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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21화 (21/126)
  • 제 21화

    아이템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가죽이나 천 같은 재료가 나오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지만, ‘비전의 서’라는 물건은 그로서도 익숙하지 않았다.

    이문후는 처음 보는 물건에 곧장 그 용도를 확인했다.

    [비전의 서]

    장착하지 않은 능력을 담을 수 있다.

    비전의 서에 담은 능력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장비에 장착하는 게 가능하다.

    단, 장비에 장착한 능력을 다시 추출할 수는 없다.

    ‘사용하지 않은 능력들이라.’

    흔히 말하는 스킬북이었다.

    조금 더 거창한 이름이었지만, 보상으로 얻은 능력들을 활용할 수 있었다.

    ‘글러브에 있던 발경도 능력을 장착한 건가?’

    아무래도 비전의 서를 이용하면 발경이라는 능력처럼 필요한 능력을 장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했다.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건데.’

    장비에 장착을 한 이후가 문제였다.

    능력의 등급이 올라가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이문후는 손에 들어온 비전의 서를 들춰봤다.

    “아무것도 안 적혀 있네.”

    생긴 것만 보면 엄청난 절기가 들어 있을 무공 비급 같았지만, 내용이 없었다.

    “그만 나갈까?”

    “그래. 나가야지. 넌 괜찮은 거지?”

    “괜찮다니까. 그건 뭐야?”

    “이거? 비전의 서라고 능력을 옮기는 거야. 그리고 이건 원단.”

    “원단?”

    정민석은 이문후가 가지고 있던 원단을 건네받았다.

    어차피 이런 재료는 다시 가공을 해야했기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는 게 편했다.

    “뭐야? 이건 좀 다르네. 질이 더 좋은 건가?”

    “질 좋은 원단이라더라.”

    “그래? 이건… 바지라도 만들면 되겠네.”

    “바지를 만들 수 있을까?”

    “엄마한테 여쭤봐야지. 같이 일하시는 분들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 계실 거야.”

    이문후는 정민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상념을 떨쳐내며 정민석의 뒤를 따라서 게이트에 손을 뻗었다.

    ***

    “이제 좀 살 것 같네.”

    던전을 나온 그는 원룸으로 돌아왔다.

    쉬지 않고 던전을 클리어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만치 않은 놈들을 상대하느라 진이 빠진 만큼 체력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했다.

    다행히 20을 넘어가는 체력 스탯으로 지친 몸이 빠르게 회복됐다.

    거기에 나한신공을 이용한 운기조식으로 사용한 내공까지 모두 채웠다.

    ‘굳이 잠을 잘 필요가 없겠는데?’

    숙면을 취한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처음 모니터 앞에서 깼을 때와 다르지 않은 상태에 샤워까지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힘도 강해졌고, 괜찮은 장비도 얻었고.’

    지금까지는 모든 게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거기에 정민석의 성장도 나쁘지 않은 만큼 이대로라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뉴스에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 정부는 던전이라고 불리는 곳의 출입을 자제하라는 권고와 함께 비상 대책 TF팀을 만들고 적극적인 대응을 해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질 TF팀은 관련 분야에 전문가들로 구성…

    “던전을 통제하겠다는 건가?”

    생각보다 정부의 대처가 더 빨랐다. 국민의 안전이 달린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런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문제는 앞으로 던전을 통제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 많은 던전을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관련된 법이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까지는 권고하는 수준이라 법적인 구속력은 없었지만, 뉴스를 통해서 그 위험성이 알려진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 하나?”

    그렇지 않아도 일회성 던전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나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었다.

    이미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체더월이라는 게임과 던전에 관한 정보들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초능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회성 던전을 찾아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희생된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큼 던전은 위험했지만, 초인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매력적인 기회를 그냥 두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른 던전들도 최대한 빨리 공략해야 하는데.”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만 했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던전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기억속에 있던 던전은 대부분 클리어 하거나 클리어 된 상태였다.

    “정보가 있으려나?”

    고민하던 그는 곧바로 커뮤니티를 찾아봤다.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었기 때문에 여러 정보를 보면서 기억을 떠올릴 생각이었다.

    띠리리링.

    그때, 정민석이 들어왔다.

    이문후는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온 그를 반겼다.

    “그것들은 뭐야?”

    “오는 길에 편의점도 들렸어. 필요한 것들로 챙겨왔어.”

    “오, 네가 어쩐 일로?”

    “당분간 장사는… 못할 것 같더라.”

    정민석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편의점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손님도 없을뿐더러 조폭들이 아니더라도 약탈을 자행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이 일회성 던전으로 움직이는 동안에도 혼란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정민석은 손에 쥔 봉투를 내려놨다. 그리고 다른 물건과 어울리지 않게 밋밋한 형태의 천을 꺼내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건 네가 부탁한 속옷들.”

    “속옷이라니?”

    “여분으로 더 만드셨더라고. 우리 엄마가 극성이시잖아.”

    “…….”

    “부담 갖지 마. 어차피 일 안 나가셔서 만드신 거니까. 아, 그 천에서 뽑아낸 실을 썼다니까 전처럼 그냥 벗겨지는 일은 없을 거야.”

    이문후는 담담하게 속옷을 건네받으며 그것을 살폈다.

    시중에서 파는 것처럼 깔끔했다.

    “이건 팔아도 되겠네.”

    “당연하지. 우리 엄마 솜씨가…”

    “얼마면 적당할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거. 얼마면 팔 수 있겠냐고.”

    꽤나 진지한 그의 표정에 정민석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일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며 되물었다.

    “진심이냐?”

    “던전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잖아?”

    “흐음. 라디오 들으니까, 되도록 던전 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던데?”

    “그 말대로 움직일 사람이 많겠냐? 무시할 사람이 많겠냐?”

    “그야…”

    무시할 사람이 더 많았다.

    이문후는 정민석이 답을 하기도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원래는 다른 일회성 던전에 관한 힌트를 얻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만든 바지의 가치를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이 반바지 오십. 어때?”

    “50만원? 어떤 미친놈이 속옷을 50에 사?”

    “명품은 사잖아? 그리고 속옷이 아니라 바지라니까!”

    “미친! 그게 말이 되냐?”

    “너무 싼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한 거 아니냐? 남의 돈 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이래서 사람은 사회생활을 해야…”

    이문후는 투덜대는 정민석을 무시하고 커뮤니티에 글을 남겼다.

    그 역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조금 과하다 싶은 액수를 적었지만, 그래도 수요가 있는지 확인을 해 볼 생각이었다.

    ‘사려는 사람은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몇 분이 흘렀지만,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내 말이 맞지? 어떤 미친놈이 속옷을 50이나 주고…”

    정민석이 말을 끝내기 전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구매 의사를 밝히는 댓글들이었다.

    “많네. 100만에 산다는 사람도 있는데?”

    “…….”

    “이래서 사람은 뭐다? 경솔하면 안 된다.”

    정민석의 말을 일축한 그는 달리는 댓글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이런 것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정말로 팔 거야?”

    “한 번 경험해 봐야지.”

    “괜찮을까?”

    “그냥 중고 거래라고 생각해.”

    “중고 거래 해 봤어?”

    “아니. 너는?”

    “나는 몇 번 해봤는데…”

    “그럼 됐네.”

    어차피 돈만 받고 물건만 넘겨주면 될 일이었다.

    이문후는 적당한 사람과 약속을 잡았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장소였고, 말투도 정중해 보였다.

    “가자.”

    “또 어딜 가?”

    “이거 팔아야지. 200이 떨어지는 건데.”

    “구라 아니야? 이런 걸 왜 200에 사가?”

    “이게 다 내 선견지명 덕분이지. 앞으로 더 바빠질 거야.”

    정민석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문후의 밝은 표정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잘 된 건가?’

    이렇게라도 이문후가 풀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곳곳에 자리잡은 무장한 병력들은 커다란 게이트 근처를 통제하고 있었다.

    되도록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이문후와 정민석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지만, 이문후는 이 기회를 빌어서 새로운 수입을 창출하기를 원했다.

    “여기가 맞는 거지?”

    “연락을 해보면 알겠지. 설마, 거짓말은 하지 않았을 거 아니야?”

    던전에서 나온 물건을 가공하고 판다는 것은 그들이 최초라고 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판매처도 없어서 유명한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를 이용하는 만큼 상대가 장난을 했을 경우도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워낙 많은 물건이 거래되는 곳이라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문후는 그 점을 걱정하며 곧바로 연락을 취했다.

    “전화를 안 받는데?”

    “그러면 그렇지.”

    그동안 잘 되던 연락도 끊기자, 이문후의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괜히 나온 것 같지? 내가 그랬잖아! 누가 빤스를 100만 원에 사냐고!”

    “…….”

    정민석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두 대의 오토바이가 그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앞에 있던 사람이 헬멧을 벗으며 물었다.

    “바지를 팔겠다던 분인가요?”

    “예. 혹시 98…”

    “네. 접니다.”

    다행히 구매자가 나타났다.

    하얗게 탈색한 머리와 오토바이의 조합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지만, 물건만 팔면 될 일이었다.

    ‘양아치들인가?’

    앳돼 보이는 얼굴들을 보며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같아 보였다.

    “물건 좀 볼 수 있을까요?”

    “이거 진짜로 살 건가요?”

    “… 여기요. 됐죠?”

    그 말에 빈정이 상했는지 오토바이에서 내린 그들은 현찰을 보여줬다. 충분히 값을 치룰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돈이었다. 하지만 왠지 느낌이 안 좋았다.

    ‘이런 새끼들이 꼭 사고를 치는데.’

    오주완과 그 무리가 풍기는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성을 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물건을 찾는 게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마주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거래를 파토 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누군가에게는 팔 물건이었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정민석의 어머니에게 드릴 수고비 정도는 벌 생각이었다.

    “네고 없이 200에 넘길게요.”

    “근데, 이거 진짜예요?”

    “예? 진짜라니요?”

    “확인할 길이 없잖아요? 짝퉁이면 어떡하려고?”

    “흐음. 그렇게 믿기 어려우면 거래는 없던 걸로 하죠.”

    “씨발, 그럼 우리가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었잖아! 안 그래?”

    단호한 이문후의 말에 옆에 있던 또 다른 놈이 거친 말을 내뱉었다.

    확실히 질이 좋은 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에 발끈한 정민석이 앞으로 나서자 그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정민석은 만만하게 볼 덩치가 아니었다.

    그 역시도 이런 놈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믿으면 되겠네.”

    “… 뭐?”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존만한 새…”

    “그만해. 너까지 왜 그래?”

    이문후는 정민석을 막았다. 그리고 그나마 말이 통할 것 같은 사람을 향해 물었다.

    “어떡할래요?”

    “확인만 해 보죠.”

    “확인이요?”

    “던전에 들었다가 나오는 건 어때요? 그것만큼 확실한 건 없을 것 같은데.”

    스스럼없이 던전으로 들어가자는 말에 이문후는 고민했다.

    아무래도 각성을 하고 던전을 경험해 본 것 같았다. 이런 물건을 찾는 것을 보면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있는 네 명이라면 고블린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같이 들어갈 필요는 없어요. 그냥 우리들끼리…”

    “아니요. 같이 가야죠.”

    “그럼 어떻게 할까요?”

    “제가 같이 가죠. 제 친구는 밖에서 기다리는 걸로 하죠. 선수금 조로 먼저 절반은 받았으면 좋겠는데. 어때요?”

    “… 뭐, 나쁘지 않네요. 대신 우리는 두 명이 들어갈게요.”

    “두 명이요?”

    “많이 들어가 봐야 좋을 게 없잖아요? 봐둔 던전이 있으니까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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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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