양아치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처음부터 이런 일을 계획하고 있었는지 이문후가 던전으로 들어가고 곧바로 나타났다.
아무래도 조금 전부터 핸드폰을 만지던 놈이 다른 놈들을 부른 것 같았다.
‘이 새끼들은 어떻게 예상을 안 벗어나냐.’
제각기 연장을 들고 있는 놈들의 모습이었지만, 정민석은 담담했다. 오히려 그 모습에 다가오던 놈들이 주춤거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저 새끼 잡아!”
***
손에 들린 옷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이었잖아?”
“이걸 어떻게 구한 거지? 만든 건가?”
두 사람은 알몸이라는 것도 잊은 채, 남아 있는 반바지에 살폈다.
진지한 이문후의 모습에 어느 정도는 짐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만 입을 수 있는 옷을 얻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제 확인이 된 겁니까?”
이문후의 말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그가 미리 입고 있는 트렁크와 손에 끼고 있는 장갑을 확인하며 눈빛을 교환했다.
의미심장한 모습이었지만, 이문후는 개의치 않았다.
둘이 덤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순진한 거야? 멍청한 거야?”
“…….”
“그 장갑도 넘기지? 그 바지도 벗고!”
제대로 된 물건이라는 것을 확인한 만큼 더는 거칠 게 없었다.
2:1의 상황.
아무리 앞에 있는 놈이 각성을 한 플레이어라고 해도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들 역시 플레이어였다.
이미 던전을 통해서 힘을 키웠고, 몇 가지 비밀을 더 알고 있었다.
‘저 새끼도 보통은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상대가 될 수는 없겠지!’
스스럼없이 던전으로 들어오고, 이런 바지까지 파는 걸로 봐서 한가락 하는 놈인 것은 분명했다. 다만, 상대가 안 좋았다.
“그냥 재수 없었다고 생각해.”
“크큭. 오히려 고마워해라. 앞으로 우린 유명해질 거니까.”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곧 따로 불러낸 놈들이 밖에 있는 놈을 처리하고 들어오면 무조건 이긴다고 봐야 했다.
그들은 이문후를 주시했다.
되도록 그가 도망가기를 바랐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고블린을 상대해야만 했고, 앞에 있는 놈이 미끼가 된다면 던전을 클리어하는 게 쉬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대충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되도록 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안 덤비냐?”
“씨발, 자신감 보게.”
주저하는 그들의 행동에 이문후는 나한기공을 끌어 올렸다. 괜히 시간 끌어서 좋을 건 없어 보였지만, 그때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문후야. 괜찮냐?”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잖… 뭐냐? 저 새끼들은?”
정민석이었다. 그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고, 그 뒤로 다섯 명이 쫓아왔다.
“뭐야? 저 새끼 왜 멀쩡해?”
“이 새끼. 보통이 아니야!”
“씨발, 차라리 잘 됐어. 여기에서 같이 처리해!”
7명이 우연히 모인 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수가 많았지만, 정민석까지 처리한다는 말에 이문후도 마음을 다잡았다.
“민석아. 마음 단단히 먹어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씨발, 허세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것 같은 이문후의 말투에 탈색을 한 이철영이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곧장 이문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져!”
빠르게 거리를 좁힌 그는 손가락을 찔렀다.
주먹이 아닌 약한 손가락을 사용하는 게 의외였지만, 능력을 사용하는 거라면 이상하지 않았다.
파앙!
곧 이철영의 손가락에서 시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일광지라는 무공이었다. 탄지신통과 비슷한 계열로 순간 관통력이 뛰어난 기운을 방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해냈다.
“이걸 피해?”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최소한 작은 상처라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문후는 너무나 쉽게 공격을 피했다.
뛰어난 동체 시력과 신체 능력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그는 오히려 이철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손을 뻗기도 전에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붙잡았다.
“지금이야!”
“아, 알았어!”
이철영 옆에 있던 오준현의 능력이었다.
양손을 활짝 편 채로 끙끙대는 걸로 봐서 염력 같은 힘으로 움직임을 제약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랄하네!”
하지만 이문후는 내공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그의 힘을 뿌리쳤다.
“커헉!”
오히려 그를 붙잡고 있던 오준현은 피를 흘리며 떨어져 나갔다.
“준현아!”
“지금 남 걱정할 때냐?”
“미친… 커헉!”
놀라기도 전에 이철영의 허리가 꺾였다.
그대로 배가 뚫린 것 같은 지독한 고통이 몰려왔다.
“끄어어!”
신음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배를 부여잡은 채 괴로워하는 게 전부였다.
“너희들. 살인이 처음이 아닌 거지?”
“끄으으.”
싸늘한 목소리에 절로 몸이 떨려왔다.
단순한 물음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에 이철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뻐억!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다시 묵직한 한방이 꽂혔다.
내공을 담은 일격과 함께 이철영이 쓰러졌다.
“처, 철영아!”
“씨발, 뭐야?”
“이 새끼! 이 새끼부터 잡… 흐읍!”
이문후를 가르키던 오준현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이문후의 얼굴에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힘을 쏟아냈다.
‘흐음.’
다시 몸을 구속하는 무형의 힘.
조금 전보다 더 강력해진 느낌이었지만, 풀어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파사삭!
처음이야 당했지만, 다음에 또 당할 정도로 난해한 능력은 아니었다.
펼친 염력이 순식간에 깨졌다.
오준현은 앞에 있는 놈을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바로 염력을 사용하며 스스로의 몸을 밀어냈다.
파앙!
그가 있던 곳에 이문후의 주먹이 꽂혔다.
공기를 터뜨리면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굉음에 절로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다행히 앞에 있는 놈의 관심이 사라졌다.
“죽여!”
“크윽!”
그가 오준현을 상대하는 사이, 뒤따라 들어온 다섯이 정민석을 공격했다. 그중에 세 명은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들려오는 정민석의 짧은 신음과 그의 상황을 봤을 때는 앞에 있는 놈보다 친구를 돕는 게 먼저였다.
파앗!
마음을 먹기 무섭게 이문후의 몸이 길게 늘어났다.
다급한 마음에 극성으로 나한보를 펼치자, 순식간에 먼 거리를 뛰어넘은 것이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가까이 다가간 그는 등을 보이고 있는 놈을 후려쳤다.
뻐억!
정민석을 붙잡고 있던 놈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갑자기 쓰러지는 친구의 모습에 남은 넷이 당황했지만,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가 또 다른 한 명을 덮쳤다.
“커헉!”
순식간에 한 명이 더 쓰러졌다.
배를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은 그의 앞에는 이문후가 서 있었다.
“그 새끼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짧은 순간 드러난 이문후의 압도적인 모습.
그를 마주하고 있는 셋은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X됐다!”
“너 뭐야? 누구야!”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라.”
“…….”
이문후는 조금 전에 들었던 말을 되돌려줬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놈의 가슴을 후려쳤다.
뻐억!
가죽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걷어차인 놈이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그는 정확하게 대치하고 있던 세 사람 중에 한 명을 향해 날아갔고, 날아오는 동료에 당황한 그는 친구를 받아냈다.
“크윽. 우식아. 괜찮…”
친구를 받아내자마자 이문후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미 이문후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알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미친 새끼가!”
당황한 그는 받아든 친구를 밀어냈다.
오히려 그를 방패로 삼았고, 옆으로 비켜서는 이문후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장착된 삼재 검법이 펼쳐졌다. 아직 성취가 높지는 않았지만, 막무가내로 단검을 다루는 것보다 훨씬 날카로운 공격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문후는 어렵지 않게 그의 공격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품으로 파고들며 그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친구를 버려?”
“저리 꺼…”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의 몸이 무너졌다.
그저 가볍게 손을 가져다 댄 것뿐이었지만, 정작 마주한 상대는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발경이었다. 아직도 상대해야 할 놈이 세 명이나 더 남아 있었다. 거기에 정민식의 상태도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았기 때문에 그는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쓰러진 놈이 남긴 단검을 주워들었다.
동시에 낯선 알림이 전해졌다.
[스킬, 삼재 검법을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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