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변화의 시작
썩은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지독한 냄새에 눈을 뜬 이문후는 일렁이는 시야에 눈살을 찌푸렸다.
‘으윽. 뭐야?’
역한 냄새와 어지러운 시야에 속이 울렁거렸다.
본능적으로 화장실로 달려간 그는 헛구역질을 해대며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냈다.
“크으. 왜 이러지?”
의자에 걸쳐 앉아서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었지만,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은 더 가벼운 것 같았다. 하지만 후각과 시각은 정상이 아니었다.
흐으읍.
“크윽.”
코끝을 파고드는 역한 냄새는 여전했고, 일렁거리는 시야에 눈앞이 핑 돌았다.
“이제 나도 폐인이 다 된 건가?”
계속 집에만 처박혀 있었더니 몸이 많이 상한 것 같았다.
불안한 생각에 덜컥 겁이 났지만, 다시 몸을 일으킨 그는 안경을 벗고 얼굴을 씻어냈다.
차가운 물이 닿자 정신이 또렷해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그는 거울에 비추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 뭐야?”
어지러웠던 눈앞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불투명한 거울에 비친 또렷한 스스로의 모습에 놀란 그는 손을 들어 올리며 얼굴을 매만졌다.
“이건, 난데.”
이문후의 시력은 좋지 않았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바로 앞에 있는 것조차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시력이 나빠졌다.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개인 방송에 쏟았다.
게임과 편집을 계속하면서 모니터 앞을 떠나지 않은 만큼 좋았던 시력은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쓰고 있던 안경도 다시 맞춰야 할 정도로 시력은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어떻게 된 거지?”
이상함을 느낀 그는 조심스럽게 안경을 썼다. 그리고 일그러진 시야에 얼굴을 찌푸렸다.
눈앞이 어지러웠던 이유는 바로 안경 때문이었다.
“미친 건가?”
이 상황이 말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눈이 좋아졌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안경을 벗은 맨얼굴을 바라봤다.
“꿈인가?”
하루아침에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은 히어로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현상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오히려 덜컥 겁이 났다.
‘뇌에 이상이 생기면서 시력이 달라질 수 있나?’
그는 얕은 지식으로 골똘히 생각했다. 당연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잠깐 잠이 든 게 전부였는데. 뭐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크으. 냄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역한 냄새가 그의 콧속을 파고들었다.
조금 전에 맡았던 그 냄새로, 바람이 불어오면서 다시 한번 그를 자극했다.
“어디에서 똥을 푸나! 이게 무슨 냄새…”
다닥다닥 붙어 있는 원룸이라면 옆집이 큰 영향을 끼쳤다. 바로 옆에서 뭔가를 하는 게 분명했다.
이문후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뒤늦게 그 원인을 깨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게 뭐야?”
냄새의 원인은 이문후 자신이었다.
입고 있는 옷에서 악취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목이 늘어난 오래된 티셔츠.
누리끼리해진 하얀색 티셔츠가 어느새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땀인가? 빤 지 얼마 안 됐는데? 우웩.”
땀이라고 하기에는 냄새가 너무 구렸다.
곧장 티셔츠를 내던진 그는 살갗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오물을 확인하며 다시 한번 헛구역질을 했다.
“우웩. 이게 뭐야!”
누가 일부러 장난을 친 것 같았다.
따로 원룸에 들어올 사람이라고 해봐야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심한 장난을 칠 정도로 못된 사람은 없었다.
‘민석이 그 새끼가 들어왔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이런 짓을 저지를 정도로 미친놈은 아닌데.’
이문후는 차가운 물로 몸을 씻었다.
그리고 구정물로 변해가는 물을 확인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갑자기 달라진 시력과 알 수 없는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차가운 물을 맞으면서 생각을 정리한 그는 물기를 닦아내고, 늘어난 티셔츠와 입고 있던 속옷을 비닐봉지에 담았다.
다시 세탁을 하더라도 도저히 다시 입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찝찝한 상태로 옷을 다시 입는 것보다는 그냥 버리는 게 나았다.
“의자도 더러워졌네.”
투덜거린 그는 물티슈를 꺼내서 검게 눌러붙은 오물을 닦아냈다.
한참을 낑낑대고 나서야 의자에 묻은 이물질을 치울 수 있었지만, 냄새는 여전했다.
“이걸 버릴 수도 없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던 그는 까맣게 변한 물티슈를 모아서 다시 봉지에 담았다.
“으윽. 뭐라도 뿌려야 하나?”
한동안 냄새는 계속 될 것 같았다.
은은하게 배어 있는 구린내에 얼굴을 찌푸린 그는 옷을 챙겨 입었다.
밤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허기를 채워야 했지만, 냄새가 가득 밴 이곳에서는 라면도 끓이지 못할 것 같았다.
이문후는 종량제 봉투에 검은 봉지를 넣었다.
그 상태에서도 구린내가 진동했다. 아직 10L의 용량을 채우기에는 한참 부족했지만, 그렇다고 냄새나는 것을 집에 둘 수는 없었다.
남은 쓰레기를 한데 모은 그는 봉투를 채우며 원룸을 나섰다.
***
“흐음.”
쏟아지는 햇빛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달라진 시야는 공기 중에 떠도는 작은 먼지까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고, 햇살도 유난히 강력하게 느껴졌다.
며칠 동안 방안에 처박혀 있던 그로서는 오랜만의 외출이 어색했다.
주변에 쓰레기 봉투를 내려놓은 그는 혹시라도 누가 볼 것을 두려워하며 빠르게 편의점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 있는 편의점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민석을 돕는다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인지라 눈을 감고도 편의점으로 갈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던 이문후는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평소와 다르게 동네가 너무 조용했다. 조용하다 못해서 고요한 느낌이었다.
간혹 보이는 차를 제외하고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길은 한적했다.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근 가게들도 이상했다.
아무리 평일이라고 하지만,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은 쉽사리 문을 닫지 않았다.
‘편의점도 닫힌 건 아니겠지?’
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상념을 떨쳐내며 빨리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퉁이를 돈 그는 앞을 가로막은 낯선 생명체를 마주하며 그대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건 뭐야?”
“키키킥.”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무언가를 뜯어 먹고 있는 낯선 생명체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쓰러진 길고양이의 몸에 얼굴을 파묻은 채, 살점을 뜯은 놈은 놀란 이문후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왜소한 체구를 가진 놈이었다.
주둥이에 붉은 피를 잔뜩 묻힌 놈이 기괴하게 웃자, 날카로운 송곳니가 도드라져 보였다.
“미친!”
이문후가 마주한 놈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외형이 너무 기괴했다.
가슴 언저리에 못 미치는 작은 키를 가진 놈은 겨우 하의만 가리고 있었고, 손에는 조잡한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본 적 없는 생명체였다. 하지만 이문후는 놈을 잘 알고 있었다.
“고블린이잖아?”
체더월에서 가장 처음 접하는 몬스터였다.
게임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고인물이 이문후였다.
그가 고블린의 형체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 무조건 접할 수밖에 없는 놈이라서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어렵지 않게 놈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런 고블린을 현실에서 마주했다는 점이었다.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력이 달라진 것도 이상했지만, 저런 놈을 마주했다는 것은 더 황당했다.
당연히 정신이 이상해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키아악!”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기 무섭게 몽둥이를 든 놈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짧은 다리로 바닥을 박차며 거리를 좁혀오는 놈의 모습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미친!”
게임과 현실은 달랐다.
게임에서는 최약체인 고블린이었지만, 현실에서는 미친 괴물이었다.
적의를 가진 채 달려드는 고블린의 모습은 마치 적의를 드러내는 도사견과 닮아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급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지금의 이문후는 평범한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온다! 저놈이 정말 고블린이라면 지금 도약을…’
게임 속의 고블린이 내보이는 움직임을 알고 있는 그의 머릿속은 본능적으로 공략법을 찾고 있었다.
체더월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방송을 위해서 팬티만 입고 활보하던 그인지라 거기에 나오는 몬스터들의 패턴과 공격 타이밍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뛰어오르는 놈과의 거리를 좁히며 바닥을 굴렀다.
‘크윽. 이건 게임이 아니었지!’
딱딱한 바닥으로 몸을 던진 이문후는 뒤늦게 현실을 깨달았다. 몸을 던지면서 부딪친 바닥에 피부가 쓸려나갔지만, 다행히 놈의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고블린은 오히려 이문후를 뛰어넘으며 스쳐 지나갔다.
이문후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그대로 길을 내달렸다.
‘미친개는 피하는 게 상책이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저런 놈을 상대해봤자 좋을 건 없어!’
싸우는 것보다는 도망을 택했다.
쓰러진 길고양이의 사체를 보면 저런 놈과 부딪쳐서 좋을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고블린은 그를 뒤쫓아왔다.
등을 보이며 물러나는 이문후를 놓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키아아!”
괴성을 지르면서 달려오는 고블린의 모습에 이문후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 새끼를 데리고 민석이 편의점으로 갈 수도 없잖아?’
편의점과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
괜히 편의점으로 들어갔다가는 친구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짧은 순간 고민하던 그는 마음을 정했다.
“씨발, 고작 고블린 따위야!”
체급에서 차이가 났다. 무엇보다 조금 전에 본 놈의 행동은 그가 알고 있던 체더월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망가던 이문후는 걸음을 멈췄다.
“끼아아!”
그런 그에게 고블린이 달려들었다.
이전보다 더 먼 거리를 도약한 놈이 몽둥이를 치켜들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문후도 방법을 달리했다.
부우웅!
조금 전처럼 바닥을 구르는 게 아니라 가볍게 옆으로 물러나며 놈의 공격을 피했다.
선명하게 보이는 몽둥이의 끝.
놈의 몽둥이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지만,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촤아악.
허공을 휘저은 고블린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미끄러졌다. 그리고 이문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뒈져라!”
곧장 달려든 그는 미끄러진 고블린의 뒤를 잡으며 놈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뻐억!
호쾌한 발길질과 함께 고블린이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크극!”
혼신을 다한 발길질은 너무나 평범했다. 하지만 얻어맞은 고블린은 거의 5m를 밀려났다.
확실히 체급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나름 큰 충격을 준 것 같았다.
동시에 커다란 굉음이 뒤를 이었다.
끼이이익!
콰앙!
그대로 차도까지 밀려난 놈은 마주 오는 차에 치이며 바닥에 처박혔다.
바닥이 순식간에 놈의 피로 흥건해졌다.
잘게 몸을 떨던 고블린이 움직임을 멈췄고, 놈을 친 차는 뒤늦게 멈춰 섰다.
“미친!”
어쩔 수 없이 놈을 공격했지만, 처참한 광경에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쓰러진 고블린의 모습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알 수 없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플레이어로 각성합니다.]
[건곤대나이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게 뭔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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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