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화
일회성 던전
환한 빛과 함께 나무상자가 사라졌다.
고블린이 흩어진 것처럼 자취를 감췄고, 이제는 익숙해진 알림이 전해졌다.
[조잡한 단검을 손에 넣었습니다.]
[스킬, 구르기를 획득하였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
나무상자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작은 단검이 유일했다.
아무래도 고블린이나 그에 준하는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 같았다.
제대로 날이 서지도 않은 단검이었지만, 그래도 돌덩이보다는 나을 게 분명했다.
이문후는 바닥에 놓인 단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런 보상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은 경험치 구슬이었다.
‘확실히 보상은 다르네. 경험치 구슬을 여기에서 주다니.’
고블린을 잡으면서 얻은 경험치가 모두 채워지면 경험치 구슬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경험치 구슬은 능력을 올리는데 사용됐다.
스탯을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손에 넣은 스킬의 등급을 올릴 수도 있었다. 레벨을 올리는 것도 가능했고 잠긴 스킬 슬롯을 해제하는데도 경험치 구슬이 필요했다.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몬스터를 잡아서 경험치 구슬을 만들어야만 했다.
물론, 레벨이 오를수록 만들기 힘들어지는 게 바로 경험치 구슬이었다.
“구르기를 이렇게 얻다니.”
[구르기]
적절한 순간에 몸을 날려서 공격을 피하는 동작.
강력한 공격도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아무 피해 없이 회피할 수 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난다.
- 구르기(Lv 1) : 1m를 이동할 수 있다.
이문후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스킬이었다.
이것만으로 튜토리얼 보스몹까지 잡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쓸모없는 능력이었다.
‘애매하네. 그렇다고 건곤대나이를 뺄 수도 없고.’
잠재력을 활성화시켜준 건곤대나이를 대신해서 구르기를 끼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이미 10마리가 넘는 고블린을 상대했던 그인지라, 건곤대나이의 대단함을 너무나 잘 알았다.
아무리 구르기가 유용하고 익숙하다고는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 정도의 위력을 보일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게임이었으니까 그렇게 무모하게 움직일 수 있었지.’
구르기라는 것 자체가 보여주기 위한 스킬이었다. 현실에서라면 굳이 그런 위험을 감내할 필요가 없었다.
어찌 됐든 생각보다 많은 보상을 얻었다는 게 중요했다.
‘경험치 구슬이라. 우선은 레벨을 올리는데 투자해야겠지?’
기본적인 것은 레벨이었다.
본인의 레벨을 넘어서서 다른 능력의 레벨이나 성취를 올릴 수 없었다.
2레벨로 올리기 위해서 필요한 경험치 구슬은 10개.
생각보다 많은 양이 필요했지만, 그만큼 뛰어난 능력치를 얻을 수 있었다.
게임에서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길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만한 양을 모으는 것은 힘들었다.
‘몬스터를 잡으면서 힘을 키운다라.’
이문후에게는 나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각성을 한 사람이 많지 않은 지금, 최대한 힘을 키워서 치고 나가야 했다.
나중에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뭐든 선점하는 게 중요했다.
“이 정도라면 다른 던전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겠는데?”
손에 넣은 단검을 확인한 그는 나쁘지 않은 보상에 자신감을 가졌다.
단검이라는 무기 자체가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몽둥이나 돌멩이보다는 나을 게 분명했다.
단검과 천 조각, 몽둥이를 손에 넣은 그는 앞에 생겨난 게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공중에 떠 있던 게이트는 곧바로 그를 빨아들였고, 곧 익숙한 곳이 이문후의 눈을 가득 채웠다.
‘옷은… 그대로구나.’
처음 던전으로 향했을 때의 그 복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잡하게 만든 창도 그대로였지만, 그의 손에는 고블린을 잡고 보상으로 얻은 단검과 천조각,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던 이문후는 번쩍이는 불빛에 뒤를 돌아봤다.
‘사라졌구나.’
어느새 게이트는 모습을 감췄다.
일회성 던전이었기 때문에 그곳을 클리어하면 사라지는 게 당연했다.
이것 역시 게임과 비슷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전부 게임과 관련되어 있었다.
‘도대체 뭐지? 미리 게임을 통해서 이런 상황을 대비하게 만든 걸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런 것들을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금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이용해서 최대한 빨리 레벨을 올리고 힘을 키우는 게 먼저였다.
‘소설에서도 미친 듯이 힘을 키웠잖아? 아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많은 지침서가 나와 있었다.
흔히 말하는 판타지 소설, 그중에서 레이드 물이 이런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남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지금 더 빨리 나아가야만 했다.
체더월이 워낙 유명했던 게임이었던 만큼 다른 플레이어들도 던전을 공략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손에 쥔 것들을 챙겨든 그는 다시 원룸으로 향했다.
***
“크윽. 이놈의 냄새는 빠지질 않네.”
문을 열자, 구린내가 그를 반겼다.
의자를 닦는다고 닦았지만, 냄새는 여전했다.
쉽게 적응할 수 없는 악취에 코를 틀어막은 그는 겹쳐 입은 옷을 벗어 던지며 던전에서 얻은 단검을 챙겼다.
그리고 고블린에게서 얻은 천으로 검신을 감은 채, 허리춤에 찔러 넣고 핸드폰에 있는 지도를 확인했다.
‘근처에 가장 가까운 던전이 있는 곳이 어디였더라?’
처음 체더월을 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게 주변의 지리였다.
현실이 너무나 잘 반영되고 있었던 체더월의 지도.
오히려 숨어 있는 일회성 던전을 찾는 게 더 재미가 있었다. 더군다나 게임 영상을 만들어서 조회수를 올리려는 목적을 가진 그로서는 남들보다 더 세밀하게 살필 수밖에 없었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건물의 지하가 가장 가까웠다.
그곳 역시 일회성 던전이 있었다. 그렇게 머맂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곧바 로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다시 가볼까!”
고블린과 꽤나 격렬하게 싸운 게 방금 전이었다. 하지만 아직 지치지 않았다.
조금 지쳤다고 하더라도 체력 수치가 높은 만큼 회복력도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이문후는 곧장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일회성 던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멀쩡한 게이트를 확인하며 그곳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
‘흐음.’
완전히 다른 공간은 처음 들어선 던전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고 있는 게 달라졌다.
아무것도 없었던 이전과 다르게 지금 이문후의 손에는 조잡한 단검과 고블린에게서 얻은 천 조각이 들려 있었다.
‘던전에서 얻은 물건은 다시 던전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구나.’
대충 예상은 했었다. 그래도 눈으로 확인한 것과 그저 예상으로 그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아무 쓸모도 없을 것 같았던 고블린의 천 조각의 가치가 올라갔다. 여기에서 얻은 천을 이용한다면 적어도 알몸인 상태를 가릴 수 있었다.
각성자가, 여기에서 말하는 플레이어가 여러 명이라면 그들 역시 이문후와 비슷한 상황을 겪을 게 분명했다.
‘이 천을 선점해서 되판다면?’
허름한 천조가리가 제법 큰 돈을 벌어다 줄 가능성이 높았다. 걸레로 써도 이상하지 않을 천이었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명품 못지않은 옷으로 변할 수 있었다.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천을 허리춤에 둘러본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부족한가?’
아무래도 다른 천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그는 허리춤에 두른 천을 다시 손에 감았다. 어차피 이곳에 들어선 사람은 이문후 혼자였기 때문에 알몸이라도 큰 상관이 없었다.
천을 두른 손에 단검을 쥔 그는 가볍게 손을 휘두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내 손이 다친다고 하던데.’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사시미를 잘못 쓰면 손이 다친다는 말.
아무리 단검이라는 날카로운 무기를 손에 넣었다지만, 익숙하지가 않았다.
단검을 만진 적이라고는 그저 군대에서 만진 대검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대검술을 익힌 것도 아니었다. 그저 총검술을 펼칠 때, 소총에 꽂은 채로 휘둘렀던 게 전부였다.
이문후는 신중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체더월과 관련해서 모르는 게 없다지만, 게임과 현실은 달랐다.
나오는 놈들의 습성은 대충이나마 알겠지만, 그 습성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나온 부산물들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일으킬지는 알 수 없었다.
잘못해서 손이 베인다면 파상풍이나 다른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조금 더 준비를 하고 올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가 됐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만큼 지금은 이 상황에 집중하는 게 먼저였다.
‘역시 고블린들이었네.’
들어온 던전은 얼마 전에 클리어한 던전과 다르지 않았다.
이곳 역시 고블린이 지키고 있었다.
입구 쪽을 지키는 두 마리의 고블린을 발견한 그는 처음과 비슷하게 움직였다.
투욱.
“키이익?”
일부러 바닥에 나뒹구는 돌을 던져서 소리를 만들었고, 낯선 소리를 들은 고블린이 다가왔다.
구석에 숨어 있던 이문후는 모습을 드러내는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쥐고 있던 단검을 휘두르며 놈의 목을 노렸다.
푸욱.
‘씨발!’
손끝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이 너무 낯설었다.
무언가를 찌른다는 그 느낌에 절로 진저리가 쳐졌지만, 그런 감정보다는 남은 고블린을 처리하는 게 시급했다.
“끼아아아! 끼아아아!”
그를 발견한 또 다른 놈이 괴성을 지르며 동료를 불렀다.
어차피 한 놈을 쓰러뜨리고 나서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이문후는 방방 뛰면서 소리를 지르는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끼아아!”
순식간에 다가온 이문후의 모습에 고블린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놈의 괴성에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곧 휘두른 그의 단검에 고블린은 휘청거렸다.
촤아악.
피가 튀었다.
길게 베인 고블린의 몸이 갈라지면서 끔찍한 모습이 드러났고, 이문후는 이를 악물며 놈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씨발!”
익숙해지지 않은 느낌에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는 비틀거리는 쓰러진 고블린의 몸에서 단검을 뽑아냈다.
‘어차피 그냥 두면 사람들을 해칠 놈이야! 불쌍하다는 생각은 버리자!’
그냥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그는 어느새 나타난 고블린들을 바라봤다.
조금 전에 내지른 비명을 듣고 안에 있던 놈들이 나타난 것이다.
“키아아!”
놈들은 요상한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동료를 해한 인간을 잡기 위해 살기를 보이며 다가왔지만, 곧 휘두르는 이문후의 단검에 피를 뿌리며 쓰러져 나갔다.
촤아악! 촤악!
이문후는 점점 휘두르는 단검과 이 상황에 적응을 해나갔다. 달라진 육체는 어렵지 않게 고블린들을 쓰러뜨릴 수 있게 만들었고, 날카로운 단검은 큰 피해를 남기며 놈들의 몸을 묶었다.
[소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경험치 구슬이 완성됐습니다.]
고블린들을 처리하고 경험치가 쌓이자, 새로운 구슬이 만들어졌다.
다른 던전에서 얻었던 구슬가지 모두 2개의 경험치 구슬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상태창!’
이문후는 상태창을 통해서 2개의 경험치 구슬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바로 레벨에 투자했다.
레벨 : 1(20%).
이제 겨우 20%만 채워졌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2레벨로 올라가기까지 경험치 구슬이 8개나 더 필요하다는 건데.’
현재 레벨에서는 고블린 20마리에 하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일회성 던전 8곳 정도를 더 돌아야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아직 보상이 더 남아 있지?’
던전 출구 근처에 있을 상자도 확인해 봐야 했다.
조금 피곤해진 몸을 느낀 이문후는 천천히 출구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놈과 조우했다.
‘뭐야? 저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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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