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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4화 (4/126)

제 4화

변화의 시작

차를 타고 움직이던 그는 라디오를 켰다. 그리고 급박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소식을 통해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곳곳이 난리라는데?”

“나도 네 가게로 오기 전에 비슷한 놈을 만났었어.”

“정말? 근데, 왜 이제 말하는 거야? 몸은 괜찮은 거지?”

“보면 모르냐? 고등학교 때도 누구처럼 맞고 다니지는 않았지.”

“맞고 다니기는 누가 맞고 다녀! 싸움 스타일이 다른 거지! 그리고 날 때렸던 놈들은 나보다 더 묵사발이 돼서…”

“일진이었던 게 자랑이냐?”

“나한테 그렇게 뻗대는 놈은 네가 유일하다는 건 알고 있지?”

“생명의 은인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내려!”

“뭔 개소리야? 이거 내 차야!”

“다 왔어. 인마!”

“너는?”

“주차해야지. 먼저 가서 치료나 받고 있어.”

따로 주차를 마친 이문후는 병원으로 들어섰다.

그 사이 접수를 마친 정민석은 고블린에게 물린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고, 이문후는 복잡한 병원에 혀를 내둘렀다.

“비슷한 환자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생각보다 피해가 큰 것 같았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것처럼 곳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의아해하던 그는 핸드폰을 꺼내며 인터넷을 살폈다.

세상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고블린이라고 불리는 놈들이 그가 살고있는 곳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일에 인기 검색어도 고블린과 관련된 것들로 채워졌다.

“고블린, 괴물, 각성, 체더월… 체더월?”

검색어를 살펴보던 이문후는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이라는 놈들을 직접 마주했던 그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갑자기 놈들이 나타나고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 상황은 체더월의 배경과 정확히 일치했다.

‘각성하는 사람이 플레이어가 되고, 게이트로 들어가서 몬스터들을 소탕한다?’

처음 고블린을 쓰러뜨리고 들었던 그 소리를 떠올린 그는 다시 스스로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확인했던 창을 다시 확인했다.

‘근데, 능력치는 왜 이렇게 높은 거지?’

체더월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능력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초기에는 대부분이 10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가장 뛰어난 능력치도 10을 넘지 못했고 평균 7이나 8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능력치는 거의 2배 차이가 날 정도로 높았다.

‘게임을 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누구보다 지겹도록 한 게임이 바로 체더월이었다.

그것도 첫판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그인지라 처음 상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현실에서 벌어졌다는 것과 자동적으로 능력이 장착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건곤대나이라. 이게 장착돼서 그런 건가?’

지금까지 체더월을 하면서 수많은 능력을 사용해 봤던 그로서도 처음 보는 능력이었다.

게임을 시작할 때는 그저 구르기라는 행동만 주어질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능력을 손에 넣고 시작한 적은 없었다.

장착된 능력이 많이 어색했지만, 처음 듣는 이름은 아니었다. 자유 모드에서 튜토리얼 보스를 쓰러뜨리고 얻은 게 바로 건곤대나이였다.

그 사실을 떠올린 그는 곧바로 장착한 능력을 확인했다.

[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

하늘과 땅을 크게 옮길 수 있는 신공.

형(形)과 식(式)에 구애를 받지 않고 펼칠 수 있는 개세의 무공으로 성취가 높아짐에 따라 경천동지할 힘을 발현할 수 있다.

- 건곤대나이(1成) : 수련자의 잠재력을 일깨운다.

‘이걸 믿어야 하나?’

직접 확인하고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떠오른 창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체더월에서 확인했던 똑같은 창은 그의 상태를 알려왔다.

‘그래서 그놈을 쉽게 죽일 수 있었던 건가?’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힘을 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누구보다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있는 이문후였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더군다나 시력은 물론이고, 몸까지 좋아진 것을 보면 말 그대로 세상이 변한 게 분명했다.

“동체 시력이 15라니!”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그는 정민석의 목소리에 상념을 떨쳐냈다.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치료는 다 받은 거냐?”

“대충은.”

“뭐래?”

“몰라. 그냥 약 먹고 안정이나 취하래. 혹시 몰라서 주사까지 맞았… 어? 근데, 너 안경은?”

“어? 아… 렌즈 꼈어.”

“어디 아프냐? 귀찮다면서 안경만 고집하던 놈이?”

“그냥. 한번 껴봤어.”

“계속 끼고 다녀라. 그나마 괜찮네. 근데, 너… 살 빠졌냐?”

정민석은 달라진 이문후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계속 방구석에 처박혀서 게임만 하던 이문후의 몸은 전역했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 몰래 운동했냐?”

“왜? 부럽냐?”

“부럽기는! 의리 없는 새끼.”

심드렁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정민석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안경을 벗고, 살이 빠지면서 턱선이 살아난 이문후의 모습은 마치 환골탈태라도 한 것 같았다.

경황이 없어서 지나쳤던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그의 변화를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이문후는 부러움이 가득한 정민석의 시선을 흘리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민영이는?”

“학교에 있겠지.”

“거기는 괜찮은 거야?”

“그래도 학교는 안전하지 않을까?”

“전화라도 해 봐.”

“아, 알았어.”

이문후는 뒤늦게 동생에게 연락을 취하는 정민석을 태우고 학교로 향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동생을 구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정민석의 동생은 무사했다.

갑작스러운 일에 정부에도 적절한 대응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일부의 군 병력이 동원되면서 도로 곳곳을 통제해 나갔다.

***

고블린들의 등장과 함께 상황이 달라졌다.

뉴스에서는 연신 이번에 일어난 일이 보도되고 있었고, 전문가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종말이 도래할 날이 멀지 않았다거나 외계인이 침공했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공통된 사실은 하나였다.

바로 체더월이 현실에 구현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여러 커뮤니티 사이에서는 그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체더월은 등장 자체부터 미스터리했던 게임이었다.

어쩌면 그 게임 자체가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만들어진 건지도 몰랐다.

‘정말로 체더월이 배경이라면 던전 수가 엄청날 텐데.’

지금까지 알려진 상황만 봐서는 체더월과 똑같이 흘러갈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았다.

체더월이 초반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세계의 작은 부분까지 구현을 해놓은 디테일에 있었다.

마치 자기가 살고 있는 장소를 구현해 놓은 것 같은 세밀함이 게임에 더 몰입을 하기 쉽게 만들었다.

일회성 던전까지 생각하면 신고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큰 혼란이 일어난 것은 당연해 보였다.

‘고블린을 잡은 사람들이 플레이어로 각성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당연히 혼란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처음 맞는 일이었다. 거기에 평범한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다면, 큰 범죄로 이어질지도 몰랐다.

생각보다 사안은 심각했다.

지금 경찰만으로는 치안을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큰 범죄는 그렇다고 쳐도, 앞으로 튀어나올 몬스터들을 생각하면 앞이 막막했다.

군대가 필요했다. 문제는 정말로 체더월의 상황이 재현된 거라면 군대로도 괴물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이었다.

체더월의 배경에서는 군대가 아닌 플레이어들이 나서야했다.

그들이 직접 놈들의 본거지로 쳐들어가서 놈들을 토벌하고 활약해야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제 헌터 같은 게 필요한 건가?’

소설에서나 봤을 법한 헌터가 실제로 등장할지도 몰랐다.

이미 각성을 한 이문후는 헌터라고 봐도 무방했다.

고작 고블린이었지만, 맨손으로 두 놈이나 쓰러뜨렸다. 거기에 평균을 훨씬 웃도는 능력치까지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정부가 알아서 해결을 하겠지? 나는 그 사이에서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거고.’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게 오히려 기회가 되려나?’

흙수저 중에서도 흙수저인 그에게는 이런 큰 변화가 기회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손에 넣은 건곤대나이라는 힘도 그저 그런 힘은 아니었다.

‘모든 능력치를 15까지 올리는 거라면…’

계속 유지하고 있기 충분한 능력이었다.

급작스러운 변화가 그에게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전 인류는 혼란을 맞겠지만, 더 이상 돈벌이가 수월하지 않을 것 같은 이문후에게는 최적의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체더월에 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상념을 떨쳐낸 그는 컴퓨터를 확인했다.

그동안 체더월에 관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준비해 뒀던 내용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정을 살펴보던 그의 표정이 절로 구겨졌다.

“이게 뭐야?”

힘들게 만들었던 영상이 모두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영상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인기가 있을 때, 수많은 조회수를 올렸던 다른 사람들의 영상들도 모두 없어진 것이다.

“흐음. 상황 참… 거지같네.”

뒤늦게 컴퓨터에 남은 장치를 살폈지만, 그것들 역시 사이트에 올린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고블린까지 나타나는 판에, 이런 건 약과겠지.’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그에게는 더 유리할지도 몰랐다.

참고할 영상이 없다면 기억에 의존해야만 했다.

아무리 인기가 많았던 게임이라지만, 그를 제외하고 꾸준히 영상을 올린 사람은 없었다.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기억을 떠올린 이문후는 실망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움직여볼까? 우선 일회성인 던전을 처리하면서 힘을 키워야겠지?’

급변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이미 두 마리의 고블린을 맨손으로 때려잡은 그인지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여겼다.

‘내 기억이 맞다면 가까운 곳에 임시 던전이 있을 텐데.’

기억을 더듬던 그는 여러 벌의 옷을 껴입었다. 그리고 부서진 마대자루에 과도를 달았다.

청테이프로 단단하게 과도를 고정시키며 조잡한 창을 만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 앞에 섰다.

“지하에 게이트가 있으려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각오를 다지듯 뇌까린 이문후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신중하게 걸음을 옮기며 지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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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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