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의 던전 사냥-5화 (5/126)

제 5화

일회성 던전

게이트라고 불리는 곳 앞에 선 이문후는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리 플레이어로 각성을 하고 건곤대나이까지 손에 넣었지만, 게임과 현실은 달랐다.

현실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을 떨쳐내는 게 쉽지 않았다.

‘괜찮겠지?’

막상 던전 앞까지 왔지만,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임과 달리 이곳에서 죽는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맨손이었던 때와는 다르게 조잡한 창까지 만들었지만, 그런 이유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씨발, 처음이 중요하지! 마냥 이대로 살 수는 없잖아?”

이문후는 ‘짜악’소리가 날 정도로 스스로의 볼을 때리며 눈앞에 보이는 작은 타원을 바라봤다.

체더월에서 게이트라고 불리던 입구였다.

허공에 떠 있는 타원은 마치 작은 손거울과 비슷했다.

불투명한 막에 비친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문후는 호흡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현실에서 던전을 마주한 적은 처음이었지만, 게임에서는 이골이 날 정도의 익숙한 경험이 있었다.

만약 체더월의 상황이 현실에 펼쳐진 거라면 안으로 들어서는 방법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스으윽.

투명한 막이 그를 빨아들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건물의 지하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동굴과 같은 곳으로 스며든 그는 익숙한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변화에 침음을 흘렸다.

“흐음. 이건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른데.”

아무것도 걸치지 못한 상태로 들어선 것이다.

힘들게 준비했던 조잡한 창은 물론이고, 몇 겹으로 겹쳐 입은 옷도 사라졌다.

노출된 맨몸으로 동굴의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잘게 몸을 떤 그는 새로운 변수에 당황하며 투덜거렸다.

“상황 참… 거지 같네.”

그래도 게임 안에서는 속옷이라도 걸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원초적인 모습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면 다시 상황이 달라지려나?’

그때는 맨몸이 아닐 것 같았다.

현실과는 완벽히 격리된 공간으로 들어선 그는 다시 뒤로 물러나면서 손을 뻗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확인을 해볼 생각이었지만, 다시 게이트를 통과할 수는 없었다.

‘일회성 던전이라면 그 속성도 비슷한 건가?’

체더월에서의 일회성 던전은 클리어를 통해서 다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일회성 던전에 있는 몬스터의 수는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문후가 굳이 이곳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더 깊은 지하로 이어진 제대로 된 던전은,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더라도 다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런 사실만 놓고 보자면 제대로 된 던전이 더 안전할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저 입구만 구경할 게 아니라면 일회성 던전과 제대로 된 던전의 위험도는 차원이 달랐다.

‘대충 열 마리 정도만 모여 있겠지?’

일회성 던전에 있는 몬스터는 10마리 정도였다.

물론, 일회성 던전도 게이트의 크기에 따라서 규모가 달랐고, 그곳에 있는 몬스터들의 종류도 달랐다.

가장 작은 크기인 이곳에는 고블린이 있을 게 분명했다.

‘후우. 천천히 움직여볼까?’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다시 되돌아가려면 이곳에 있는 고블린을 쓰러뜨리고 입구를 열어야만 했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흐릿한 빛이 새어 나오는 천장으로 어두운 동굴 안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끼이이!”

“끼이이익.”

천천히 움직이던 이문후는 전방에서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고블린인가?’

자세를 낮춘 그는 최대한 몸을 숨기며 고블린들을 살폈다.

앞에서는 두 놈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서로 마주한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나누는 모습에 이문후는 잠깐 동안 고민했다.

‘잡을 수 있겠지?’

게임이었다면 지체없이 놈들에게 달려들었을 상황이었다.

팬티 하나만 걸치고 튜토리얼 보스몹까지 잡았던 그로서는 거칠 게 없었지만, 지금이 현실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아무래도 현실은 게임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던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덩이를 주워들며 가진 힘을 가늠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

투두둑.

“끼익?”

동굴을 울리는 낯선 소리에 고블린이 반응을 보였다.

입구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놈은 관심을 보였고, 곧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움직였다.

처벅. 처벅.

종유석처럼 솟아난 큰 바위 뒤에 숨어서 숨을 죽이던 이문후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놈의 발소리에 마음을 다잡았다.

‘우선 한 놈을 먼저 잡고 남은 놈은…’

따로 생각을 가지기 무섭게 낯선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숨을 들이마신 그는 눈앞에 들어오는 고블린을 확인하며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파앗!

잔뜩 긴장한 근육이 폭발적인 힘을 내보였다.

고블린이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이문후는 놈을 덮치면서 손에 쥔 돌덩이로 머리통을 후려쳤다.

퍼억.

기습적인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집중력은 물론이고, 근력과 반응속도 모두 15라는 경이적인 수치에 올라 있는 상황이었다.

범인은 흉내 내지 못할 움직임으로 공격을 감행하자, 고블린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단, 일격이었다.

뛰어난 집중력으로 고블린의 뚝배기를 깨뜨린 이문후는 익숙한 모습을 확인하며 호흡을 골랐다.

목숨을 잃는 순간, 고블린의 시체가 사라졌고, 빛으로 변한 놈이 이문후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소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이문후는 예의 소리를 확인하기 무섭게 몸을 돌렸다.

아직 다른 한 놈이 더 남아 있었다. 그놈이 공격을 올 것까지 생각해야만 했다.

하지만 쓰러진 놈과 함께 있던 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다른 놈은… 어디로 간 거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옆에 있던 놈이었다.

체더월에서는 무리생활을 하며 함께 움직인 고블린이라면 당연히 옆에서 그를 공격해야만 했다. 하지만 놈은 동료 고블린의 옆이 아닌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곧 등장한 놈들의 모습에 이문후의 표정이 절로 구겨졌다.

“끼아아아!”

“씨발!”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모습을 감춘 놈은 뒤에 있던 다른 놈들을 대동한 채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차례차례 한 놈씩 처리하려던 그의 계획이 틀어졌지만, 이문후는 개의치 않으며 자세를 잡았다.

“저 정도는… 가능할 것 같은데?”

조금 전에 쓰러뜨린 고블린의 상태로 봐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건곤대나이로 잠재력이 활성화되면서 향상된 신체 능력이라면 아무리 많은 놈들이 몰려들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이문후는 양손에 쥔 돌덩이에 힘을 줬다.

단단한 느낌이 자신감을 불어 넣어줬다. 주먹만 한 돌덩이라면 충분히 놈들에게 큰 충격을 남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고, 이미 효과는 충분히 입증됐다고 봐야도 이상하지 않았다.

“덤벼!”

곧장 놈들을 향해 소리치자, 그의 목소리에 반응한 고블린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통로가 넓지 않아서 한 번에 상대할 고블린의 수가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선두에 선 고블린이 바닥을 박찼다.

그대로 뛰어 오르며 이문후의 목덜미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지만, 이문후는 이전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바닥을 굴러야겠지만…’

그는 뒤로 물러나며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듯 떨어져 내리는 고블린의 관자놀이에 훅을 꽂아 넣었다.

“케엑!”

짧은 순간에 손목을 비틀면서 손에 쥔 돌덩이로 머리통을 후려치자, 놈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며 벽이 부딪쳤다.

콰앙!

굉음과 함께 축 늘어진 놈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뒤에 있던 다른 고블린이 그 틈을 노리며 이문후를 향해 뛰어들었다.

다음에 달려든 놈도 처음에 쓰러진 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놈은 묵직한 몽둥이를 앞세우며 달려들었고, 이문후는 다시 뒤로 물러나며 놈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집중력과 동체 시력만으로 공격이 닿을 범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한 그는 다시 돌덩이로 고블린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퍼억.

처음 쓰러진 놈과 비슷하게 관자놀이를 얻어맞은 놈이 그대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쩌네! 엄청나잖아?’

순식간에 고블린 둘을 쓰러뜨렸다.

이문후도 스스로의 모습에 감탄했다.

15라는 수치의 근력은 일격에 놈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정도로 강한 파괴력을 낼 수 있었다.

거기에 범인을 뛰어넘는 체력 역시 계속 달려드는 놈들과의 싸움을 쉽게 만들었다.

‘후우. 후우.’

이문후 역시 기본적으로 좋은 싸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복싱으로 괜찮은 성적을 냈던 그인지라. 그게 이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됐다.

퍼억. 퍼억.

그는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내며 주먹을 꽂아 넣고 있었다. 한참 운동을 할 때도 보이지 못할 움직임이었지만, 지금은 너무 수월했다.

어느새 손에 쥐고 있는 돌덩이가 고블린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모두 아홉 마리의 고블린이 주먹에 얻어맞으며 떨어져 나갔다.

개중에 몇 놈은 흩어지면 경험치로 전해졌고, 몇 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문후는 쓰러진 놈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머리를 찍어내며 놈들의 숨을 끊었다.

퍼억. 퍼억.

[소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소리도 익숙해졌다.

쓰러진 놈들이 사라지는 만큼 누군가를 죽인 것에 대한 거부감은 덜했다.

아무리 고블린이라고는 하지만, 생명체를 죽인 만큼 충격이 있어야 했지만, 이미 그럴 단계는 지났다.

그는 이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게임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 이 상황이 마치 게임처럼 느껴졌다.

“후우. 이놈들이 전분가?”

이문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뇌까렸다.

경험치로 화한 놈들은 순식간에 사라지며 모습을 감췄지만, 그의 눈에 낯선 물건이 가득 들어왔다.

“이건 또 뭐야?”

쓰러진 고블린들이 걸치고 있던 천 조각이었다.

하의를 가릴 수 있을 정도의 천과 뭉툭한 몽둥이가 놓여 있었다.

‘아이템도 드롭하나?’

남겨진 천의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었다.

자동으로 인벤토리에 들어오던 게임과 다르게 현실에서는 남긴 물건은 직접 손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냥 버릴지 고민을 했지만, 그는 고블린이 남긴 천 조각과 몽둥이를 손에 넣었다.

‘죽은 놈이 아무 의미 없이 이런 걸 남기지는 않았겠지.’

천 조각을 주워들며 손에 두른 그는 다시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체더월에서는 출구가 안쪽에 있었다.

이곳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야만 보상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다행히 다른 고블린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전에 쓰러뜨린 10마리가 전부였다.

이문후는 더 이상 길이 나오지 않는 곳까지 움직였고, 그의 생각대로 앞에는 게이트와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체더월하고 완전히 똑같네!’

다시 한번 이런 상황이 기회가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작은 상자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문후는 목숨을 내걸고 싸운 만큼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젖혔다.

=============================

[작품후기]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