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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10화 (10/126)
  • 제 10화

    힘의 비밀

    “민망해서 둘러대는 거지?”

    “정말이라고. 환골탈태를 경험했… 다니까?”

    변명처럼 말을 내뱉었지만, 그 상황은 환골탈태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이문후도 몸속에 있는 노폐물이 빠져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믿는 듯한 눈치가 아니었다.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던 정민영은 퉁퉁 부은 정민석의 모습에 흥분하며 그의 말을 끊었다.

    “뭐야? 얼굴이 왜 이래? 괜찮을 거라며?”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근데, 얼굴이 왜 그렇게 엉망이냐고?”

    “그놈 얼굴이 원래 엉망이었잖아.”

    “오빠는! 지금 농담할 분위기야!”

    마냥 얌전해 보이던 정민영도 다친 정민석의 모습에 거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날선 동생의 모습에 정민석은 그녀를 진정시키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이 정도면 그 새끼들은 어땠을 것 같냐?”

    “엄마랑 약속했잖아! 다시는 안 싸운다고.”

    “그럼 어떡해? 그놈들이 다짜고짜 달려드는데?”

    “이 등신! 덩치는 산만 한 게. 맞고 다니고!”

    “후우.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냐.”

    속상해하는 동생의 모습에 정민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말을 해줘도 믿지 않을 것 같았다.

    현실적인 남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이문후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뒤늦게 그 모습을 눈치챈 정민영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당분간은 여기에서 지내.”

    “왜?”

    “엄마 걱정하시잖아! 붓기 좀 가라앉으면 그때 와. 엄마한테는 내가 잘 말해놓을 테니까.”

    “그, 그래. 그게 좋겠네.”

    정민석은 동생의 말에 수긍했지만, 이문후는 황당한 눈으로 두 남매를 바라봤다.

    “누가 보면 니들 집인 줄 알겠다? 누구 마음대로?”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며칠만 신세 질 게.”

    “그래. 오빠. 이 인간이 갈 데가 어디 있어?”

    뻔뻔한 두 사람의 모습에 말문이 막혀왔지만,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두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는 남매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조, 조건? 우리 사이에 무슨 조건?”

    “너 말고. 민영이 너.”

    “나? 나한테 시킬 게 뭐데? 설마?”

    조심스럽게 가슴을 가리는 그녀의 모습에 이문후는 얼굴을 찌푸렸다.

    “미친… 크흠.”

    “이해한다. 쟤가 원래 정상이 아니었어. 이제야 진면목이 드러나는 거지.”

    “뭐래?”

    “아무튼 민영이 너, 패션 디자인과지?”

    “갑자기 그건 왜?”

    “이걸로 뭘 좀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대뜸 건네는 낯선 재질의 천에 이민영은 떨떠름해 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상당히 더러워 보였지만, 꽤나 진지한 이문후의 반응에 섣불리 답을 할 수 없었다.

    “뭘 만들어달라는 거야?”

    “바지? 아니, 속옷 같은 거?”

    “… 언제는 환골탈태라더니.”

    “아니, 그게 아니라…”

    “웬만하면 그냥 하나 사지? 이걸로 속옷을 만드느니 사 입는 게 더 좋아.”

    “그런 거 아니라고. 이 천은 보통 천이 아니고 특별한···”

    “알았어. 엄마한테 부탁해 볼 게. 나보다는 엄마가 더 익숙할 테니까.”

    정민영은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문후도 충분히 민망한 상황일 거라는 생각에 나름 배려를 한 것이다.

    오히려 그의 말을 끊은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무엇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부탁을 할 이문후가 아니었다.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괜히 부담 갖을까 봐 그런 건가?’

    이문후의 의도를 착각한 정민영은 말을 아꼈다. 하지만 갑자기 변해버린 현실을 깨달으며 물었다.

    “근데, 이제 어떡해?”

    “어떡하긴? 집으로 가야지.”

    “나 혼자 가라고?”

    “너는 얼굴이 무기라…”

    “언제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며? 거기에 오빠, 너는 같이 갈 수 없잖아? 그러다가 엄마한테 들키면 어떡해?”

    “그건 그렇지. 엄마한테 이 모습을 들키는 날에는… 문후야?”

    “아, 이 귀찮은 것들.”

    “사람들만 있으면 알아서 피해 다니니까 상관없는데, 이상한 놈들이 활보하고 다니니까 어쩔 수 없잖아.”

    “뭐래? 돼지가!”

    정민영은 그 목소리에 발끈하며 소리쳤지만, 정민석은 개의치 않았다.

    “근데, 네가 없어도 괜찮을까? 어머니하고 민영이만 있으면…”

    “내가 뭐 앤가? 엄마는 오히려 좋아하실 거야. 오랜만에 쉴 수 있으니까.”

    “여차하면 바로 연락해! 곧바로 뛰어갈 테니까..”

    “그 얼굴로 나타났다가는 엄마가 더 놀라지!”

    “문후가 있잖아. 뭐가 걱정이야?”

    “내가 네 종이냐? 키나 줘.”

    “조심히 갔다 와.”

    차 키를 넘겨받은 이문후는 정민영과 함께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민석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환골탈태라고? 정말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거야?’

    오주완과 싸웠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 이문후의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환골탈태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었다는 말에 정민석도 호기심이 일었다.

    ‘고블린을 잡으니까 각성을 한다고 했지?’

    잠깐 고민하던 그는 곧바로 이문후의 컴퓨터를 켰다.

    여전히 의자에서는 역한 냄새가 올라왔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각성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게 더 중요했다.

    ***

    무사히 정민영을 집까지 바래다준 이문후는 주변을 살피며 시간을 확인했다.

    ‘3시 13분이라.’

    아직 동이 트려면 시간이 남았다.

    이대로 원룸으로 되돌아가는 것보다 근처에 있는 다른 일회성 던전을 클리어하는 게 좋았다.

    이런 상황을 그만 알고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움직일 경우를 고려해야만 했다.

    ‘체더월을 한 사람들은 나 혼자가 아니니까.’

    손에 넣은 경험치 구슬과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떠올린 그는 결정을 내렸다.

    최대한 빨리 레벨을 올리는 게 좋았다.

    - 늦을 거야. 쉬고 있어라.

    따로 정민석에게 문자를 보낸 그는 기억을 더듬으며 근처에 있는 던전을 찾았다.

    주변에는 여전히 많은 던전이 남아 있었다.

    정민석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도 일회성 던전이 있었고, 이문후는 그곳으로 움직였다.

    으슥한 골목의 구석에 있는 작은 게이트.

    바닥에 떨어진 많은 담배 꽁초들과 더러운 자국들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직도 여기에서 담배를 피나?’

    인근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소였다.

    복잡한 골목 구석이라서 어른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 숨어서 담배를 피우기에는 제격이었다.

    ‘그러고 보면 체더월이 대단하긴 대단했네.’

    그는 다시 한번 그 게임의 디테일에 감탄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작은 부분도 모두 구현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 올 걸 예견하고 출시된 거겠지?’

    이제는 모든 게 우연인 것 같지는 않았다.

    따로 인간들을 위한 장치인 것 같았지만, 이런 장치를 활용하는 게 더 중요했다.

    이문후는 곧바로 게이트에 손을 뻗었다.

    스르륵.

    그의 몸은 순식간에 게이트로 빨려 들어갔다.

    예의 익숙한 동굴이 눈에 가득 들어오자, 그는 몸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을 찾았다.

    ‘뭐야? 왜… 아무도 없지?’

    입구 쪽에서 두 마리의 고블린이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던 상황과는 너무 달랐다.

    ‘무조건 게임에서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가?’

    조금씩 수를 줄이면서 움직일 생각이었지만, 계획이 틀어졌다. 어차피 고블린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상대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통로로 놈들을 유인하면 마주하는 놈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겨우 두 마리 정도의 고블린과 부딪쳤기 때문에 이문후는 놈들을 찾아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저건 뭐야?’

    그렇게 안으로 움직이던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눈앞에 한 사람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고블린이 아닌 사람이었다.

    그는 동굴 벽에 기댄 채로 쓰러져 있었지만, 주변이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붉은 피로 흥건한 주변과 축 늘어진 모습만 봐서는 이미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장면에 이문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여기에 들어왔다가… 죽은 건가?’

    나체로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한 이문후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심장이 찔린 것 같은데.’

    상당히 처참한 광경이었지만,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잘못하면 그 역시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상당히 앳돼 보이는 남자애였다.

    많아 봐야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놈이었지만, 여기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가지게 만들어 주는 모습이었다.

    이문후는 맨몸으로 쓰러져 있는 그 모습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린 학생이 죽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확인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 했나?’

    죽은 학생의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이문후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가 아니었나?’

    아무리 자신감이 넘치는 나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에 혼자 들어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주변에 다른 고블린들이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

    아무래도 다른 일행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문후는 다시 안으로 향했다.

    조금 더 걸음을 빨리하며 움직이자,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터엉. 터엉.

    ‘누가 싸우고 있잖아?’

    조금 전에 발견한 죽은 학생과 관련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새로운 기척을 확인한 그는 더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고블린들과 싸우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쉬이익. 푸욱.

    “끼아아아!”

    “죽어. 이 새끼야.”

    “끄륵.”

    다른 고블린을 쓰러뜨린 곽문상은 사라지는 고블린의 시체를 확인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쉴 겨를이 없었다.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빈틈을 노리며 고블린 전사가 달려들었다.

    부우웅. 퍼억.

    “크흑.”

    고블린 전사의 몽둥이에 곽문상은 크게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자세를 다잡으며 고블린 전사를 경계했다.

    “이 고블린 새끼. 죽어!”

    크게 소리친 그는 곧바로 고블린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짧은 순간에 엄청난 속도를 내보이면서 어렵지 않게 고블린 전사의 품을 파고들었다.

    평범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문후는 중년인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보법 같은 건가?’

    짧은 순간에 폭발적인 속도를 내보이는 움직임은 흔하지 않았다.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능력은 스킬 창에 장착할 수 있는 보법이나 이동 기술뿐이었다.

    아무래도 괜찮은 보법을 손에 넣은 것 같았다.

    순식간에 고블린 전사 품으로 파고든 중년인은 그대로 손에 쥔 단검을 찔러 넣었다.

    “키아아!”

    일격을 당한 전사는 고통스러워하며 곽문상을 뿌리쳤다.

    위협적인 공격에 곽문상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지만, 입구 쪽에서 나타난 이문후를 발견하며 절로 얼굴을 구겼다.

    ‘저 새끼는 또 뭐야? 언제 들어 온 거지?’

    낯선 자의 등장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이제 한 놈만 더 잡으면 끝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다른 놈이 개입한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젠장, 개나 소나 다 들어와!’

    숨어서 지켜보는 이문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구겨진 표정을 감췄다.

    '차라리 잘 됐어! 이놈들만으로는 부족했는데.'

    어수룩한 놈이라면 오히려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앞에 있는 고블린 전사를 바라본 그는 일부러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면서 이문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허억. 허억. 거기… 누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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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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