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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18화 (18/126)
  • 제 18화

    아이템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놈의 모습에 이문후는 몸을 날렸다. 그리고 정민석도 멀찌감치 물러나며 놈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괜히 어설프게 싸우느니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게 이문후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촤아악.

    날랜 이문후의 반응에 공격을 실패한 놈이 미끄러졌다.

    거대한 덩치를 가졌지만, 놈의 움직임도 기민했다. 순식간에 몸을 돌린 놈은 찢어진 붉은 눈으로 이문후를 노려봤다.

    ‘이건 이빨이 문제가 아니겠는데?’

    앞니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놈의 무식한 돌진이었다.

    잘못 받치면 그대로 어디 한군데는 부러질 것 같았다.

    ‘하수도의 지배자라.’

    상대는 이 하수도를 지키는 보스몹이었다.

    생김새나 공격 패턴은 거대 쥐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큰 몸뚱이가 걱정이었다.

    발목을 노릴 수밖에 없었던 거대 쥐들과는 다르게 놈의 주둥이는 그의 가슴까지 닿았다.

    당연히 이전과 같은 방법이 통할 리가 없었다.

    이문후는 눈을 마주한 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달려드는 놈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터엉.

    순간 반응하며 놈의 미간을 노렸다.

    힘을 실으며 자그마한 상처라도 만들어낼 생각이었지만, 놈은 크게 벌린 입을 들어 올리며 창을 쳐냈다.

    ‘젠장!’

    단단한 앞니에 창이 부러졌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얼얼함에 눈살을 찌푸린 그는 부러진 창을 내던지며 단검을 꺼냈다.

    ‘확실히 만만한 놈은 아닌데.’

    정면에서 부딪치면 승산이 없었다. 우선 앞에 있는 놈의 힘을 빼놓고, 조금씩 피해를 남기는 게 좋아 보였다.

    그는 앞에 있는 놈의 공략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돌면서 거대한 놈들 향해 소리쳤다.

    “덤벼!”

    도발을 하기 무섭게 거대한 쥐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구구궁.

    바닥이 흔들릴 정도로 육중한 놈이었다.

    이대로 부딪치기만 해도 최소 중상을 입을 것 같은 강한 압박감이 전해졌다.

    저돌적인 돌진.

    그 앞에 선 이문후의 모습에 정민석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이어지는 광경에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콰앙!

    거대한 쥐가 그대로 벽을 들이박았다.

    벽을 등지고 서 있던 이문후가 아슬아슬하게 놈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정민석은 이문후의 움직임에 깜짝 놀랐다.

    뒤에서 지켜보던 그는 한순간도 이문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가 사라진 것이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았다.

    신출귀몰한 그의 움직임에 달려들던 자이언트 랫도 제법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거대한 놈이라지만, 달려들던 충격을 줄일 수 없었다. 머리부터 부딪친 놈은 경직된 상태로 움직이지 못했고, 이문후는 곧바로 놈을 향해 다가갔다.

    푸욱! 푸욱!

    “끼에에엑!”

    그는 자이언트 랫의 옆구리를 찔렀다. 마음 같아서는 더 치명적인 곳에 상처를 만들고 싶었지만, 조금 더 안전하게 피해를 주는 걸 택했다.

    이건 게임이 아니었다.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가죽이 너무 질겨.’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치명상을 입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휘리릭!

    그때, 무언가가 그의 발에 감겼다.

    낯선 감촉에 깜짝 놀라서 눈을 돌리자, 검고 기다란 게 들어왔다.

    ‘꼬리?’

    검은 밧줄 같은 건 자이언트 랫의 꼬리였다.

    놈은 공격을 받는 와중에 꼬리를 휘둘렀고, 그의 발목을 붙잡으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크윽!”

    우악스러운 힘에 절로 몸이 끌려나갔다.

    아무리 근력이 높다고 하더라도 몸무게에서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

    터엉! 터엉!

    이문후의 발을 휘감은 놈은 곧 그를 흔들었고, 균형을 잃은 그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문후야!”

    지켜보던 정민석이 바로 튀어나갔다.

    아무리 쥐가 징그럽다고는 하지만, 친구의 위기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저리 꺼져!”

    그는 몸을 던지며 자이언트 랫을 들이받았다.

    아무리 철비공을 펼치면서 몸을 던졌다고 하지만, 거대한 놈을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자이언트 랫은 괴성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끼에엑!”

    공교롭게도 정민석이 부딪친 곳은 조금 전에 단검을 찔러 넣었던 옆구리였다.

    다행히 정민석의 도움으로 꼬리를 풀 수 있었다. 하지만 무사히 빠져나온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런 공격 방식은 없었는데.’

    지금까지 수많은 자이언트 랫을 잡았다. 하지만 이렇게 꼬리를 사용한 놈은 처음이었다.

    ‘이건 자유 모드보다 더 하잖아?’

    자유 모드에 나왔던 놈들보다 더 변칙적인 움직임이었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 더 어렵게 느끼는 건지도 몰랐지만, 곧 마지막에 모니터에서 봤던 글귀가 떠올랐다.

    “리얼 모드!”

    리얼 모드가 시작된다고 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그때부터 시력이 좋아지고, 이상한 힘까지 얻은 것을 생각하면 그것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이 일이 생긴 것도…’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아무래도 이런 이상한 상황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다급한 정민석의 외침이 그를 일깨웠다.

    “괜찮아?”

    “어? 어. 괜찮아.”

    “빨리 이 새끼 좀 어떻게 해봐!”

    용기를 내서 뛰어들었지만, 징그러운 쥐를, 그것도 황소만 한 놈을 상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민석은 질겁하며 소리쳤고, 이문후는 상념을 떨쳐냈다. 지금은 앞에 있는 놈을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물러나!”

    그는 크게 소리치며 바닥을 박찼다.

    나한보를 밟기 무섭게 그가 빠르게 쇄도했다.

    “키에엑!”

    이상함을 느낀 자이언트 랫은 흉성을 토해내며 꼬리를 휘둘렀지만, 이문후는 어렵지 않게 놈의 공격을 피해냈다.

    터엉!

    꼬리를 피해 크게 뛰어오른 그는 놈의 등에 올라탔다.

    빳빳한 갈색 털이 마치 억새같이 거칠었지만, 오히려 잡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키이아아!”

    등위로 올라탄 인간의 행동에 놈은 더욱 광분하기 시작했다. 곧 미친 듯이 날뛰면서 이문후를 떨쳐내려고 노력했다.

    터엉! 터엉!

    놈은 일부러 벽에 몸을 부딪쳤다.

    하지만 이문후는 더욱 허벅지를 조이며 놈의 몸에 바짝 붙었다.

    ‘으윽. 무슨 냄새가!’

    역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감각이 20이 넘어가면서 후각 역시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흐읍!’

    호흡을 참은 그는 곧장 단검을 찔러 넣었다.

    파바밧!

    손끝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과 함께 자이언트 랫의 괴성이 뒤를 이었다.

    “멀리 떨어져!”

    “괜찮겠어?”

    “나는 걱정하지 말고. 뒤로 빠져!”

    “아, 알았어.”

    정민석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스스로가 아직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차라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이문후를 돕는 일이었다.

    쿠웅! 쿠웅!

    그가 빠지기 무섭게 자이언트 랫이 날뛰기 시작했다.

    놈은 위에 타고 있는 이문후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일부러 벽에 몸을 부딪쳤다.

    ‘크윽!’

    마치 로데오를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양 다리에 힘을 주며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그 끝은 불 보듯 뻔했다.

    “끼에엑!”

    거대 쥐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졌다.

    등에 탄 이문후도 필사적으로 단검을 찔러 넣었다. 높은 스탯을 기반으로 놈의 등에 달라붙으면서 계속 한 곳만 찌르자 오히려 자이언트 랫이 당황했다.

    ‘처음부터 이게 답이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이언트 랫의 움직임이 무뎌져만 갔다.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어렵지 않게 놈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버텨! 이제 저놈도 지쳤으니까.”

    “닥쳐!”

    “파이팅!”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민석은 이문후를 독려했다.

    그 말에 힘이 빠졌지만, 그보다는 거대 쥐가 더 힘들어했다.

    계속해서 날뛰던 자이언트 랫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하지만 놈도 포기하지 않았다.

    연신 몸을 뒤흔들던 놈은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자이언트 랫 역시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등에 올라탄 이문후는 계속해서 한 곳만 노렸고, 점점 상처가 깊어지자 결단을 내린 것이다.

    “흐읍!”

    하지만 이문후는 놈의 움직임을 먼저 눈치채며 그대로 뛰어 내렸다. 감각이라는 스탯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찌이익!”

    쓰러진 놈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과 같은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겁을 먹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압!”

    이문후는 다시 나한보를 밟으며 자이언트 랫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다가간 그는 놈의 등을 향해 뛰어올랐고, 뼈까지 드러난 상처를 확인하며 다시 단검을 찔러 넣었다.

    “찌에에엑!”

    처절한 괴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놈은 더 이상 반항을 하지 못했다.

    힘이 빠질대로 빠진 상태였다.

    거기에 척추뼈에 큰 상처를 입은 만큼 움직임도 제약됐다.

    “끄르르르!”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공격을 허용한 자이언트 랫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움직임을 멈췄다.

    “후우. 후우.”

    “와! 씨발, 결국에는 죽였어?”

    정민석은 보스몹을 처리한 이문후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거친 숨을 몰아쉬던 이문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수도의 지배자를 쓰러뜨렸습니다.]

    [다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경험치 구슬이 완성됐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경험치를 얻었다. 하지만 위험했던 과정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보상은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방심할 수 없겠는데?’

    방금 처리한 놈은 그가 알고 있던 몬스터였다.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하는지, 어떤 습성이 있는지 대강이나마 파악하고 있었지만,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놈은 새로운 형태의 공격을 시도했다.

    정민석이 제때 개입하지 않았다면 곤욕을 치렀을지도 몰랐다.

    앞으로 계속 던전에 들어올 생각을 가지고 있던 만큼 마냥 쉽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뭐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어? 아니야.”

    “어디 다친 건 아니지?”

    “아니야. 그냥 생각보다 여기가 더 위험한 것 같아서.”

    “… 하긴.”

    정민석도 이문후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과 현실은 엄연히 달랐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것 같은 이문후도 고전을 한 걸 보면 던전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했다.

    “그만 나가자.”

    “알았어.”

    “어? 잠깐만! 저거 가죽 같은데?”

    자이언트 랫은 큰 가죽을 남겼다.

    떨어진 물건을 확인한 정민석은 놈이 남긴 가죽을 주워들었다. 지금까지 얻었던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놈이었다.

    “이 정도면 옷도 만들겠는데?”

    “괜찮네.”

    보상이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옷이나 다른 장비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얻기 위해서 안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재료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주변을 정리한 그는 하수도의 끝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곳에 남아 있는 보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자다! 금속인데? 이거 뭐야? 금이야?”

    지금까지 봐왔던 나무 상자와는 재질이 달랐다.

    누리끼리한 외형은 처음 봤지만, 안타깝게도 금은 아니었다.

    “동 같은데?”

    “구리?”

    “대충 그런 것 같아.”

    철 상자보다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나무로 된 상자보다는 확실히 좋아 보였다.

    하지만 쉽사리 손을 뻗을 수 없었다.

    “뭐해?”

    “어?”

    “열어 봐!”

    “… 내가? 괜찮겠냐?”

    “네가 잡은 거잖아. 설마, 나한테 넘기려고 했던 건 아니지?”

    “…….”

    “나도 양심이 있지. 한 게 뭐가 있다고!”

    정민석은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버스를 타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할 판이었다. 여기에서 굳이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이문후는 결정을 내렸다.

    정민석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안전한 사냥을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힘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하긴 무슨. 내가 더 미안하지.”

    이문후는 동으로 된 상자에 손을 뻗었다.

    동시에 상자가 열리면서 시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쏴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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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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