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화
변수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해 보이던 곽문상의 호흡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구겨진 표정과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만 봐서는 꽤나 지친 것 같았다.
그는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문후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갑자기 지쳤다고?’
그 의도가 너무 뻔히 보였지만, 이문후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장단에 놀아주려는 듯이 말했다.
“위험해요!”
“… 크윽.”
조금 전까지 고블린 전사의 품을 너무나 쉽게 파고 들었던 곽문상이었지만, 이번에는 아슬아슬하게 놈의 공격을 피해내며 휘청거렸다. 그리고 뒤에 있는 이문후를 향해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
“너무 지쳤습니다. 내가 이놈 이목을 끌고 있을 테니까, 뒤에서…”
“저, 저는…”
“사례는 하겠습니다. 제발요! 도와주세요!”
간절한 목소리에 이문후는 천천히 고블린 전사를 향해 움직였다. 겁에 잔뜩 질린 듯한 그의 모습에 곽문상은 대강이나마 그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냥 막 들어온 놈이잖아?’
많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걸로 봐서 얼떨결에 이곳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앞에 있는 놈의 상태를 확인한 그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냈다. 아무래도 큰 어려움 없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놈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떡하지? 그냥 보상이 있는 곳으로 유인하는 게 좋겠지?’
곽문상이 그의 처우에 관해서 고민하는 사이, 머뭇거리며 움직이던 이문후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중년인을 향해 달려드는 고블린 전사를 향해 내던졌다.
“끼이아아!”
일부러 힘을 줄이며 주의를 끌자, 고블린 전사가 울부짖었다. 하지만 놈의 관심은 곽문상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부우웅. 부우웅.
놈은 연신 몽둥이를 휘두르며 그를 위협했다. 하지만 곽문상은 일부러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굳이 일을 어렵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이곳에 들어온 놈도 도와준답시고 돌멩이를 던져주고 있었기 때문에 앞에 있는 고블린 전사의 시선을 돌리면 움직일 생각이었다.
퍼억!
그의 의도대로 이문후는 다시 돌을 던졌다. 그리고 고블린 전사의 시선이 돌아갔다.
“끼아아아!”
고블린 전사가 이문후를 향해 움직였다.
곽문상은 그런 놈의 뒤를 노리며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타앗!
그의 몸이 순식간에 고블린 전사와 가까워졌다.
뒤를 잡은 그는 연신 단검을 찔러 넣었고, 고블린 전사의 등이 붉게 물들었다.
‘맞네. 보법이었어.’
등 뒤에서 많은 공격을 허용한 고블린 전사가 쓰러졌다.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한 놈은 곧 흩어지며 자취를 감췄다.
먼저 죽은 고블린들처럼 사라지는 모습에 곽문상은 안도했고, 이문후는 놀랐는지 그대로 얼어붙었다.
“후우. 고맙습니다.”
“예?”
“큰 도움이 됐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그냥 돌만 던진 게 전부라…”
“놈의 주의를 끌어준 것만으로도 기회를 잡을 수 있었거든요. 정말 고맙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는 곽문상의 모습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그에게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 자체가 보통 심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왔다.
‘확실히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외형은 평범했지만, 가진 힘은 평범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움직인 모습만으로도 상당한 힘을 얻은 것 같았다.
‘이 던전이 처음이 아닌 건가? 아니면 나처럼 따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플레이어로 각성을 한 사람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직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알지 못했지만, 지금 만난 중년인의 모습만 봐서는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 같이 들어온 아이가 고블린들 손에 죽었거든요.”
“아, 그럼 그 시체가…”
“예. 안타깝게도… 후우.”
먼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중년인의 말에 이문후는 말을 아꼈다. 그리고 중년인은 근처에 있는 나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대신 보상을 드리죠.”
“보상이라니요?”
“저 나무 상자를 열면 이곳에 온 대가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나무 상자요?”
“예. 유용한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유용한 능력이라면 어떤…”
이문후는 일부러 모른 체를 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어리숙한 반응에 곽문상은 사람 좋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런 던전은 처음인가 봐요?”
“네. 호기심에 손을 뻗었는데 갑자기 들어와서요.”
“그렇군요. 저 상자를 열면 신비로운 힘을 얻을 수 있어요. 이번에 저를 도와줬으니까, 답례로 드리죠.”
“아니에요. 아닙니다. 제가 한 것도 없는데요.”
“앞으로 함께 하면 좋지 않겠어요?”
“함께요?”
“예. 혼자서는 힘든 곳이거든요. 이런 던전은.”
같이 힘을 합치자는 그의 말에 이문후는 머뭇거렸다.
순간 곽문상의 말에 흔들린 것이다. 대충 그가 어떤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힘을 합치는 것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곽문상은 순진한 그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나무 상자를 양보했다.
“부담 갖지 마세요. 앞으로가 중요하니까요.”
“그럼… 감사합니다.”
“그래요. 빨리 열어 보세요.”
인사를 건네며 나무 상자를 향해 다가가는 이문후의 모습에 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이문후는 별다른 생각 없이 등을 돌리며 좋은 기회를 줬고, 의도대로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곽문상은 단검을 들었다. 그리고 이문후가 나무 상자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바닥을 박찼다.
쉬이익.
단검을 앞세운 중년인은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은밀하면서도 빠른 동작으로, 순식간에 뒤를 잡은 그는 그대로 단검을 찔러 넣었다.
쉬이익.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
이미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이문후는 감각 스탯의 역할을 확인하면서 몸을 비틀었다.
촤악!
아슬아슬하게 스친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그는 곧바로 주먹을 뻗으며 중년인의 얼굴을 후려쳤다.
뻐억.
“크윽.”
“뭡니까?”
“이 새끼, 힘을 숨기고 있었잖아?”
곽문상은 아찔한 고통에 놀라워하며 이문후를 노려봤다.
완벽하게 뒤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앞에 있는 놈은 그의 공격을 너무 쉽게 피해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제대로 된 반격까지 가했다.
“나를 속였구나!”
“먼저 속인 건 그쪽이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네.”
“…….”
“앞에서 죽은 사람. 당신 짓이지?”
“어떻게 알았지?”
“여기에서 칼을 가진 사람은 당신밖에 없었거든.”
고블린은 이렇다 할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고블린 전사만 몽둥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죽은 사람의 몸에는 칼에 찔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상처의 대부분이 등 뒤에 있었다.
“영악한 놈이구나!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체를 했다고?”
“당신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으니까.”
“이런 던전은 처음이 아닌 거지?”
“굳이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천천히 자세를 잡으며 단검을 다잡는 이문후의 모습에 곽문상은 마른침을 삼켰다.
기습적인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해낸 걸로 봐서는 쉬운 놈이 아니었다.
‘죽은 놈을 숨겨놓는 거였는데.’
뒤늦게 후회가 됐다. 이미 모든 것을 눈치채고 있던 이문후였기 때문에 기습적인 공격을 막아낸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을 다잡으며 기회를 엿봤다.
비록, 방심해서 기회를 놓쳤다지만, 제대로 된 힘을 낸다면 앞에 있는 놈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문후는 이미 그의 행동을 예상했기 때문에 기습을 피할 수 있었던 게 분명했다.
“하아아!”
커다란 기합을 내뱉은 그는 곧장 이문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예의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상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끝이다!”
이전보다 배는 빠르게 움직인 것 같았다.
모든 힘을 폭발시킨 곽문상은 앞에 있는 놈의 죽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찔러넣은 단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퍼억. 퍼억.
오히려 그는 이문후가 내지른 주먹에 얻어맞으며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곧바로 코피가 터졌지만, 그런 고통보다 이문후의 반응이 놀라웠다.
‘어떻게 나한보를 사용한 나를!’
보법을 펼치면서 움직였지만, 너무나 수월하게 공격을 피해낸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정확하게 반격까지 날렸다.
얼얼한 고통을 뒤로한 그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비교적 높은 체력과 근력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는데.’
그는 이문후의 눈치를 살폈다.
한 번의 부딪침만으로 상대와의 격차를 깨달았다. 다만, 신중하게 움직인 만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냈다.
‘뭐야? 단검을 가지고 있었잖아? 근데 왜 단검을 쓰지 않는 거지?’
문득 떠오른 의문에 중년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앞에 있는 놈은 단검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쓰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거에 익숙하지 않은 거야!’
그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발적인 살인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과감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앞에 있는 놈보다 배는 더 살아왔던 그조차도 힘든 일을 앞에 있는 젊은 놈이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단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곽문상은 다시 이문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커다란 괴성과 함께 빠르게 달려오는 곽문상.
쉬이익. 쉬이익.
미친 듯이 단검을 휘두르는 그의 행동에 이문후는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했다.
뛰어난 동체 시력과 빠른 반응속도는 나한보를 펼치며 움직이는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퍼억. 퍼억.
오히려 예리한 카운터를 먹이며 곽문상을 떨쳐냈다.
하지만 피를 흘리는 곽문상의 표정은 생각과 다르게 밝아 보였다.
“크크큭. 손에 든 건 장식품이냐?”
“…….”
따로 단검을 사용하지 않는 이문후의 모습에 그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바닥을 박차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
괴성과 함께 단검을 앞세우는 그의 모습은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문후가 공격을 피하기 무섭게 그는 몸을 날렸다.
어깨를 앞세우며 그대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였고, 이문후는 그의 돌진을 막아냈다.
‘흐음.’
생각보다 상대의 근력이 높은 것 같았다.
무시할 수 없는 힘에 뒤로 밀려났지만, 그는 곽문상을 떨쳐내기 위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크흑!”
등에서부터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곽문상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라면 먼저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앞에 있는 놈이 주먹만 쓴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모질지 못한 놈은 죽는 거다!”
힘겹게 버티던 그는 크게 소리치며 단검을 찔러 넣었다.
“크흑.”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
신음을 토해낸 이문후는 그대로 무릎을 들어 올리며 곽문상의 얼굴을 찍었다.
뻐억!
고통 속에서도 공격을 감행했지만, 곽문상은 악착같이 버텼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죽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한 거다! 이 새끼야!”
구시렁거린 그는 이문후의 허벅지에 박힌 단검을 뽑아 들었다.
다시 한번 느껴지는 통증에 이문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은 허리를 붙잡고 있는 곽문상을 막아내는 게 먼저였다. 그에게서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퍼억. 퍼억.
이문후는 연신 등을 내리찍었다.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지만, 곽문상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독종이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는 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려고 했다. 뒤로 젖힌 팔과 붉은 피로 물든 단검을 앞세우며 이문후의 배를 노렸다.
“씨발!”
그의 의도를 파악한 이문후는 어쩔 수 없이 단검을 내리찍었다.
“끄으윽.”
마지못해 휘두른 단검이 정확히 중년인의 목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낯선 소리가 상대의 죽음을 알려왔다.
[스킬, 나한보(羅漢步)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2개 획득하였습니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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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