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 (61/62)

61.

한바탕 운 재희는 한숙이 차려 준 음식을 꾸역꾸역 다 먹었다.

밥을 어찌나 많이 펐는지.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도 않아 한참이나 먹어야 했다.

“…….”

엄마 밥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가게를 한다더니 한숙의 음식 솜씨는 제법 좋은 편이었다.

다 먹은 빈 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다시 문소리가 들려왔다.

가게에 갔던 한숙이 다시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 먹었네.”

한숙이 상을 슬쩍 보며 중얼거렸다.

“가져가.”

한숙은 재희의 옆에 작은 쇼핑백을 내려놓았다.

재희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한숙이 시선을 내린 채 말을 이었다.

“아, 냉장고에 있는 그 고기도 마저 가져가라.”

“먹었으니 됐어요.”

“너 주려고 한 거래도. 임산부가 비싼 고기 먹어야지.”

싫다는 말에도 한숙은 냉장고에서 밀폐 용기를 꺼내 쇼핑백에 담아 주었다.

재희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한숙이 그것을 들어 건넸다.

망설이던 재희가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

“몸조심해.”

“…….”

“순산하고.”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한숙은 재희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시 울컥할 것만 같아 재희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신발을 신었다.

가게 앞에 세워 둔 차에 올라타자 한숙은 뒤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사이드미러로 확인한 재희는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멀어지는 한숙의 모습에 그녀의 눈가가 다시금 젖어 갔다.

△ ▼ △

무슨 정신으로 집에 온 건지.

한숙을 만나고 오면 늘 마음이 힘들었는데, 오늘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마음이 참 무겁다.

“하아.”

재희가 불편한 듯 가슴을 통통 치며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많이 먹은 탓인가.

얹힌 듯 가슴이 참 답답하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던 그녀의 시선이 옆에 놓인 쇼핑백에 닿았다.

“…….”

쇼핑백도 어쩜 저리 후줄근할까.

허름한 가게에서 대충 차려입고 장사를 하던 한숙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명치끝이 욱신거리는 기분이다.

쇼핑백 안에서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던 그녀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

재어 둔 불고기, 사과 두 알. 그리고 한숙이 파는 순댓국.

“진짜…….”

구질구질해.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한 곳에 닿았다. 재희가 잘 포장된 옷 한 벌을 꺼냈다. 그것을 본 재희는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시장에서 산 건지. 브랜드도 알 수 없는 아기 내복 한 벌이었다.

“한결같이 나쁘던가.”

이제 와서 왜.

“흐흡.”

재희는 내복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았다.

‘몸조심해. 순산하고.’

한숙이 끓여 준 미역국이 문득 떠오른다.

사람 마음 불편하게 하는데 타고난 건지.

작은 내복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는 사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로 걸어들어오던 차현이 그녀를 보곤 놀라며 다가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재희가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엔 눈물이 가득하다.

그녀의 주위를 살펴본 차현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번졌다. 누굴 만나고 온 건지. 의문의 물건들이 그녀의 주위에 있었다.

“재희야.”

다시 그녀의 고개가 떨어졌다. 차현은 재희의 옆에 앉아 품에 안았다.

그러자 재희의 흐느낌이 조금 더 짙어졌다.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그녀는 한참이나 울어야 했다.

△ ▼ △

“좀 마셔.”

소화가 안 된다는 재희의 말에 차현은 매실 에이드를 타 주었다.

임신 중이라 약을 먹을 수 없기에 소화에 좋은 매실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재희가 한 모금 마시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끄덕끄덕.

그의 물음에 재희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너무 울어서인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시원한 매실 에이드를 마시자 그래도 조금은 정신이 차려지는 기분이었다.

차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옆에서 기다려 주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아기 내복이 들려있었다.

“오빠.”

“응?”

한숙을 만나고 오면 늘 이렇게 마음이 불편했다.

이번에도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니었겠지만.

“엄마가 밥을 해 주더라.”

“…….”

한 끼도, 단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밥이었다.

은미가 만들어 주었을 때가 생각났다.

친정엄마가 챙겨 주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는데.

시어머니라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딸처럼 챙겨 주는 은미가 그저 고마웠었다.

“처음이었어. 엄마가 해 준 밥은.”

물론 어렸을 때는 먹었을 것이다.

제가 기억하지 못할 뿐.

가끔 그녀가 보는 사진 속 한숙은 무척 곱고 우아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되게 불편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맛있는 거야.”

“재희야.”

“엄마가 음식을 잘했더라고.”

한숙이 해 주었던 밥이 다시금 떠오른다.

미역국도. 임신하면 좋은 거 먹어야 한다며 해 준 불고기도.

속상한 마음과는 달리, 먹는 내내 참 맛있었다.

이게 엄마가 해 준 밥이구나 싶어서.

“남들 다 친정엄마 밥 먹는다고 할 때, 나 실은 엄청 부러웠어.”

자존심에 아닌 척, 안 부러운 척했지만 임신하고 나니 어찌나 엄마 생각이 나는지.

재희의 눈가가 빨갛게 물들었다. 차현은 그녀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 주었다.

“근데 다신 안 볼 것처럼 인사하더라고. 엄마가.”

그 말이 퍽 서운했다.

그간 당하고 시달렸던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릴 정도로 싫었다.

평생 안 봐도 좋을 만큼.

저를 돈으로만 보는 엄마가 그렇게 원망스러웠는데, 마지막 인사 한마디가 심장에 콕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고 집에 와서 이걸 펼쳐 보는데…….”

재희가 파들거리는 입술을 씹으며 눈물을 꾹 참았다. 앞에서 보던 차현이 그녀를 안고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아마 볼 낯이 없어서. 그래서 그러셨을 거야.”

“그러면 오늘도 부르지 말지.”

재희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녀도 내심 엄마를 무척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고 오면 마음이 이렇게 무거웠던 건 구질구질한 엄마의 모습이 속상해서, 그래서 그랬던 거다.

“진짜 끝까지 이기적이야.”

원망 가득한 목소리를 내며 재희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살면서 두고두고 기억할, 평생 잊지 못할 추억 하나가 생겼으니까.

재희는 차현을 꼭 안으며 눈을 감았다.

△ ▼ △

“그렇게 좋아?”

“응.”

성별이 나왔다.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좋겠다던 차현은 성별을 듣자마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재희는 그때 깨달았다.

차현은 딸을 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정말……너무 티 난다, 오빠.”

그의 입꼬리가 주체하지 못하고 꿈틀거린다. 재희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상관없다며?”

“근데 너 닮은 딸이 정말 궁금했거든.”

“첫 딸은 아빠 닮는댔어.”

“그럼 곤란한데.”

곤란하긴.

차현을 닮으면 아마 몹시 귀여울 것이다.

누가 봐도 잘난 외모의 소유자가 이차현이었으니까.

상상만 해도 귀여워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근데 누구 맘대로 첫 딸이래. 나 한 명만 낳을 건데?”

“응. 더 안 낳아도 상관없어.”

이미 본인이 원하는 성별은 얻었다는 듯, 차현이 답했다.

사실 재희는 아들을 원했기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었다. 딸도 좋긴 했지만 아들은 생각만 해도 든든한 기분이다.

“일단 낳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 있으니까, 조금 더 고민해 보겠어.”

“더 안 낳아도 된다니까.”

“내가 아쉬워서 그래.”

“둘째가 아들이라는 보장은 있고?”

그게 문제구나.

재희의 얼굴에 낭패감이 어렸다. 사실 그녀는 배다른 여동생이 있긴 했지만 늘 혼자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같은 어머니를 둔 형제가 없어 외로웠던 걸 생각하면, 사실 둘은 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 복귀도 해야 하는데 한 명이면 충분하지.”

“……그렇긴 하지.”

차현이 잠시 정차한 틈을 타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간까지 모은 채 재희는 제법 심각한 표정이었다. 차현이 손을 뻗어 그녀의 볼록한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17주라 그런지 이제 제법 배가 나와 있었다.

“귀엽다, 정말.”

“나?”

“그래. 너 귀엽다고.”

뻔뻔하게 묻는 그녀가 귀여워 차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태동 너무 궁금한데.”

“조금 더 자주 할 때, 그때 내가 말해 줄게.”

며칠 전, 재희는 처음 태동을 느꼈다.

처음에는 뽀글뽀글하는 그런 느낌이라 긴가민가했는데 엊그제 툭, 툭 치는 걸 느끼자 이게 태동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재희가 너무 신기해하며 호들갑을 떨자 차현도 매우 궁금한 눈치였다.

“그러니까 아빠 목소리 더 많이 들려줘. 책도 읽어 주고.”

“그래. 오늘 밤에 읽어 줄게.”

“오, 진짜?”

차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태담은 많이 해도 책을 읽어 주는 건 영 낯간지러워서 못하겠다고 하던 그였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던 재희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설마 딸이라서 책 읽어 주는 건 아니지?”

“에이. 날 뭐로 보고.”

“맞네. 맞아. 딸이라 그런 건가 보네.”

재희는 단정 지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차현이 피식 웃으며 아닌 척 표정을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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