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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9화 (9/126)
  • 제 9화

    힘의 비밀

    주저앉은 오주완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이문후를 노려봤다.

    “끄으으. 이러고도 너희들이 무사할 것 같냐?”

    “무사할 것 같은데?”

    “개자식! 기다리고 있어라. 곧 다시 찾아와서 죽여 줄…”

    “이 새끼. 원래 이렇게 덜떨어진 놈이었냐?”

    이문후는 정민석을 향해 되물었다.

    오주완이라는 이름이 기억에는 없었지만, 이제는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그런 말을 하면 내가 가만히 두겠냐?”

    “그래서 뭐? 어떡하려고?”

    “다시 찾아오지 못하게 만들어야겠지?”

    “크큭. 미친 새끼. 허세는!”

    이문후의 담담한 말에 오주완은 실소를 흘렸다.

    그냥 싸움만 잘하는 일반인의 말일 뿐이었다. 아무리 앞에 있는 놈이 날고 기는 놈이라지만, 사람을 해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건달이라고 불리는 조폭들과 일반인은 마음가짐에서 차이가 있었다. 처음 이 세계로 들어온 놈들도 누군가를 패고, 협박하는 것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다고 내가 눈 하나 깜짝할 줄 알아?”

    “안 하면 마는 거지. 우선 수금 먼저 하자고.”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새끼야!”

    이문후는 주저앉은 오주완의 몸을 더듬으며 지갑을 찾았다. 그리고 두둑한 지폐를 보며 놀라워했다.

    “조폭 새끼들이 무슨 현금이 이렇게 많아?”

    “죽고 싶냐? 그거 건드리면… 크흡.”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지?”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

    뒤통수를 때리는 이문후의 행동에 오주완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문후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살기 가득한 시선을 무시하며 지갑에 있던 지폐를 모두 꺼냈다.

    “이건 편의점을 부순 보상비와 위자료라고 하자.”

    “씨발, 넌 정말 죽… 뭐, 뭐 하는 거야?”

    “날 죽인다는 놈을 그냥 보낼 수는 없잖아?”

    “미친… 하지 마라! 죽는다. 너 진짜 죽여버린다?”

    “다음에 또 찾아오면 그때는 이걸로 안 끝난다.”

    “하지 말라고!”

    우두둑.

    “끄아아아!”

    이미 무력화된 오주완은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이문후는 인상을 잔뜩 구긴 채 기괴하게 비틀린 그의 팔에서 손을 뗐다.

    “미쳤어? 너 왜 그래?”

    “이런 새끼들은 그냥 놓아주면 나중에 다시 온다고. 확실히 해둬야 이런 짓을 안 벌이지.”

    정민석은 매몰찬 이문후의 모습을 낯설어했고, 오주완은 악에 바친 소리로 외쳤다.

    “죽여버릴 거야. 이 개새끼!”

    “멍청한 새끼. 꼭 한 번 말하면 듣지를 않아요.”

    “씨발, 하지 마! 하지 마!”

    “그럼 그딴 소리는… 지껄이지 말았어야지.”

    우두둑.

    “끄아아아! 어… 어억!”

    양팔이 뒤틀린 오주완은 바닥에 쓰러지며 고통스러워했다.

    처절한 외침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남은 조폭들도 그 모습에 벌벌 떨었다.

    형님이라고 부르던 오주완의 무기력한 모습에 그들은 마른침을 삼켰고, 이문후는 정신을 차린 놈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산은 제대로 해야지?”

    “저, 정산이라니?”

    “피해 보상을 해야지. 내가 너희들 때문에 얼마나 큰 손해를 봤는지 알아?”

    “…….”

    말도 안 되는 억지에 그들은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문후의 행동에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뜸 바닥에 떨어진 야구 방망이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조폭들을 향해 다가갔다.

    “맨손으로 팔을 부러뜨리는 건… 느낌이 더럽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한다? 이런 도구를 쓴다.”

    “왜, 왜 이러는 겁니까?”

    “말했잖아. 너희들 때문에 큰 손해를 봤다니까?”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걷어.”

    “예?”

    “성의를 보이라고. 성의를! 몸으로 때울래? 돈으로 대신할래?”

    당연히 돈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맨정신에 팔이 부러지는 것보다는 돈으로 대신하는 게 백배는 나아 보였다.

    이문후는 오히려 조폭들이 가진 돈을 털었다. 그리고 눈치를 살피는 조폭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에서 그치는데. 다음에 다시 만난다. 그럼 뭐다?”

    “…….”

    “뒤지는 거다! 알았냐?”

    “아, 알겠습니다.”

    “괜히 다른 놈들 끌고 오면 그때는 뭐다?”

    “뒤지는…”

    “내가 직접 찾아간다. 아마 쉽게 끝내지 않을 거니까 잘 생각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가 봐. 갈 때, 저 새끼 데리고 가고.”

    가볍게 교육을 끝내고 가보라는 말이 떨어지자, 조폭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었지만, 이문후는 너무나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뒤에 있는 정민석을 걱정하며 물었다.

    “몸은 어때?”

    “괜찮아. 근데, 어떻게 된 거야?”

    “뭐가?”

    “갑자가 저 새끼 팔은 왜…”

    “그때 느낀 게 많았거든. 괜히 참고 있어봤자 나한테 좋을 건 없더라고.”

    “…….”

    “그래서 이렇게 수고비까지 얻었잖아?”

    대뜸 팔을 꺾어버리는 이문후의 모습은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었던 이문후와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런 친구의 변화에 수긍이 갔다.

    ‘오주완이라는 새끼도 그 일에 연관된 놈이었지?’

    씁쓸해하는 정민석의 모습에 이문후는 무언가를 건넸다.

    조폭들에게 뜯어낸 돈이었다. 가뿐히 기백이 넘는 액수에 놀라워하자, 이문후는 반으로 나누며 말했다.

    “이건 네 수리비, 이건 내 수고비.”

    “미친!”

    “당분간은 편의점 닫아라. 저 새끼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고작 저 새끼들 때문에 문을 닫으라고?”

    “그 새끼들한테 쥐어 터진 놈이 누군데?”

    “수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거지. 다시 운동을 하면 저런 새끼들은…”

    “조폭이야. 가능할 것 같냐?”

    아무리 왕년에 날고 기었다고 하더라도 조폭을 상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문후야 알 수 없는 힘을 얻었지만, 정민석은 아니었다.

    정민석 역시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어떤 이유로 이문후와 이 정도의 격차가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처한 현실이었다.

    “그럼 어떡하라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계속 이렇게 개판으로 남겠냐? 정부에서도 알아서 움직이겠지. 그때가 되면 저놈들도 저렇게 막무가내로 움직이지는 못할 거고.”

    확신에 찬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라고 아무 대책이 없을 리가 없었다. 체더월에서는 정부가 다시 제 역할을 찾으며 사회가 안정됐고, 현실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것 같았다.

    ‘밖에 나온 놈들이 처리되기 그 전에 빨리 던전을 돌아야 하는데.’

    이제 첫날이었다. 혼란은 당연했지만, 그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곧 안정을 찾을 게 분명했고, 그렇게 되면 조폭들도 무작정 날뛸 수 없었다.

    어차피 지금의 이문후는 놈들이 날뛴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상대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대충 정리하고 가자.”

    “가다니? 어딜?”

    “민영이한테 가야지. 지금 혼자 기다리고 있다니까.”

    “가게는…”

    “수리비 받았잖아! 아니면 그거 다시 토해내던가.”

    정민석은 손을 내미는 이문후를 무시했다.

    그의 말대로 편의점을 지키고 있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어차피 며칠 정도는 장사를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앞으로 다시 찾아올 조폭들이 걱정이었지만, 이제 와서 상황을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정민석은 이문후의 말에 따랐다. 하지만 조금 전에 봤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근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뭐긴 뭐야? 네 힘이지! 너 혼자서 10명이 넘는 조폭을 쓰러뜨린다는 게 말이 되냐?”

    “…….”

    누구보다 이문후를 잘 알고 있는 정민석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문후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고, 정민석은 가만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갑자기 그놈들을 잡았더니, 눈에 이상한 게 보이더라.”

    “그놈들이라니?”

    “편의점에서 너 물었던 놈. 고블린.”

    “그게 무슨 개소리야?”

    “못 믿겠지? 내가 미친놈 같지?”

    “정말이냐? 눈에 뭐가 보이는 게 뭔데?”

    “… 내 전체적인 능력치. 그리고 손에 넣은 힘의 종류.”

    꽤나 진지한 그의 모습에 정민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문후의 말이 너무 황당하게 들렸지만,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이문후도 나름 고심하며 내린 결정이었다.

    어차피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믿을만한 사람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어차피 민석이 도움은… 필요하니까.’

    어차피 알려질 일이라면 빨리 밝히고, 친구의 도움을 구하는 게 좋았다. 던전을 돌면서 얻은 천 조각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조력자는 필요했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한 건 아니지?”

    “고블린한테 직접 물린 놈이 이걸 못 믿겠다고?”

    “그건 아닌데. 근데, 나는 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건데?”

    “무슨 개소리야?”

    “아니, 물렸으면 비슷한 힘이라도 생길 거 아니야? 거미에 물리면 거미줄을 뽑아내든가…”

    “그래서 고블린이 되고 싶다?”

    “미친놈아. 그런 뜻이 아니잖아?”

    정민석은 초인적인 힘을 내보인 이문후가 내심 부러웠다. 그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고, 이문후는 그를 안심시키듯 말을 이어갔다.

    “기다려 봐. 곧 관련된 정보들이 쏟아지겠지.”

    “정보라니?”

    “이제 하루도 안 됐잖아. 나야 우연찮게 각성했지만,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확실히 모르니까 기다려 보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좀 확실해지면 너도 각성을 하라고! 무턱대고 동조했다가 어떻게 되면 민영이랑 어머니는 누가 책임지라고?”

    “그건 너도…”

    “나는 혼자잖아.”

    정민석은 자신을 걱정하며 말한 이문후의 답에 말을 아꼈다. 그리고 그 반응을 확인한 이문후는 친구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어갔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내가 버스라도 태워 줄 게.”

    “버스?”

    “그래. 아직은 무리일 것 같은데, 조금만 힘을 더 키우면 그때 도와줄 수 있을 거다. 물론, 안전하다는 가정하에.”

    “그럼, 나도 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

    “아마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정민석도 고블린을 잡으면 플레이어로 각성을 할지도 몰랐다. 지금도 무리를 하자면 그를 도울 수 있었지만, 조금 더 확실한 상황이 필요했다.

    “빨리 가자. 민영이 기다리겠다.”

    “근데, 걔는 왜 너한테 간 거야?”

    “그만큼 내가 믿음직스럽다는 거겠지.”

    “미친놈.”

    실없는 소리를 뒤로한 두 사람은 다시 원룸으로 들어섰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건물에 있는 사람들은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정민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누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을 열기 무섭게 절로 얼굴을 구겼다.

    “크윽. 이게 무슨 냄새냐?”

    “…….”

    안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에 절로 코를 막은 그는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나온 여동생을 바라보며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너 똥 쌌어?”

    “뭐래? 돼지야! 나 아니라고!”

    “그럼 누구야? 여기 너 혼자만 있었잖아?”

    “문후 오빠. 똥 쌌어?”

    두 사람의 경멸 섞인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이문후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환골탈태라고 들어봤냐?”

    “화, 환골탈태? 무슨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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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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