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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12화 (12/126)

제 12화

변수

나름 운동을 하고 거친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문후였지만,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었다. 하물며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씨발!”

이문후는 짧은 욕설과 함께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주저앉았다.

체더월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플레이를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현실에서도 똑같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민석에게 버스를 태워준다고 했던 것도 같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던전에서 다른 사람과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다른 사람들과 겹칠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어.’

예상하지 못한 만남.

더군다나 이렇게 원하지도 않았던 일까지 벌어질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사람을 상대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경악할 사실은 각성한 사람을 죽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한보와 경험치 구슬을 얻은 이문후는 그제야 죽은 중년인이 득달같이 달려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사람도 그걸 알고 있었던 거겠지? 던전을 클리어하는 보상보다는 플레이어를 잡는 게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다는 걸?’

미리 죽은 사람을 떠올리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처참하게 죽은 중년인의 모습을 마주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이문후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일이었어.’

조금씩 흔들리던 마음이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그는 생각보다 쉽게 안정시킨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처음에는 절로 몸이 떨려왔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렇게까지 정신력이 좋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건곤대나이라는 힘이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무공 때문인가? 아니면… 그동안 죽인 고블린 때문에?’

고블린을 죽이면서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 줄어든 건지도 몰랐다.

어떤 이유든 변한 듯한 스스로가 달갑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멍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겠지.”

상대는 흉기를 가지고 달려들었다.

만약 조금만 머뭇거렸어도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중년인이 아니라 그였을지도 몰랐다.

애써 마음을 다잡은 이문후는 중년인을 뒤로하고 나무 상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크윽.”

아릿한 고통에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발을 떼기 무섭게 단검에 찔린 허벅지에서 강한 통증이 전해졌다.

‘이게 문제네.’

생각보다 큰 상처가 걱정이었다.

이대로라면 다른 던전을 공략할 수 없었다.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직 다른 가능성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고통을 참아내며 나무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보상을 손에 넣었다.

[조잡한 천 조각을 손에 넣었습니다.]

[스킬, 회복을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획득하였습니다.]

‘회복이라고?’

[회복]

원래의 좋은 상태로 되돌아오기 위한 능력으로 상처는 물론이고, 체력까지 회복 할 수 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회복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 회복(Lv 1) : 내공/마력을 이용해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손에 넣은 스킬은 지금 딱 필요한 능력이었다. 다만, 곧바로 스킬을 바꾸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었다.

‘스킬을 장착할 곳이 없다는 게 문제인데.’

회복을 착용하기 위해서는 건곤대나이를 대신해야만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스킬 슬롯을 하나 더 해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킬 슬롯을 해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건곤대나이를 대신해서 회복을 끼워 넣었다.

‘흐음.’

순식간에 가지고 있는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활성화된 잠재력이 사라지면서 높아졌던 스탯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스탯이 너무 구린데?’

대부분이 7이나 8로 변했다.

이문후는 확연히 달라진 몸에 놀라며 상처에 정신을 집중했다.

파츠츠츠.

가지고 있던 기운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내공이 사라지면서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지만, 모든 상처를 회복할 수는 없었다.

‘건곤대나이를 빼내면서 내공이 줄어든 건가?’

확실히 건곤대나이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거기에 겨우 추슬렀던 불편한 감정까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라진 변화에 놀란 이문후는 곧바로 게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는 ‘회복’이라는 스킬을 착용하고 있어야겠지만, 되도록이면 건곤대나이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그가 나오기 무섭게 곧바로 게이트가 사라졌다.

안에는 두 명이 쓰러져 있었지만, 게이트가 사라지면서 그들 역시 자취를 감췄다.

‘안에서 죽으면… 그대로 사라지는 건가?’

흔적도 남기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혹시나 그들이 밖으로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던전 안에서 더 조심해야겠는데?’

그렇다고 이런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다른 각성자들이 더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같은 각성자를 처리하면서 다른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엄청 치열해지겠는데?’

이문후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어쩌면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들을 더 경계해야 할지도 몰랐다.

“후우.”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에 덩그러니 놓인 그는 다시 회복 스킬 대신에 건곤대나이로 능력을 바꿨다.

다시 달라진 감각과 함께 아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곧 허벅지에서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입고 있던 옷이 붉게 물들었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밖으로 나온다고 상처가 다 치료되는 건 아니었네.’

이번에는 너무 많은 일을 겪은 것 같았다.

그만큼 얻은 게 많았다. 새롭게 경각심을 가진 그는 확인하지 못한 다른 능력을 살폈다.

[나한보(羅漢步)]

번뇌와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려는 나한의 걸음을 형상화한 보법.

소림 무공의 본이 되는 보법으로, 직선적인 단순한 움직임은 빠른 이동이 가능하다.

- 나한보(1成) : 내공을 이용해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새로운 스킬이 나쁘지 않았다.

이런 보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지만, 부족한 스킬 슬롯이 아쉬웠다.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손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중요한 것은 이런 능력을 얻었다는 점이었다.

비록, 같은 사람을 쓰러뜨리면서 얻은 능력이었지만, 던전 내에서도 이런 식의 스킬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얻은 능력을 확인한 이문후는 남은 경험치 구슬을 살폈다.

모인 구슬은 모두 4개였다. 기존에 레벨 경험치에 투자했던 2개까지 생각하면 모두 6개.

그는 남아 있는 구슬을 모두 레벨에 투자했다.

생각보다 힘든 싸움을 벌였지만, 2레벨로 올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이문후]

레벨 : 1(60%).

상태

- 생명력 : 83%.

- 내공 : 5%.

- 근력 : 15 / 체력 : 15 / 집중력 : 15.

- 동체 시력 : 15 / 반응속도 : 15 / 감각 : 15.

장착 능력(1/5)

- 건곤대나이(1成).

소유 능력

- 구르기(Lv 1).

- 회복(Lv 1).

- 나한보(1成).

경험치 구슬 : 0개.

‘생명력이 많이 줄었네.’

그나마 회복을 사용하고 난 이후가 저 정도였다. 거기에 내공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다시 한번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해.’

이미 앞에 있는 기회를 놓친 그인지라,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곧 엄청난 변화를 겪겠지?’

앞으로가 문제였다.

던전은 초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장소였기 때문에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많은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상념을 떨쳐낸 그는 골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

“크윽.”

이문후는 신음을 흘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내공에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건곤대나이는 빠르게 내공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50%가 넘는 내공이 채워졌다.

다시 한번 건곤대나이의 힘이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방으로 들어선 이문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거기에 감각이 높아지면서 냄새가 더 잘 느껴졌다.

‘민석이는 자고 있나?’

고블린에게 물리고, 조폭들과 대치한 정민석도 상당히 피곤했을 게 분명했다.

곧 동이 틀 시간에 멀쩡하다는 게 더 이상했지만, 안으로 들어선 이문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거지?’

어두운 방 안이 너무 조용했다.

예리해진 감각은 정민석의 부재를 알려왔고, 이상함을 느낀 그는 곧바로 불을 켰다.

“민석아?”

좁은 원룸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폭들에게 린치를 당한 정민석은 자리에 없었고, 곧바로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문득 스치는 생각에 그는 곧장 화장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정민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미친 새끼!”

본능적으로 그가 움직였을 만한 곳이 떠올랐다.

불안함을 느낀 그는 곧바로 정민석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역시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고블린을 처리하고 각성을 했다는 말에 정민석도 그 힘을 얻기 위해서 움직인 것 같았다.

누구보다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이문후는 뒤늦게 후회했다. 그의 성격을 너무 간과한 것이 잘못이었다.

‘가만히 있을 놈이 아니었어!’

문제는 던전의 상황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인지라 더욱 심각하게 느꼈다.

만에 하나라도 그 중년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민석이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이 병신! 조금만 기다리라니까!”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 않더라도 혼자 움직이는 것은 위험했다.

아무리 정민석이라지만, 여러 고블린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는 정상이 아니었다.

이문후는 곧장 방을 빠져나왔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곧장 회복 스킬을 사용하자 고통이 줄었다.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스킬을 다시 건곤대나이로 바꾼 그는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근처에 있을만 한 던전을 떠올리며 분주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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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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