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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19화 (19/126)
  • 제 19화

    아이템

    [질긴 가죽 글러브를 손에 넣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획득하였습니다.]

    동으로 된 상자에서 얻은 것은 하나의 완성된 아이템이었다.

    ‘완제품은 처음인가? 질긴 가죽 글러브라.’

    징이 박힌 어두운 갈색의 가죽 주머니를 확인한 그는 곧 그 정보를 살폈다.

    [질긴 가죽 글러브]

    자이언트 랫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글러브.

    쉽게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질기다. 징이 박혀 있어서 파괴력을 높이고, 손을 보호할 수 있다.

    내공 소모가 줄고, 손상된 부분의 자동회복이 가능하다.

    특수 기능 발경을 사용할 수 있다.

    ‘뭐야? 발경?’

    그저 평범한 장갑이 아니었다.

    몇 가지 부가적인 효과가 붙어 있는 물건이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특수 기능이었다.

    [발경]

    기운을 방출해서 상대를 타격할 수 있다.

    방출하는 거리에 따라서 내공의 소모가 달라진다.

    “미쳤네.”

    말 그대로 장풍을 쏠 수 있었다.

    나한신공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는 유용한 물건이었다.

    이 글러브를 낀 상태라면 조금 전에 부딪쳤던 덩치 큰 놈을 상대로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앞으로 싸움이 더 쉬워지겠는데?’

    어차피 나한신공의 성취를 높이면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게 된 만큼 조금 더 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좋은 거라도 나왔어?”

    “완제품이야. 옵션도 좋아.”

    “그거 네가 쓸 거야?”

    “너는 줘도 못 써.”

    “왜?”

    “나중에 넘겨줄게. 지금은 내가 쓰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이 형님이 양보한다!”

    정민석은 일부러 의뭉을 떨었다.

    조금이라도 친구의 부담을 덜어줄 생각이었고, 이문후 역시 그의 속뜻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게이트를 빠져 나왔다.

    냄새가 나는 하수도에서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운이 좋았다.

    조금은 위험했지만, 꽤나 괜찮은 보상을 손에 넣은 만큼 손해는 아니었다.

    “몸은 어때?”

    “몸? 어떻긴 뭐가 어때? 내가 한 것도 없는데.”

    “그럼 다행이네.”

    “다행이라니?”

    “곧바로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미친…”

    정민석은 말문이 턱 막혀왔다.

    그 정도의 사투를 벌이고도 다시 움직인다는 이문후가 정상으로 보일 리 없었다.

    이문후에 비하면 한 게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피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뒤에서 마음 졸이며 친구를 지켜보는 것도 곤욕이었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이문후였다.

    그는 거대한 자이언트 랫과 직접 부딪치면서 사투를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너는 지치지도 않냐?”

    “괜찮아. 체력이 높거든.”

    “… 또 그런 놈을 만나면 어떡하려고?”

    “이번에는 다를 거야.”

    “다르다니?”

    “조금 더 강해진 것 같거든.”

    정민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만만해 하는 이문후의 표정으로 봐서 정말로 다른 던전으로 들어갈 생각인 것 같았다.

    ‘장갑이 엄청 좋은 건가?’

    밝아 보이는 그의 표정에 정민석은 말을 아꼈다.

    조금 전에 싸움으로 많은 걸 느꼈다. 스스로도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로 갈 건데?”

    “비슷한 던전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또 쥐를 잡자고?”

    “어쩔 수 없지. 거기에 쥐가 있으면 잡아야지.”

    담담한 그의 말에 정민석은 잘게 몸을 떨었다.

    마음을 다잡았다지만, 역시나 쥐라는 놈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문후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다시 앞장서며 던전을 찾았고, 곧 비슷한 규모의 게이트를 목표로 다시 움직였다.

    ***

    얼마 전까지 도심지에 있던 그들은 숲에 들어섰다.

    게이트를 거치자 도심이 숲으로 바뀐 것이다.

    곳곳에 솟아난 수많은 나무들과 쌓여 있는 낙엽을 확인한 정민석은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행히 쥐는 아닌 것 같네.”

    “이 숲은… 임프나 오크 같은 놈들일 것 같은데?”

    “임프나 오크?”

    “아니면 고블린? 일회성 던전에서 트롤 같은 놈이 나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

    두 존재 모두 낯설었다.

    그나마 오크는 조금 친숙했지만, 이문후의 심각한 표정으로 봐서 만만한 놈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이런 놈들이 왜 나타난 거지?”

    “…….”

    이문후는 정민석의 물음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자유 모드의 튜토리얼 보스를 잡고 눈을 뜨자마자 세상이 달라졌다.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기가 너무 공교로웠다. 더군다나 체더월에서 얻은 그 힘이 손에 떡하니 들어온 상황이었다.

    ‘건곤대나이가 바로 장착된 걸 보면… 흐음.’

    이문후는 본능적으로 이런 변고가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지금은 이 상황에 충실하는 게 최선이었다.

    “크흠. 가자.”

    “근데, 어디로 가냐? 길도 모르는데.”

    “저기 길이 나 있잖아. 가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그는 낙엽에 쌓인 오솔길을 가리켰다. 그리고 전방을 경계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사삭. 사사삭.

    조용한 숲속이 깨어났다.

    두 사람이 움직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언가가 풀을 스치며 지나갔다.

    앞장서서 걷던 이문후는 걸음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나왔다. 근처에 있어!”

    “쥐만 아니면 돼!”

    정민석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놈들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저건 너무… 사기 아니냐?”

    모습을 드러낸 놈들은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는 낯선 생명체였다. 입술을 비집고 솟아난 송곳니와 들창코는 그동안 매체에서 접했던 그 오크와 닮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모두가 맨손이라는 것이었지만, 우람한 근육만 봐서는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민석도 힘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오크의 겉모습만 보면 무조건 접고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주저하는 그와 다르게 이문후는 곧바로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앗.

    그는 순식간에 놈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나한보를 펼치자 곧바로 몸이 튀어나갔다.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행동에 놀란 오크는 두꺼운 팔을 휘둘렀다.

    파앙!

    본능적으로 머리통을 부수려는 듯이 주먹을 뻗었지만, 이문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어렵지 않게 주먹을 피했다.

    ‘뭐야? 저건 덕킹이잖아?’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 정민석은 깜짝 놀랐다.

    무릎을 굽히며 주먹을 피하는 이문후의 모습이 너무나 익숙했다. 복싱의 회피 기술로, 이문후는 순식간에 오크의 품을 파고들었다.

    ‘저런 움직임이 가능해?’

    그 와중에 절묘하게 공격을 피하는 것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문후의 속도였다.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놈이 눈 깜짝할 사이에 오크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런 놀라운 감정은 이문후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나한보도 이제 점점 적응이 되는 건가?’

    바닥을 밀어내기 무섭게 가까워지는 오크의 놀란 표정.

    예전이었다면 기겁을 했겠지만, 지금은 익숙했다. 달라진 동체 시력과 반응속도로 오크의 공격을 피한 그는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파앙!

    나한신공으로 더 늘어난 내공을 실은 일격은 나한권의 묘리가 스며 있었다.

    거기에 던전에서 얻은 가죽 장갑으로 발경의 힘을 싣자,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끄에엑!”

    오크의 몸이 꺾이며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우람한 근육을 가진 육중한 놈이 힘없이 밀려난 것이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뭐야? 죽었어?”

    뒤에서 지켜보던 정민석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문후의 주먹에 맞은 오크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다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친! 죽었잖아!”

    “…….”

    “네가 강한 거냐? 저놈이 약한 거냐?”

    “둘 다?”

    “지랄!”

    말은 장난스럽게 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도 장갑의 위력에 깜짝 놀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발경의 힘이 더 대단한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굳이 단검을 사용할 이유가 없잖아?’

    내공만 충분하다면 강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착한 무공의 성취가 높지 않아서 내공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건 차차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쿠웩!”

    이문후는 다가오는 적의 어린 소리에 상념을 떨쳐냈다.

    아직 다른 오크들이 남아 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또 다른 오크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놈은 내가 맡을 게!”

    정민석은 앞으로 나서면서 개중에 한 놈을 향해 뛰어들었다. 적극적인 그의 모습에 이문후도 달려드는 놈을 상대했다.

    부우웅.

    뛰어든 오크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굳이 나한보를 밟을 필요도 없었다. 가지고 있는 스탯만으로도 오크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물러난 이문후의 반응에 오크가 크게 휘청거렸다.

    그 틈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품을 파고들며 주먹을 뻗었다.

    파바박!

    연속된 콤비네이션.

    소싯적에 배운 복싱을 응용하면서 주먹을 뻗자, 오크의 몸이 들썩였다.

    굳이 발경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위력이 있었다.

    건곤대나이가 저절로 펼쳐지면서 그의 힘을 극대화 시켰고, 오크는 힘없이 쓰러졌다.

    쿠웅!

    우람한 근육을 가진 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약한 모습이었다. 정작 주먹을 뻗은 그도 이런 상황이 얼떨떨했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숨이 붙어 있는 놈을 확인한 그는 쓰러진 오크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흔히 말하는 싸커 킥이 작렬하자 오크의 목이 돌아갔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예의 소리와 함께 긴장이 풀렸다.

    짧은 시간에 격렬하게 움직인 만큼 피로가 몰려왔지만, 아직 정민석이 상대하는 오크가 남아 있었다.

    ‘뭐야? 저 무식한 싸움은?’

    오크와 뒤엉킨 채로 난타전을 펼치고 있는 정민석의 모습은 누가 오크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철비공을 펼친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날아오는 오크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고, 오크도 정민석의 주먹을 맨몸으로 받아냈다.

    뻐억! 뻐억!

    주먹이 오고 갈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둘은 점점 지쳐 갔지만, 다행히 먼저 쓰러지는 쪽은 오크였다.

    “후우우. 이겼다!”

    “무식한 새끼.”

    “이게 남자의 싸움이지.”

    “…….”

    다행히 철비공의 위력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정민석의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크 한 마리 정도와 비등한 실력이라면 괜찮았다.

    “몸은 어때?”

    “괜찮아. 아직 한 놈정도는 더…”

    “그래? 그럼 바로 가자.”

    “안 쉬고?”

    “시간 없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너는 쉬다가 천천히 따라오든가.”

    “매정한 새끼.”

    정민석은 앞장서는 이문후를 쫓아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다섯 마리의 오크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조금 전에 만났던 놈들과 비슷해 보였지만, 수가 더 많았다.

    “괜찮을까?”

    “아마도? 내가 넷. 네가 하나.”

    “아니. 내가 둘 정도 맡아야…”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문후의 몸이 튀어나갔다.

    다시 나한보를 펼치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오크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저런 미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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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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