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 (55/62)

55.

차현이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빠르게 그녀의 몸을 살폈다.

임신이라니…….

피임은 매우 철저히 했기에 임신을 했을 거라고는 단 1%도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재희는 일 때문에 임신을 고민 중이었다.

“너 괜찮아? 몸은 어떤데. 임신인 건 언제 알았어.”

“오빠…… 왜 일어나. 누워 빨리!”

재희가 사색이 되어 그의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차현은 미간을 구긴 채 재희의 안색을 확인했다.

임신인 줄 알았다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차현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번졌다.

“재희야!”

그때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차현이 놀라며 그녀를 안아 부축했다. 바싹 마른 몸이 그의 품에 쓰러지듯 안겨 왔다.

재희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오빠.”

“난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하아.

괜찮다는 한마디에 재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위독하다는 기사를 보곤 정말 죽는 줄 알고 뛰어왔는데, 자신을 받쳐 안은 그를 보자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점차 잦아들었다.

다행이다 싶어서.

그녀의 입술 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괜찮은 거지? 흐흡. 난 정말…… 오빠가 잘못되는 줄 알고.”

재희가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쏟았다.

가만히 내려다보던 차현이 재희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얼굴을 묻자 재희의 흐느낌이 조금 더 짙어졌다.

차현이 시큰거리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흐흡. 정말…… 죽은 줄 알았단 말이야. 임신은 말도 못 했는데.”

“미안해.”

“내가 이혼하자고 해서, 흡.”

달려오는 잠깐의 시간 동안 재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차현은 그녀를 조금 더 꽉 끌어안았다.

△ ▼ △

“진짜…….”

차현의 품에 안긴 채 재희가 눈을 흘겼다.

제 마음 하나 자각하지 못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그녀에게 화가 나 차현은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게 이런 방법일 줄은…….

스케일도 스케일이었으나, 고작 자신의 마음 하나 돌리자고.

그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모든 사실을 들은 그녀는 울컥하고 말았다.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진짜 죽었으면 어쩌나 내가…….”

말하다 보니 또 아찔하다.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사실 원망스럽기도 했다. 굳이 이런 식으로 했어야 했는지.

화가 난 재희가 그를 밀었지만 차현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녀를 조금 더 꼭 끌어안을 뿐.

“그러게. 왜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고, 고집은 왜 그렇게 부려.”

“그래도 사람이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지. 혹시 우리 아기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임신인 줄 알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5년 전에나, 지금이나. 먼저 포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사실 실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제 마음을 좀 알아보길 바랐다.

조금 극단적이긴 했지만,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건 내가 잘못했는데. 임신인 건 왜 말 안 해. 나 없이 혼자 낳으려고 했어?”

“……응.”

답하는 그녀를 보자 머리가 지끈거린다.

진짜 고집…….

차현이 이를 바득 깨물며 눈썹을 비딱하게 기울였다. 그 서늘한 표정에 재희는 입술을 감쳐 문 채 시선을 피했다.

“은재희.”

“됐어. 그렇게 부르지 마. 나도 지금 엄청 화나거든?”

“이혼하겠다며. 그럼 여긴 오지 말았어야지.”

“끝까지…….”

재희가 눈을 부릅뜨며 입술을 짓이겼다.

“절대 손 놓지 않겠다고 하더니. 그렇게 쉽게.”

“쉽게 한 거 아니라고.”

제 마음이 얼마나 지옥인지 차현은 알지 못한다.

아무리 제 마음을 잘 이해하는 차현이라고 해도.

그의 직장과 신변, 삶에 위협은 준 건 제 아버지가 벌인 짓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에도 또 그에게 피해가 가자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내 마음 알면……오빠도 그렇게 쉽게 말하면 안 돼.”

“괜찮다잖아. 옆에만 있어 달라고 내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

“또, 또 화내는 거야 지금?”

서로 자신의 상황만 말하다 보니 언성이 높아졌다.

재희의 눈가가 젖어 갔다. 그 모습을 보던 차현이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숨을 골랐다.

“미안해.”

차현이 사과했다. 재희의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병원으로 오는 내내 후회했다.

다 저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아 눈물은 쉼 없이 흘렀다.

혹시 정말 그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일 없이 앞에서 화내는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일을 계획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내가 잘못했어.”

“…….”

“화 풀어.”

결국 차현이 먼저 사과했다.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뺨에 흐른 눈물을 닦아 냈다.

오랜만에 본 그녀의 얼굴은 무척 야위어 있었다.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그러던 와중 임신까지…….

“임신, 언제 확인했어.”

“…….”

“설마 나 만났던 날도 알고 있었어?”

답이 없는 걸 보니 맞는 모양이다. 차현이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그게 언제인데.

벌써 몇 주나 흐른 채였다.

“진료는. 본 거야? 병원 다녀왔어?”

“응. 7주래.”

“넌 몸 괜찮아?”

“안 괜찮아.”

재희가 냉랭한 목소리로 답했다. 매일 매일 속이 울렁거려 살 수가 없었다.

나날이 심해지는 입덧 탓에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 없을 만큼.

그래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모든 냄새가 역했는데 차현의 체향을 맡자 울렁거리던 속이 잦아들었다.

재희가 그의 품에 파고들며 얼굴을 묻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그가 괜찮아서. 임신 사실을 알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너무 지친 나머지 재희는 그의 품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아기 심장 소리 좋네요. 주 수에 맞게 잘 자라고 있어요.”

차현은 날이 밝자마자 그녀를 데리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어제 저 때문에 너무 놀라게 한 게 마음에 걸려 그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혹시 자는 사이 그녀가 아프기라도 할까 봐. 아기가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불안해서 잘 수가 없었다.

그는 재희를 살피며 이런 일을 만든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아기는 괜찮은 건가요?”

아프던 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행히 괜찮아졌다.

그래서 굳이 이럴 필요 없다는 데도 차현은 꼭 확인해야 한다며 단호히 말했다. 이렇게 유난을 떠는 그의 모습이 황당하기만 하다.

고개를 슬쩍 돌리자 의사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분명 조금 전에도 의사가 주 수에 맞게 잘 자라고 있다고 했는데.

재차 확인하는 걸 보니 정말 걱정이 된 모양이다.

“네. 뭐, 피검사 결과도 좋고. 다 좋아요.”

나이가 지긋한 여의사가 재희와 차현을 번갈아 보며 해사하게 웃었다.

그제야 차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그녀가 불편할까 봐 일부러 남자 의사가 아닌 여의사에게 진료를 예약했다. 의사가 차트로 시선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몸 컨디션은 어때요?”

“입덧이 너무 심해요. 머리도 많이 아프고 어지럽고…….”

“먹는 거는요.”

“잘 못 먹어요.”

못 먹는다는 한마디에 차현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먹지도 못한 채 별장에서 혼자…….

속상한 마음에 명치 끝이 욱신거린다.

“입덧 약 있는데, 처방 좀 해 줄게요.”

“약, 이요? 약 먹어도 괜찮은 건가요?”

“네. 아기에게 괜찮은 거라 엄마가 너무 힘들면 먹어도 됩니다. 걱정하지 말고 드세요.”

의사는 명쾌하게 답을 했다.

“아, 초기니까 엽산 잘 챙겨 드시고요. 엽산 먹고 더 울렁거린다는 분들도 많으니 너무 심하면 가끔 생각날 때 먹어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진료 때 보죠.”

진료가 끝나고 차현과 재희는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재희가 작게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괜찮다잖아. 유난은.”

“하아.”

차현이 타이를 느슨하게 당기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잔뜩 긴장하며 밤을 새웠는데, 괜찮다는 한마디에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걱정했어?”

“응. 엄청.”

“으.”

고소해.

재희가 뒷말을 삼키며 피식 웃었다. 그가 다쳤다는 이야기에 헐레벌떡 뛰어오며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사건을 만들어 놓고 그녀가 어떻게 될까 봐 걱정하는 그를 보자 그래도 조금은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라며 재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속 많이 안 좋아?”

“응.”

입덧은 여전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래도 조금 낫던데.

오늘은 오전 내내 속이 메스꺼워서 딱 죽을 맛이었다.

“내 침 맛도 이상해.”

“……침?”

“응.”

미각이 정말 맛이 간 건지.

하다못해 제 침 맛도 이상해 삼키기가 힘들 지경이다.

“웁.”

“재희야.”

“우웁!”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며 그녀가 빠르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재희야! 은재희!!”

제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그녀 때문에 차현은 몹시 당황했다.

차현은 곧장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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