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의 던전 사냥-3화 (3/126)

제 3화

변화의 시작

“플레이어? 건곤대나이?”

뜬금없이 들리는 소리와 함께 미증유의 힘이 느껴졌다.

갑자기 나타난 고블린을 처리하면서 맞은 황당한 변화에 이문후는 제대로 된 사고를 이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또 다른 현상이 그를 찾아왔다.

스르르르.

차에 치여 처참하게 쓰러져 있던 고블린의 사체가 빛으로 변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빛이 이문후를 향해 다가왔다.

“뭐야?”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올리며 얼굴을 가렸다.

이상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발악을 했지만, 그 빛은 곧바로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소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낯선 상황을 마주한 이문후는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아무래도 정신이 이상해진 게 분명했다.

‘환청인가? 내가… 미친 건가?’

바닥에 흥건했던 고블린의 피와 사체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렇다고 사고가 난 차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범퍼가 찌그러진 승용차는 여전히 긴 자국을 남긴 채 멈춰 있었고, 뒤늦게 밖으로 나온 운전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현장을 확인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로서도 이 상황이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살피던 운전자를 뒤로한 이문후는 뒤를 바라봤다.

“씨발.”

참혹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길고양이의 사체를 발견한 그는 지금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이 소리는 뭐고, 고블린은 또 뭐야?’

뒤늦게 주변에 사람이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그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괴물 같은 놈이 활보하고 다니는 밖으로 나올 사람은 없었다.

‘리얼 모드가 시작된다던 게 이런 뜻이었나? 아니지. 게임하고 이게 무슨 상관…’

문득 자유모드의 튜토리얼 보스를 처리하고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환청이라고 여겼던 말들이 사실이라면 지금 터무니없는 상황을 맞고 있었다.

‘게임이 현실로?’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사고난 차와 죽은 길고양이는 여전했고, 안에서 느껴지는 미증유의 힘도 사라지지 않았다.

‘건곤대나이가 장착되어 있다고??’

조금 전에 들은 말을 떠올린 그는 가만히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뭔가 달라진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력이 좋아진 것도 그렇고, 힘도 강해진 건가? 이게 무슨 병신 같은 상황이지? 게임을 너무 많이 했나?’

쉽게 믿을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 상황에 고민하던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중년인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고블린을 치고 멈춰선 그 운전자였다.

미안한 말이었지만, 괜히 이 자리에 남아 있어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어찌 됐든 고블린을 떨쳐낸 건 이문후였다.

사고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엮이면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조금 전에…”

“…….”

이문후는 일부러 중년인을 못 본체하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빠르게 현장을 벗어났다.

‘미안합니다.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

“허억.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일부러 동선을 복잡하게 만들면서 골목길을 내달린 만큼 숨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상태를 이상하게 여겼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를 불이익을 피해서 도망을 쳤지만, 그 와중에 내보인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정작 본인이 놀랄 정도로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 빨랐다.

나름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내보일 수 없었던 속도로 움직인 것이다.

그는 짧은 순간에 폭발적인 힘을 냈다.

어지간한 육상 선수도 거뜬히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달리는 게 가능했다.

당연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초인이 된 것 같았다.

뜬금없는 상황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밀려드는 허기를 해결하는 게 더 급했다.

‘힘을 써서 그런가?’

에너지를 사용한 만큼 보충이 필요했다.

먼 길을 돌아서 움직인 이문후는 곧바로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다.

집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그가 자주 이용하는 곳으로, 중학생 때부터 같이 알고 지내던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너는 손님이 왔는데 인사도 안…”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가던 이문후는 평소와는 다른 편의점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벽을 가로막고 있는 정민석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무엇보다 편의점이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도, 도망가!”

“… 무슨 소리야? 도망이라니?”

“빨리! 지금 괴물이… 크윽!”

몸을 피하라던 정민석은 달려드는 무언가를 향해 팔을 내밀었다.

콰직.

계산대 벽에 붙어 있던 정민석의 팔이 붉게 물들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앞세우며 달려들던 놈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팔을 내뻗을 수밖에 없었다.

“크윽!”

아릿한 고통에 정민석이 신음을 내뱉었고, 이문후는 곧장 카운터를 뛰어넘으며 뒤를 내보인 고블린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 개새끼가!”

“키아아!”

우악스러운 손길에 놀란 고블린이 정민석의 팔에서 입을 떼며 크게 소리쳤다.

키가 작은 놈은 그의 손에 매달리며 발버둥 쳤지만, 이문후는 놈을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치며 정민석에게서 떼어놨다.

쿠웅!

강한 힘에 바닥이 울렸다.

달라진 그의 힘에 바닥에 처박힌 고블린이 꿈틀거렸고, 이문후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퍼억. 퍼억.

“케엑. 케에!”

인정사정없이 발을 놀리며 놈의 공격하자 주변에 피가 튀었다. 상당히 잔인한 광경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쉬면 쓰러진 놈이 날카로운 이빨을 앞세우며 달려들 것 같았다.

계속해서 놈을 밟던 이문후는 결국 움직임을 멈춘 고블린을 확인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후우.”

쓰러진 놈은 곧 빛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흘러나온 빛은 다시 이문후의 몸에 스며들었고, 일전에 들은 소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소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흐음. 확실히 환청은 아닌데.’

주변에 튀었던 피들도 자취를 감췄다.

언제 고블린과 싸웠냐는 듯이 흩어진 놈의 모습은 여전히 신기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정민석의 상태가 더 중요했다.

“괜찮아?”

“괘, 괜찮아. 너는?”

“멀쩡해.”

“… 고맙다.”

“고맙기는 무슨!”

다급한 상황에서 다시 괴력을 낼 수 있었다.

이제는 이런 힘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았지만, 정민석은 아니었다.

그는 팔을 부여잡으면서 쓰러진 놈이 있던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 뭐야? 그 괴물 어디 갔어?”

“… 사라졌어.”

“사라져? 그게 무슨 소리야? 사라지다니?”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문후 역시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말을 아꼈다.

“팔은? 괜찮은 거냐?”

“괜찮다니까!”

“병원이라도 가 봐. 피가 그렇게 철철 흐르는데 뭐가 괜찮아?”

“그냥 피부만…”

“그러다 병 걸려 새끼야. 어차피 가게도 난장판인데 장사라도 할 수 있겠냐? 밖에 사람들도 안 다니더라.”

이문후의 말에 정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가게를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신고 먼저 해야겠다.”

“신고?”

“그래. 씨발, 이게 무슨 황당한 경운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정민석이었지만, 이문후는 그를 뒤로하고 부서진 물품들을 주워들었다.

“그거 그냥 둬. 어차피 내가 치울 테니까.”

“이거 다시 못 팔지?”

“…….”

“내가 밥을 안 먹어서.”

“저 미친 새끼.”

정민석은 이 와중에 터진 과자를 주워 먹는 이문후의 행동에 절로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준 그 모습을 잊지 않았는지 말을 아꼈다.

“지혈 먼저 하고, 병원이나 갔다 와. 재수 없으면 광견병에 걸릴지도 모르잖아.”

“몰라. 이 새끼야. 친구가 다쳤는데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배고파 뒤지겠다.”

“계산은?”

“어차피 못 쓸 거잖아?”

“저런 미친… 후우.”

자연스럽게 컵라면을 뜯는 이문후의 모습에 정민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도시락을 데우며 그에게 건넸다.

“이건 뭐냐?”

“그냥 줄 때 처먹어. 밥 좀 먹고 다녀라. 이게 뭐냐?”

“… 팔이나 어떻게 하라고. 피가 멈췄다고 끝난 게 아니라니까?”

“몰라. 좀 이따가 병원이라도 가 봐야지. 대신 잠깐 가게나 봐 줘.”

“그러면 그렇지. 이걸 공짜로 줄 놈이 아니지.”

“그래서 안 먹겠다고?”

“… 음료수는?”

“이런 벼룩에 간을 빼 먹을 새끼.”

이문후가 배를 채우는 사이, 정민석은 난장판이 된 가게를 정리했다.

뒤늦게 건넨 음료수를 마시며 젓가락을 놀리던 그는 그런 정민석에게 말했다.

“내가 도와준다고. 다 먹고 같이 치우자니까.”

“내가 너를 몰라? 그걸로 또 얼마나 우려먹으려고?”

“멀쩡하네. 병원 안 가도 되겠다.”

“닥쳐.”

곧 배를 채운 이문후는 정민석을 도와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조금 전에 들었던 그 소리로 가득 찼다.

‘플레이어로 각성을 했다고? 이건 완전히… 체더월인데?’

일전에 들은 소리가 환청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난장판이 된 가게를 치우고 있는 지금,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고블린을 쓰러뜨리고 들었던 그 소리를 떠올린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되뇌었다.

‘이문후.’

동시에 익숙한 형태의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문후]

레벨 : 1.

상태

- 생명력 : 100%.

- 내공 : 80%.

- 근력 : 15 / 체력 : 15 / 집중력 : 15.

- 동체 시력 : 15 / 반응속도 : 15.

장착 능력(1/5)

- 건곤대나이(1成).

“미친! 이거 실화…”

“그럼 이게 꿈이겠냐? 씨발, 나도 꿈이라면 좋겠다!”

이문후의 말에 정민석이 투덜거렸지만, 그는 그런 말에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눈앞에 떠오르는 투명한 창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체더월에 나온 그 상태창이잖아?’

게임과 현실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몰랐지만,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그를 정민석이 일깨웠다.

“도와준다며?”

“어? 이 정도면 많이 도와줬지.”

“지랄. 잠깐 가게나 보고 있어라. 난 병원에 좀 갔다 올 게.”

정민석이 일어서자, 이문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같이 가자.”

“왜? 너도 어디 다친 거냐?”

“아니. 밖에 저런 놈이 또 있으면 어떡하려고?”

“… 그럼 가게는?”

“이 와중에 가게는 무슨! 잠깐 닫아. 어차피 손님도 없잖아.”

심각하게 고민하는 정민석을 뒤로한 이문후는 그의 손에 든 차 키를 빼앗으며 앞장섰다.

“그 손으로 운전이라도 하겠냐?”

“그래. 알았어.”

뒤늦게 이문후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투덜거리며 냉랭한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문후는 정민석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고블린이라는 놈이 더 있는 경우를 고려해서 움직여야 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눈앞에 보이는 상태창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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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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